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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와 백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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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저자와 만남 스크랩 김민정 시인의 『사랑하고 싶던 날』에 관한 단상-서정택
은하수 추천 0 조회 223 16.05.04 07:4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김민정의 사랑하고 싶던 날』 2006. 알토란

김민정 시인의 『사랑하고 싶던 날』에 관한 단상

시조시인 서정택

수줍음 몰래 접어 가슴에 숨겼다가

내 님이 오신다기 설렘을 펼칩니다

사그락 그니신가 바람이 문 지치며

잡았던 옷고름 끝만 스쳐 두고 갑니다

다소곳 고개 숙여 손톱알 깨물다가

첫눈이 와야지던 봉선화물 봅니다

아주까리 잎새 말아 꽃물 총총 스밀 때

샘이 난 까치 한 마리 서산 붉도록 울었습니다

1. 엿장수 맘대로

일단은 나의 배움이 미천해 학문적인 접근은 ‘어렵다’라는 사실을 전제로 두고 김민정 시인의 [사랑하고 싶던 날/2006. 알토란]을 감성적인 측면으로 접근해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자 한다. 세상에 잘 짜여져 있고 아주 잘 써진 시들은 많다. 그러나 잘 짜여졌고 잘 쓰였다라고 해서 감동까지도 동반 상승을 하게 되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어차피 내가 아닌 타인의 삶을 관조해 나갈 때에는 그 글을 좌정 시키고 들여다보는 사람이 주인공일 수밖에 없으니, 모든 것을 내 위주로 해석하고 갖다 붙이기를 시도한다. 나 역시 그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내 마음대로 엿장수의 가위를 철컥대기로 한다. [사랑하고 싶던 날]을 받아 든 지 수개월이 지났다. 태생이 시골 출신이라 그런지 몰라도 살구꽃 냄새 풀풀 풍기는 그 사이로 간혹, 두엄 냄새가 섞여 있는 그런 글들이 예전부터 나는 좋았다. 철 구조물에 시멘트로 한 꺼풀 피부를 입힌 성형외과에서 갓 퇴원한 듯한 도시 빌딩들 속에서의 삶은 육신에겐 만족할 만한 행복을 주었겠지만 그러나, 생화의 생생한 향과 빛깔을 맡을 수 없었음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니, 가끔은 일상을 탈피해 손짓에 따라 천지가 진동하는 그런 물빛, 혹은 돌무더기 사잇길을 초록색 자그마한 풀잎이 되어 걸어 가 보기로 한다. 그 속에서 사랑하고 싶던 날 아니, 사랑하고 싶은 날 아니, 사랑해야 할 날들을 찾아내어 같이 흔들려 보기로 하자.

2. 추억의 연못에서 사랑을 낚으세요.

다변화, 스피드로 대변되는 현대 사회에서 인터넷이란 개방된 공간은 순식간에 모든 인류의 정보가 집약되는 독립된 또 다른 창구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수만리나 떨어져 있는 타국 땅의 어느 여배우가 점심 식사를 매운 라면에 그 후식으로 골뱅이 안주에 소주 한잔을 ‘곁들였다’더라 하는 식의 가십거리는 이제 이야기도 아니다. 그만큼 빠른 정보로 인해 인류 상호간의 비밀 공간이 ‘없어졌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 그러나 약삭빠른 현대인들은 그 사실에 만족하지 않고 또 다른 새로운 사실을 엿보기 위해 다른 채널로 재빨리 마우스를 클릭해 간다. 아마도 한 브라우저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는 시간은 불과 3초 이내일 것이다. 이 3초를 붙들어 둘 수 있는 식단이야 말로 현대인들의 허기를 골고루 해결해줄 수 있는 지상 최고의 식탁 차림이 아닐까. 문자 메시지로 따지자면, 60글자 이내에서 이루어지는 읽는 식사가 아닌 보는 식사. 2006년은 현대시조 창작 100주년이 되는 해로 수많은 시조가 창작되었고, 읽혀졌고, 그 양만큼이나 많은 시조집의 발간이 있었다. 그러나 시조의 본령이라 할 수 있는 단수로만 엮어진 시조집은 거의 찾아 볼 수 가 없었다. 3초 혹은. 60글자 이내에서 승부가 갈리는 세상! 문학 분야도 이 승부를 피해갈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 승부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밀 수 있는 분야는 아마도 시조가 아닐까 한다. 45자 이내에서 모든 만물이 상생하고 상극하는 시조! 이미,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음을 자각하고 있던 김민정 시인의 [사랑하고 싶던 날] 그 탄생설화를 엿보기 위해 몇 가지를 준비해 그 속으로 들어가자.

첫 번째로 준비해야 할 것이 영국작가 H.G 웰스의 타임머신이다. 두 번째로 준비해야 할 것이 시집 한 권이고, 마지막으로 우리를 준비 한다. “레드 썬!” 이 소리를 듣는 순간 그대들은 과거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 올 수 있는 구동어 역시 “레드 썬”으로 정하자.

“레드 썬”

1960년대, 강원도 도계 어느 마을 은사시 나무가 서 있는 곳, 한 소녀가 댕기 머리 팔랑거리며 걸어 나오고, 그녀의 야트막한 어깨 한 켠으로 개울이 흐르고 있다. 통상적으로 생각하기에 개울이라 함은 맑은 물이 흐르고, 물총새가 거닐고 휘늘어진 버들가지는 정선아리랑 흥흥~ 거리고 있어야 함이 정상이나 그녀의 개울에선 굴뚝새 울음만 같은 시커먼 물이 기어 나오고, 버들가지는 진폐증에 걸린 광부처럼 안색이 창백하다.

막장 깊이 묻혀 있는 꿈을 캐어 내느라고

화약속의 불꽃같은 청춘을 바쳐가며

흥건히 삶을 퍼내던 통리, 도계 그 사잇길

은사시 한 그루가 나뭇잎을 반짝일 때

진폐증도 마다않은 오십천의 물굽이엔

굴뚝새 울음만 같은 안개소리, 빗소리.

[‘영동선 철로변에 24 -탄광촌의 삶’ 전문]

그러나 그 소녀는 이 환경을 전혀 원망치 않고, 다음과 같은 의지로 유년을 극복 한다.

윤기내며 달려가는 반세기의 역사 앞에

뜨거운 불꽃, 불꽃 가득 실은 화물차는

긴 장화 질척이던 갱도 그 어둠을 사르고.

고적한 사막에서 휘파람을 불고 있는

투사의 눈빛 같은 캡램프의 불빛 속엔

선인장 꽃보다 강인한 광부들의 숨소리.

[‘영동선 철로변에 25 - 탄광촌의 숨소리’ 전문]

[사랑하고 싶던 날]을 이야기 하면서 기재되지도 않은 연시조는 왜 들이 대었느냐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원래 이야기란 건 ‘옛 날 옛 날 옛적부터’ 라고 풀어내야 혀에 착착 감기며 제 맛을 가지는 법이 아니던가. 타임머신을 읽다보면 에로이인과 모록스인을 만나게 된다. 에로이인은 아름답고 화려한 삶을 추구하는 집단인 반면에 모록스인은 지하에서 기계를 조작하며 사는 소인(小人)으로서 마치 탄부를 연상케 한다. 타임머신을 모록스인에게 도둑맞고 에로이인의 딸 위니와 함께 타임머신을 되찾기 위해 모록스인과 사투를 벌인다. 그 과정에서 위니는 죽고 말지만, 영혼의 소멸이 아닌 단지 육신만의 죽음이었으므로, 소녀는 그 영혼이 다시 깃들 육신을 만들기 위해 생성의 힘인 봄을 반죽하기 시작한다.

이 봄 다시

피, 겠, 어, 요

그대 깊은 가슴 속에

뜨거웠던

눈맞춤의

설레었던

그, 날, 처, 럼

하아얀

향기 날리며

봄날 가득 메울래요

[‘매화향기 바람에 날리고 1’ 전문]

얼마나 소생에의 감정이 죽음보다도 절실했으면 자신의 의지를 전달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피, 겠, 어, 요’와 ‘그, 날, 처, 럼’에 온갖 염원을 실어 쥐어짜듯 두 손을 모두었을까. 첫 사랑, 그립고도 그리운 매화꽃 향기 같은 사랑, 후욱~ 불어넣은 그녀(김민정)의 입김을 따라 다시 우리의 시선엔 노랗고 환한 산수유 꽃이 잡힌다. 죽음은 죽음이 아니라 단지 웅크림일 뿐이다.

산수유꽃

피어서

노오란 산자락에

꽃가지 잡고 서면

봄빛 영글어 오는 소리

내 마음

푸른 이랑에

넘쳐나는 봄사연

[‘봄’ 전문]

하얀 백지 한 장을 꺼내 든다. 그리고 크레파스를 꺼낸다. 그 백지에 파스텔톤 노오란 꽃잎으로 위니의 새 탄생에 축복을 내린다. 푸른 이랑을 걷는 종달새처럼 네 활개를 활짝 편 생명에의 환희는 고이다 못해 가득 넘쳐 주체할 수 없다는 듯 추억이라는 이름을 가진 연못에 갈피진다. 그 연못에 은빛사 반짝이는 낚싯줄을 드리워 본다. 순간 걸려드는 무지갯빛 사랑이라는 이름의 물고기! 한번 씩 푸덕거릴 때마다 새가 울고 꽃이 핀다. 새는 눈동자 까만 아이들이 올망졸망 앉아 칠판을 보고 있는 교실 유리창 밖 나뭇가지에 깃들고, 꽃은 화단을 가득 채운다. 잇대어 들려오는 풍금 소리, 그 소리를 젓는 가늘고 기다란 손, 그 손을 받치고 있는 창백한 피부엔 오렌지색 스웨터 털실의 솔기들이 따뜻하다.

3. 풍금과 오렌지색 스웨터

김민정의 추억에서는 정서의 본래적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 현재와 과거를 분리시키지 않는다. 한 송이의 심상 안에 길을 지어 군데군데에 비트와 같은 추억의 빛깔들을 주저리주저리 깔아 놓고 있다. 그 꽃길을 걸으면, 하루해가 닳도록 추억은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고 끝내는 탄광으로 대변되는 그녀의 유년마저도 몽혼적인 단맛으로 채색되는 것이다. 그 채색들이 한 방울씩 튀어 오를 때마다, 검은 건반의 음울한 음계는 어느 새 도솔미를 한꺼번에 누른 하얀 건반, 맑은 음을 내는 밝은 세계로의 전향이 이루어진다. 꽃 점을 찍고 가듯 위니를 살려낸 그녀의 꽃길을 걸어 보며 과거에서 현재로 자리바꿈을 시도하기로 하자. 물론 타임머신의 원작에서는 위니를 살려 내지 못했지만, 유년의 꿈으로 대변되는 김민정의 시에서는 분명히 살아 곱디고운 숨결을 토해내고 있다.

개나리 진달래가

맞부벼 핀 언덕에

그대와 내가 서면

세상은 참 환한 봄

꽃길을

걸으며 걸으며

하루해가 저문다

[‘꽃길’ 전문]

니체는 “모든 선한 것은 가볍고 모든 신성한 것은 섬세한 발로 달린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 김민정의 시는 선하기 때문에 꽃잎처럼 가볍고 신성하기 때문에 섬세하다. 여기에서 ‘가볍다’라고 이야기 한 것은 시로서의 깊이를 말함이기보다는, 그 추억의 장단에 맞추다 보면 어깨춤이 절로 난다는 말로 이해를 해 주었으면 좋겠다. 김민정은 신성한 발로 가볍게 풍금의 페달을 밟고 섬세한 걸음걸이로 추억의 음계에 올라 개나리 진달래가 맞부벼 놓은 현재라는 세상을 향해 하루해를 기꺼이 우려내어 따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꽃길 아련함을 뒤로 하고, 되찾은 타임머신에 위니를 동행시켜 현재로의 여행을 위한 구동어를 외친다.

“레드 썬”

오래전 뇌리에 각인 되었던 오렌지색깔 스웨터, 내가 처음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담임선생님이 입고 계시던 스웨터이다. 어디에 계신지 찾아보기도 했지만, 정성이 부족하여 아직까지 만나 뵙진 못하고 있다.

4. 무의식이 지배하는 의식 또는 의지의 章

말초적 관음증의 발로, 훔쳐본다는 것만으로도 소용들이 치도록 깔깔대어지고 즐거워지는 시간! 이런 시간에 빠져서는 안 될 양념 같은 존재는 뭐니 뭐니 해도 타인을 헐뜯는 험담일 것이다. 여기에서 [사랑하고 싶던 날]의 저자 김민정 시인도 자유로울 수는 없다. 소름 끼치도록 추워지는 아래와 같은 시를 쓴 그대! 그대는 왜 타인들의 피부로 하여금 소름을 돋게 만드는가. 감동에 겨워 덜덜 떨게 만드는가. 무슨 권리로......

몇 번의 고뇌와

몇 번의 뉘우침과

몇 번의 한숨과

몇 번의 망설임과

아, 다시

몇 번의 노래로

흔들리며 서는 언덕

[‘낙엽이 지다’ 전문]

영혼의

젖은 음색

갈피 갈피 부리면서

추억처럼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리는 밤

기다림

등불을 켜고

만리밖을 비추네

[‘가을비 내리는 밤’ 전문]

5. 사랑하고 싶던 날

지금까지 시인들에게 있어 몸/ 육체는 촉각을 비롯한 원초적인 감각들의 응집물이자 그 물질성과 감각성으로 인해 존재의 본질로 들어가는 가장 직접적인 통로로 이해되어 왔다. 이 통로에서 발현되는 김민정의 시들은 어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무거움이 아니다. 가장 육체의 촉각과 서정의 예각이 날카롭게 교차하는 순간인 청소년기! 그 청소년기 정서의 출발점에 선 소년, 소녀들의 장래 지도를 읽기 위한 독도법, 물론 독도법이란 전문적인 분야로써 어찌 보면 대단히 지루한 학습이지만, 그 지루한 독도법마저도 김민정의 시에서는 무거움이 아닌, 가벼운 몸짓으로 길 안내자를 자청하고 있다. 이 가벼움은 경쾌함과 발랄함을 동반한다. 물빛 풀꽃 사이를 그의 안내에 따라 걷다 보면 경쾌함은 씨방이 되고 발랄함은 새까만 씨가 되어, 빨갛게 꽃 피울 준비를 하게 되는 것이다. 소년, 소녀들의 기름질 옥토 그 깊은 관심의 중심을 차지하고서 그러나, 경쾌함과 발랄함만으로는 김민정의 시를 다 볼 수 없다. 가리워진 심상 그 뒤편에는 깊은 우물 맛 같은 깨달음의 도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비울 것 다 비워낸 가벼운 몸짓으로

가지 사이 이는 바람

그도 모두 보내놓고

비로소

맑은 하늘 한 장

펼쳐드는

저 선사(禪師)

[‘지상의 꿈’ 전문]

비울 것 다 비운 몸짓, 그로 인해 하늘은 선사하나 지어 놓고 비로소 맑은 하늘을 키우게 되는 것이다. 삶의 단계를 소생, 장성, 완성의 단계라 칭했을 경우(물론, 내 나름대로의 개똥철학이지만) 지상의 꿈은 생명의 태동으로 소생단계라 감히 말 할 수 있겠다. 비울 것 다 비운, 즉 하얀 백지 상태에서는 무엇이든 칠해 나갈 수 있음임에.....

마애석불

홀로 앉은

도솔암 댓돌 위에

흰 고무신 한 켤레 누구를 기다리나

그리움

뒷짐 지고서

눈만 내리 감은 날

[‘도솔암 적요’ 전문]

삶의 끈적거리는 진언은 무소불위의 공간이자 그것을 표출해내는 의탁에로의 전환을 애타게 기대한다. 댓돌 위에 놓인 흰 고무신에 마애석불을 담은 것이나, 그리움을 담은 것이나, 미래를 준비해 의탁하기 위한 사랑으로의 우화 과정을 겪는 탈피 즉, 장성의 과정인 셈이다. 과거에서 생명을 부여 받고 현재에 이른 위니는 또 다른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시인의 의지에 의해 흰 고무신을 신고 지그시 눈을 감는다.

영롱한

별빛보다

더 빛나는 아픔으로

천년

또 천년

애잔하게 흐를지라도

이 목숨

푸른 현으로

울리고만 싶던 날들

[‘사랑하고 싶던 날’ 전문]

김민정의 언어들은 마치 생동하듯 우리의 느낌에 다가든다. 소생, 장성을 거쳐 완성에 이른 인류는 아직 없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다만, 완성에 이르기 위해 초경을 치룬 소녀의 설렘처럼 미래에 대한 기다림으로 마냥 조심스러운 발놀림으로 디딤판을 놓고 있을 뿐, 시조도 마찬가지이다. 정형시가 자유시에 밀리고 ‘있다’라는 건 누구나가 인지하고 또 말하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밀린다’라는 것에 대한 의제만 제시되고 있을 뿐,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뚜렷한 답안은 아직 제시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기왕에 나온 해결책들조차도 탁상공론에 불과한 실정이다.

현대시조를 읽는 일반인들이 가장 먼저 말하는 것이 ‘어렵다’라는 것이다. 예전에 우리가 알고 있었던 ‘고풍스럽다’라는 말은, 현대인들의 지성, 정보전달력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한 소치에서 나온 말들일 것이다. 물론, 고풍스럽기 때문에 읽히지 않는 면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현대시조에 고풍이 가미된 글은 이미 사장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라고 하면 고풍스럽기 때문에 시조가 읽히지 않는다는 말은 책임회피적인 발언에 불과할 따름이다. 난해일로로 치닫는 현대시조, 이 시점에서 문학성이 먼저인지, 대중성이 먼저 인지는 두고두고 생각해 보아야할 문제이며, 그에 대한 해답으로 김민정 시인의 [사랑하고 싶던 날]을 다시 한 번 가만히 펼쳐 본다. 미래에 완성 되어질 시조의 또 다른 형태로의 발전을 기대하며, 위니의 미래는 아름답고 화려한 삶을 다시 찾은 에로이인의 품 안에서 다시 또 천 년을 그렇게 생명의 서를 부르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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