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방 선생님 강의모음집
미술사연구방법론 -제 1 강-
장소 : 一鄕韓國美術史硏究院(이대후문 앞에 위치)
일시 : 2007년 2월 2일(금요일)
강의내용 : “전시기획과 미술사연구” “용 이야기”
강사 : 강우방, 경주박물관장 이화여대 교수역임
“전시기획과 미술사연구”
논문을 도서관에만 의존하는 것은 잘못된 발상이다. 한 학기에 논문이 나올 수 있을까? 미술사학은 어려운 학문이다. 작품 조사를 전혀 하지 않는다.
일본과 국교정상화를 하고서 가장 먼저 착수한 것은 한국미술을 일본에 소개하는 것이었다. 국교이후에는 문화가 가장 앞서 들어간다. 그중에서 조형미술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
무역 경제도 문화 없이는 성공을 못한다. 1970대 초의 일이었다. 한일 국교정상화의 첫 행사로 대규모 한국미술 오천년 전을 일본에서 개최했다. 그때 나는 교토박물관에서 연수하고 있었다. 국립박물관과 교토박물관 합동으로 개최했는데, 1차전시를 교토에서 했다.
줄지은 관람객이 건물을 한 바퀴 돌 정도로 많이 참석했다. 거기에서 일반인들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는데, 미술사의 전문용어를 다 알고 있었다. 우리의 경우 전시를 보는 시간이 짧다. 일본은 국민의 안목이 높다.
일본에서는 일 년 내내 좋은 전시를 많이 한다. 우리나라에서 하는 전시는 사기이다. 예술의 전당에서 인상파전을 하는데, 일본에서는 그런 전시 안한다. 좋은 작품만 골라서 전시한다. 몇 년 동안 전시기획을 하는데 5년 이상 걸린다.
우리의 문제점은 좋은 전시가 없고 전시가 무언지 모른다. 메트로폴리탄과 루브르박물관에는 우수한 큐레이터가 있다. 외국은 교수를 할 것인가 큐레이터를 할 것인가를 망설일 정도로 큐레이터의 지위가 높다. 큐레이터는 전문성과 전시기획을 잘 갖춘 사람이 맡는다.
국립박물관 큐레이터가 100명이다. 전공을 바탕으로 한 전시기획자가 없다.
나는 불교미술을 평생을 했다. “삼국시대 불상 특별전”을 기획했다. 그때 사유상을 유리에 안 넣었다. 유리장 안에 넣으면 느낌이 다르다. 도록에 논문을 실었다. 처음으로 한 작업이었다.
얼마 후에 “불사리장엄전”을 했다. 탑에서 나온 것을 다 모았다. 학자들이 쓴 논문을 읽어보니 마음에 안 들었다. 그래서 700가량의 논문을 썼다.
한 학자가 평생에 기획할 수 있는 전시는 2,3개면 잘하는 것이다.
전시는 흩어진 작품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좋은 전시는 연구를 하여 새로운 업적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성격이 없는 전시는 전시가 아니다. 마티스전은 사기였다.
미국의 좋은 전시
모던아트 : 아프리카에서 영향 받은 현대작가 작품과 아프리카 작품을 함께 전시했다. 갔더니 도록이 품절되었다.
메트로폴리탄 반 고호 전시 : 표가 매진되어 암표를 사가지고 들어갔다. 고호와 고갱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다. 고호의 그림은 역동적이고 고갱의 그림은 차분하다. 같이 진열하니 두 사람 그림의 특징이 함께 살아났다.
미술사학은 국가와 국민에 기여해야 한다. 연구하여 작품을 보여주고 국민들의 안목을 높여줘야 한다. 선진국.
미술사를 가르치는 사람이 안목이 없다.
秋史展 : 어떤 교수가 추사의 자화상을 보고 칭찬을 하고 있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가? 가짜가 허용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외국은 국민들의 안목이 높아 엉터리 전시를 하면 파면된다는 것을 안다. 미술사학을 어떻게 하면 되느냐에 대한 고민이 없다.
인문학 중에 특이한 위치에 있는 것이 미술사학이다.
우린나라 초, 중, 고 교육과정 한자를 안 쓰고 한글만 쓰니 인문학을 연구할 수 없다.
일본에서는 소학교 때부터 한자를 열심히 한다. 집 천정에 한자를 써놓고, 화장실에도. 일본 교과서와 신문은 모두 한자로 되어있다.
한자를 안 쓰면 동양 문화권에서 소외된다. 요즘 회사에서 한자공부를 시킨다. 중요개념이 한자로 되어있다.
미술사학의 큰 문제는 작품조사를 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작품의 사진, 기록, 조사를 하게하는 교수가 없다.
미술사학에서 작품조사를 안하는 것은 문학평론가가 시, 문학을 읽지 않는 것과 같다.
일본에 가면 박물관에 전적(典籍) 전문가가 있다. 연구자가 방문하면 연구하도록 수장고에서 혼자
작품을 연구하도록 한다. 그만큼 연구자를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작품을 보여 달라는 사람이 없다.
가장 좋은 상태의 사진이 있어야 한다. 회화의 경우 인쇄과정에서 변한다. 자기자료가 없이 공부하는 사람이 많다. 미술사 책은 사진보면 수준을 안다. 위작이 더 많다.
작품조사 안했기 때문에 위작이 더 많다. 그것을 가릴만한 미술사가가 있는가? 이중섭, 박수근의 위작이 2천점이나 있다.
70년대 이중섭전이 서울에서 있었다. 3년 전에 호암에서 이중섭 특별전을 열었는데 그 가운데 엽서 50점(마사코에게 보낸 것)이 모두가 위작이었다. 글씨와 그림이 형편없었다.
“용 이야기”
용을 모르면 동양을 이해할 수 없다. 동양의 우주관에 대해 읽은 적이 있는가?
우리의 기와는 최고의 예술품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일본이 그것을 받아들였다. 무한하고 다양한 무늬, 용 얼굴을 새긴 추녀마루 기와는 중국에 없다.
귀면와(鬼面瓦)가 어느 날 용으로 보였다.
자기가 모르는 것은 눈에 안 들어온다.
성덕대왕신종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종. 그런데 소개만 있을 뿐, 논문이 없다.
98년 논문을 썼다. 그 후 8년이 지나서 종의 참된 의미를 알았다.
석굴암에 대한 논문 5편과 불국사에 대한 논문 1편을 썼다.
용 조각에 깃들인 생명감
용은 대부분 측면으로 된 것이 많다. 그런데, 정면으로 된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동아일보에 고구려고분벽화의 재해석을 담은 내용을 10회 연재했다.
동양의 우주관 : 혼돈 - 이론의 기 - 음기, 양기 - 조화 - 만물생성
중심에 있는 것이 용이다.
요즈음 무늬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처음으로 그 중요성을 알았다.
용의 입에서 나오는 것을 언급이 없다. 입에서 나오는 것은 기를 조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용 문양에 나오는 삼면보주와 사면보주
도깨비는 설화에 나온다. 그러나 도깨비를 조형화한 것이 없다. 전문가의 말이다.
용은 여의보주가 있다. 보주가 없으면 날지 못한다.
용은 존귀한 존재이다.
입에 여의보주를 표현한 것도 있고, 머리에 표현한 것도 있다.
한국의 용 문양은 작품성이 높다.
안압지의 용 : 양지가 만들었다. 최고의 조각가가 만든 용면와이다.
머리에 임금왕자가 새겨진 것도 있다. 이것은 그동안 귀면와라고 불리어온 것을 부정하게 한다.
사다리꼴 기와는 고구려에서 처음 만들었다. 기와학회에서 그 내용을 발표했다.
고구려에서 시작하여 통일신라에서 완성했다.
수막새에도 용을 표현하고 있는데 공간이 제한성 때문인지 생략된 표현이 많다.
위대한 예술에는 데포르마시옹이 작용한다.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變形이다.
일본에서는 한국의 용 문양을 생략된 채로 받아들였다.
용의 아홉 아들이라고 하는데, 아홉은 많음을 상징한다.
다리에는 용문양이 새겨진 것들을 볼 수 있다.
용은 기의 형상화이므로 여러 가지로 표현될 수 있다.
문고리는 공간의 제한을 받으므로 생략된 표현을 한다.
귀부(龜趺) : 태종 무열왕릉 귀부는 중국의 것이 당하지 못할 아름다움이 있다. 그것은 거북이 모양의 용이다. 거북이의 얼굴이 점점 용으로 바뀐다.
중국의 것은 거북이에서 계속 거북이로 가는데, 우리는 거북이에서 용으로 간다.
귀부는 거북이의 등껍질을 빌려온 것이다. 사실은 용이다.
관음 지장보살에 여의주가 있다.
청자향로에 사자모양의 용이 있다.
당간지주 끝에 용이 있다.
왜 용을 만들었는가?
목조건물은 불이 가장 무섭다. 용은 비를 몰고 온다. “훈몽자회”에 보면 용을 미르라 했는데 미르는 곧 물이다.
화마(火魔)를 방지하기 위하여 지붕에 용을 장식했다. 형이상학적 메타피지컬한 것.
그래서 작품성이 높다. 중요한 의미가 있기 때문.
그에 반해 일본의 것은 작품성이 떨어진다.
일본에서는 용이 다른 것으로 변한다.
통일신라의 용면와는 조각이 좋다. 존귀한 존재이기 때문.
무섭고 힘찬 존재의 형상화. 기운생동을 가장 잘 표현한 것.
기와의 용면와는 우리나라에만 있다.
중국에도 용문양이 많다. 징그럽다. 짐승처럼 표현되었다. 우리 것은 예술적이다.
-자료출처-<서예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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