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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일/장소 : 2010. 9. 5(일) / “북한산(족두리봉)”
▣ 산행코스 : 독바위역(1번출구)-족두리봉-향로봉(중간)-탕춘대-구기터널-불광역(뒷풀이)
▣ 참 석 자 : 8명 (김정남, 김종화, 이경식, 이재웅, 임용복, 조문형, 한양기, 한천옥)
▣ 동 반 시 :“좋겠다, 마량에 가면”/ 이재무
▣ 뒷 풀 이 : 낙지 연포탕에 맥주와 막걸리 / 불광동“고흥 나라도횟집”(임용복 제공)
태풍‘곤파스’가 수도권을 통과하면서 많은 상처를 남겼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만 하더래도 20년 이상된 아카시아 나무는 물론 작은 정원수 마져도 부러지거나 뿌리채 뽑혀져 있다.
마나님과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아침 7시 예배를 드리고 어제 밤에 얼려 놓은 막걸리와 어름물을 챙겨 배낭에 넣고 있는데, 황송하옵게도 행복씨는 유부초밥과 부침개를 만들어 싸 주신다. 시계를 보니 벌써 8시30분이 지나버렸다. 집결장소인 독바위역까지의 소요시간을 가늠해 보니 상당시간(약 30여분) 늦을 것만 같다.
수서역에서 3호선으로 환승하면서 이 회장님께 늦게 도착될 것 같으니 먼저 출발하라고 문자를 보냈다. 고속터미널쯤 갔을때‘지금 어디쯤’하며 이 회장님으로 부터 문자가 온다. 기다리는 산우들께 미안한 마음에 약 30여분 늦을 것 같으니 먼저 출발하고 중간중간에 전화로 연락을 해 달라고 하였다.
금년부터 매주 일요일마다 교회에 가기로 마나님과 약속을 하였기에 근교 산행때는 항상 7시 예배를 보고 산행에 참석하여 왔다. 강남에 있는 청계산이나 관악산을 산행할땐 10시까지 집결하더래도 시간이 충분하였지만, 북한산이나 도봉산 등의 강북에 있는 집결지가 먼 산엘 산행 할땐 항상 시간적으로 부담이 된다. 그러나 어쩌랴! 서울 근교 산행때엔 국립공원인 북한산(도봉산 포함)을 주로 많이 산행을 하였기에 집결시간에 거의 대부분 지각을 하는 편이다. 죄송한 일이다.
불광역에서 6호선으로 환승, 독바위역 1번 출구에 도착하니 언제 보아도 반가운 산우들이 보인다. 오랜 시간을 먼저와 기다려 주는 산우들께 미안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고맙기 그지없다. 오래간만에 임 수석의 모습도 보인다. 오늘 산행 참석인원은 총 8명이다. 불참한 산우들은 추석이 몇 일 남지 않아 시골에 벌초를 갔거나 또는 결혼식 참석 등 개인적인 사정이 있는 모양이다.
10시 35분경, 인원점검과 준비한 막걸리를 파악한 후 출발이다. 오늘 산행코스를 추천한 임용복 수석과 이경식 문화부장관님이 앞서서 안내를 한다. 이 회장님과 난, 맨 뒤에 따르면서 최근의 산우들의 안부를 물었다. 오늘따라 우리 이 회장님의 안색이 편치않아 보인다. 요즈음 집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 모양이다. 화백(화려한 백수)도 있으나 불백(불쌍한 백수)가 더 많은데, 능력이 출중하신 회장님께서‘잠시 쉬면서 원기를 보충한다’라고 생각하면 될텐데, 그것이 잘 않되는 성격이기 때문이리라... 몸이 편치 못해 동참하지 못한 다른 산우들께도 빠른 건강회복을 기원해 본다.
10시40분경, 들머리 입구에‘북한산 둘레길’이란 이정표가 눈길을 끈다. 지자체에서‘제주도 올레길’이 언론에 소개된 이후, 좋은 이미지로 호응을 받자‘지리산 둘레길’,‘변산 마실길’등등 국립공원이나 유명 관광지마다‘둘레길’을 만들어 관광객들이나 국민들에게 홍보를 하고 있다. 국민건강을 위하여 매우 좋은 발상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집 뒷산에도 공원을 조성하여 체육시설과 산책코스를 잘 조성해 놓았는데, 안타깝게도 이번 태풍(곤파스)으로 인하여 폐허(쑥대밭)가 되어 버렸다. 자연재해란 그 누구도 상상을 할 수가 없으니 사전에 철저하게 대비해야 할 일이다.
잠시 산행 안내판을 살펴보고 우린 북한산 둘레길(구기동) 쪽으로 올랐다. 이곳에서 족두리봉 까지가 1.1 km 이니 쉬엄쉬엄 올라도 그리 먼 거리는 아니다. 존경하는 우리 이 회장님은 오늘따라 아주 힘이 없어 보인다. 항상 임신 7개월의 볼록한 배가 무거워서 인지? 배낭속에 맛있는 먹거리를 많이 넣어 왔는지? 본인은 산행 증명사진 촬영, 낙오된 산우 챙길랴? 이일저일 할 일이 많아서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항상 뒤 쳐진다고 하는데, 오늘도 뒤에 처져서 보이질 않자, 한 교장이 한참을 기다리다가 그도 지쳤는지? 그냥 먼저 올라 와 버린다.
11시05분, 족두리봉과 향로봉이 보이는 전망이 좋은 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이 회장님을 기다렸다. 임 수석이 내어 놓은 곶감과 조문형 산우의 며느리가 사줬다고 가지고 온 육포에다 살얼음이 낀 막걸리를 한 잔씩 했다. 시원한 막걸리를 마시며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멀리 좌측편에 불광동과 바로 앞에 구파발 및 은평신도시의 새아파트까지 강북의 북서쪽일대가 한 눈에 훤히 다 보인다.
이 곳을 간혹 올랐다는 임 수석은 정기가 좋다는 곳을 내려갔다가 점찍고 다시 올라온다.
바람이 거의 불지 않는 후덥지근한 날씨에 흘린 땀을 잠시 훔치고서 족두리봉은 몇 번 올라봤기 때문에 오르지 않고, 우회하여 곧장 향로봉을 향했다. 하지만, 한양기 산우만이 족두리봉을 등산왔으면 올라가 봐야 하지않겠냐?고 하면서 한사코 고집을 피우며 족두리봉쪽으로 오른다.
11시30분, 족두리봉이 훤히 보이는 곳에서 2차 후식을 취하며, 암벽 등반을 하는 산꾼들이 아스라히 보여서 사진 몇 장을 담았다. 얼굴에 보호마스크를 쓴 한 여성산객에게 부탁하여 단체 증명사진도 남겼다. 그저 여자만 보면 마음이 동하는지? 누군가가 ‘마음씨도 곱게보이는 미인인 것 같은디, 왜? 예쁜 얼굴을 감추시고 산행을 하시느냐?’,‘ 나홀로 산행을 왜? 즐기시느냐? 는 등 괜한 시비를 걸었었는데... 이 아짐씨, 남정네들 틈에 끼여 8대 1의 아주 불리한 여건임에도 주저함이 없이 당당하게 나온다. 산우들 모두가 곱게 늙어가는 모습이 착하게 보여 마음을 놓았나 보다(사실은 모두가 악동들?인디...). 말씨가 남녁의 사투리가 섞여 고향을 물으니 해남이라고 한다.
시간도 벌써 12시가 넘었으니 배도 출출하고 하여 멀리 사모바위, 비봉과 보현봉, 남쪽에 한강족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자리를 깔고 막걸리도 한 잔 할겸, 간식을 먹기로 했다. 오늘은 사전 예고도 있었지만, 하산후 점심을 겸한 뒷풀이를 임 수석이 제공한다고 했었기에 모두들 간식을 준비하지 않았나 보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항상 그랬듯이 먹거리를 많이 싸 오는 김정남 초대 회장님은 오늘도 문어, 두부, 한과를, 누군가가 사 온 떡, 내가 가지고 온 유부초밥과 부침개, 김치에다 살얼음이 낀 막걸리를 한 잔씩 하였다.
날씨가 무더워 땀을 많이 흘러서인지? 살얼음이 낀 막걸리가 뱃속까지 시원하고, 달고 맛있다. 적당히 배를 채우고 목을 축인 것 같다. 이어서 이 회장님은 동반시와 금후 산행일정표를 나눠 주면서 우선 먼저 동반시부터 읊자고 한다.
오늘 동반시는 내가 추천했고, 글짓기 담당자라고 나에게 동반시(“좋겠다, 마량에 가면”/ 이재무)를 읊으라고 한다. 내 목소리가 좋아서 인지? 시산회 산행중 비교적 나는 시를 많이 읊은 산우들 중의 한 사람이다. 산행에 처음 동참한 50회 이후 총 80여회 산행중 10회 이상을 읊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시심에 몰입하여 한껏 목소리를 가다듬고 시를 낭송했다.
시를 읊은 후 마량이 전남 강진의 마량인지? 아니면 충남 서천에도 마량이 있는데, 어디인지를 확실히 몰라 서로들의 생긱을 주장한다. 이재무 시인의 고향은 충남 부여로서 충남 서천이 가까우므로 서천이지 않나? 하는 주장과...‘데불고’,‘아득한 먼 포구’등등의 말투로 보면 강진일거라? 고 주장하는 산우들도 많았다. 하지만, 시 제목의 마량이라는 지명이 강진이던, 서천이던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독자들이 이 시를 읽어보고 시의 주제와 내용을 이해하면 그걸로서 만족해야 하지 않겠는가...
몰래 숨겨 둔 사랑하는 여인과의 소꼽장난 같은 휴가는 이 세상 모든 남정네들이 목석이 아닌이상 꿈꾸는 소망일게다. 석 달이 아니라 단 일주일만이라도 시 속의 내용대로 그렇게 해 보고 싶은 것이 모든 남자들의 꿈이지 않겠는가? 남자들의 머리속을 들여다 보면 생리적으로 바람끼는 누구나 다 있을 것이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끼를 억제하거나 감추고 있을 뿐이겠지...
다음 산행은 추석 연휴가 끝나는 9월 25일(토)이며, 오전에 명동에서 영화감상을 하고, 점심식사후 남산 산행을 하기로 되어 있다. 30대 초반에 올라봤던 서울의 한복판에 있는 남산을 오랜만에 산보하는 기분으로 올라 전망대도 올라가 보자. 당일 뒷풀이는 이승렬 산우가 책임진다고 연락이 왔단다.
10월엔 두 번 모두 원거리 산행을 한단다. 10월 첫째 주(10.2~3일)는 설악산(대청봉) 산행(1박2일)으로 들머리를 백담사에서 올라‘봉정암’에서 1박하고, 대청봉을 오른후 오색으로 내려올 예정이라고 한다. 또한, 셋째 주 일요일(10.17일)은 당일코스로 설악산 ‘흘림골’을 가기로 집행부에서 사전에 협의를 하였다고 한다.
물론, 10월 한달, 두 번 모두 원거리 산행을 하는 것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낸 산우도 있었지만, 단풍이 곱게 물이 들, 좋은 계절에 아름다운 산을 찾는 것은 우리들의 남아있는 삶 중에서 멋있는 추억이 될 것이 틀림이 없을진데, 삶이 힘들더래도 건강관리 잘 하시어 모두가 함께 하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13시05분, 뱃속을 채웠으니 주변을 정리하고 다시 출발이다. 오늘 가기로 한 코스는 당초에 향로봉, 비봉, 사모바위를 오른후 삼천사계곡으로 하산키로 되어있다. 안부의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 갈림길에서 오늘 컨디션이 별로 좋지않는 이 회장님, 한 교장, 임 수석은 탕춘대공원쪽으로 바로 내려가 뒷풀이 장소(불광역)에서 만나기로 하고, 나머지 산우들은 당초의 예정대로 향로봉을 향해 올라갔다.
가파른 암벽길을 약 15분정도 올라 가는데, 갑자기 먹구름이 끼면서 하늘 색깔이 흙갈색으로 변한다. 빗방물이 후드둑 떨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소낙비가 쏟아지고 번개와 함께 뇌성(낙뢰)소리도 들린다. 앞서오르던 산객들이 하나 둘, 하산하기 시작한다. 몇 해 전에 이 곳에서 멀지 않은 의상능선에서 등산객들이 벼락을 맞아 감전사를 했었다. 올 여름에도 삼천사계곡에서 두 명이나 계곡물에 익사하였기에 우린 바로 하산하기로 결정하고, 탕춘대공원쪽을 향해 내려갔으나 빗줄기는 그칠줄 모르고 점차 세차게 내린다.
1시간 반동안 비를 맞고 산을 내려오면서 우린 50줄 인생의 마지막 해에, 아직도 남아 있는 사랑의 열기(늙은 바람기?)를 초가을의 소낙비로 식혔다. 온 몸엔 빗물인지? 사랑의 육수인지? 흠뻑 젖어서 마침내는 머리 위의 모자에도... 발끝 아래 양말에도 스며들어 등산화 속까지도 질퍽거린다.
“비”에 관한 시를 연상하니 문득 경남 진주가 고향인 '허무의 시인' 이형기(1933~2005) 시인이 생각난다. 그는 작고할 때까지 문학에 대한 열정과 천재의식을 놓치지 않은 대시인이었다. 대표적인 시가 '낙화'와 '비'가 있다. 두 편의 시, 모두 우리 시산회에서 동반했던 시이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로 시작되는 국민의 애송시 '낙화'는 제5회(2004.12.12) 관악산 산행때 동반한 시이고, '비'는 약 2년전인 제90회(2008.8.3) 분당의 영장산 산행때에 동반했던 시이다.
"비" / 이형기
적막강산에 비 내린다.
늙은 바람기
먼 산 변두리를 슬며시 돌아서
저문 창가에 머물 때
저버린 일상
으슥한 평면에
가늘고 차운 것이 비처럼 내린다.
나직한 구름자리
타지 않는 日暮....
텅 빈 내 꿈의 뒤란에
시든 잡초 적시며 비는 내린다.
지금은 누구나
가진 것 하나하나 내놓아야 할 때
풍경은 정좌하고
산은 멀리 물러앉아 우는데
나를 에워싼 적막강산
그저 이렇게 빗속에서 저문다.
살고 싶어라.
사람 그리운 정에 못 이겨
차라리 사람 없는 곳에 살아서
청명과 불안
기대와 허무
천지에 자욱한 가랑비 내리니
아 이 적막강산에 살고 싶어라.
14시20분경, 한참을 걷고 또 걸어 구기터널 입구까지 내려와 택시를 잡으려고 했으나 잡을 수가 없다. 버스를 타려 긴 터널을 통과하여 버스정류소까지 가야만 했다. 등산객들 대부분이 물에 빠진 생쥐꼴이다. 버스를 타고 우린 예정되어 있는 뒷풀이 장소(불광동)로 이동했다.
뒤풀이 장소는 불광역(2번출구?) 옆에 있는‘고흥 나라도횟집’으로 평소에 임 수석이 몇 번 가 봤던 곳이라고 한다. 주요 메뉴가‘낙지연포탕’이었다. 비를 흠뻑 맞았으니 등산객들 대부분이 일행들과 막걸리와 소주생각이 간절했을 것이다. 이미 알아두었던 식당은 벌써 만원사례라 앉을 자리가 없다. 하지만, 장사가 잘 되어 뒷 편에 제2의 식당이 있단다. 그 곳에도 처음엔 우리밖에 없었는데, 10여분이 지나자 좌석이 다 차버리고 앉을 곳이 없다.
끓는 물에다 살짝 데쳐서 먹는 야들야들한 낙지의 맛이란... 그 옛날 위 산우의 마나님이 싸 주셨던 맛있었던 낙지 생각이 갑자기 난다. 우린 그렇게 맛있는 낙지와 야채를 곁들인 안주에다 시원한 맥주와 막걸리를 한 잔씩하고 연포탕국물에다 끓인 죽도 한 그릇씩 맛있게 또 먹었다. 먹산회의 전통은 그 곳에서도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었다.
오늘 산행은 소낙비로 인하여 예정된 코스대로 다 하질 못 하였으나 비를 흠뻑 맞으며 사랑의 열기(늙은 바람기?)를 식히는 등 많은 생각을 하게 한 뜻깊은 산행이었다. 산행코스의 추천과 맛있는 뒷풀이를 제공한 임 수석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이번 일요일(9/12일) 아들 결혼을 축하하고, 그동안 수고가 많았었네. 산우들 모두에게도 감사드리며, 항상 건강과 함께 시산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면서 산행기를 맺습니다...
2010년 9월 11일 김종화 씀.
[ 동반시 ]
"좋겠다, 마량에 가면" / 이재무
몰래 숨겨놓은 여인 데불고
소문조차 아득한 먼 포구에 가서
한 석 달 소꿉장난 같은 살림이나 살다 왔으면,
한나절만 돌아도 동네 안팎
구구절절 훤한, 누이의 손거울 같은 마을
'마량'에 와서 빈둥빈둥 세월의 봉놋방에 누워
발가락 장단에 철지난 유행가나 부르며
사투리 쓰는, 갯벌 같은 여자와
옆구리에 간지럼이나 실컷 태우다 왔으면,
사람들의 눈총이야 내 알 바 아니고
조석으로 부두에 나가 낚싯대는 시늉으로나 던져두고
옥빛 바다에 시든 배추 같은 삶을 절이고
절이다가 그것도 그만 신물이 나면
통통배 얻어 타고 휭, 먼 바다 돌고 왔으면,
감쪽같이 비밀 주머니 하나 꿰차고 와서
시치미 뚝 떼고 앉아
남은 뜻도 모르는 웃음 실실 흘리며
알량한 여생 거덜냈으면,
[ 이재무 시인 ] :
1958년 충남 부여 출생으로 한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했다. 동국대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하였으며, 1983년『삶의문학』과 그후『실천문학』,『문학과사회』등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집으로는『섣달 그믐』,『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벌초』,『몸에 피는 꽃』,『시간의 그물』,『위대한 식사』,『푸른 고집』등이 있고, 산문집으로는『생의 변방에서』. 공저로『우리시대의 시인 신경림을 찾아서』. 편저로『대표시, 대표평론 I~II』이 있고, 난고문학상과 편운문학상, 윤동주시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현재, 동국대학교 문예창작과 대학원 등에서 '시창작'을 강의하고 있고, 시 전문지『시작』 편집주간과 실천문학사 편집위원, 도서출판 화남 편집위원을 맡고 있으며,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로 활동 중이다. 위의 시는 그의 시집 "저녁 6시" (창비) 에서 실려있다.
[ 산행사진 ]
- Fiesta Americana Grand Los Cabos - |
첫댓글 우중 산행이라 고생 많았구먼...
북한산은 구경도 못했지만 인수봉은 많은 사연들이 있어 신비함을 더하는 봉우리지
언젠가는 한 번 가보리라 했는데...
벌써 다리가 풀러 오를 수가 있을 지 모르겠네...
젊은이들이 목슴을 걸고 오르는것이 이해가 될만큼 매력적인 암봉일세
사내들은 한갑을 살아도 하나같이 속에 도둑이 세놈이나 들었단 생각을 하네... ^^
다리에 힘올리고 호시탐탐 기회만 노린다니까?
그 미량엔 나도 가고 싶네...
다리힘 다 풀리기전에... ^^
그려! 다리 힘 보강해서 북한산도 가 보고,
마량에도 가 보고, 지리산 종주도 함께 하고,
또 단풍이 곱게 물이들땐 설악산도 가 보고,
눈 꽃이 아름답게 피는 겨울철엔 태백산에도
함께 가 보세나...
근디, 도둑 세 놈중에서 난, 한 놈밖에 없어...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