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터널 선샤인, 이터널 코럴코스트
PERTH“퍼스에 가봤어요?”멜버른과 골드코스트가 있는 호주 동부 쪽만 몇 차례 다녀온 기자에게 사람들은 이렇게 물었다. “아직은, 하지만 곧 갈 때가 있겠죠”라고 말했고 그 ‘때’는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서호주 경제의 중심지이자 주도인 퍼스. 적당히 늘어선 고층빌딩과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스완 강이 조화를 이루는 도시다. 서호주 인구 190만 명 중 120만 명이 퍼스에서 살고 있고, 호주의 주요한 회사 본사들도 이곳에 몰려 있을 만큼 모든 부문에서 중심을 이루고 있다. 또 호주 부자의 40%가 이곳 퍼스에서 살고 있을 만큼 부유한 도시이기도 하다.
퍼스를 한눈에 감상하기 위해서는 킹스파크Kings Park로 가야한다. 400ha에 이르는 거대한 공원에 오르면 스완 강과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중에서도 전쟁기념탑에서 내려다보는 전경이 으뜸. 킹스파크는 야생화 공원으로도 유명하다. 서호주에서 나는 1만2000여 종의 야생화를 모두 심어놓아 봄이 되면 그야말로 야생화 천국이 된다.
다운타운에서는 헤이스트리트Hey Street와 런던코트London Court에 발길이 머문다. ‘리틀 런던’으로 통하는 이 작은 골목에는 1930년대 튜터 양식을 본떠 만든 이국적인 건물 외관과 분위기가 숨쉬고 있다. 런던 특유의 올드 스타일 간판이 아담하게 걸려 있는 앤티크 숍과 카페를 둘러보다 맘에 드는 노천 카페에 앉아 커피 한잔을 기울여본다. 사실 커피를 좋아하는 퍼스 사람들에겐 고유의 아이콘이 하나있다. 퍼스는 물론 근교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돔Dome 카페가 바로 그곳이다. 그래서 스타벅스나 커피빈 같은 체인형 카페는 찾아볼 수 없다.
바락Barrack스트리트를 따라 스완 강변 쪽으로 내려오면 시선을 잡아끄는 건축물이 우뚝 서 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악기’로 일컬어지는 스완벨 타워Swan Bell Tower다. 7개의 종이 매달려 있으며, 매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사실 퍼스에서 머문 시간은 많지 않았다. 도시를 충분히 알기엔 낯선 풍경이 이어졌다. 본 것보다는 보아야 할 것들을 더 많이 놔두고 아쉽지만 다음 여정지로 떠난다.
“퍼스 인근에만 19개의 해변이 있어요. 코트슬로Cottesloe는 얼마 전 약물중독으로 사망한 키스 레저(퍼스 출신이다)가 가장 좋아했던 해변이죠. 그를 애도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해변을 찾고 있어요.”이번 일정의 가이드인 제프의 얘기다. 퍼스에서 기억해둘 장소가 또 하나 늘었다.
꼭 한번 숨어들고 싶은 섬
Rottnest Island전날 한껏 흐렸던 날씨는 온데간데없이 예의 그 청명하고 파란 하늘을 퍼뜨려놓았다. 로트네스트 섬Rottnest Islan으로 가기 위해 퍼스벨 타워 부근의 바락 스트리트Barrack St. 선착장에 도착. 로트네스트익스프레스 페리에서 일하는 케니Kenny의 인솔하에 섬까지 함께 했다. 케니는 19세에 호주로 건너와서 지금은 이곳에 둥지를 튼 일본인 친구.“로트네스트 섬은 퍼스 사람들이 좋아하는 홀리데이 여행지입니다. 섬안에는 차가 다닐 수 없게 되어 있죠. 섬이 보기보다 크기 때문에 섬안에서는 주로 자전거를 타고 다녀요. 자, 지도 받았죠? 출발하세요.”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려니 핸들이 지그재그로 간다. 자전거를 못 타는 사람을 위한 앙증맞은 순환버스(Bayseeker Bus, 섬의 유일한 버스다)도 있지만 곧 자전거에 적응한 나는 요트가 넘실대는 해안 자전거도로를 신나게 달렸다. 그야말로 영화의 한 장면에 나오는 주인공이 된 것 같다.
섬 안에는 반라의 차림으로 오후의 태양을 즐기는 노천카페의 사람들과 작은 기념품 숍, 인포메이션 센터, 로트네스트 로지 등의 크고 작은 숙소들이 작은 타운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로트네스트 섬에는 사람이 살 수 없다. 황토빛을 머금은 지중해풍 집들은 이 섬에 머무는 여행객을 위한 숙소다. 저렴한 민박집 수준에서 리조트 수준의 리조트까지 다양한데, 그곳을 운영하는 관리국 직원들만이 섬에 머문다.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이란 얼마나 은밀하고 신비로운가. 그림같이 펼쳐지는 한적한 길을 달리며 쉬엄쉬엄 바다를 바라본다. 하얀색이 눈부신 등대도 오르고, 요트가 몰려 있는 톰슨 베이에서 카메라 셔터도 눌러댄다. 로트네스트 섬에만 산다는 쿼카도 만났고, 호수의 물빛이 핑크빛이라는 핑크 레이크까지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달리다 보니 욕심이 생긴다. 이렇게 잠깐 둘러보는 거 말고 수영복과 먹을 것을 싸들고 꼭 한번 숨어들고 싶다.
이름도 없는 작은 해변에 발가벗고 누워 있어도 방해받지 않을 이 넉넉한 섬으로.
중세 도시에 퍼지는 카푸치노 향기
Fremantle다시 페리를 타고 20분 정도 나와 도착한 선착장은 프리맨틀 하버. 퍼스가 자연과 현대가 느긋하게 어우러진 도시라면 프리맨틀은 1850년대 콜로니얼 양식이 보존된 중세풍의 도시다. 사암으로 지은 건물이 유독 많은데 80% 이상이 내셔널 트러스트로 지정되었다. 프리맨틀에선 카푸치노 거리가 유명하다. 유럽풍의 노천 카페마다 사람들이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며 커피를 마신다. 카페마다 자신들만의 커피를 만든다는 자부심도 강해 커피 맛도 다 다르다.
카푸치노 거리에서 멀지 않은 곳엔 프리맨틀 마켓이 있다. 주말에만 문을 여는 이곳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시장이 아니라 서호주 사람들의 일상과 위트를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아기자기한 기념품에서 캥거루 가죽으로 만든 카우보이 모자와 어그 부츠까지 저렴하게 살 수 있다. 길게 줄을 선 피자 가게와 라멘집 등에서 간단하게 요기도 한다. 프리맨틀 거리에도 다양한 옷가게와 기념품 숍이 있다. 하지만 무턱대고 사기보다는 프리맨틀 마켓을 먼저 둘러보고 가는 것이 좋다.
19세기의 항구 도시답게 피싱 보트 하버Fishing Boat Harbour의 운치는 남다르다. 특히 저녁 무렵이면 항구를 둘러싸고 있는 레스토랑과 펍의 불빛들이 물가에 비쳐지면서 긴 빛의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정박해놓은 요트 안에서 맥주와 피시앤칩스를 즐기는 서호주 사람들의 저녁 풍경도 부럽다.
1903년에 지어져 지금까지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시세렐로스Cicerello’s 레스토랑은 종이에 둘둘 만 피시앤칩스가 대표 메뉴다. 좀 더 흥겹고 스타일리시한 프리맨틀의 저녁을 즐기고 싶다면 리틀 크리처스 브루어리Little Creatures Brewery로 가야 한다. 양철의 거대한 맥주 원통형 저장고는 이색 인테리어 그 자체. 직접 만드는 4종류의 맥주를 시음해보고 취향에 맞게 마실 수 있는 것이 재미있다.
Spot List
• 로트네스트 익스프레스 페리 퍼스 벨 타워 부근의 바락 스트리트 선착장이나 프리맨틀 하버에서 페리를 탈 수 있다. 섬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퍼스에서 1시간 30분, 프리맨틀에서 30분 정도다. 요금은 A$46~61 선. +61-8-9421-5888, www.rottnestexpress.com.au
• 프리맨틀 마켓 corner of South Terrace and Henderson Street, Fremantle, www.fremantlemarkets.com.au
• 리틀 크리에이처 브루어리 40 mews Road, Fremantle, www.littlecreatures.com.au
• 시세렐로스 44 News Road, Fremantle, www.cicerellos.com.au
첫댓글 올해만 가라... 어서... 어서 가라... 내년엔 ... 엄청나게 바쁘겠지만... 여행 갈꼬야.... 흑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