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우야담(於于野譚)에 나오는 인어(人魚) 이야기
김빙령(담령)이 흡곡현(강원도 통천군의 옛이름)의 현령이 되어 일찍이 해변에 있는 어부의 집에서 묵은 적이 있었다.
어부에게 무슨 고기를 잡았느냐고 물으니 대답하였다.
"어떤 백성이 낚시를 하다 인어 여섯마리를 잡았는데 그 중 둘은 창에 찔려 죽었고 나머지 넷은 살아 있습니다"
나가보니 모두 네살 난 아이 같았는데 얼굴이 아름답고 고왔으며 콧마루가 우뚝 솟아 있었고 귓바퀴가 뚜렸했으며,
수염은 누렇고 검은 머리털은 이마까지 덮었으며 흑백의 눈은 빛났으며 눈동자는 노랬다.
몸은 혹 옅은 적색이었으며 혹은 온통 백색이기도 하였다.
등 위에 옅은 흑색의 문양이 있었으며 남녀 사이의 음양관계가 사람과 한결 같았다.
손바닥과 발바닥의 한가운데 주름살 무늬가 있는 것, 무릅을 껴안고 앉는 것까지 모두 사람과 다름이 없었다.
사람과 대하여 있어도 별 다름이 없었는데 흰 눈물을 비처럼 흘렸다.
빙령이 가련하게 여겨 어부에게 놓아주자고 청하니 어부가 아까워하며 말했다.
"인어에게서 기름을 취하면 무척 품질이 좋아 오래되어도 상하지 않습니다.
날이 갈수록 부패하여 냄새를 풍기는 고래 기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습지요"
빙령은 인어를 빼앗아 바다로 돌려보내니 마치 거북이나 자라가 유영하는 것처럼 헤엄쳐갔다.
빙령이 이를 무척 기이하게 여기니 어부가 말했다.
"큰 인어는 사람크기만 한데 이들은 작은 새끼일 뿐이지요"
일찍이 들으니 간성(강원도 고성)에 어만(魚巒:포구)이 있어 인어 한 마리를 잡았는데
피부가 눈처럼 희고 여자같은지라 장난을 치니까 인어는 마치 견권(缱绻)한 정이라도 있는 것처럼 웃었고
마침내 바다에 놓아주니 갔다 돌아오기를 세차례 반복하더니 갔다고 한다.
내가 일찍이 고서를 보니 '인어 남녀는 모습이 마치 사람과 같아 바닷가 사람들이 그 암컷을 잡으면
못에 기르며 더불어 교접하는데 마치 사람같다'하여 남몰래 웃었는데 동해에서 그것을 다시 보게 되었네.
*견권缱绻: 헤어지기 아쉬워 연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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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가 나오는 '어우야담'을 지은 분이 유몽인이다.
유몽인(柳夢寅) 1559(명종 14)∼1623(인조 1). 조선 중기의 문신·설화 문학가.
그는 조선 중기의 문장가 또는 외교가로 이름을 떨쳤으며 전서(篆書)·예서·해서·초서에 모두 뛰어났다.
1623년 인조반정 뒤 광해군의 복위에 가담하였다는 무고로 사형을 당하였다
그의 청명(淸名)을 기려 전라도 유생들이 문청(文淸)이라는 사시(私諡) 를 올리고 운곡사(雲谷祠)에 봉향하였다.
신원된 뒤에 나라에서도 다시 의정(義貞)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운곡사를 공인하였다.
저서로는 야담을 집대성한 ≪어우야담≫과 시문집 ≪어우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