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2001년 4월 8일 오전10시-오후1시
참가자:(권영한-이영미),(김형철-류영희),류병하,(배종수-김홍숙), 이충호(8명)
대구동기회(32명), 부산동기회(11명), 포항동기회(1명),경주동기회 (1명)-도합 53명 참가하였음.
오전8시에 성원아파트 앞에서 모여 승용차 2대에 나누어 타고 경주로 향했다. 가다가 언양 휴게소에 잠시 쉬고 부지런히 달려서 예정대로 10시에 통일전 주차장에 도착했다. 대구 동기회와 거의 동시에 도착.
남회원들은 서로 반가워 인사를 나누고 어깨를 치고 난리였으나 여회원들은 뻘쭘해서 단체로 화장실이나 다녀오고. 만나자 말자 기념사진 한판 찍고 산행 설명을 들은 뒤 곧바로 산행에 들어갔다.
보통 등산로인 오솔길이 아닌 넓직한 비포장 도로를 따라 산행을 하니 산행이라기 보다 행군에 가깝다. 눈을 들어 산허리를 보니 소나무가 울창하다. 신라의 왕족들이 즐겨 오르던 곳이라 그런지 우선 산세가 가벼워 보이지는 않았다. 화강암 바위가 많은 것이 특히 두드러진다. 소나무들도 화강암과 어우러져 거의 분재수준인 경치도 많았고 이 화강암바위를 소재로 많은 석불이 조각되었다.
미리 예고되기를 전문가 동문 한 분의 남산 문화재 소개가 있다고 해서 "음 역시 명문이구만" 하고 기대했으나 그 기대는 설명이 적힌 종이 한 장 나누어 주는 걸로 끝났다. 뒤에 들으니 산행과 유적답사는 시간관계상 병행할 수가 없었단다. 그래서 건강을 우선하여 산행을 택했다고 했다.
칠불암에 도착. 절도 하고 시주도 하고 여러 장 사진도 박고. 촌스런 대구 동문들은 우리팀의 디지털 카메라에 적응을 못하고 그저 투박하게 철커덕 소리나는 몽치미(목침) 만한 기계식 카메라를 예찬하였다.
준비해 온 간단한 간식을 끼리끼리 앉아 먹고는 점심이 예약된 식당에 갔다.식당은 촌집 넓은 마당에 설치한 비닐하우스, 이름은 거창하게 녹원정사란다. 우선 막걸리와 두부안주가 나오고 짭짤한 촌반찬으로 된 한정식이 나왔다. 풍류 즐기는 한 회원이 진달래를 막걸리에 띄워 진달래주인가 두견주인가 아무튼 나른하고 배고픈차에 다들 금방 취기가 올랐다.
근데 돌아가면서 소개하는 시간에 창원팀, 포항팀, 부산팀에게 어시장이니 자갈치시장이니 포항 죽도시장이니 들먹이며 빈손으로 왔다고 핀잔을 주어 조금 미안해 했었는데 뒤에 식사값을 우리도 부담했다는 애기를 전해듣고는 미안해한 것이 억울했다."치- 대구 자기들은 뭐.."
하산 . 대구 동기회에서 타고 온 관광버스가 와서 우리팀도 함께 타고 통일전 주차장으로 향하는 중 드디어 일을 저질렀다. 우리의 오빠, 이충호 회원이 "꽃을 든 남자"와 "장녹수"로 테이프를 끊어 흥을 돋구었다. 우리들은 대구 회원들 앞에서 뽄때 보일 선수가 있다는 것이 너무 너무 자랑스러웠다. 왜냐하면 대구팀은 주눅이 들어선지 부인들에게만 마이크를 돌렸거든. 짧은 시간, 아쉽게 작별.
그런데 한 사건이 일어났다. 화장실에서 오래 볼일 을 본 대구 동기회 회원 한 명이 관광버스를 놓치고 우리를 만났다. 우리는 벌써 이런 나이가 되었다. 그 사람을 관광버스에 연결하느라 우리팀 승용차는 건천휴게소까지 열나게 쫓아가서그 회원을 간신히 태워주고 오는 사건이 있었다.
두 팀으로 갈라져서 오던 우리는 언양휴게소에서 다시 만나 둥근테이블에 앉아 산행평가회를 가졌다. 그 날 하루를 이야기하며 너무 너무 웃었다. 다음 주 축하연 약속도 하고, 옛날 음악시험얘기도 하고. 그 얘기에는 "가- 시밭에 한송이"와 "보- 리- 밭-"이 등장했는데 다 들 너무 공감이 가서 눈물을 찍어내며 얼마나 웃었는지. 근데 그날 이후 필자는 종종 "가아- 시 바테"를 흥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픽 웃는다. 나무학교 음악시험노랜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