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4:12-21
찬송가 찬송가 291장 “외롭게 사는 이 그 누군가”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비가 내린 땅은 시간이 지나 강하고 단단해지는 것처럼, 현재 겪는 고난은 고통스럽지만 시간이 흘러 뒤돌아 보았을 때 결국 나의 내면을 강하게 해줄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고통 중에 있는 사람에게 위로가 되는 말일 수 있지만, 그 사람이 겪는 아픔의 깊이가 얼마인지 가늠할 수 없기에 때로는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입니다.
우스 땅에 살고 있는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떠난 사람이었습니다. 이 땅의 시선에서 바라볼 때 흠잡을 것이 없었던 그에게 어느 날 도저히 이유를 알 수 없는 재앙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를 위로하기 위해 세 명의 친구가 찾아왔고, 욥은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는 비참함에 이르게 됩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았던 친구 중 한 명인 엘리바스가 욥에게 이야기합니다. 과연 엘리바스의 말은 욥에게 위로가 되었을까요? 이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말씀을 통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엘리바스가 경험한 계시의 보도와 내용 (12-21절)
(12-14) 어떤 말씀이 내게 가만히 이르고 그 가느다란 소리가 내 귀에 들렸었나니 사람이 깊이 잠들 즈음 내가 그 밤에 본 환상으로 말미암아 생각이 번거로울 때에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러서 모든 뼈마디가 흔들렸느니라
엘리바스는 앞서 욥에게 모든 고난은 죄로부터 시작됨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체험한 계시를 토대로 욥에게 이야기합니다. 히브리 본문에서 ‘내게’라는 단어가 12절 제일 앞에 위치됨으로 강조됩니다. 이제 엘리바스가 이야기할 경험이 지극히 개인적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엘리바스에게 임한 말씀은 조용하고 세밀하게 들려왔습니다. 그것은 또한 깊이 잠드는 밤에 들려왔는데, 이것은 사람이 자연스럽게 드는 잠일 수 있고 아브라함의 경우처럼 하나님의 계시를 경험하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창 15:12-21). 또한 이것은 선지자들이 어떤 환상과 계시를 볼 때의 시기와 같습니다. 어찌 되었든 하나님의 계시를 경험하게 된 엘리바스는 두려움과 떨림으로 가득했다고 전합니다. 얼마나 두려웠는지 뼈마디가 흔들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특히 뼈는 몸을 유지하는 구조로서 히브리 문학에서 몸을 대표하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그리고 뼈에는 지탱하는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과 기질, 감정도 담겨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엘리바스의 뼈마디가 흔들렸다는 것은 그가 그때 경험한 계시가 자신의 감정, 가치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습니다.
(15-16) 그 때에 영이 내 앞으로 지나매 내 몸에 털이 주뼛하였느니라 그 영이 서 있는데 나는 그 형상을 알아보지는 못하여도 오직 한 형상이 내 눈 앞에 있었느니라 그 때에 내가 조용한 중에 한 목소리를 들으니
극한의 두려움이 가득한 엘리바스에게 한 영이 지나갑니다. 초월적 존재가 지나감을 느낄 때 엘리바스의 털이 주뼛 섰다고 합니다. 어떤 피조물이든 하나님의 영 앞에서는 모두가 두려움에 가득함을 보여줍니다.
엘리바스 앞에 지나간 그 영의 형상은 식별이 불가능했지만 오직 한 형상이 눈앞에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알아보지 못했다는 그 형상은 히브리 단어 ‘테무나’인데 이것은 항상 하나님 혹은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을 가리킵니다. 즉 엘리바스는 하나님의 형상은 보지 못했지만, 그분의 음성을 통해 직접 엘리바스에게 말씀하시는 장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7-18) 사람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깨끗하겠느냐 하나님은 그의 종이라도 그대로 믿지 아니하시며 그의 천사라도 미련하다 하시나니
엘리바스가 경험한 계시의 시작은 다소 평범한 말이었습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라는 수사의문문은 당시 계시를 받았던 엘리바스에게도, 이것을 전해 듣는 욥과 친구들에게도 당연한 대답을 도출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보다 의롭고 깨끗한 피조물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종과 천사 등 천상의 존재에게도 흠을 찾는 분입니다. 아마도 엘리바스는 자신이 경험한 계시를 토대로 고통 중에 있는 욥을 위로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 말의 근거를 위해 환상과 계시를 이용하고 있고, 이것은 듣는 이로 하여금 큰 신뢰를 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9-21) 하물며 흙 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 앞에서라도 무너질 자이겠느냐 아침과 저녁 사이에 부스러져 가루가 되며 영원히 사라지되 기억하는 자가 없으리라 장막 줄이 그들에게서 뽑히지 아니하겠느냐 그들은 지혜가 없이 죽느니라
엘리바스는 이어서 인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19절을 새번역 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19) 하물며, 흙으로 만든 몸을 입고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에게라도 눌려 죽을 사람이겠느냐?
흙으로 만든 몸을 입었다는 표현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를 떠오르게 하며, 인간의 본질이 흙이었음을 상기시킵니다. 히브리 문학에서 흙 집은 인간의 본질이 거하는 거처로 보는데, 허무하고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허무한 인간은 하루살이와 같은 벌레에게도 눌려 죽을 정도로 연약함을 가지고 있는 것이 본질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또한 그러한 본질을 지닌 인간은 아침과 저녁 사이에 갑작스럽게 부스러져 가루가 될 존재라고까지 표현합니다. 이러한 우리의 인생을 기억하는 이 조차 없는 너무나 값없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장막 줄은 집을 지탱하는 줄을 의미합니다. 앞서 인간이 흙 집에 살고 있고 흙 자체임을 생각해 볼 때, 장막 줄이 뽑힌다는 것은 인간의 생명을 지탱하는 줄이 뽑혀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혜가 없이 죽는다는 것은 허무한 인생을 살았다는 반증입니다.
세 친구 중 가장 먼저 엘리바스가 욥과의 이야기를 시작한 것으로 보아 엘리바스는 그들 중에서도 꽤 지혜로웠던 인물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엘리바스는 이처럼 자신이 배웠고 경험했던 지혜와 계시를 토대로 욥을 분명 위로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하나님의 계시라 할지라도 그것은 엘리바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됩니다. 엘리바스 개인에게 주어진 계시가 보편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간과했던 것입니다. 아울러 엘리바스 자신도 그저 흙 집에 거주하는 허무한 인생임을 잊었던 것입니다. 너무나도 맞는 말이지만 욥에게는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엘리바스가 펼친 주장이 딱히 틀리지는 않습니다. 하나님보다 의로운 존재는 이 세상에 없고,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기에 환난과 고통 가운데 있는 허무하고 연약한 존재라는 것에 우리 모두 동의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보았듯이, 욥이 당하는 고난에는 우리의 시선에서 볼 때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분명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창문을 열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또한 섣불리 고통 중에 있는 가족, 친구, 교우에게 자신의 경험을 비추어 위로하는 것은 또 다른 상처와 아픔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십시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 할지라도, 아무리 내가 겪었던 신비한 경험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모든 상황과 환경이 보편적이지 않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각각의 영혼마다 실수가 없으신 계획과 섭리를 이끌어 가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고통을 당하는 그 영혼을 위해 주님의 신실하심으로 그를 회복시키시고 인도해 주실 주님을 잠잠히 믿고 중보하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아울러 엘리바스가 말하는 허무한 인생 가운데 지녀야 할 지혜는 무엇일까요? 엘리바스는 분명 세상이 말하는 지혜를 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마저 허무한 지혜일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하늘의 지혜를 지닌 자입니다. 바로 하늘과 땅을 화해시키시고 죄인의 형벌과 동시에 죄인을 살리고자 하신 그리스도를 통한 십자가의 지혜 말입니다. 이 지혜를 영원히 사랑하고 누리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말은 일단 비가 멈춘 다음에 이야기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비가 내리고 있는 상대방과 같이 나 또한 흙 집에 거하는 연약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하늘의 지혜를 품고 그저 비가 그치기를 잠잠히 기도하는 우리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엘리바스는 자신의 경험으로 욥을 위로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말은 맞는 말이었지만, 욥에게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각자 개인이 경험한 하나님과의 뜨거운 경험이 있더라도, 그것을 함부로 적용하여 또 다른 아픔과 상처를 주는 어리석은 일이 없도록 우리의 마음과 입술을 주장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알 수 없는 고통을 받는 이들에게 위로하실 신실한 주님을 믿는 믿음을 보이게 하옵소서. 하늘의 지혜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엘리바스는 개인적은 영적 체험을 근거로 욥을 위로하려 하였습니다. 혹시 나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타인을 위로하려 했던 경험은 없습니까?
2. 엘리바스는 영적 체험 속에서 뼈마디가 흔들렸다고 합니다. 그것은 그의 가치관과 기질, 감정이 흔들렸고 재정립되었음을 의미하는데, 오늘날 나의 가치관과 기질, 감정은 무엇에 의해 흔들리고 결정되고 있습니까?
3. 인간은 흙 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았다고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인생의 어떤 점을 알려주고 있습니까? 창세기 2장 7절을 읽어보고 우리의 인생에 의미를 주신 분은 누구인지 답해봅시다. 그리고 오늘 나의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4. 엘리바스의 영적 체험에서 말하는 지혜는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가 지니고 누리는 참된 지혜와 비교해 볼 때, 나는 오늘 무엇을 더욱 쫓고 있습니까?
(작성: 김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