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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엔 코텍 다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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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스크랩 국내 최초 남성사중창단 블루벨즈(1)
yy1617 추천 0 조회 69 08.04.21 20:2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비가 오는 어제(지난5월13일)는 우리방 친구들 부부와 주님(?)과 함께 개판치며

개소리를 하며 멍멍이 파티를 했는데

오랜만에 해 보는 것이라 잘 들 먹고 갔는지 모르겠구나!ㅋㅋ

친구들을 보내고 난 후 조금있다가 갑자기 왜 이노래가 생각 날까?

이 노래가 유행할 때가 국민학교막 입학했을 때인데 나라살림도 어려웠고

하루 하루 살아가기가 힘겨울 때 였으리라 기억된다

그래도 그때가 우리네 삶이 정서적이 마음의 여유라던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인심은 좋았던 때라 생각된다

지금처럼 개인적이고 이기적이면서
또한 부정부패/강도,살인,

큰 도둑들은 없었던 걸로 알고 있다네.

오늘따라 친구들이 떠난뒤의 네 맘도 공허하고 궂은비도 내렸는데 술기운인지 

문득 그때 아버지께서 사 오신 하얀상자곽의 진공관라듸오에서 흘러 나오는 것을

제가 따라부르던 기억이 있다. 그시절 무척 유행했던 노래로 기억한다.

지난번에 발췌 정리해 놓은 것이 있어 올려본다. 

 

▲ 남성4중창단 블루벨즈의 전성기 시절 음반 재킷. 좌로부터 현양(베이스). 김천악(하이테너). 서양훈(바리톤).박일호(멜로디)씨.1964년.

목소리 속의 또 다른 목소리.‘열두 냥짜리 인생’,‘즐거운 잔칫날’,‘엄마야 누나야’,‘정든 그 노래’ 등으로 밝고 깊은 화음을 들려주던 남성4중창단 블루벨즈(Blue Bells). 이들이 곧 우리나라 최초(最初)이자 최장(最長)의 쿼텟(Quartet)이다.

편한 호흡처럼 느껴지면서도 그 호흡을 태우는 듯한 ‘깊은 울림’을 듣고 있노라면 1960년대 궁핍했던 시절, 대중가요가 지닌 강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당시 우리 가요계의 큰 특징 중 하나로 오디오의 급성장을 들 수 있을 것이다.

SP(축음기) 음반 시대에서 본격적인 LP 레코드 시대로 전환하는 새로운 장도 이 즈음에 열린다.

즉 하이파이 음색에서 스테레오 입체 음향의

 개발과 함께 방송에서 띄우는 전파 역시

AM에서 FM이라는 보다

좋은 음질로 전환하듯 가요 역시

단시율(單施律)적인 소리에서

화성으로 접근해가기 시작했다.

블루벨즈의 등장은 이러한 소리의 변화를 담고 있는 1960년대의 상징이다.

우리나라 가요계 최초로 쿼텟, 즉 남성4중창단 블루벨즈가 첫 선을 보인

것은 영화 ‘심야의 블루스’를 통해서였다.

노필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작곡가 손석우씨가 음악을 맡은 이 영화 ‘심야의 블루스’에서 남성 4중창단 ‘블루벨즈’가 극중 인물로 설정돼 등장한다.

1960년도의 일이다.

이 스크린을 통해 설정된 ‘블루벨즈’ 멤버는 손시향, 박일호, 현양 그리고

김성배씨. 말하자면 솔로가수로 이미 대중들에게 친숙했던 이들이

전혀 낯선 쿼텟으로 분장해 등장한 것이다.

가수 손시향씨는 ‘검은 장갑’ ‘이별의 종착역’ 등으로 최고 인기를 누리던

미남·미성의 가수였고 박일호(본명 박응호)씨는 1958년 ‘메아리 사랑’으로

데뷔, 역시 ‘비 내리는 일요일’ 등을 발표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아울러 서울대 음대 출신 현양(본명 정운화)씨 역시 당시 솔로로 극장무대

등에 나서며 작곡가 손석우씨를 본격적으로 사사하고 있는 중이었고

드러머 출신 김성배씨 또한 ‘서울의 에드란제’ 라는 곡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가수 활동을 시작한 인물.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강행된 야간촬영에서 가수 현인의 노래 ‘꿈속의 사랑’을

함께 부르는 것으로 마지막 촬영을 끝낸 바로 그날 아침,

손시향씨는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삼천리 방방곡곡에, 삼천만의 가슴에 현대인의 우수(憂愁)를 울려주는 종’ 이란

뜻으로 이름 지어진 블루벨즈. 이렇게 첫 선을 보인 이들 쿼텟이 실제로 결성되어

대중들 앞에 등장하는 건 이 영화 촬영 직후 KBS 라디오 연속극 ‘시계 없는 대합

실’의 주제가를 부르면서. 1960년 10월, 남성4중창단의 결성을 오랫동안 꿈꿔왔던

작곡가 손석우씨의 제의에 의해서였다.

이들 멤버는 각각 멜로디 박일호씨, 당시 KBS 전속가수 2기생이었던 서양훈(바리톤)

씨, 그리고 현양(베이스)씨와 김천악(하이테너·본명 김영완)씨. 이 둘은 대구 계성고

동창으로 블루벨즈 팀에 합류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 멤버는 모두 1935년생 동갑내기들이다.

LP시대의 서막, 즉 1960년대 들어 본격적인 방송 활동과 음반 취입을 시작한

남성 4중창단 블루벨즈의 인기는 계속해서 스왈로 남성4중창단, 멜로톤, 쟈니브라

더스, 봉봉 등을 잇달아 탄생시키며 우리 가요계에도 비로소 남성보컬 전성시대가

개막되면서 , 그들의  히트곡인 ‘열두 냥짜리 인생’. 당시 노동자들에 의해 구전으로

불리어지고 있던 이 노래는 처음 극작가 김희창씨가 채보, 개사해 본인의 드라마

주제가(60년대초 라디오 주말 연속극)로 사용했다.

1960년대 노동자 서민들의 삶과 애환을 담은 이 노래 ‘열두 냥짜리 인생’은

블루벨즈에 의해 무반주로 취입했다.

이를테면 아카펠라의 원조인 셈이다. (이 노래는 자니브라더스/봉봉사중찬단/강병철과 삼태기가 리바이벌해서 부르기도 했음)

  

열두냥짜리 인생-블루벨즈

 

에헤이에 에이여에헤
엥헤이 엥헤야 엥헤이엥헤야

 

사랑이 깊으면 얼마나 깊어

여섯 자 이 내 몸이 헤어나지 못하나  

하루의 품삯은 열두 냥인데 우리 님 보는 데는 스무 냥이라

 

(후렴)엥헤이 엥헤야 엥헤이 엥헤야

네가 좋으면 내가 싫고

내가 좋으면 네가 싫고

 너 좋고 나 좋으면

엥헤이 엥헤야 엥헤이 엥헤야

(1절)

에헤이에 에이여에헤
엥헤이 엥헤야 엥헤이엥헤야


사랑이 좋으냐 친구가 좋으냐  막걸리가 좋으냐 색시가 좋으냐 

 사랑도 좋고 친구도 좋지만  막걸리 따라주는 색시가 더 좋더라

(후렴)(2절)

 

에헤이에 에이여에헤
엥헤이 엥헤야 엥헤이엥헤야

‘술잔에 넘는 정은 재어나 보지

 우리 님 치마폭은 재일 길이 없어

천금을 주고도 못 하는 이 정 열두 냥 내놓고서 졸라를 댄다

(후렴) (3절)

에헤이에 에이여에헤
엥헤이 엥헤야 엥헤이엥헤야

우리가 놀며는 놀고싶어 노나

비쏟아 지는날이 공치는 날이다

비오는 날이면 님보러가고 달밝은 밤이면 별따라 간다


‘(후렴)(4절)


블루벨즈는 특히 1960년대 서민들의 삶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라디오 드라마

주제가와 CM송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당시 전 국민이 귀를 모았던 라디오를

통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즐거운 잔칫날’, ‘고생도 달가와’ 등을 잇달아 발표한다.

특히 정전이 자주 되던 1960∼70년대, 이들의 노래는 우리네 삶의 그늘을 밝게

해주는 빛이었다.

 

수신기 하나만으로도 노래와 드라마를 접할 수 있었던 유일한 오락매체,

라디오가 국민들에게 큰 위안과 함께 영향력이 매우 컸던 시절, 블루벨즈는 이름

그대로 스스로는 ‘우수(憂愁)의 종(鍾)’이었으되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는 푸른빛의 종소리’였던 것이다.(계속)

 

  이상은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에서 발췌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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