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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례 : 덕암 성강현 종학실장
- 청 수 봉 전 - 개 식 심 고 - 주 문 삼 회 병 송 - 경 전 봉 독 --------- 義菴聖師法說 성령출세설 (653~660) ----------- 조준환 학생동덕(1) - 천 덕 송 합 창 -------------------------------- 제3장 안심가(경10쪽, 해21쪽, 1~2절) - 설 교 ------------------- 해월신사님 ------------------------- 준암 박인준 교구장 - 천 덕 송 합 창 --------------------------- 송가, 우리는 하나 (경99쪽, 해168쪽, 1~2절) - 폐 식 심 고 * 음악준비 : 김영수 학생동덕(2)
"천도교의 민족운동연구"(조규태, 도서출판선인, 2006)
해월신사님
준암 박인준 교구장 해월신사님의 성은 최요 본은 경주요, 이름은 경상입니다. 자는 경오요, 호는 해월당이십니다. 신사님께서는 포덕 전 33년(1827. 순조 27년, 정해년) 3월 21일, 경주 동촌 황오리에서 아버지 종수와 어머니 월성배씨 사이에서 탄생하셨습니다. 조상님들께서 오랫동안 월성에서 사셨으므로 월성 최씨라고도 합니다. 신사님께서 5세 때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12세 때에 아버지 마저 돌아가시니, 고아가 되어 먼 친척집에 의지하여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몸에는 남루한 옷을 입으시고 음식도 제대로 잡숫지 못하셨지만 용모가 아름답고 출중하여 보통 사람들과 달랐으므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람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13세 때 봄. 몸을 의탁하고 있던 친척집에서도 가난하여 식량이 부족하여 신사님을 대하는 태도가 소흘한 것 같은 눈치가 보이므로 이웃집에서 돈을 꾸어 가지고 시장에 가서 쌀 한 자루를 사 오셔서 친척에게 드리며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이제 더 얻어먹을 염치가 없으니 저는 따로 나가겠습니다.”고 하셨습니다. “아직 네 나이 어린데 어떻게 혼자 살 수 있겠느냐?” “이제 나도 일할 수 있으니까 어디 가든지 일만 열심히 해주면 밥이야 벌어먹을 수 있겠지요.” 그날부터 남의 집 심부름도 해주고 일도 거들어 주면서 홀로 생활해 나가셨습니다. 신사님께서는 이렇게 어려서부터 가난하고 외롭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랐으므로 남달리 의지가 굳세고 생활력이 강하여 어떠한 환경에서 무슨 일이든지 막힘없이 척척 해나가셨습니다. 신사님께서는 17세 때 터일에 있는 제지소에서 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마을에 일찍 남편을 잃고 재산이 풍족한 오씨 과부가 있었는데 신사님의 용모가 출중하고 모든 일에 진실하신 것을 보고 매파를 보내어 청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사님께서는 예절에도 어긋나는 일이고 또한 남의 덕에 의해서 갑자기 졸부가 되는 것은 상서로운 일이 아니라며 거절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9세 때에 밀양 손씨를 아내로 맞이하게 됩니다. 28세 때 흥해로부터 신광면 마복동으로 이사를 오셨는데 그 지방 사람들이 신사님의 공명 정직하고 매사에 진실하신 것을 보고 천거하여 집강(지금의 이장)의 책임을 맡깁니다. 재임 6년 동안 집강으로서 맡은 일을 너무도 잘 처리하여 마을의 질서를 세우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등 공덕이 많으므로 그 지방 사람들이 공덕비를 세워 신사님의 덕을 칭송하였다고 합니다. 33세 때, 신사님은 집강 일을 그만 두시고 마복동 안쪽 깊은 산골 검곡으로 이사를 하게 됩니다. 검등골의 동북쪽을 해발 869m,의 악산 괘령산이 가렸고 산의 능선을 타고 내려오면 검곡의 정북 쪽에 마북에서 기북으로 넘어가는 유일한 통로인 괫재(괘령)가 가로놓여 있습니다. 이 고개는 신사님께서 대신사와 옥중 상봉 후 태백산으로 피신하실 때 넘었던 고개입니다. 괘령산은 경사도가 매우 급한 악산입니다. 괘령 남쪽 비탈은 참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조금은 특이한 산이라고 생각됩니다. 왜 신사님께서 갑자기 집강 일을 그만 두시고 그 험악하고 인적 드문 검등골로 들어가게 되었는지는 확실치가 않습니다. 몇 해 전 용담정에서 수련할 때 신사님 생가터를 방문해 본 적이 있어서 어느 정도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만, 폐허가 되어 이제는 흔적조차 아득히 사라져 가는 듯해서 너무도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신사 35세 되시는 해. 신유년, 신사님깨서는 용담에 도통한 명인이 나시어 새로운 도법을 가르친다는 소문을 전해 듣고 용담으로 향합니다. 용담은 검곡으로부터 근 120리 길. 백지 60장을 예물로 드리고 대신사님을 처음으로 만납니다. 그 후로도 한 달에 네댓 차례씩 대신사를 찾아뵙고 설법을 듣다가. 6월에 드디어 대신사님의 제자로 동학에 입도하게 됩니다. 입도 후에도 매달 네댓 차례씩 스승님을 찾아뵙고 마음 닦는 법과 도담을 들으시고 위의를 배우셨습니다. 신사님께서는 입도 후 사사로운 영화, 사사로운 욕심들을 모두 끊으시고 오직 도를 통하겠다는 굳은 마음을 가지시고 문을 가리고 조용히 앉아 밤을 새면서 지극한 정성으로 주문을 외우셨다고 합니다. 7, 8개월 뒤에는 마음이 크게 열리고 도가 높아지셨다고 합니다. 한층 도에 대한 공부를 깊이 하던 중 11월도 거의 지난 겨울 어느 날, 신사께서는 집 앞 개울의 얼음을 깨고 목욕을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살을 도리는 듯 차던 물이 두서너 달이 지나니 차지 않고 오히려 따뜻하며 그믐날도 밤이 어둡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밤 개울에 나가 얼음을 깨고 목욕을 하고 나니 공중으로부터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따뜻해야 할 몸에 해로운 것은 갑자기 찬물에 들어가 목욕하는 것이니라.” 그 다음부터 신사께서는 찬물에 목욕을 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포덕 3년 1월, 신사님께서 밤을 새시면서 주문 공부를 하셨는데 반 종지의 기름으로 21일 밤을 지냈으나 기름이 줄지 않았습니다. 이 때 영덕 도인 이경중이 기름 한 병을 가지고 와서 신사님께 드렸습니다. 기름을 한 종지 가득히 부은 뒤 시험을 해보니 하룻밤을 지내지 못하고 기름이 다 쫄아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까? 신사님께서는 스스로 생각하시되, ‘한울님께서 나에게 이와 같은 조화를 보여주시니 진실로 자연의 이치이리라.’ 이 때 대신사님께서는 은적암에 계시다가 아무도 몰래 용담으로 돌아와 박대여 집에서 묵고 계셨습니다. 신사께서는 심고로써 그것을 알고 박대여 집으로 가서 대신사를 찾아뵈었습니다. 그리고 그간의 겪었던, 찬물에 목욕할 때 하늘로부터 ‘양신소해 우한천지급좌’를 들었던 일이며 반종지 기름으로 21일을 견뎠던 일을 말씀드리자, 대신사께서 “그대가 한울님의 말씀을 들은 시간은 내가 수덕문을 지어서 읊던 시간이니, ‘수덕문 가운데 양신소해는 우한천지급좌’라는 말이 있으니, 내가 글을 읊는 소리를 그대가 영감으로 들은 것이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또 말씀하시기를 “하늘과 땅 사이에는 오직 하나의 지기가 꽉 차 있으니 만물이 모두다 하나의 지기로 이루어진 것이며. 내 기운과 그대의 기운도 그 근본은 역시 둘이 아니고 오직 하나의 지기로 이루어진 것이며 모든 것이 이 하나의 지기로서 이루어진 것이니 이 지기의 소감으로 내 말을 그대가 들은 것이요, 정성의 힘이 이르는 곳에는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으니 어찌 몇 백리 밖에 것만 들을 수 있으리요. 우주가 오직 하나의 지기로 꽉 있는 것이므로 어디서든지 다 들을 수 있는 것이라.”라고 말씀하시고, 은적암에서 지어 완성하신 도수사와 권학가를 주시고, ‘이제부터 포덕에 종사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해 7월에 신사님께서는 집을 떠나 영해, 영덕, 상주 흥해, 예천, 청도 등 여러 지방을 순회하시면서 많은 포덕을 하시니, ‘검악포덕’이라는 말이 널리 퍼져 나갔습니다. 10월 하순에 흥해를 순회하고 검곡으로 오셨을 때, 경주 관속 30여 명이 몰려와 신사님을 거짓으로 문책하며 체포하려 하는 것이었습니다. 신사님께서는 그들이 거짓 관속들이라는 것을 알고 생삼 한 묶음을 가지고 그들을 모두 묶어놓으시고 좋은 말로 효유해서 돌려보냈습니다. 이때부터 검곡에 큰 장사가 났다고 하여 관리배들의 침해가 끊어졌다고 합니다. 포덕 4년 7월 23일. 대신사로부터 ‘해월당’이라는 도호를 받으시고 북접 주인의 임무를 맡게 됩니다. 그리고 8월 14일에 대신사로부터 심법과 도통을 이어 받아 2세 대도주가 되셨습니다.
해월신사님께서는 대신사님께서 대구에 환수되었다는 소문을 들으시고 영덕 도인 유상호에게서 돈 100냥을 구하여 현풍도인 곽덕원의 고용인으로 변장하시고 옥리를 찾아가 회유하여 스승님을 면회하였습니다. 3월 3일 옥리로 가장하여 저녁 밥상을 들고 옥중에 들어가서 스승님을 만납니다. 이것이 사제간의 최후의 만남이 되고 맙니다. 대신사님께서는 신사님을 보시고, “이제 천운이 그대에게 임하였으니 그대 대도를 위해 몸을 피하여 대도의 책임을 그릇되게 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담뱃대 한 개를 주시며 급히 돌아가라는 표정을 지으시므로, 집에 돌아와 담뱃대를 쪼개어보니 그 속에 심지가 들어 있는 게 아닙니까. 심지를 풀어보니 거기에는 ‘燈明水上無嫌隙 柱似枯形力有餘 吾順受天命 汝高飛遠走’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그 뜻은 ‘등불이 물위에 밝으니 조그마한 틈도 없는 것과 같이, 삶과 죽음은 같은 것이라. 기둥은 죽은 나무지만 집을 바치고 있는 것과 같이 , 내 육신은 죽어도 내 성령은 대도를 받치고 있겠다. 나는 천명을 순히 받을 것이니 너는 멀리 가서 몸을 피하라.’고 하는 명교였습니다. 신사님께서는 이 명교에 의해서 김춘발을 데리고 곧 강원도 태백산을 향하여 저 뒷산 괘령을 넘어 길을 떠나신 것입니다. 그 후로 이 검곡에는 다시 돌아오시지 못하고 맙니다
☞ 제205차 부산연합간담회(9/28) 결정사항 안내 : 가) 10/12(일) 천도교 부산연합 야외시일식의 건은, ① 차량은 부산시교구 1대, 동천교구 1대, 동부산교구 1대, 남부, 대연교구 1대, 북부산, 송도, 김해교구 1대 총 다섯 대로 함. 차량비는 봉사료, 도로비 포함 대당 80만원으로 함. ② 출발지 변경 : 시민회관 앞에서 부산역 아리랑관광호텔 앞 ③ 집결시간 : 6시(시간 엄수) ④ 출발 시간 : 6시 30분 ⑤ 시일보 제작 : 부산시교구 ⑥ 시일식 주관 : ⓐ 집례 : 정암 김길철 총무(부산시교구) ⓑ 경전봉독 : 동부산교구 여성회장(의암성사법설 / 권도문) ⓒ 설교 : 창암 박호권 북부산교구장 ⓓ 천덕송 : 부산 연합합창단. 곡목 일임함. ⓔ 시일식 장소 : 의암성사 동상 앞. 우천시 장소는 부암 정덕재 동덕이 대덕당 주선자 청주교구장을 통해 알아보기로 함. ⓕ 플랭카드는 버스 부착용(천도교 성지순례단)과 단체 사진촬영용(천도교 부산연합 야외시일)으로 두 종류로 함. ⑦ 무엇보다도 단체가 움직이니 만큼 진행에 협조를 해주어야함. ⑧ 행사 진행 요원 : * 단장 : 창암 박호권 북부산교구장, * 부단장 : 각 교구 교구장 * 진행위원장 : 정암 김길철 총무 * 진행위원 : 각 교구 교화부장 ⑨ 성지순례 : 서택순 가, 3.1기념공원, 초정약수 중에서 ‘한울산악회’의 지원을 받아 진행할 것임. ⑩ 차량 중 한 대는 돌아오는 길에 원로들을 위해 먼저 출발시키는 것으로 함. ⑪ 특성 : 선수당 박경희 북부산교구 여성회장이 차량 1대당 떡 100개씩을 출연키로 함. 나) 10/21 종교인 평화회의 생명 존중 ‘생명 하나 더’ 세미나 참여의 건 : 각 교단 50명 참석, 교단별 토론자 1명 선정(부산 시청 12층 국제회의실) ☞ 토론자는 김춘성(부산예대) 교수나 임재택(부산대 유아교육과) 교수가 적당하다고 보고 연락해보기로 함. 다) 10월 말 ‘동학예술제(경주)’ 참여의 건 : 매년 있는 예술제에 총부에서도 참석하는 행사이니만큼 선수당이 정확한 일정을 확인하고, 각 교구에 연락하여 가능한 많이 참석하기로 함. 라) 제암리, 고주리 천도교 성지화 서명 동참의 건 : 청년회 경기연합회에서 주관하고 있는 이번 서명운동은 무엇보다도 제암리는 이미 우리 교단이 주관하는 추모제행사를 비롯해 잘되고 있지만, 고주리는 김흥렬 교인 일가족 6명이 희생된 곳이나 선열을 기리는 아무 표식 없이 단순히 시민공원으로 조성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므로, 각 교구별 교호수대로 서명하여 10월중으로 서명지를 모으기로 함. 마) 다음 회의 일시 및 장소 : 포덕 149년 11월 30일(일) 오후2시 ‘대연교구’에서 개최합니다. ☞ 안찬복공 추모식(10/7) : 천도교 도사, 애국지사 안찬복공의 추모식이 1, 2학년 학생들과 교직원, 내외 귀빈들이 참여한 가운데 오는 10월 7일(화) 오전 10시 30분 본교 교정에서 열린다. 님의 나라 위한 충정과 애국심, 천도교 교단을 위한 불굴의 의지를 우리 후학들이 이어갈 수 있도록 한울님과 스승님의 특별한 감응이 있으시기를 심고 드립니다.
* 집례 : 효암 최만식 교무부장 * 경전봉독 : 율암 서만율 신훈(의암성사법설 '法文' '無何說', 경전 661~665쪽) * 천덕송 합창 (1) 제4장 용담가 (경전 12쪽, 1~2절) (2) 송가, 한울세상 (경전 102쪽, 1~2절) * 설교 : 부암 정덕재 선도사 (동부산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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