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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00궁사회 정0명이 나보고 사기꾼이라 하는거 같네.
오래간만에 디지털 국궁신문에 갔더니 정0명의 글이 인기라고 해서 링크를 따라 들어가 봤는데, 한산이 평소 골반고정하고 만작하라고 이야기 했다고. (주어가 없어서 애매모호 하지만) 한산을 지칭하여 사기꾼이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활쏘기에서 골반을 돌리면 안되는 이이기 http://cafe.daum.net/BosaengBowThimble/8nMi/26 )
단원 김홍도의 활쏘는 그림
이집트 벽화속 활쏘는 그림
한산은 사기친 적이 없습니다.
책 「조선의 궁술」이 이야기 하는 우리 활은 신체정면과녁 이마바루서기 사법체계이니 비정비팔 이러면서 미리 발을 과녁과 비스듬히 서고도 만작하면서 다리에 힘을 안주고는 골반을 휙 돌려버리면, 발은 비정비팔(?)인지 모르겠으나 상체는 양궁 리커브 궁체와 다를바 없으므로, 최대한 골반이 과녁과 마주보게 (엉덩이에 끼운 카드를 뽑아도 뽑히지 않을 만큼) 양 다리에 힘을 빡 주고 서서 만작해야 한다고(이것을 한산은 “골반고정”이라 표현했고, 활터에서는 이마와 배꼽이 과녁을 향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야기 했었고, 그래도 맨 마지막 젖먹던 힘을 쓰면 허리가 살짝 돌아가는데, 이것을 풀어줄 정도로 발을 반족장정도 살짝 뒤로 빼서 비껴서는 게 비정비팔이다, 자옥틀(?)을 만들어가면서 이렇게 분명히 이야기 했는데, 정0명은 나의 이야기를 들어보지도 않고(이미 들을 필요도 없었겠지만) 사기꾼으로 확정해 버리네요.
(자옥틀(?) 이야기 http://cafe.daum.net/BosaengBowThimble/8nMi/68 )
우리나라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는데, 정0명이 하는 말을 끝까지 경청해 보고 사기꾼인지 아닌지 독자 여러분께서 판단을 한 번 해 보시기 바랍니다.
좀 발전적인 부분은 이때까지 몸에 대하여 전혀 이야기 하지 않다가 갑자기 발 다음에 몸을 들고 나옵니다. 이게 아마 정0명이 자기가 잘못 알고 있던 부분을 시인하지 않고 능구렁이 같이 한산을 타고 넘어가는 비열한 행위로 보이는데 한산만의 생각일까요?
이때까지 정0명이 쓴 모든 책에는 몸에 대한 이야기는 솔방 빠져있었습니다.
한산은 항상 몸을 먼저 설명하고, 그 다음 발을 설명했었습니다.
그런데 정0명이 쓴 책을 거의 다 읽었지만, 한산이 읽어본 모든 책중에는 몸을 설명한 책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지난 1월 온깍지 까페에서 한산과 궁체논란 이후 요즈음 갑자기 책 「조선의 궁술」을 들고 나오면서 몸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다 큰 어른에게 적용될런지는 모르겠으나 “참 기특하다” 싶습니다. --- 한산의 자화자찬 같지만 아마도 정0명이 한산의 이야기를 읽고 뭔가 좀 느끼는 바가 있었던게 분명한가 봅니다. 천하의 보배 책 「조선의 궁술」과 황학정 성낙인을 끌어 안아 무서울게 없어 안하무인의 자존심과 기고만장한 고집을 꺽기 어려운 정0명이 이때까지 언급 안 한 조선의 궁술에서 가장 중요한 “몸”을 다 이야기 하니까, 이게 천지개벽에 해당한다고 할까요?
고자채기에 관한 부분은 정사론에 이미 힘쓰는 방향이 天圓地方천원지방으로 하늘에서 땅으로 힘쓴다고 나와 있는 것이고, 온00 궁체처럼 줌손을 고정하고 쏘거나 발시후 줌손을 풀어버리는 것은 인체를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활을 쏠 수 없기 때문에 화살의 초속이 빠르지 않다는 것을 장0민이 확인해 준 바이고, 정0명이 자기는 고자채기를 시전하지 못하면서 고자채기가 활병이라 지랄이니 이건 패스하겠습니다.
줌구미에 관한 부분도 정0명이 아직 이야기를 다 마치지 않았으니, 어떻게 다음 이야기를 하느냐 보고 나서 한산의 생각을 말씀 드리도록 해 보겠습니다.
이외 많은 부분을 이야기 하고 싶지만, 한산이 지금 당장 활을 못쏘는 입장에 처해 있고, 우리활에 대하여 궁사 각자가 공부해서 알아야 할 부분이기 때문에 한산도 일정부분 입을 다물려고 합니다.
일전에 고자업기가 전통궁술이라고 한참 떠들던 장0민이 한산을 집중적으로 비난할 때 한산이 할 말이 없어서 침묵한 것이 아닙니다. 고자업기가 전통궁술도 아니고 이미 궁실이 무너진 상태라 대응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세월이 약이려니 하고 넘겨서 좀 잠잠해 진 것이고, 이번 건은 그나마 좀 쏜다고 자기 스스로 주장하는 국궁단체 교두라는 사람이 공개된 온00 까페에 대놓고 (한산?을)사기꾼이라 이야기하는데, 한산은 온깍지까페 영구활동중지를 당해서 대응할 수가 없으므로 글을 몇자 남기는 것입니다.
http://cafe.daum.net/onkagzy/GI4B/68
하말 정진명의 전통 사법 강의 1
정진명(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1.전통사법의 정의
한국의 전통사법은 <조선의 궁술>(조선궁술연구회, 1929)에 묘사된 사법을 말합니다. 당시 서울 황학정에서 성문영 사두가 정리한 내용으로, 서울 지역은 물론 당시 전국에 두루 통하던 사법이었습니다. 당시 사법이 이렇게 전국에 걸쳐 똑같은 모습인 것은 조선시대의 무과 실시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따라서 전통 사법이란 <조선의 궁술>에 묘사된 사법을 말하며, 그 글을 쓴 주체는 황학정의 성문영 공입니다. 근래에 '사법이 다양할수록 좋지 않느냐?'는 말을 하는 한량들이 많은데, 이것이야말로 전통 사법을 부인하고 새로운 사법을 만들려는 의도에서 하는 말입니다. 즉 전통에서 벗어난 자신의 사법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다양성'에 호소하는 수작이죠. 당연히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런 오류를 대놓고 주장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전통'을 인정했다가는 자신의 존립근거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전통 사법은 다양한 게 아니라 딱 1가지 뿐입니다. <조선의 궁술>이 그 답입니다. 어떤 다양성도 전통 사법의 뒷걸음질과 타락에 불과합니다.
이 전통사법은 2000년 들어 <온깍지 사법>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 번 정리되었습니다. 이를 두고 인터넷에서는 많은 논쟁이 일었습니다. 그렇지만 제대로 된 자기 사법의 근거를 제시하는 사람은 없고, 다양성에 호소하는 논법으로 개인들이 스스로 터득한 주먹구구 사법을 홍보하는 차원의 논의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런 '다양성'도 의미는 없지 않겠지만, '전통 사법'을 제대로 소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소박한 자연 발생 사법을 마치 무슨 논거라도 있는듯이 주장하는 것은 논쟁으로써 본질을 비켜난 것이어서 사법 논쟁은 아직도 제대로 된 적이 없다고 판단해야 할 것 같습니다.
1)사법논의의 신비체험
전통 사법을 말하려면 <조선의 궁술>을 읽어야 하고, 그 내용을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저의 경험으로 보면 그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1994년에 집궁한 저는 1995년에 <조선의 궁술>을 처음 접했습니다. 그리고 몇 장 안 되는 <조선의 궁술> 사법을 읽으면서 다 이해했습니다. 어려운 서울 본토박이 말투 때문에 내용 이해에 약간 어려움이 있었지만, 내용을 파악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책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1년쯤 지나서 슬럼프가 왔습니다. 그래서 이책 저책 뒤적거리다가 <조선의 궁술>을 다시 읽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전에 다 읽은 내용이었는데 완전히 새로 읽는 기분이었습니다. 덕분에 슬럼프를 벗어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 때의 경험 때문에 저는 <조선의 궁술>을 매년 읽습니다. 그리고 1996년 겨울 성낙인 옹을 만났습니다. <조선의 궁술>을 읽다가 도저히 해결이 안 되는 부분이 몇 군데 있었고, 그에 대해서 여쭈었습니다. 그리고 책이 잘못된 부분이 있다는 사실도 알았고, 글쓴 당사자에게 듣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내용이 있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이것은 저 스스로가 활쏘기 책을 쓴 경험 때문에 더더욱 절감하는 부분입니다. 제 책도 읽는 분들이 오독을 하곤 합니다.
예컨대 등장궁체 그림에 보면 살대가 턱 밑에 걸려있습니다 그렇지만 성문영 공 만작궁체 사진에는 살대가 광대뼈 밑에 걸렸습니다. 어느쪽이 옳은 것일까요? 한 번 판단해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입을 닫겠습니다.
사법에 관한 글은 어떤 동작을 묘사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동작에는 반드시 내면의 원리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 원리를 알고 어떤 동작을 보는 사람과 그런 원리를 모르고 보는 사람은, 똑같은 동작을 보고서도 완전히 다른 결론에 도달합니다. 특히 오랜 세월 한 분야에서 몸으로 무언가를 하는 영역은 특히 더 그렇습니다. 똑같은 춤을 춘다고 해서 같은 춤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체험을 실감나게 할 수 있는 영역이 바로 활쏘기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전통'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무리 곁에서 두 눈 부릅뜨고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전통 사법에는 배우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것이 있고, 가르쳐주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스승 없이 '전통' 사법을 안다는 것은 2가지 중 하나입니다. 천재이거나 사기꾼이거나........ 안타깝게도 '전통'에는 천재도 감당못할 내용이 수두룩합니다. 그렇다면 답은 한 가지죠. 사기꾼입니다.
<조선의 궁술>을 읽다 보면 이러한 신비체험을 몇 차례 하게 됩니다. 몇 차례나 할까요? 그에 대한 답을 각자 해보시기 바랍니다.
2)전통 사법의 현주소
1994년 제가 처음 집궁했을 때만해도 궁체가 좋은 분들이 많았습니다. 이 말을 뒤집으면 그때까지만 해도 전통사법의 자취가 꽤 많이 남아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궁체는 정말 빠르게 망가져갔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명궁제도 때문이 아닌가 저는 짐작합니다. 명궁 제도는 아시다시피 궁체를 보지 않습니다. 오로지 몇 발에 몇 발을 맞추느냐 하는 과녁 맞추기 능력을 보고 부여합니다. 그러다보니 바람이라는 외부 조건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강궁을 쓰게 됩니다. 강궁을 쓰면 몸이 앞으로 나가고 턱이 나갑니다. 힘들기 때문에 중심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단이 높을수록 궁체가 엉망인 것은 바로 이런 까닭입니다.
이런 분위기는 활터 환경에 직접 영향을 미쳤습니다. 1990년대에서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명궁이 대량생산되고, 그런 명궁이 활터에 한둘씩 생기면서 그들의 영향력이 신사들에게 미친 것입니다. 무관의 구사들은 뒷방 늙은이 신세를 못 면합니다. 그러다보니 신사들은 자연스레 명궁들의 사법을 배우게 되고, 과녁 맞추는 것이 당면한 최대 관심사가 됩니다. 명궁의 활터 지배력과 활터의 전통 무너지기는 상당한 상관성이 있습니다. 좌우궁 발시 교대가 무너진 것도 경기방식의 변화 때문입니다. 이미 대회 경기방식이 활터의 분위기마저 흐린 것입니다.
이렇게 경기나 승단이라는 결과 위주의 분위기로 활터가 흘러가면 사법은 자연히 맞추기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강궁에 경시가 답입니다. 이것은 활터의 뒷방 늙은이들이 입에 달고 산 연궁중시와 반대되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 집궁할 때 활터에서 신사들은 주로 42호로 집궁을 했습니다. 그래서 궁체가 어느 정도 익으면 5호 정도 더 높여서 쏘는 방식이었죠. 충북의 경우 1998년 경에 갑자기 강궁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렇게 되지 전에는 구사들이 연궁 중시를 잎에 달고 살았습니다. 이때만 해도 옛 사법의 전통이 어느 정도 공감대를 이루었다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2000년을 넘어서면 이런 분위기가 활터에서 싹 사라집니다.
바람을 이기는 방법은 2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바람을 전혀 타지 않을 만큼 센 활을 쓰는 것입니다 145미터 밖에 과녁이 있는 우리 활터의 조건에서 한 60호 정도 되는 활에 6.5돈짜리 화살을 걸면 바람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마음대로 조준하여 쏠 수 있습니다. 과녁을 가로세로 3등분하면 9으로 분할되는데 그 중의 어느 한 곳을 골라서 맞출 수 있습니다. 설령 바람이 분다고 해도 홍심에 맞을 것이 왼쪽으로 밀려서 맞습니다. 백발백중할 수 있죠. 이것도 불안하면 70호쯤 되는 활을 잡으면 됩니다.
그런데 이런 방법에는 큰 문제가 하나 뒤따릅니다. 몸이 탈나는 것입니다. 3~5년 정도 착실히 쏘면 몸이 망가집니다. 주변에 그런 사람 참 많습니다. 9단 명궁들 중에서 하루에 활 10순을 내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그런 사람입니다. 겉으로 말은 안 해서 그렇지 속으로는 골병이 든 겁니다. 그래서 한 나절 쏴야 3순 정도입니다. 그 이상 쏘면 몸이 견뎌내지 못합니다. 진통제를 먹어가면서 쏘죠. 그러지 않으면 더 이상 올라갈 단이 없으니 목표가 사라져서 이제는 활을 쏘지 않고 활이나 화살을 만들어 볼까 하고 딴 짓을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전통 사법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법입니다. 우리의 전통 사법은 연궁에 중시로 바람을 이기는 사법입니다. 어느 정도 연궁이냐? 이것은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만, 보통 사람의 경우 처음 집궁할 때 40호 이상으로 넘어가면 안 됩니다. 이런 연궁으로 배워서 한 3년 정도 착실하게 궁체를 익히면 나중에 얼마든지 강궁도 당길 수 있습니다. 연궁으로 쏘다 보면 바람을 이기는 내면의 방법을 터득하게 됩니다. 전통 사법에는 바람을 이기는 내면의 원리가 있습니다. 이걸 모르면 100년을 쐈어도 전통 사법이 아닙니다.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입니다. 전통 사법에는 그런 원리가 있습니다. 그걸 터득하지 않으면 '전통'이 아닙니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우선 요즘 활터에서는 전통 사법을 배울 수가 없다는 결론입니다. 그리고 온깍지궁사회 활동(2001~2007) 결과를 봐도 이에 대한 입증은 충분합니다. 온깍지궁사회의 등장과 더불어 국궁계는 온깍지-반깍지 논쟁이 일었는데, 묘하게도 반깍지를 정당화하는 주장이 특별히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온깍지궁사회가 <조선의 궁술>을 계승한다고 한 데 반해 그에 대한 반론을 반깍지 측에서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깍짓손을 뻗지 않으면서 우리의 전통 사법인 <조선의 궁술>을 계승한다고 주장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죠. 이 상태는 그 이후도 마찬가지여서 지금까지도 반깍지 사법을 옹호하고 논리화한 주장은 없는 형편입니다.
그리고 20년이 흘렀습니다. 25년 전에 꽤 괜찮은 궁체를 지녔던 구사들은 급속도로 활터를 떠났고, 활터에 막 등장하던 명궁들은 20년이 지난 이제 활터의 실세가 되었습니다. 자신과 조금이라도 다르게 쏘는 사람이 나타나면 즉시 한 마디 합니다. "그렇게 하면 시수 안 나!" 이들에게 '다름'은 '틀림'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연궁중시로 바람을 이기는 훈련은 애초부터 불가능합니다. 전통 사법은 싹이 말랐습니다. 아프지만 사법 논의에사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냉정하고 엄연한 '사실'입니다.
3)전통 사법은 각궁 사법
전통 사법은 각궁 사법입니다. 이 얘기는 개량궁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즉 개량궁이 나오기 전인 1960년대만 해도 활을 배우는 과정은 크게 2가지였습니다. 사법과 각궁 다루기가 그것입니다. 각궁은 각 정마다 사범이 있어서 활을 얹어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도 자신이 어느 정도 얹어서 쏠 수 있을 정도의 각궁 지식은 있어야 했기에 누구나 사범으로부터 각궁에 대한 지식을 얻었습니다. 그렇게 활에 관한 지식을 얻는 과정이 한 10여년 걸립니다. 각궁에 대한 지식을 얻는 과정은 곧 사법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사법은 접장이 가르쳤습니다. 접장으로부터 사법을 배우고, 사범으로부터 각궁을 배우며 10년을 활공부하는 것입니다.
각궁과 개량궁은 힘쓰는 원리에서 보면 전혀 다른 활입니다. 각궁은 처음부터 빡빡합니다. 그러나 개량궁은 처음엔 말랑하다가 만작에 이르면서 점점 더 단단해집니다. 이것은 줌을 미는 방법이 다르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각궁은 대림이 어느 정도 버티는 단단함이 있어야 하고 개량궁은 만작이 부드러워야 편합니다. 이 힘의 원리가 발시의 방법을 다르게 합니다. 각궁은 깍짓손을 채야만 하고 개량궁은 줌을 밀어야 편합니다. 그래서 개량궁 궁체가 나타난 것입니다. 반깍지는 그 결과로 겉에 드러난 모습입니다.
요즘은 개량궁으로 집궁을 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그런 활에 익숙해집니다. 그랫 나중에 5단에 도전하려고 각궁을 잡으면 헤매게 됩니다. 안에서 힘을 쓰는 방법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현재 전국의 활터 상황을 보면 각 활터마다 4단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4단에서 정체된 이유는 바로 각궁의 특성 때문입니다. 깍짓손을 채야 하는 각궁을 들고 개량궁처럼 줌을 밀어서 쏘니 시수가 안 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각궁으로 배운 사람은 4단에서 5단으로 넘어가는 데 시간이 전혀 걸리지 않습니다.
이렇듯이 전통 사법은 각궁을 전제로 한 사법입니다. 그러니 각궁을 한 10년 쏘지 않은 사람이면 전통 사법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각궁을 쓰는 사람과 개량궁을 쓰는 사람은 <조선의 궁술>을 놓고 얘기하지만, 서로 전혀 다른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사법에 대해서 말을 하려면 각궁으로 착실히 한 10여년 쏜 뒤에 하는 것이 될수록 망신살이 덜 뻗치는 방법입니다.
근래에 인터넷에서 사법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는데, 뒤를 좀 캐보면 대부분 몇 년 안 된 신사들입니다. 활을 배워서 새로운 세계를 접한 환희를 감추지 못하고 글로 세상에 자랑하려는 의도가 뚜렷합니다. 그렇지만 그게 자신의 무덤자리라는 것을 아는 데는 한 세월이 걸립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 입을 닫고 각궁으로 한 10여년 쏜 뒤에 입을 여시기 바랍니다. 개량궁 사법을 터득하고는 전통 사법에 대해 입방아 찧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입니다. 한 번 쏟아진 물은 퍼담을 수가 없습니다. 전통 사법은 각궁 사법입니다.
4) 착각 한 가지
인터넷에서 대놓고 하는 주장 중에 이런 게 있습니다. 내가 활터에서 활을 쏘면 그게 전통 활쏘기이다! 맞습니까? 내가 황학정에서 활을 쏘면 황학정의 전통사법을 하는 겁니까? 내가 석호정의 활터에서 활을 쏘면 그 사법이 석호정의 전통 사법입니까? 코흘리개 아이들도 알 만한 거짓을 버젓이 주장하는 어른들이 정말 많습니다.
어른인데도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마음이 사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막기 때문입니다. 그게 사실이 아니라, 그렇게 주장하고 싶은 겁니다. 그렇게 해야만 자신이 온전해질 수 있는 절박한 위기에 빠져있는 것입니다. 눈이 먼 것이 아니라 마음이 먼 것입니다. 눈이야 무슨 죄겠습니까? 마음이 먼 사람의 몸뚱이에 매달렸다는 것 외에!
궁체는 믿음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믿음과 사실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은 서울이라는 말과 서울이라는 도시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사법 논의가 정말 무의미한 논쟁인 것이 바로 이런 것 때문입니다. 이렇다고 얘기해도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귓구멍이 아니라 똥구멍으로 알아듣습니다.
그러니 여기까지 읽어오시면서 속으로 떫으면 이쯤에서 읽기를 그치시기 바랍니다. 배알이 꼴리는 마음으로 읽어야 별 소득이 없을 겁니다. 이 밑의 글은 정말 활 공부에 절박한 사람들이 읽어야 할 곳이고 그래야 제대로 읽히는 글들입니다.(이렇게 얘기해도 끝까지 읽는 분 많습니다. 하하하.)
2. 전통 사법
전통 사법은 <조선의 궁술>의 사법을 말합니다. 이곳에서는 몸의 부위별로 설명했습니다. 반면에 <온깍지 사법>에서는 시간차 순으로 셜명을 했습니다. 각기 공간지각형과 시간지각형이라고 특성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결국 같은 내용을 어떤 방향에서 조명하느냐 하는 선택이 따라서 표현만 다른 것일 뿐, 동일한 내용을 묘사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조선의 궁술 』에서도 <온깍지 사법 >에서도 쏘는 동작만 설명했지 , 그에 대한 원리는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 아직 그에 대한 깊은 논의가 이루어진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 여기서는 그나마 그 동안 밝혀낸 내용을 중심으로 우리 사법에 작용하는 원리를 좀 더 깊이 다루고자 합니다 .
그 동안 전통 사법에 대해서 그나마 참고할 만한 깊이 있는 논의는 두 차례 정도 이루어졌습니다 . 온깍지궁사회 카페에 연재한 <현곡의 전통사법을 찾아서 >라는 글과 『활쏘기의 나침반 』입니다 . 현곡 류근원의 글은 『조선의 궁술 』의 사법 부분을 자신의 체험으로 재해석한 것인데 , 지금까지 접한 여러 가지 주장 중에서 전통 사법에 대한 가장 심도 있게 접근한 글입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100 년 동안 이보다 더 좋은 글이 나올 수 없다고 장담을 하곤 합니다 . 그 만큼 몸에 대한 분석과 전통에 대한 고민이 자신의 체험과 어우러져 잘 정리된 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1)발
발은 비정비팔로 섭니다. 비정비팔이라는 말은 한자 문화권에서는 모두 같은 말을 씁니다. 중국에서도 비정비팔, 일본에서도 비정비팔, 우리나라에서도 비정비팔입니다. 이렇게 가리키는 말은 같지만, 실제의 발모양은 3국이 모두 다릅니다. 이것은 몸통의 방향 때문에 그렇습니다. 몸통의 방향은 활의 길이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활채가 가장 긴 일본 활에서는 과녁을 정면으로 보지 못하고 양궁처럼 몸을 많이 돌려 섭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 발의 간격도 넓습니다. 이렇게 몸통을 돌려 서는 것은 만작시에 시위가 가슴에 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최대한 시위가 늦게 닿게 하려고 몸을 돌리는 것입니다. 중국 활은 일본활보다는 활채가 더 짧기 때문에 과녁을 향해 더 돌아섭니다. 이 돌아서는 방향이나 정도는 활채의 길이에 따른 시위 상태로 결정됩니다.
한국의 활은 123cm정도입니다. 그래서 이런 활을 당길 때 시위가 더 이상 가슴에 닿지 않는 선까지 몸통의 방향을 과녁쪽으로 돌립니다. 그 결과 한국의 활은 과녁과 거의 정면으로 맞설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발 모양도 결정됩니다. 한국의 전통사법에서 발 모양은 과녁과 거의 정면으로 마주선 모양입니다. 그래서 (우궁의 경우) 왼발로 과녁의 왼 귀를 밟고, 자연스럽게 오른발을 벌려 딛습니다. 양발의 간격은 자신의 주먹 둘이 들어갈 정도가 적당합니다. 이렇게 선 다음에 수련 정도에 따라 발 간격을 조절합니다.
이 발자세에 대한 묘사가 <조선의 궁술>에서는 애매모호합니다. 그래서 이를 두고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정확하지 않습니다. <조선의 궁술>이 그것을 쓴 사람에게 물어보아야 정확한 답을 알 수 있다고 한 첫번째 난관이 이 부분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가 하는 것을 토대로 이 부분을 재해석하거나 혹은 재구성합니다. 1998년 무렵에 황학정 국궁교실에서 한 1년간 발을 11자로 놓고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조선의 궁술>을 오독한 결과로 재구성한 상황입니다. 11자로 발을 놓고서도 얼마든지 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해보면 효율성이 떨어집니다. 결국은 다시 원위치 하게 되죠. 황학정에서도 1년 정도 이런 사법을 가르치다가 원래로 돌아갔습니다. 김경원 사범은 당시 30년 이상 된 구사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은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래도 김경원 사범님은 고수이기 때문에 이 자세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재빨리 원래 자리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렇지만 김 사범으로부터 활을 배웠다는 사람 중에는 아직도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때 김경원 사범에게 배운 사람은 아직도 자신이 김 사범의 정통 적자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인터넷 상에서 말끝마다 자신이 김경원 사범의 제자라고 강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작 김경원 사범의 진짜 제자들은 가만히 있는데 말이죠. 안타까운 일이죠. 진짜인 사람은 굳이 말로 그렇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굳이 말을 안해도 사실이 바뀌지는 않거든요. 가짜인 사람이 가짜임을 숨기려고 자꾸 말을 하는 겁니다.
<조선의 궁술>은 그런 책입니다. 지뢰가 한 10여개 묻혀있습니다. 그걸 다 피해서 목적지에 도달한다는 것은, 제가 보기엔, 구운 밤을 심어놓고서 싹이 나기를 기대하는 것만큼이나 어렵습니다. 제가 벌써 지뢰 2개를 알려드렸죠? 그런 점에서 스승이 있다는 것은 정말 즐거운 거죠. 룰룰랄라!
모든 무술에서 발자세는 가장 중요합니다. 무술의 시작과 끝이 바로 발입니다. 모든 무술의 고수들이 하는 얘기입니다. 태극권에서도 손은 없다고 말합니다. 발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활에서는 어떨까요? 어떨까는 둘째 치고 왜 그럴까요? 그 이유를 분명히 알아야 전통의 중요성도 알게 됩니다.
우리 활의 비정비팔이 다른 나라의 비정비팔과 다른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다른 민족의 발자세와 다르다는 것은, 그것에 우리 활의 핵심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 핵심은 뭘까요? '짤심'입니다. 발을 이렇게 정면으로 놓으면 활을 당기면서 저절로 온몸이 비틀립니다. 이른바 '짤심'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활을 당기면 당길수록 몸통은 조여집니다. 마치 나사처럼 말이죠. 발 모양 때문에 발 위에 얹힌 모든 부분에서 이런 짤심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발 모양을 우리 전통 사법의 핵심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정비팔 모양이 다른 사람과는 말을 섞어야 소용 없습니다. 서로 딴 말을 하게 됩니다. 발 서는 모양을 보면 말을 섞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됩니다. 발 모양이 다르면 입을 다물게 됩니다.
발의 너비가 뜻하는 바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해야겠습니다. 비정비팔의 발 사이 너비는 자신의 주먹 둘이 들어갈 정도입니다. 여자와 남자의 너비가 조금 다른데, 처음엔 그런 거 무시하고 남녀 똑같이 합니다. 나중에 저절로 자신에게 알맞은 너비를 찾아갑니다. 몸 안에서 움직이는 기운의 정도에 따라 나중에 저절로 자리 잡습니다.
이 너비는 요즘 활터 사람들의 반깍지 자세에 견주면 형편없이 좁아 보이죠. 그래서 온깍지 접장들이 활을 쏠 때 뒤에서 들리는 첫 잔소리가 발 간격이 좁아서 자세가 불안정하다는 것입니다. 하체가 굳건해야 한다는 거죠. 이런 말을 들으면 말은 귓구멍으로만 듣는 게 아니라 똥구멍으로도 듣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입니다. 발 간격이 좁아야 하체가 굳건해집니다. 발이 넓게 벌어지면 나중에 분문을 조이기가 불편합니다. 한 번 해보십시오. 당장에 확인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발 간격이 넓어야 하체가 안정된다고 말하는 것은, 어디서 들은 말을 있어 가지고 자신의 엉터리 사법에다가 갖다 붙여본 것입니다. 자신의 체험이 아니라 옛 온깍지 선배들의 말을 주워다가 자신의 동작에다가 붙여본 것이죠. 그러니 온깍지 한량과 반깍지 한량은, 똑같은 말으 서로 전혀 다르게 쓰고 있는 겁니다. 더 이상 말을 섞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발 간격이 좁아서 자세가 불안정하다는 판단은, 몰라도 뭘 한참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다. 그렇게 불안정하면 쓰러지겠죠. 그렇지만 발을 좁게 섰다고 해서 쓰러지는 사람은 못 보았습니다. 사람은 두 발을 붙이고 있어도 쓰러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불안정 차원이라면 발 간격이 좁으냐 넓으냐에 있지 않을 것입니다. 이건 코흘리개들도 아는 일입니다. 이제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들은 발을 넓게 벌릴 수밖에 없습니다. 쓰러지니까요. 그래서 중심을 잡으려고 겨우 버티며 뒤뚱뒤뚱 걷는 겁니다. 어른이 발을 넓게 벌린다는 것은 이런 걸음마쟁이로 돌아가는 겁니다.
전통 사법에서 발 간격은 절대로 넓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한 마디로 줄여서, 유연성이 떨어집니다. 앞서 말했듯이 비정비팔로 서면 시위를 당기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온몸에 짤심이 일어납니다. 처음엔 굉장히 불편합니다. 그래서 유연성이 떨어지는 나이가 되면 허리가 굳어서 갖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그래서 이것을 미리 예방하려고 몸통의 방향을 처음부터 틀어놓고 시작하는 겁니다. 그래서 점차 양궁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몸이 굳어서 더는 돌아가지 않는 사람들이 궁여지책으로 쏘려고 취한 자세가 미리 몸통을 돌려놓고 시작하는 사법입니다. 그래서 발 모양을 바꾸고 발 간격을 벌리는 겁니다. 몸통을 돌린 상태에서 발 모양이 좁아지면 어디까지 당겨질지 예측하기가 힘듭니다. 매번 당기는 길이가 달라지죠. 그래서 발 간격을 벌립니다. 발 간격을 벌리면 몸이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당겨지는 길이가 일정해집니다. 그래서 오늘날 흔히 보는 양궁 닮은 발자세와 궁체가 탄생한 겁니다. 축하합니다! 짝짝짝.
우리 활은 온몸 구석구석의 모든 힘을 다 씁니다. 머리카락 한 올까지 다 힘이 들어갑니다. 그렇게 되려면 몸의 일부를 이렇게 저렇게 계산해서 힘을 주면 안 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생각없이 당겨야 합니다. 그렇게 당길 때 온 몸에 힘이 저절로 들어가도록 사법을 짜야 합니다. 그러자면 발 간격이 넓으면 안 됩니다. 해 보면 아시겠지만 발 간격이 넓을 경우 분문이 잘 조여지지 않습니다. 일부러 조여야 합니다. 그래서 다들 신사들에게 그렇게 가르치죠. '일부러'가 벌써 우리의 전통 사법으로부터 멀어졌다는 증거입니다. 우리의 전통 사법은 일부러 뭘 어떻게 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밀고 당기면 저절로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 첫째 조건이 바로 발 너비입니다.
정말 하기 싫은 기 얘기를 또 해야겠습니다. 발 간격을 넓히면 기운이 잘 돌지 않습니다. 분문을 조이는 것은 기 조절의 대단원이자 열쇠같은 것입니다. 발 간격을 넓히면 우리 활에서 기의 움직임을 전혀 고려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기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주먹구구식으로 만든 발 자세가 요즘 활터에서 흔히 보는 어깨 넓이로 벌린 자세입니다. 그런 식으로 자세가 안정되려면 어깨 두배의 넓이로 벌려야 더 좋을 겁니다. 눈에 보이지 않은 중요한 원리를 놓칠 때 눈에 보이는 모양에만 집착하게 됩니다. 넓은 발간격 자세는 외형에먄 집착한 결과입니다. 속은 텅텅 빈 발자세입니다.
2)몸통
몸통은 비정비팔 때문에 저절로 결정됩니다. 즉 반듯해야 합니다. 왜 반듯해야 할까요? 반듯하지 않으면 몸이 비틀리지 않습니다. 꺾이죠. 몸이 비틀리리면 반듯하게 놓여야 합니다. 반듯하지 않으면 몸은 비틀리는 게 아니라 휘거나 꺾입니다. 당연히 어느 쪽으로 기울죠.
몸이 반듯하다는 것은 우리 활의 핵심입니다. 제대로 섰다는 뜻이죠. 제대로 서면 활은 거의 다 끝납니다. 우리 활에서 몸이 반듯하지 않은 자세는 틀린 것입니다. 이것은 몸이 내면 원리가 그래야 하기도 하지만, 조선시대의 성격 때문에도 그렇습니다. 조선시대는 선비들이 지배한 세상이고 선비들은 반듯한 몸을 중요시했습니다. 몸의 자세나 풍채가 좋아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곧 정신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몸이고 풍채였기 때문입니다. 내시는 아무리 훌륭해도 상체가 기울 수밖에 없습니다. 임금 앞에서 머리 꼿꼿이 한 내시를 생각할 수 없죠.
이렇듯이 바른 몸은 조선시대 선비들의 기본 자세이자 교양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활을 쏘는데 상체룰 꾸부정하게 구부리고 쏠까요? 활을 쏘는 한량의 궁체가 앞으로 숙었다면 벌써 우리 활의 전통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증거입니다. 활 쏘는 겉모습만 쓱 봐도 저 사람 제대로 쏘는지 어떤 지 알 수 있습니다.
제가 한 30년 전에 거문고를 한 6개월 배운 적이 있습니다. 첫날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즉 옛날에 거문고는 백악지장이라고 했고, 선비들의 교양이었답니다. 그러니 거문고를 끌어안은 모습이 좀 거만한 듯 보여도 괜찮다는 것이죠. 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거 하나로 거문고를 다 배웠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수연장지곡 끝나고서 거문고를 더 배우지 않았습니다. 지금 그 거문고는 아직도 벽에 기대어 가끔 열린 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에게 현을 맡기고 있습니다. 거문고 자랑이 아니라 활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말하려 함입니다.
반깍지 궁사들은 상체가 구부러지는 운명을 피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반깍지로 활을 배우면 줌을 밀어서 발시하는 방식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앞 어깨가 점점 과녁쪽으로 나갑니다. 그러면 상체가 점차 앞으로 기울어지죠. 상체가 앞으로 기울어지면 저절로 엉덩이가 뒤로 빠집니다. 활터에 가보면 이런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엉덩이가 뒤로 빠지면 흉허복실이 안 됩니다. 최악의 활쏘기죠. 이래서 궁체에는 전통이 필요한 것이고, 전통이 활쏘기의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조선의 궁술>에서는 목덜미를 따로 설명했는데, 몸통이 그렇다는 것을 알면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몸통을 바로 세우고 활을 당기면 목은 저절로 그렇게 당겨집니다. <핑핑이>.
얘기를 할까 말까 몇 번을 망설인 것이 하나 있습니다 . 모른 체하고 넘어갈까 하다가 최근의 황당무계한 헛소리들이 독가스처럼 나도는 것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한 마디 하겠습니다 .
어떤 정신 나간 인간들이 골반을 고정시킨다는 궤변을 늘어놓는다더군요 . 이 말의 유래는 꽤 오래 됩니다 . 옛날에 온깍지궁사회 주변에 어슬렁대던 사람의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 하도 황당무계한 주장이라서 그 당시에는 무시하고 말았는데 , 인터넷의 영향인지 이런 주장이 오늘날까지도 귀신처럼 떠도는 걸 보고는 혀를 쯧쯧 찼는데 , 그걸 또 저에게 와서 진지하게 묻는 사람도 생겼습니다 . 그래서 한 마디 합니다 .
우리 활은 들어 올리는 순간부터 마무리할 때까지 어느 한 순간도 멈추거나 꺾이지 않고 몸의 모든 곳이 움직입니다 . 이 움직임의 전체성이 우리 활의 고갱이입니다 . 골반도 마찬가지로 어느 한 순간도 멈추면 안 됩니다 . 상체가 움직이는 비율로 골반도 정확히 호응하여 움직여야 합니다 . 어느 곳을 멈춘다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한 것인데 , 그렇게 억지로 어느 곳을 고정시키면 그 멈춤으로 인하여 그 주변이 경직되고 일그러집니다 . 골반을 고정시킨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허리가 꺾여있습니다 .
제가 늘 사기꾼 조심하라는 말을 하는데 , 그 첫째 조건이 『조선의 궁술 』을 입에 담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 이제 사기꾼의 조건에 하나를 더 추가합니다 . 골반을 고정하라는 사람은 사기꾼을 넘어서 당신을 죽이려는 사람입니다 . 골반을 고정하려는 순간 당신의 몸속에서는 기운이 난도질당하듯이 토막토막 끊어집니다 . 머지않아 산 송장이 될 것입니다 .
3)줌손
이렇게 해서 몸통과 머리까지 반듯이 서면 이제 줌손이 중요해집니다. 물리 현상으로 볼 때 줌이 움직이는 방향은 모두 5가지입니다. 이 중에 4가지에 대해서 모두 활병을 가리키는 말이 있습니다. 줌은 당연히 발시 직후에 과녁 쪽으로 밀려야 합니다. 그런 뒤에 불두덩으로 져야 하죠. 과녁 쪽으로 줌이 밀리게 하기 위해서 줌손 장지가락 솟은 뼈를 밀라고 <조선의 궁술>에서는 말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지 않는 경우가 네 가지입니다.
첫째 줌 뒤로 밀리는 경우입니다. 이것을 '째진다'고 표현합니다. 제 얘기가 아니라 구사들 얘기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법은 제 얘기나 제 생각이 아닙니다. 구사들이 말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이고,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원리에 대해서 제 생각을 말하는 것이니다.
둘째 줌이 땅 쪽으로 떨어지는 경우입니다. 이런 것을 '앞 짚는다'고 표현합니다. 앉거나 일어날 때 손으로 바닥을 짚죠. 그렇게 앞쪽을 짚는다는 뜻입니다. 참 재미있는 표현입니다.
셋째, 줌이 줌앞으로 움직이는 경우입니다. 이런 것을 '빼앗긴다'고 표현합니다. 즉 줌손의 힘이 모자라서 깍짓손에게 빼앗겼다는 뜻입니다.
넷째, 손이 하늘 쪽으로 올라가는 경우입니다. 이런 것을 '처든다'고 합니다. 이 쳐들리는 동작을 막으려고 하는 것이 웃아귀를 누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오는 동작이 고자채기입니다. 그러니 고자채기는 활병일까요? 아닐까요?
네째의 처들림은, 우리 활에서 크게 문제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활은 줌손이 높기 때문에 처들리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해려 힘의 관성 상 앞짚는 경우가 더 많죠. 그렇지만 중국 활로 가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중국활에서는 줌손이 아주 낮습니다. 그래서 앞짚이는 경우도 많고 처들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깍짓손과 호응을 이룰 때 힘의 방향에 따라서 이런 현상은 많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처들리는 현상을 막으려고 웃아귀에 힘을 많이 줍니다. 그러는 바람에 활채의 윗부분이 과녁 쪽으로 밀리죠. 이른바 고자채기가 되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까지 되느냐면, 아랫장의 양냥고자가 궁사의 등쪽 죽지뼈를 때릴 정도입니다. 그러다 보니 고자채기가 중국 사법의 중요한 요령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이론이 요즘 우리 사법에도 등장하는 걸 보면, 머릿속이 좀 묘해지면서 고개가 저절로 갸우뚱 기웁니다.
이제 좀 다른 얘기를 하겠습니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얘기입니다. 즉 줌팔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기의 차원에서 보면 앞서 말한 방향과는 다른 또 다른 차원이 보입니다. 기운이 아랫배에서부터 충분히 차서 줌팔까지 올라오면 그렇게 되었을 때의 특별한 동작이 생깁니다. 즉 기운이 잘 작용할 때와 그렇지 못할 때의 상황입니다. 이 정도를 분간할 눈이 있는 사람은 우리 사법의 70% 가량을 터득한 사람입니다.
발시 순간에 줌손의 움직임을 보면 아주 용수처럼 탄력이 있습니다. 그 탄력을 보고서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 탄력은 앞서 말한 것처럼 팔의 문제가 아니라 불거름에서부터 기운이 차올랐느냐 그러지 않느냐의 차이입니다. 이때 기운이 잘 차올랐으면 줌손 특유의 반동이 있습니다. 그 반동의 양상이 정상일 때와 약간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도 2가지입니다. 기운이 없어서 위축된 경우가 있고, 늘어진 경우가 있습니다. 둘 다 문제죠. 이것을 가리키는 우리 말은 없습니다. 중국의 사법서에는 있습니다. 이를 각각 어림과 늙음으로 표현했습니다. 기운이 위축되어 마음껏 펼치지 못하는 것이 어림이고, 기운이 모자라서 어쩌지 못하는 것을 늙음이라고 합니다.
<조선의 궁술>에는 없는 것이 중국 사법서에 있으니 중국 사법서가 <조선의 궁술>보다 더 좋은 거 아니냐고 의문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건 착각입니다. 말로 해놓는다고 해서 다 좋은 게 아닙니다. 긁어 부스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굳이 안 해도 될 얘기를 해서 문제가 더 복잡해지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게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이 어림이나 늙음은, 기의 차원에서 본 것입니다. 그런데 활 배우는 사람에게 기 얘기를 해보싮시오. 전혀 못 알아듣습니다. 기 차원의 얘기는 적어도 10년 이상 착실히 수련한 사람에게도 정말 희미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활 공부가 제대로 이루어지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그런 것들입니다. 말로 하기 어려운 것을 굳이 말로 한다고 해서 좋을 게 있을가요? 그런데도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꾸 말을 만들려고 하죠. 남들이 그 말 때문에 더욱 헛갈린다는 생각은 하지 못합니다. 앞서 말한 4방향의 활병 이외에 관한 언급은, 긁어 부스럼입니다.
그러면 이 줌손에서 벌어지는 문제점을 고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것을 고치는 방법은 줌손에 있지 않습니다. 중구미에 있습니다. 줌손의 탈을 줌손에서 고치려고 하는 사람이 가장 하수입니다. 지금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논쟁은 대부분 그 차원에 머물러있습니다. 방향의 문제는 방향을 일으키는 그곳에서 고칠 수 없습니다. 방향이 그렇게 갈 수밖에 없도록 하는 데는 그보다 더 뿌리 깊은 곳에서 해야 합니다. 그 뿌리는 어디까지 닿아있을까요? 여러분이 답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런 것까지 얘기해주면 재미 없고 공부도 안 됩니다.
그렇지만 줌손의 탈을 줌손에서 고칠 게 못된다는 건 분명합니다. 줌손보다는 중구미에서 고치는 게 더 낫습니다. 그리고 중구미 차원에서 거의 다 고쳐집니다. 그 방법은 중구미를 논하는 자리에서 다시 다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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