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를 들을 때마다, 만약 악기 발달이 비올라나 쳄발로 정도에서 끝나고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나오지 않았더라면, 오디오를 듣는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도 비슷하리라 생각하지만 나는 30년 가까운 지금까지도 단연 그쪽 방면으로손이 많이 간다.
바이올린이나 피아노 소리는 누구나 다 좋아하겠지만 이들이 나오기 전에는 비올라나 피들, 쳄발로 같은 것으로 만족해야 했을테니, 옛날 사람들은 대체 무슨 재미로 음악을 들었을까 싶다.
비올라를 다루는 분들에게는 실례 되는 얘기겠지만 많은 악기소리 중에서 영 마음에 안드는 것이 비올라다. 어찌 들으면 독감 걸린바이올린 소리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카플링 콘덴서가 몇 개 나간 앰프에서 들리는 첼로 소리 같기도 하고....
이처럼 기막힌 바이올린을 처음으로 만든 사람이 누군지 알고 싶어 우선 바이올린에 대해서 문헌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정설이 없다. 피들이 진화해서 된 것이라서 명확하게 경계를 짓기 어렵기 때문인지 설이 분분하다.
'서양의 고사(故事)’라는 일본 책을 보니, 최초의 바이올린은 피에트로 달리델리라는 사람이 1516년경 파리에서 만들었고, 그 누이동생에 의해 처음으로 연주됐다는데, 최초 연주곡명은 ‘칸초네타 다 프리마베라-처음 부르는 짧은 노래-’였다고 되어 있다. 또, 그 소리의 가치를 인정하고 최초로 주문 구입한 사람은 화성(畵聖) 레오나르도 다 빈치였다고 한다. 감격한 달리델리는 제작 시한을 지키려다 건강을 해쳐서 바이올린의 사상 첫 연주가 다 끝나기도 전에 숨을 거뒀다는, 이 악기의 애절한 소리와 꼭 닮은 뒷 얘기도있었다. 스트라디바리의 절정기보다 200년 가량이나 앞선 얘기인데, 어디까지가 진짜인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앞뒤 얘기가 너무도 이가 잘 맞고 극적이라 오히려 실감이 안난다. 마치 최신형의 오디오를 들을 때처럼…
한동안 같이 독일기계에 빠져 서로 왔다 갔다 하던 때, 혜화동에 사는 J사장 집에서 어느 날 지네트 느뵈의 EMI 전집판을 구경하던중이었다. 석 장쯤 되는 것이었는데, LP판 외에 도나츠 판 하나가 더 있었다. 달랑 떨어지는 게 있어 뭔가 하고 집어서 봤더니, 유명 바이올린들의 음색을 느뵈의 연주로 비교 녹음해 놓은 것이었다.
본판은 별로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 도나츠 판 만은 분명하게 기억이 난다. 바이올린이라는 동일한 악기가 그처럼 다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제 각기 독특한 음색을 띠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 음색을 들으면서 명연주자가 바이올린을 고를 때 자신의 취향에 맞는 음색의 것을 고르듯이, 듣는 사람도 특정한 바이올린을 선호하게 되겠구나 싶었다. 스트라디바리 다르고, 과르네리 다르고, 아마티는 상당히 달랐다.
한두 대목 씩을 가지고 그 것도 녹음된 소리만으로 전체를 유추하기는 어렵겠으나, 스트라디바리는 울림이 맑고 커서 화려한 느낌을 주는데 비해, 과르네리는 차분한 감을 주었다. 아마티는 두 가지에 비해 훨씬 가늘면서 애틋하게 가슴을 후비며 파고 들었다. 이아마티 소리가 제일 내맘에 들었다. 바이올린 소리가 많이 다른 것을 알고 나자 대가들이 과연 어떤 바이올린을 쓰는가 알고 싶어졌다. 일람표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여기저기 찾아봐야 했다. 스트라디바리를 쓰는 사람이 단연 많았는데, 오이스트라흐, 프란체스카티, 그뤼미오, 세링 등이 이에 해당되었다. 스트라디바리에도 등급이 많은 모양으로, 1715년에 제작된 ‘알라르드’가 최고라는데 누가 그것을 쓰는 지는 알 수가 없었다.
저 유명한 파가니니와 하이페츠는 과르네리를 썼다. 정경화는 데뷔 시절 인터뷰 때, 단조에는 과르네리, 장조에는 스트라디바리를 쓰지만 전자가 더 마음에 든다고 말한 것이 기억이 나는데,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네리는 본의 베토벤하우스에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 당시의 유명도가 짐작되었다. 아마티는 누가 쓰는지 알 수가 없었다.
바이올린을 다뤄 본 적도 없는 사람이 대가들에 대해 이러니 저러니 하는 것은 가소로운 짓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3년’의 열배 가까운 세월에 오디오 풍월을 읊다 보니, 전문가가 아닌 일반 오디오 애호가들이 어느 연주가의 연주를 좋아한다고 할 때,사실은 연주 기법보다 그가 사용하는 바이올린의 음색을 좋아하는 것일 가능성이 적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내 오디오 취향으로는 너무 화려 웅장한 스트라디바리보다는 과르네리나 특히 아마티 쪽이 마음에 든다. 그뤼미오의 스트라디바리는 내 귀에는 너무 웅장하게 들리는 것이 불만이라서 잘 안듣게 된다. 요세프 수크나 아돌프 부쉬, 레오니드 코간 등의 연주는 그 기법 여하보다 가슴을 살살 ‘호비는’ 그 음색이 덮어놓고 좋아서 아무 판이나 가리지 않고 즐겨 듣는다. 이제는 더 이상, 그것이 녹음이 잘못돼서 그렇게 들리는 것이든 말든, 또 아마티거나 말거나, 상관 않기로 했다.
오디오 비교시청시 이쪽 집에서는 수크판, 저쪽 집으로 가서는 그뤼미오 판, 하는 식으로 듣는다면 옳은 비교가 될 수가 없을 것 같다. 같은 소리가 아니므로....
위와 같은 명기들의 산지였던 이탈리아 북부 크레모나라는 도시는 지금도 바이올린의 메카로서 국제 현악기 트리에날레 콩쿠르가 폰키엘리 가극장에서 3년마다 한 번씩 열리고 있다. 7일간에 걸쳐 올라온 최종 3대의 각 부문별 우수작 중에서 챔피언을 고르는데,바이올린의 경우에는 비탈리의 샤콘을 끝까지 연주하여 음질을 판별한다. 최근 콩쿠르에서는 독일의 마이스터들이 상위를 독점했고 그 외에 항가리 호주의 장인들도 베스트 텐에 상당수 포함되어 있어 제작 기술도 국제화 돼가는 추세다. 바이올린 제작의 국제 규격은 스트라디바리가 기준이 되는데, 아무리 소리가 좋아도 이 기준을 벗어나면 바이올린으로 인정을 못받는다. 구성부분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뜻밖에도, 윗판과 아랫판 사이를 연결시키는 버팀막대(혼주: 魂株)이다. 길이 4cm, 직경 6mm인 담배 개피 절반 쯤 되는 이 막대는 윗판과 아랫판의 진동을 같은 울림으로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100분의 수 mm의 차이로 소리가 달라지므로 가장 치명적인 부분이라고 한다. 혼주라는 이름은 장인의 혼을 불어 넣어야 하는 막대라는 의미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된다.
구강(口腔) 용 거울 같은 것을 구멍으로 넣어 비춰 보면서 이 치명적인 지점을 찾아서 튜닝하는 과정에 혼신의 정력을 기울인다. 이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니스 칠이라 한다. 아무리 잘 만든 작품이라도 50 ~ 100년 정도 에이징이 되지 않으면 제 소리가 나지 않으며, 장기간 쓰지 않아도 소리가 변질된다고 한다. 이런 점이 바이올린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고 볼 때, 원음 세계란 이처럼 어렵고 엄격한 모양이다. 그런데, 재생음악도 '소리'를 대상으로 하는 것인 만큼 오디오 씨스템의 구성 소재. 배치 등에 있어 조그마한 차이로 크게 달라진다고 해서 하나도 이상할 게 없으므로, 앞으로도 개선의 소지는 무궁무진하다 하겠다.
악기의 또 다른 총아인 피아노에 대해서도 바이올린에서 말한 얘기를 그대로 적용시킬 수 있겠다. 피아노라면, 박하우스를 좋아하지만, 실은 연주보다 중후하면서 깊이 있는 소리를 내어 음악을 그윽하게 들려주는 그 ‘베젠도르퍼’라는 오스트리아제 피아노 소리자체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저음이 16 Hz까지 내려가는 것으로 유명하다.
피아노는 바이올린의 경우보다 소리 특질상의 차이가 더 두드러지는 것 같다. 요즈음 대부분의 현역 유명 피아니스트들은 그 소리로 판단컨대 대부분 스타인웨의 '콘서트 그랜드'를 쓰는 것으로 보인다. 웅장 화려해서 CD 녹음에는 제격일 것 같으며, 같은 솜씨라면 다른 피아노보다 크고 선명하게 들릴 것이다.
클랑필름 필드형 스피커를 쓸 때의 일이다. 고역 어딘가에서 트위터가 찌그러지는 기미가 있기는 있는데, 정확히 포착을 할 수가 없었다. 독일기계 전문가 P형한테 보였더니, 대뜸 켐프가 연주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중 ‘열정’이나 ‘비창’을 틀어보라고 했다. 1964년도 DG판을 틀었다. 그랬더니, 프레스토 부분의 높은 고역에 이르자 찌그러짐이 또렷이 들렸다. 그래서 다른 판에서는 잡아내지 못하던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솜씨 좋은 P형은 계속 그 판을 들어 가며, 두시간 이상 애쓴 끝에 완전히 고쳐 놓았다. 켐프가 쓰는 피아노는 독일산 베히슈타인(Bechstein)이라는데, 맑고 분명한 대신 에코가 거의 없고 기름기가 빠진 소리다. 엄격한해석으로 유명한 켐프에게 어울리는 피아노일 것 같다. 얼마나 소리가 정확한지 작은 미스타치도 가차없이 들어낼 것 같다. 그러나오디오적인 만족감은 별로 못느껴, 보통 때에는 거의 안듣는 판이다.
스타인웨이 콘서트 그랜드는 루빈스타인이나 아라우 외에 많은 사람이 선호하는 피아노지만, 피아노판 스트라디바디 같은 소리라 할까? 오디오 효과 하나만은 최고인 것 같다. 원래 스타인웨이는 독일의 피아노 장인이었던 하인리히 엥겔하르트 슈타인베크가 세아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해서 번창하게된 회사로서 이름도 미국식으로 스타인웨이 앤드 손즈로 바꾸었다. 120여년 전에 이미 런던과 함부르크에 지사를 두어 음악의 본고장이었던 유럽에 수출을 했을 만큼 성장했고, 오늘날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메이커로 자리 잡았으며, 미국의 자랑거리가 되어 있다.
초기 헤블러의 모차르트 소나타 전집은 노이펠트사의 하머클라비어로 녹음한 것인데, 만약 이 판을 즐겨 듣는 사람이 있다면, 그 것은 헤블러의 연주가 좋아서라기 보다는 가죽을 씌운 해머가 때리는 고색창연한 소리가 좋아서일지도 모른다. 이에 비하면 우치다 미츠코가 현대식 피아노로녹음한 것(필립스: 디지털 녹음)은 처음 얼마동안은 청량한 맛이 있어 좋더니 자꾸 들으니까 그 것이 과연 모차르트인가 싶을 정도로 너무 현대적이어서 거부감이 든다. 폴리니의 베토벤이나 슈베르트로 마찬가지다. 아무리 오디오파이기는 하지만, 나로서는 미주알 고주알 다 들어내는 최신식 피아노와 초현대적인 녹음의 베토벤. 슈베르트는, 마치 모노랄로 20세기 음악을 듣는 것처럼 제맛이 안나는 것 같다.
흔히, '새로운 해석' 운운하지만, 헤집어 보면 도구(피아노)나 녹음기술의 덕을 많이 보는 것 이 아닌지 모른다. 야마하라면, 일반 가정용으로서는 값에 비해 품질이 좋은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대가들에게는 외면 당해 왔다. 그러나 타카죠 씨에 의하면 구식야마하가 없었던들, 글렌 굴드의 골트베르크 변주곡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한다. 구식 야마하만 가지고 있는 짧은 여운이, 독특한 그의 페달링을 가능하게 했다는 얘기다.
이처럼 유명 피아노라도 그 음색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프로코피에프에 적합한 피아노가 모차르트나 베토벤에는 젼혀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 피아노 대가들 중 전천후적인 연주자가 드물며, 작곡가별로 전공이 따로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모든 악기는 시대적인 상황이 바뀜에 따라 그 소리가 변해 왔지만, 악기 중에서도 바이올린과 피아노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한다.
리스트나 쇼팽, 파가니니등이 활약하던 시대의 연주회는 상층계급 대저택의 응접실 같은 데서 소수의 선택받은 사람들을 상대로 열렸던, 이른바 살롱적인 것이었다. 아마데우스라는 영화에서 본 광경과 별로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따라서 그 당시의 피아노나 바이올린 소리는 지금보다 훨씬 작고 부드러웠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소규모 콘서트는 19세기 대중화 물결에 휩쌓여 연주장이 광대해 짐에 따라 안쓰던 악기도 편입하게 되고, 나중에는 대포까지도 동원될 정도로 다양해 졌다. 그러나 가장 변화를 강하게 강요받은 악기는 역시 총아인 바이올린과 피아노라 하겠다.
바흐가 좋아했다는 야코브 슈타이너(Jacob Steiner)의 바이올린의 소리는 요새 같으면 시골학교 강당에서나 겨우 들릴 정도로 작고 부드러웠던 모양이다(호그우드와 함께 일하는 야프 슈뢰더는 1665년에 제작된 이 슈타이너를 쓰고 있다). 하이페츠의 과르네리 소리는, 애당초에는 당대의 대표적인 음악평론가였던 뉴욕 헤럴드 트리뷴 지의 버질 톰슨이 ‘실크 속옷’이라는 별명을 붙였을 정도로 나긋나긋한 소리였으나, 대음량을 내야 하는 추세로 바뀌자 금속줄로 바꿔야 했고 바이올린 몸체 구조도, 앞판과 뒷판 사이의 간격이 좁혀지고 목을 뒤로 휘게 하는 등 수정을 해야했다. 이런 변화에 대해 하이페츠는 대단한 거부반응을 보였고, 특히 자꾸만 강렬한 소리를 요구해 오는 하이파이계에 대해서 ‘hi- fooey’( 흥, 하고 코웃음치는 소리)라면서 노골적으로 경멸, 증오했다는 일화도 있다.
피아노 역시 같은 변화를 겪었다. 리스트나 쇼팽이 사용했던 당시의 프랑스제 플레이엘(Pleyel) 피아노는 지금과 같은 대연주회장에서는 전혀 쓸 모가 없는 물건이 되었다. 해머를 싸는 재질은 옛날에는 가죽이었으나, 지금은 펠트이며, 현과 현 사이에는 엄청난 현의 압력(원래의 16톤에서 지금은 30톤)을 지탱할 수 있도록 프레임을 짜 넣는데, 이것도 나무에서 쇠로 바뀌었다. 그 결과 포르티시모나 소스테누토는 옛날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더 강력하고 또 더 지속적인 것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러나 가장 큰 변화는 건반 수의 증가라 하겠다. 모차르트 시대에는 66건, 베토벤 말기에 72건이었던 것이, 리스트 시대에 와서는 88건으로 늘어났으니 음폭만도 무려 33%나 증가했다는 얘기가 된다. 리스트의 신출귀몰한 연주도 피아노의 이와 같은 개량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모차르트 시대에 요즈음과 같은 피아노가 없었다는 것은 애석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