玄鶴暮春節 聖母有奇疾 芻牟禱河神入水得靈菜 服之卽雲捲 可謂孝盛致 又與烏伊等分隊 習野戦 山戦與水戦 市戦又林戦 雪戦及風戦 一一皆習之 人人目芻牟必為天下主 稽候與病已合力討郅支 郅支走烏孫 烏孫不服之 是冬病已死 子奭継其後 虗己能尊賢優柔不能斷 簠公将胡兵東来不而城 柒公助以軍 黃竜亦與之 荇人不得爭 卑离奉簠公 禾滿為其相 末曷漸南下 蔓延盖斯水 自稱南沃沮 東余尊金蛙稱爲大单于 聖母爲閼氏 帶伯右賢王 帶素左賢王 帶仲高邪王 帶玄加葉王 帶黃貫那王 帶赤東海王 帶靑蘭陵王 斗辰貝陵王 加菽曷思侯 胡真藻那侯 芻牟左大將 觧弗右大將 奧陵柵城侯 斗辰納都氏生子曰屋智
玄鶴(현학, 검은 학, 乙亥, BC46년) 해의 늦봄에 성모(유화부인)께서 기이한 병에 걸리셨다. 추모가 하신에게 기도하고, 물속으로 들어가 신령한 나물을 얻어왔는데, 그것을 복용하시자 곧 병이 걷히니, 참으로 효성이 지극하여 이룬 결과라 할 만했다.
또한 (추모는) 오이 등과 더불어 부대를 나누어 야전, 산전, 수전, 시전(시가전), 임전, 설전 및 풍전을 익혔다. 하나하나 모두 이를 익히니, 사람마다 추모를 주목하며 반드시 천하의 주인이 될 것이라 여겼다.
계후가 병이(한 선제)와 힘을 합쳐 질지를 토벌하니, 질지가 오손으로 달아났으나 오손이 그에게 복종하지 않았다.
이 해 겨울에 병이가 죽고, 아들 석(한 원제)이 그 뒤를 이었으나, 자신을 비우고 어진 이를 존경할 줄만 알았지, 유약하여 결단력이 없었다.
보공이 오랑캐 군사를 거느리고, 동쪽 부이성으로 오니, 칠공이 군사로써 돕고 황룡 또한 그와 함께하였다. 행인이 다투지 못했고 비리는 보공을 받들었으며 화만이 그 재상이 되었다.
말갈이 차츰 남하하여 개사수에 만연하더니 스스로 남옥저라 칭했다.
동여(동부여)는 금와를 높여 대선우라 칭하고, 성모를 알씨(왕비)로 삼았다. 대백은 우현왕, 대소는 좌현왕, 대중은 고사왕, 대현은 가엽왕, 대황은 관나왕, 대적은 동해왕, 대청은 난릉왕, 두진은 패릉왕, 가숙은 갈사후, 호진은 조나후, 추모는 좌대장, 해불은 우대장, 오릉은 책성후로 삼았다. 두진이 도씨를 아내로 맞아, 아들을 낳으니 이름을 옥지라 했다.
靑狵歲首日 大石落王庭 蛙王憂爲災 帶素自誇勇運石不能得 帶伯与帶仲次苐来運石皆不能離地 帶玄絶脉死 芻牟晩来見運之 如小礫携之于溝中 深入一丈余 万夫不當勇 芻牟隱之久 今日始試之 素等畏惧陰有猜忌心
靑狵(청방, 푸른 삽살개, 甲戌, BC47년) 해의 첫날(정월 초하루), 큰 돌이 왕궁의 뜰에 떨어지니 금와왕이 재앙이 될까 근심하였다. 대소는 스스로 용맹을 자랑하며 돌을 옮기려 했으나 들지 못했고, 대백과 대중이 차례로 와서 돌을 옮기려 했으나, 모두 땅에서 떼어내지도 못했으며, 대현은 맥이 끊어져 죽었다. 추모가 늦게 와서 그것을 보고 옮기는데, 마치 작은 자갈처럼 가지고 도랑 가운데로 던지니, 1장(丈) 남짓이나 깊이 박혔으므로, 만 명의 사내라도 당해낼 수 없는 용맹이었다. 추모가 힘을 숨긴 지 오래였는데, 오늘에야 처음으로 시험해 본 것이니, 대소 등은 두려워하며 남몰래 시기하고 의심하는 마음을 품었다.
靑豕夏癸未 聖母生觧百 大鼈自就釜 蛙以為天賜将欲烹食之 聖母命放之 赤谷扶芬奴有力又善弓 帶素招為臣 命與芻牟試 芬奴易與之連試皆不勝 於是乃神之 願為芻牟臣 帶素聞而怒 使人欲刺之 芬奴殺其刺逃敀其母家
靑豕(청해, 푸른 돼지, BC44년) 해 여름 계미일에 성모(유화부인)께서 해백을 낳으셨다. 큰 자라가 스스로 솥으로 나아가니, 금와왕은 하늘이 내린 선물이라 여겨 장차 삶아 먹으려고 했으나, 성모가 명하여 그것을 놓아주게 했다. 적곡의 부분노는 힘이 세고 또 활을 잘 쏘았다. 대소가 그를 불러 신하로 삼고 추모와 시합하도록 명했는데, 부분노가 가볍게 여겨 연이어 시합했으나 모두 이기지 못했다. 이에 (부분노는 추모를) 신령스럽게 여겨 추모의 신하가 되기를 원했다. 대소가 이를 듣고 노하여 사람을 보내 그를 찔러 죽이려 하자, 부분노가 그 자객을 죽이고 그의 외가로 도망쳐 돌아갔다.
赤獺春二月 紅株呪斗辰 斗辰病難起 聖母命芻母求薬東海中 乃遊蘭陵原學釼於胎仙 復至阮陵上學畜於九阡 北至藻那水乃得腽肭敀 将近半年余 聖母怒太遲 斗辰命 勿怒 死病本無薬 雖遲亦何妨 都氏乃泣言 汝死我何敀
赤獺(적달, 붉은 수달, BC43년) 해 봄 2월에 홍주가 斗辰(두진)이 저주하니, 斗辰(두진)이 병이 들어 일어나지 못했다. 성모가 추모에게 명하여 동해 가운데서 약을 구하게 하니, 이에 蘭陵原(난릉원)에서 놀며 태선에게 칼을 배우고, 다시 완릉에 이르러 구천에게 짐승 기르는 법을 배웠으며, 북쪽으로 조나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가죽물개(腽肭)를 얻어 돌아왔다. 거의 반년 남짓 걸리니, 성모가 너무 늦었다며 화를 냈으나, 두진이 말하기를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죽을병에는 본래 약이 없으니 비록 늦은들 또한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라고 했다. 도씨가 이에 눈물을 흘리며 "당신이 죽으면 나는 어디로 돌아가겠습니까"라고 말했다.
斗辰以都氏命為芻牟室 芻牟不肯之 昆莫以細君與之岑陬事 汝不聞之乎 好人欲以禮将為芻牟后 乃言 岑陬事出於社稷計 都非社稷計何苦効岑陬 斗辰憂都氏 病勢益添劇 聖母亦憂之 竟使芻牟娶 月老赤縄戱 世人安得知
두진이 도씨에게 명하여 추모의 처(室)가 되라고 하니, 추모는 이를 즐겨 들으려 하지 않았다. "곤막(오손의 왕)이 세군(한나라 공주)을 잠추에게 준 일을 당신은 듣지 못했는가?"라고 하니, 호인이 예로써 장차 추모의 후처로 삼으려 하여 말하기를 "잠추의 일은 사직의 계책에서 나온 것이지만, 도씨는 사직의 계책이 아닌데 어찌 괴롭게 잠추를 본받으려 하십니까"라고 했다. 두진이 도씨를 걱정하여 병세가 더욱 심해졌고, 성모 또한 이를 근심하니, 결국 추모가 (예씨에게) 장가를 들었다. '월하노인의 붉은 실 장난'을 세상 사람들이 어찌 알 수 있었겠는가.
是年秋 大獵 芻牟從蛙王 劣馬引桑弓 射鹿
最多獲 帶素六兄弟 駿馬與宝弓終日無所得 蛙王責其子 汝等見善射以為弓所致 汝等見善騎以為馬所致 農則田所致 医則薬所致 奪其弓與馬何以無所得 何不思才拙徒為猜忌心 九月 斗辰薨 蛙王臨其枕 卿死誰可相 象觧雖年少 可以代臣職 蛙王問其次 烏文雖小可欠在不能将 蛙云蘭何如 斗辰不肯曰 蘭巴雖勝戦 亦非治國才且有惡賢心 用之必乱政 象觧如無威 封以駙馬王 賜之寵公主 誰敢侮象觧 葬斗罽山 後以禮賜芻牟 芻牟固辞云 臣以斗辰命已納都為妻 何敢娶公主 蛙云 大丈夫豈可一妻㢤 待汝威立後 欲以為相國 今姑数三年 蘭巴可代汝 芻牟 不得已 又娶禮公主 食邑三千戶 蘭巴 乃為相 盡革斗辰政 東余自此乱
이해 가을에(BC43년) 크게 사냥을 하였다. 추모가 (금와왕)을 수행하였는데, 나쁜 말을 타고 뽕나무 활을 당겨 사슴을 쏘아 가장 많이 잡았다. 대소 여섯 형제는 좋은 말과 보배로운 활을 가지고도 종일토록 얻은 것이 없었다.
금와왕이 그 아들들을 꾸짖었다.
"너희들은 활을 잘 쏘는 것을 보고 활 때문이라 여기고, 말을 잘 타는 것을 보고 말 때문이라 여긴다. 농사는 곧 밭 때문이고, 의술은 곧 약 때문이더냐? 그 활과 말을 빼앗은 것도 아닌데 어찌하여 얻은 것이 없느냐? 어찌 재주가 졸렬함을 생각하지 않고 한갓 시기하는 마음만 내는가?"
9월에 두진이 죽었다. 금와왕이 그 침상에 임하여 물었다.
"경이 죽으면 누구를 재상으로 삼아야 하겠소?"
"象觧(상해)가 비록 나이가 적으나, 신의 직책을 대신할 만합니다."
금와왕이 그 다음을 물었다.
"烏文(오문)은 비록 작으나마, (벼슬을 주어) 쓸 만하지만, 장수가 될 수 없는 것이 결점입니다."
금와왕이 이르기를, "蘭巴(란바)는 어떠한가?" 하니, 두진이 받아들이지 않으며 말하였다.
"蘭巴(란바)는 비록 전쟁에서 이겼으나, 또한 나라를 다스릴 인재가 아닙니다. 게다가 현명한 이를 미워하는 마음이 있으니, 그를 기용하면 반드시 정치를 어지럽힐 것입니다. 象觧(상해)에게 만약 위엄이 없다면, 駙馬王(부마왕)으로 봉하고, 사랑하는 공주를 주십시오. 그렇다면 누가 감히 象觧(상해)를 업신여기겠습니까?"
두진을 罽山(계산)에 장사 지낸 후, (금와왕은) 禮(예) 공주를 추모에게 하사하였다. 추모가 굳이 사양하며 말하였다.
"신은 두진의 명령으로 이미 都(도)를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어찌 감히 다시 공주에게 장가들겠습니까?"
금와왕이 말하였다.
"대장부가 어찌 아내 한 명만 둘 수 있겠는가? 너의 위엄이 선 뒤를 기다려, 너를 재상으로 삼고자 한다. 지금은 우선 3년 동안 蘭巴(란바)가 너를 대신하게 할 것이다."
추모는 할 수 없이 다시 예 공주에게 장가들었으며, 식읍 3천 호를 받았다. 蘭巴(란바)가 마침내 재상이 되어 두진의 정치를 모조리 개혁하니, 동여(동부여)가 이로부터 어지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