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 포근해진 해풍은 그물을 끌어올리는 어부의 손길에 힘을 실어준다. 작은 통통배를 보호하기라도 하려는 듯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반짝이는 은빛 파도가 물결치는 바닷길은 지나간 시간에 대한 기억을 모조리 지워버린다. 계절은 한꺼번에 자취를 감춰버리는 게 아니라 늘 여운을 남기게 마련이다. 그러나 봄을 맞는 느낌은 조금 다르다. 섭섭하다기보다 조금은 흥분되는 기대감에 가슴이 뻐근해진다.
봄을 맞으러 남해안 드라이브 길에 나선 여행객에게 ‘물 반 섬 반’이라는 사천~고성~통영~마산을 잇는 다도해의 비경은 끊임없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그중에서도 고성을 통과하는 77번 국도는 마법의 도로라 부를 만하다. 한 줌 바다가 잡힐 듯하면 이내 잦아들고 다시 벚꽃이 만개한 시골길이 나타나는가 하면 사르륵 어딘가로 숨어든다. 때문에 관광객의 발길이 잦은 통영이나 삼천포 쪽과 달리 꼭꼭 숨어 있는 비경과 입질을 찾아 낚시꾼이 몰려드는 곳이다. 육지의 끝에 자리했기 때문일까, 유난히 포근하게 느껴지는 햇살은 편안하게 바다를 안고 하루 종일 놓아주질 않는다.
>> 만리장성 부럽지 않은 웅장한 다도해 비경
“아이고, 꽃 볼라꼬 예까지 왔소. 우야꼬….” 표교마을에서 만난 그물 고치던 촌부는 인적이라곤 드문 시골로 봄꽃을 찾아온 여행객이 신기하기만
하다. 그러나 1,000리가 넘는 길을 단숨에 달려온 이에겐 이른 봄꽃 풍경이 그저 감사할 뿐이다. 그중에서도 빼어난 비경을 자랑하는 곳을 꼽는다면 단연 고성 문수암과 통영 미래사다.
문수암은 사천에서 고성으로 가는 길목에 있음에도 상족암의 유명세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은 암자다. 절벽 위에 허리를 쭉 편 모양으로 자리를 튼 문수각. 문수보살을 볼 수 있다는 바위에 몸을 밀착한 후 고개를 좌로 65。쯤 들자 토우처럼 생긴 문수보살의 상반신이 드러난다. 4월이 되면 벚꽃이 만발해 그 신비감이 훨씬 더하는데 아직은 조금 이르다. 그러나 서운할 것은 없다.
암자를 뒤로하고 절벽 아래를 보는 순간, 열두 폭 병풍이 활짝 펼쳐진다. 바다와 섬, 봄꽃으로 뒤덮인 산과 구름으로 어우러져 절정이다.여기에 보현사까지 보태면 그대로 중국의 만리장성이다. 왼쪽으론 사천만, 정면으론 고성만, 오른쪽으론 통영과 남해의 섬들. 그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영남과 호남을 잇는 뱃길이다.
통영 미래사도 뒤지지 않는다. 산양면 해안일주도로 내에 있는 이곳은 천왕문 대신 입구에 커다란 연못을 둔 독특한 구조다. 물론 순천의 선암사에서도 비슷한 형태를 찾아볼 수 있긴 하지만 고즈넉한 분위기는 이만 한 데가 없다. 대웅전을 돌아나오는 길에 삼나무 오솔길을 따라 150m쯤 걷다보면 절벽 끝에 선 미륵부처가 봄꽃을 가득 피워낸 다도해를 바라보고 있다. 발아래로 펼쳐진 핏빛 동백꽃 바람이 푸른 바다와 어우러지면 눈물이 날 만큼 가슴 시린 풍경에 자리를 뜰 수가 없다.
>>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어시장 구경 삼천포항과 마산항의 가장 큰 매력은 어시장에 있다. 어시장은 싱싱하게 펄○이는 생선과 함께 갯마을 사람들의 활력과 활짝 핀 웃음꽃이 아름다운 곳이다. 새벽에 눈을 떴다면 삼천포어시장 경매를 구경하는 게 좋고, 오후 6시 이후가 편하다면 마산어시장 쪽이 좋다. 소쿠리 하나 가득 담아 놓은 생선을 1만원에 파니 서울내기의 개념으로는 감조차 잡히지 않는 물가다. 그러나 그것도 흥정하기 나름이다. 관심을 보인다 싶다가 흥정을 않고 난전 앞을 지나 한두 걸음 떼면 그때부터 값이 내려간다. 일단 “7000원!” 하며 장사치들이 흥정을 먼저 걸면 가차없이 뒤돌아 “5000원!” 하고 외친다. 낙찰이다.
새벽시장 구경 뒤엔 잔치국수 한 그릇을 빠뜨릴 수 없다. 어시장 한편에 즐비하게 자리한 할매국숫집들은 모두 손맛으로 장사를 하니 고를 것도 없다. 양은 양푼에 후루룩 말아내는 국수 한 사발. 세 명이 배불리 먹었는데도 4,000원. 반 그릇은 서비스였단다.
시장 골목골목을 누비다 보면 의외의 성과를 얻을 때가 있다. 정성스레 말린 자연산 홍합이 짚으로 만든 똬리에 꼬여 건어물상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가 하면, 제상에 오를 문어포를 조각처럼 손질해 놓은 것도 눈길을 끈다. 다만 그 명맥이 언제 끊어질지 알 수 없는 시한부라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횟감을 찾는다면 삼천포어시장이 낫다. 난전에서 마음에 드는 생선을 흥정하여 구입하면 어시장을 빙 둘러 자리한 횟집에서 양념 값 5,000원에 자리는 물론 회도 떠주고 매운탕까지 서비스한다. 봄에는 도다리, 장어, 볼락, 멸치가 제 맛이다.
1 철쭉이 만발한 통영 미륵산의 봄 풍경. 2 고깃배로 가득한 삼천포항. 3 통영 미래사 미륵불의 시야에 든 다도해 풍경. 4 봄이면 유채가 만발인 삼천포대교. 5 해안절벽이 장관인 고성 상족암. 바위에 붙은 홍합 새끼가 훤히 들여다보일 만큼 투명한 바다가 매력 있다. 6 다도해를 핏빛으로 물들인 동백꽃. 7 옛 삼천포시를 흡수한 사천시는 유달리 유채밭을 잘 가꾸어 놓은 고장이다. |
* 지도를 누르면 더 큰 이미지로 볼 수 있습니다.
■ Drive Info 서울에서 출발하면 경부고속도로나 중부고속도로로 대전까지 이동해 대전에서 대진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서진주 IC를 빠져 나온다. 톨게이트를 빠져 나오면 곧장 사천 방향 3번 국도 쪽으로 우회전한다. 이후 77, 33, 14번 국도를 따라 이동하면 사천~고성~통영~마산이다.
■ 2박 3일 Travel Schedule
① 사천 선진리성 ② 노산공원 ③ 고성 상족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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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고성 임포항 ② 문수암(자란만) ③ 표교마을 ④ 통영대교 ⑤ 달아공원 ⑥ 미래사 ⑦ 해저터널 ⑧ 통영항 |
① 남망산공원 ② 청마문학관 ③ 마산 양촌온천 ④ 무학산 |
수령 100년 넘은 벚나무 1,000그루가 이루는 꽃대궐 선진리성 수령 100년이 넘는 꽃나무가 1,000그루에 달하니 가로등 사이로 흐드러진 벚꽃길이야말로 남도에서도 손꼽히는 장관이다. 지금이야 벚꽃축제, 백합따기대회, 바지락까기대회 등 각종 축제의 장으로 활용되는 너른 광장이지만 사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이충무공이 거북선으로 왜선을 쳐부순 첫 전장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 곳이다.
개운한 감칠맛에 한 그릇 뚝딱! 백합죽 선진횟집 백합조개는 흰 살 생선처럼 맛이 담백하고 단백질이 풍부해 구이는 물론 죽, 국, 탕 등에 활용된다. 참기름만 넣고 달달 볶은 백합조개에 불린 쌀과 물을 넣고 푹 고아 잘게 썬 파와 김 가루를 얹어 먹는데 뽀얀 색깔도 곱지만 뒤끝이 깨끗한 감칠맛이 입 짧은 미식가마저 반하게 할 정도다. 특히 선진횟집은 27년간 백합구이와 죽을 내온 원조 맛집이다.
● 055-854-4242 ● 08:00~23:00, 연중무휴, 신용카드 가능 ● 백합구이 3만원, 백합죽 5000원 ● 선진리성 뒤 신진리 회타운 내
세계 3대 중생대 쥐라기 공룡 발자국 상족암 약 6km에 이르는 이 일대 바닷가에는 중생대 백악기를 거쳐간 공룡과 새의 발자국이 흩어져 있다. 언뜻 구별이 안 되는데 지름 30cm 내외 크기에 작은 물웅덩이쯤으로 보이는 이것이 바로 발자국 화석이다. 물론 큰 것은 115cm에 이르는 것도 있다. 1999년 천연기념물 제411호로 지정되었다.간간이 눈에 띄는 해식동굴도 놓치지 말자.
한려수도의 숨은 진주 하일면 하일리(임포항)~고성 삼산면 두포리(표교항)
지도 위에선 아주 작은 점에 불과한 임포와 표교. 인근 주민조차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할 만큼 한적한 시골 마을이지만 이곳의 풍광은 ‘한려수도의 숨은 진주’라 할 만하다.
드라이브 길과 바닷길이 같은 눈 높이에 있어 맑은 바닷물 속으로 다닥다닥 붙은 홍합 새끼가 보일 정도다. 줄지어 선 양식장 부표가 은파(銀波)에 밀려 하얀 오리 떼를 연상케 하는가 하면, 조가비 덕장도 색다른 볼거리다.
볼락냄새 구수한 드라이브 코스 고성군 거류면 당동리(당동만)~진전면 시락리(진해만)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하일면 쪽과 달리 동해면 쪽은 알려지지 않은 비경과 물때를 찾아 낚시꾼이 몰려든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수려한 풍경과 햇살에 부서지는 은빛 파도가 인상 깊은 곳이다. 요즘은 볼락이 한창이라 인근 횟집에서 풍기는 구수한 볼락구이 냄새가 입 안에 침을 괴게 한다.
통영의 봄을 알리는 도다리쑥국 새풍화식당 서글서글한 웃음, 아낌없이 차리는 밥상, 수십 년을 함께해온 이웃 같은 전순태 사장 내외가 운영하는 식당이다. 이 집 봄 별미는 뭐니 뭐니 해도 도다리쑥국. 봄에 가장 맛이 좋다는 자연산 도다리에 향긋한 쑥을 한 주먹 넣어 끓인 국 한 그릇이 봄기운을 생생하게 전한다. ● 055-645-9214 ● 09:00~23:00, 명절 당일 휴무 ● 도다리쑥국 7000원, 신용카드 가능 ● 통영시 입구 KT&G(충무볼링장) 맞은편
한려수도를 지키는 미륵불의 미소 미래사 미륵산길을 따라 난 편백나무, 삼나무 숲길이 신성한 기품을 자아내는 절이다. 1951년에 세워졌으니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았지만 불가의 큰어른으로 추앙받는 효봉 스님을 비롯해 승보 종찰 송광사 방장을 지낸 구산 스님이 공부를 했고, 길상사 주지를 지낸 법정 스님이 출가한 곳이다. 절벽 끝에 서서 인간 세상을 굽어보는 미륵불의 따뜻한 미소가 아름다운 곳이다.
정통 미국식 통나무집 통영펜션
시내와 관광지 연계가 편리하고, 해 지는 바닷가를 바라보며 바비큐 파티를 즐기거나 로맨틱한 바닷가 산책로를 거닐 수 있다는 것도 마음을 끄는 요인. 여기에 천장이 높고 큼직큼직한 객실 구조와 화이트 인테리어가 이국의 낭만을 자아낸다. ● 011-9515-6405 ● 20평 (평일) 14만원, (주말) 16만원 15평 (평일) 12만원, (주말) 14만원 10평 (평일) 8만원, (주말) 10만원 6평 6만원, 신용카드 불가 ● 동달리 청구아파트 진입로 이정표 보고 좌회전
시와 조각과 바다가 있는 풍경 남망산공원 시인 유치환과 김춘수, 작곡가 윤이상, 화가 전혁림 등 통영이라는 작은 항구 도시가 낳은 예술인은 참으로 많다. 그들의 감수성을 자극한 통영항의 구석구석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곳이 남망산공원이다. 정상이라고 해봐야 고작 해발 72m지만 이 작은 동산의 허리를 감아 도는 산책로를 돌아 나오다 보면 어느덧 통영의 뿌리깊은 문화의 향기에 취한다.
아귀찜 돌풍의 주인공 오동동 아구할매집
3대를 이어온 손맛으로 전국에서 유명한 곳. 간장 밑간 대신 조선된장에 고춧가루를 첨가해 만들어 깊은 토속의 맛이 우러난다. 9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는 생아귀를 쓰고, 나머지는 건아귀를 쓰는데 뼈째 오도독 씹는 맛이 독특하다. 쪄낸 콩나물에 아귀속젓을 살짝 더해 상추에 싸먹은 후 알알해진 입을 시골 동치미로 식히면 이게 바로 마산아귀찜의 진미다. ● 055-241-2566 ● 10:00~23:30 ● 아귀찜 1만~5만원, 아귀수육 3만5000~7만원, 아귀불갈비 3만5000~7만원, 신용카드 가능 ● 오동동 사거리에서 어시장 방향으로 직진, 편한약국 끼고 좌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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