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스틸러 감독의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잃어버린 당신의 필름을 찾아 떠나라
소시민에게 용기를 주는 이야기
소시민을 한 시대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일은 얼마나 즐겁고 유쾌한 일인가! ‘포레스트 검프’가 그랬듯이 우리 사회의 통념상 성공적인 인물이 되기에는 너무도 거리가 먼 사람이 뜻밖에도 역사적 주인공으로 인식되는 순간 관객들은 마치 자신의 일인 양 뿌듯한 감동에 젖곤 한다. 왜냐하면 우리 대부분은 특별히 가본 데가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일을 하는 사람도 아닌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코미디 배우 가운데 한 사람인 벤 스틸러가 주연과 감독을 동시에 맡은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영웅적인 인물 됨됨이 하고는 거리가 먼 주인공이 미국 현대사의 거울 같은 역할을 해온 국민잡지 ‘라이프 매거진’의 종이판 마지막 호의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월터는 마흔이 넘은 미혼 남성으로 16년간 ‘라이프 매거진’에서 포토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말이 좋아서 포토 에디터지 옛날식 셀룰로이드로 만든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해서 잡지에 실릴만한 사진을 찾아내고 보관하는 단순한 업무를 반복해왔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 일도 종이 잡지가 폐간되고 인터넷 잡지로 전환하면서 모든 업무가 디지털화되는 바람에 더 이상 필름관리자는 필요 없게 되었다. 즉 퇴출 1순위인 셈이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주인공 월터가 처한 위기의 현실로부터 두 가지의 중요한 논조를 끌어내고 있다. 첫째, 주인공 월터가 인터넷 라이프지에서 쓸모없는 직원으로 인식되는 것처럼 과연 디지털은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라이프 매거진’이 추구하는 가치를 제대로 드러낼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를 드러낸다. 둘째, 상상에 빠져 사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는 주인공의 삶이 영화 제목처럼 어떻게 현실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두 문제는 사실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숙제를 제시한 것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항상 변화의 위기를 겪고 있지만 현실에서 정면승부로 돌파하기 보다는 상상 속에 안주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월터가 회사의 동료여직원 셰릴 멜 호프(크리스틴 위그)에게 이성적인 관심이 있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잘 이루어지는 상상만을 할 뿐 데이트하자는 말도 꺼내지 못하는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이 영화의 가장 뛰어난 점은 이 두 가지 논조를 하나의 사건 안에서 해결함으로써 경쾌하고 인간미 넘치는 드라마로 기억되게 한다는 사실이다. 이 사건의 중심에는 월터와 사진저널리스트 숀 오코넬(숀 펜)이 있다.
아무도 가기를 원하지 않는 위험한 분쟁지역과 세계의 오지를 돌아다니면서 찍은 사진과 기사를 라이프지에 실어 온 사진저널리스트 숀 오코넬은 마지막 종이 잡지의 표지에 실릴만한 사진을 월터에게 보내온다. 그러나 월터는 자신에게 배달된 사진들 가운데 정작 이 사진을 발견하지 못하게 되자 사진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숀 오코넬이 있다는 새로운 세계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즉 아날로그 문화가 가진 현장성을 실현시키다 보니 월터는 상상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현실의 세상을 경험하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에서 언급되는 라이프지의 모토를 생각하면 디지털 사회로의 변화에도 기억하고 현실화시켜야 할 아날로그의 가치를 깨달을 수 있다.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다”
월터는 16년 간 라이프지에서 일하면서 상상 속에 자신을 가두었지만, 이제 퇴사할 때가 돼서야 비로소 회사의 가치를 삶에서 실현시키며 멋진 인간으로의 변화를 체험하기 시작한다.
삶에 대한 책임 - ‘월터 미티 신드롬’을 이기는 힘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미국의 만화작가이자 소설가인 제임스 서버(James Grover Thurber)의 원제목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이 소설이 상상력에 빠져 스스로를 위로하는 일에 익숙한 현대 소시민들의 삶을 어찌나 적절하고 유쾌하게 얘기했는지 한 때 미국사회에서는 이 소설의 영문 제목을 따서 ‘월터 미티 신드롬’이란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월터 미티 신드롬’이란 현실에서 보다 상상 속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의 모습을 가리키는 말이다.
상상이 창조의 원천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일상적인 삶에서 허구한 시간마다 상상에만 빠져 사는 일이 결코 바람직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월터 미티가 어떻게 상상을 현실화시키고 있는지를 영화를 통해 발견할 수 있다. 해답은 호기심과 자신의 삶에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직장에서 쫓겨날 입장이지만 그는 자신의 마지막 업무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잃어버린 사진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숀 오코넬이 있는 곳이면 그곳이 그린란드나 아이슬란드 심지어 히말라야 산맥 어디라도 험난한 환경을 물리치고 두 발로 찾아 나선다. 일에 대한 책임이 무거울 때 호기심은 그것을 이기게 돕는 자발적인 동력역할을 한다. 과연 어떠한 사진이기에 라이프지 마지막 호 표지를 장식할 수 있을까?
상상만 한다면 결코 알아내지 못했겠지만, 호기심을 발동시키고 이 일이 자신이 책임져야 할 일임을 깨달았을 때 상상은 현실이 된다. 과연 그 사진의 내용은 무엇이고 어디서 그 사진을 찾았을까? 항상 해답은 가까운 곳에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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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구 고신대학교 국제문화선교학부교수. 영화평론가. 서강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종교학을 전공했다. 저서 《감성세대의 영화읽기》 이메일 moviejin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