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아! 잊지 못할 중국영화의 고향
중국영화하면 딱 무협영화하고 떠오를 정도로 중국영화의 이미지는 무협 쪽으로 많이 박혀 있었다. 내가 본 중국영화만 봐도 스케일이 웅장하고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 그런 영화들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황후화 같은 영화도 엄청난 인원이 동원됐던 영화로써 영화를 보는 내내 중국은 사람이 정말 많구나! 할 정도로 무협영화 이미지하면 스케일이 큰 중국영화를 단번에 생각하게 된다.
또한 무협영화, 무협소설하면 중국을 빼놓을 수가 없다. 중국무림고수들이 나오는 이야기들을 보면 현실에서 영웅이 되지 못하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영화나 소설 속에서 영웅들에게 우리의 꿈을 기탁하면서 자유롭게 상상의 날개를 펴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중국의 무협영화란 영화라는 가장 근대적인 비주얼 녹아 흐르는, 가장 중국적인 장르이다. 이와 같은 무협영화는 오락성과 대중성을 기초로, 중국의 전통문화를 전파하는 가장 중국적인 장르이며, 중국의 민족정신이 재현된 것이라 할 만하다. 한마디로 무협영화는 중국 장르 영화의 한 영역에 불과하지만, 중국영화를 상징하는 국가대표인 셈이다.
1.<동사서독>과 <황비홍> : 무협영화란 무엇인가?
무협영화를 쉽고 간단하게 정의하자면 무(式功)와 협(俠義)이 있는 영화, 즉 중국의 독특한 무술인 쿵푸나 격투방식을 가지고 중국고유의 무협정신을 가진 협객의 형상을 체현하는 것이 이야기 구성의 기초가 되는 영화이다. 협의를 실천하는 기본 도구로써 무공이 개입된 영화라는 뜻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이런 이론을 적용하면 이론적 설득력을 잊어버리게 된다. 협이 존재하나 무는 존재하지 않는 영화가 있고 무는 존재하나 협이 존재하지 않는 영화도 있다. 이런 질문에 정확하게 답변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간단하게 정의한 무협영화의 개념에는 논란의 여지가 아주 많은 셈이다.
타이완에서는 협을 위주로 하는 영화는 협의영화, 무를 위주로 하는 것은 무협영화라고 구분한다. 이런 구분의 장점은 무와 협의 특징을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것도 문제가 있다.
결국 이처럼 무협영화의 영역과 경계가 정확이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실제 영화 작품을 가지고 무협영화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2.<불타는 홍련사>에서 <와호장룡>까지 : 무협영화의 시기구분
무협영화는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시기는 1920년대 초에서 1940년대 말까지, 즉 무협영화의 맹아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무협영화의 반수 이상인 1928년부터 5년 사이에 촬영 한 것이다. 한마디로 이때는 무협영화의 황금기라고 볼 수 있다. 홍콩과 타이완에서 몇 차례나 리메이크된 무협영화인 <불타는 홍련사>는 최초로 근대 무협소설을 영화한 것이다. 홍련사의 중들은 악당의 화신으로 등장하여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절 지하에는 악의 소굴이 있는데 그걸 여러 협객들이 단결하여 절을 불태운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영화로 인해 청소년들이 학업을 전폐하고 무술을 닦고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자 중국국민당 정부에서는 불타는 홍련사를 비롯해 무협영화를 금지시켰다. 이로 인해 무협영화의 붐은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두 번째는 1950년대 초에서 1970년대 말까지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후 사회주의 정권은 무협영화나 무협소설 같은 무협문화를 공식적으로 금지시켰다. 그래서 당연히 무협영화는 홍콩으로 넘어갔으며 자연스럽게 타이완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이 시기가 홍콩 무협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였고 작품수도 많고 질적 깊이도 뛰어났다. 이 시기에 <황비홍>시리즈가 주를 이뤘고 이때 유명한 감독인 후진취안은 중국의 5대 감독에 꼽힐 정도로 중국을 대표하는 감독이었다.
세번째는 1980년대 이후이다. 개혁개방의 정책으로 무협관련제재가 다소 해소되어 대륙에서도 무협영화가 제작되기 시작한다. 1990년에 상영된 <소오강호>는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받았다. 한마디로 새로운 신 무협영화 시대가 바야흐로 온 것이다.
3.<협녀>: 정중동 속에 보이는 무협 미학
1960년대 중반 이후 후진취안 감독의 활약으로 중국 무협영화의 황금기가 화려하게 도래하였다. 이때로 인해 한국에서도 중국영화하면 자연스레 무협영화를 떠올리게 됐을 것이다. 후진취안의 감독의 최고의 작품인 <협녀>는 1969년에 제작되었다. 1975년 칸영화제에 출품되어 무협영화사에서 최초로 심사위원 최고종합기술상을 수상했다. 후진취안 영화에서 긴장감이 감도는 고요함, 정중동의 미학, 즉 숨고르기를 놓친다면 영화의 반을 놓친 셈이라 할 수 있다. 거추장스러운 의례적인 것들은 빼버리고 긴장된 분위기에 관객들의 감각은 더욱 명료해지고, 긴장감은 깨달음의 명상적 느낌으로 살아난다.
4.<소오강호>:내가 강호를 비웃을 것인가, 강호가 나를 비웃을 것인가.
<소오강호>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순풍당 당주 유정풍과 일월신교의 고수 곡양이 함께 소오강호라는 노래를 배에서 부르는 장면을 명장면으로 꼽는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 가운데 한명은 사파의 고수이고, 한명은 정파의 고수이다. 그들은 이름과 명분이라는 세상사의 허위를 잊고서 노래로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잠시 후 오악맹주 좌냉선과 아악장문들이 등장한다. 오악검파의 분열은 중국의 사분오열을 의미하는바, 맹주는 중원의 통일정권을 상징한다. 이 여섯 명은 강호를 떠나가는 유정풍과 곡양의 배를 습격하고, 결국 유정풍과 곡양은 치명적인 중상을 입는다. 이로 인해 유정풍은 죽고 곡양은 시신을 일엽편주에 싣고, 강호에서 은퇴한 뒤에 같이 마시려던 술을 온몸에 뿌리고 불을 질러버리고는, 산으로 둘러싸인 고요한 호수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등신불처럼 비장하게 타 죽는다.
5.<와호장룡>:무중지정,정중지무 그리고 대자유
무협영화를 접근하는 두 개념은 '무' 와 ' 협'이다. 간단히 말해 '무'는 배우들의 멋지고 신비한 무공의 영상 표현을 뜻하고, ' 협'은 플롯에 의지한 비장미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조류가 리안 감독의 <와호장룡>에 이르면 사랑과 배신의 인간사 이야기, 협의와도 같은 협적요소와 전설상의 보검, 신비하고 다채로운 무공 같은 무적인 요소가 한데 어우러져서 나타난다.
영화의 제목 '와호장룡'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영화의 나오는 대사에서 힌트를 얻는다면 와호장룡은 내, 외적 강호를 의미하는 것으로 험난한 강호와 격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유롭고 싶은 인간의 마음이라는 심층적 의미를 내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와호장룡>을 보고 있으면 여백의 충만함이 주는 아름답고 광활한 배경 속에서, 면면히 이어지는 조용한 선율을 타고서 분출되는 격렬한 감정의 흐름이 무술영상이라는 육체를 관통하는 듯하다. 하지만 못내 아쉬운 점은 협의 느낌이 인물들의 애정과 철학적 무게에 압도당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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