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22: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잡으려‘ fj'v; (7819 샤하트 VQNG fjov]li) 죽이다. 바치다. 도살하다.
도살용 칼을 들고 자신을 죽이려 다가오는 아브라함을 보면서 이삭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 이보다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 칼을 들고 이삭을 마주하는 아브라함의 마음은 어떠한가? 이 사실을 피하고 달아나는 것이 당연하나 이를 순순히 받아들인다. 본문은 아브라함과 이삭의 괴로운 심정을 드러내지 않으나 내면에 감추어진 심리적 상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아브라함과 이삭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가던 걸음 멈추지 않고, 복잡한 생각으로 머뭇거리지 않는다. 마음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임에도 이를 통해 더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믿었기에 말씀에 순종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제자들에게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하셨다. 우리의 생각과 고집을 죽이라는 것이다. 세상의 욕심과 욕망을 도살하듯이 죽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좇으라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시험을 피할 방법을 간구하거나 찾지 않았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뜻에 예, 알겠습니다‘의 대답도 없이 그저 순종할 뿐이다. 자기 생각과 고집을 죽이고 육체적 욕심과 욕망을 도살하여 몸과 영혼을 하나님께 바친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제단에서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을 이루었다.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구원을 위해 죽임을 당한 증표이다. 어린 양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하여 도살당하신 증거이다. 아브라함은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었다. 이는 자신이 죽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하기에 자기 생각을 도살하듯이 죽이고 말씀에 묵묵히 순종하여 칼을 든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잘 알고 계셨다. 그러나 이삭을 통해 그 믿음을 확실히 시험한다. 그 시험에 아브라함은 흔들림 없이 순종하여 칼을 든다. A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