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위지 동이전], 에는"그들의 풍속은 궁궐이나 주거지를 성대하게 짓기를 좋아한다" 는 구절에 등장한다. 이기록을 통해 볼 때 고구려의 건축 기술은 중국에서도 부러워할 만큼 뛰어 났습을 알 수 있는데 건축 기술이 뛰어나지 않고서는 건물을 성대하게 지울수가 없기 때문이다. 고구려에서는 죽은 사람들을 피라미드 형태의 무덤에 안치 하였는데 장군 총을 비롯하여 이러한 대규모 피라미드 무덤들을 통해서도 고구려의 건축술이 당대 최고 였슴을 알 수 있다. 최근 보도되기 시작한 자료에 의하면 중국 서안에 대규모 피라미드 무덤들이 존재한다고 하는데 중국 당국의 통제로 인해 그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 피라미드들은 고조선과 고구려의 왕과 귀족들의 무덤으로 추정되는데 이 중에는 이집트의 피라미드 보다 큰 것도 있다고 한다. 아직 공식적으로 연구 되거나 밝혀진 바 없어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만약 이 유물들이 고구려의 것으로 드러난다면 당대 최고의 건축 기술을 가지고 있었음이 명확하게 증명 될 것이다. 고구려는 육상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치기도 하였지만 뛰어난 해상 지배력을 지닌 국가이기도 하였다. 광개토대왕은 정복 활동을 펼치면서 육로로만 군사를 동원한 것이 아니라 해상으로도 자주 공격을 감행하였다. 이렇게 해상지배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당연히 배를 건조할수 있는 조선술이나 배를 이용하여 먼거리를 이동 할수 있는 항해술이 발달 되지 않으면 안된다. 동천왕 때에는 멀리 오나라와 해상을 통해 교류하였고 광개토 대왕 시절에는 해상을 이용하여 백제 땅에 쳐들어 갔으며, 장수왕 때는 무려 말 800필을 싣고 1,200km 을 향해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