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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36.5
상해목장 윤혜선 집사
나는 거리의 남자.
한 손엔 청테잎을 들고, 한 손엔 벽보를 들었지.
어쨌거나, 나는 차가 난폭하게 내 달리는 차도의 귀퉁이에
벌레, 벌레처럼 붙어서 버티고 있어.
나는 거리의 남자.
이 천 원짜리 햄버거를 들고 거리의 개를 찾아가지.
삼 만 원짜리 믹스견과 나란히 앉아서 빵과 생명을 나누지.
지극히 낮은, 외로움과 절망을 나누지.
아…, 아…, 나는 거리의 남자.
더 이상은 갈 곳이 없어.
자비 없는 어깨들의 주먹질을 뒤로 하고
희망처럼 열린 대문을 열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천 길 낭떠러지.
나는 하는 수 없이
대문을 다시 닫고 나와서,
파편처럼 날아와 박히는 비웃음과 차별의 거리로 나가
나는 거리의 남자
그 거리에서 입을 나의 찢어진 옷
내상을 입은 오리털 잠바를 꿰매 보기로 해.
깃털이 피와 살처럼 튀어나와 있는 내 오리털 잠바.
포근하고 따뜻하고 가볍기까지 한 내 생애의 옷.
잘 꿰매지지 않으면 청테잎을 붙여볼까 해.
그리고 아직도 남아있는 거리를 향해 뚜벅 뚜벅 걸어갈 거야….
그리고 또 다시 말할 거야.
“잘 할 수 있습니다.” 라고 말이지….
-영화 무산일기(2011)중 승철의 대사 “잘 할 수 있습니다”를 떠올리며….
무산일기 <The Journals of Musan>
2시간 5분의 러닝 타임 동안 꼼짝없이 몰입을 하고 만다. 시간이 어찌 갔나를 모르겠다.
보는 내내 이 영화는 내게 너무 재미있는 영화였다. 좋은 영화는 무엇보다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산일기는 볼거리와 생각할 거리, 그리고, 기가 막힌 반전이 있는 영화이다. 수상경력을 소개하면 영화를 증명하는 길이라 믿고 지금부터 이 영화의 수상경력을 나열해 보겠다.
제 40회 로테르담 타이거상, 국제비평가협회상, 제 15회 부산 국제영화제뉴커런츠상, 국제영화평론가협회상, 제 10회 마라케시국제영화제 대상, 제 13회 도빌아시안영화제 심사위원상, 제 4회 폴란드 오프플러스카메라상, 독립영화제대상. 제 10회 트라이베카영화제 신인감독상(만장일치로 수상)…,
검색을 하면 더 많은 수상경력이 우르르 쏟아져 나올지도 모르겠다. 금맥과도 같은 영화이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감독이다. 감독이 즉 주인공이다. 다재다능한 박정범 감독은 다재다능이라는 말보다는 천재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할 정도로 스토리를 탄탄하게 짜고 있고, 전승철이라는 사람을 너무나 과장 없이 잘 그려냈다. 또한 조연들의 연기도 정말 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자연스러운 느낌이다.
이 영화를 보며, 내가 펑펑 운 장면은 바로 승철이가 친구가 사준 옷을 꿰매려는 장면이다. 친구 경철이가 사준 “나이키” 오리털 잠바를 깡패들이 칼로 북북 그어 놓았다. 그런 모양새로 찢어진 옷을 꿰매는 한국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승철은 바느실을 꺼내 들고 앉아 처연하게도 그 옷을 꿰매려 한다.
아, 시퍼렇게 살아있는 희망이여…,
아, 부끄러움을 모르는 순박함이여…,
아, 감당할 수 없는 선량함이여…!
이 부분에서 잘 막아 두었던 그대의 눈물샘이 고장 나 버리는 것은 나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이 영화는 실화라고 한다. 차인표 주연의 <크로싱>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영화에서, 승철은 교회성가대의 자매를 짝사랑하는데, 그 자매의 이중생활이 어쩌면, 우리가 가리고 싶은 내면의 모습과도 닮아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만감이 교차했다. 승철의 생계문제에 더불어 사랑과 신앙이라는 이야기까지 더해지면서 무산일기는 삶을 이야기하는, 좋은 영화로서의 자리매김을 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무엇보다, 실화라는 사실이 더욱 내 속살로 파고들어 이 영화를 소개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탈북자들에게 주어지는 주민등록 번호는 뒷자리가 125로 시작을 한다. 이 때문에, 그들은 한국사회에서 번듯한 직장을 잡기가 쉽지 않다. 번듯하지 않아도, 다만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기대하는 것조차 힘이 든 것이 그들의 현실이다. 탈북자들은 동남아에서 돈 벌러 나온 외국인 노동자들도 아니고, 수시로 문제를 일으키지만, 수시로 날아오는 원어민 선생님도 아니다. 내가 만약 한국 사람은 한국 사람인데 인육도 마다하지 않는 북한 땅에 태어났다면 어찌할 것인가. 내가 그가 아니었음에 감사하고 말았어야 할 것인가.
여름이 시작되었다. 아니, 더할 나위 없는 여름 그 자체이다. 여름밤에는, 쏟아지는 유성우를 바라보며 산재해 있는 명화를 읽어 볼 일이다.
첫댓글 사진은 첨부화일 혹은 최종편집실에 있고요...
이 집사님, 글 잘 쓰신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진짜 글을 평론가처럼 쓰시네요.
정말 좋다,,,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