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리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골3:1-4)
교회에는 가능성이 있는 사람과 이미 되어져 있는 사람이 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는 설교도 하고 이미
되어 진 이들에게는 그리스도의 비밀을 전하여 신령한 복을 받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은 그리스도 안에 거듭나서 거룩하게 되었고 그리스도께 붙잡힌 것을
붙잡으려고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파악하여 그 분과 함께 죽고 그 분과 함께 다시 살아 하늘에 앉힌 자들에게
하신 말씀이기에 예수 믿고 복을 받아 우리가 잘 살자 하는 수준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 안에 회개와 세례(침례)로 옮겨져 거듭난 자로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자로서 주께 복종시키며 살고자 몸부림을 치는 자들입니다.
만일 아니라면 육신대로 살다가 그 육신의 행위를 따라 심판을 받게 되겠지요.
그러므로 복음 곧 진리의 말씀을 들어 주신 은혜를 깨달았다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주께 사로잡혀 죄와 사망의
흑암의 권세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 진 것 믿고 압니다(골1:13)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의 속량을 받아 성령을 선물로 얻으므로 다윗이 여호와를
항상 앞에 모셨듯 성령 안에서 주와 하나가 되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항상 바라보며 앙망하게 됩니다. 그야말로 코람데오의 신앙을 갖게 됩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살아났기 때문에 항상 자신의 기본 값을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주와 함께 다시 살아 주로 말미암아 사는 자로 계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에게 하늘에 쌓아둔 소망(골1:5)을 사모하도록 하십니다.
그러나 되어야 할 사람들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자격이 미달이 되어
기도 자체가 주시옵소서 하는 땅의 기도를 하므로 그리스도 밖의 이방인의
기도가 되고 맙니다. 그게 현재교회의 대세가 되어 세속주의로 휩쓸리고 맙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목사들의 설교의 내용이 예수 믿고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복을
받고 잘 살자 하는 식입니다. 아니라고 말도 못하고 맞지는 않는 어중간한 말입니다.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데는 적당한 절충안이지만 잠언은 멍청한 짓이라고 말합니다.
만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산 자로 확정이
된 자라면 당연히 땅에서 난 나는 죄에 대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 그와 함께 하나님 우편에 앉힌 걸로 간주해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죽었다가 다시 산 자라고 고백하고 시인하는 것이 자신의 정체감입니다.
그로인해 성령의 내주 역사로 그 기름부으심의 가르치심과 생각나게 하심으로
인해 아들 안과 아버지 안에서 영생을 얻은 자로서의 자격지심이 돈독해 집니다.
그러면 기도가 주시옵소서 오시옵소서 하다가 진리를 따라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는 기도로 전환이 됩니다. 그야말로 하늘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는 거죠.
그리스도께 붙잡혀 하나님의 우편에 앉은 나임을 알고 그리로 향해 나아가고
또 나아갑니다. 이를 두고 주를 앙망하는 자라고 하며 당연히 새 힘을 얻습니다(사40:31)
그러나 거듭나지도 않고 새로운 피조물이 된 확신도 없는 사람에게 졸라장이의
기도는 이제 그만하고 진리를 따라 하나님께 나아가는 기도를 하세요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다가 관상의 기도, 또는 신 사도주의 등의 체험 같은 신비하나 하나도 유익이
없는 잘 못된 사이비 영성에 빠지고 맙니다. 이게 교회를 맡은 이들의 딜레마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바울이 삼층천에 올라간 경험이 있듯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을 따라
거듭난 자로 성령 안에서 진리를 따라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에 나아가는 비밀을
목사가 먼저 확립해야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이 먼저 그 길을 따라 나아가고
나아가는 기도의 반복을 통해 하늘의 신령한 복을 쌓고 쌓는 체험을 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며 우리의 존재의 모든 값의 총량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으니 나와 함께 아버지께 나아갑시다 하고
외치고 그들을 담대히 이끌어 주님과 하나가 되게 하고 아버지께로 인도하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최고의 복은 그리스도 안에 우리가 발견이 되어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심을 약속한 주의 계명을 지키므로 그 사랑함을 증명 받아 아버지의
사랑이 우리 안에 나타나고 주께서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시는 겁니다(요14:21)
나아가서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므로 주와 맺은 새 언약의 약속을
지키므로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아버지와 아들의 거처가 되는 겁니다(요14:23)
교회를 통해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역하여 사람들에게 그의 사심과
역사하심을 보여주는 것보다 더 큰 교회의 영광이 없으며 그리스도인들인 우리를
통해 성경이 번역이 되어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가 나고 그리스도의 편지로
읽혀지는 것 보다 더 큰 영광스러운 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최고의 복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세상의 실용주의 물결에 휩싸인 무리들이 지푸라기라도 잡을
심정으로 교회로 모이는데 목사가 이를 외면할 수 없어 온정적인 설교를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을 강의할 때마다 미안해 합니다.
그들을 돌려보내고 또 미안해합니다. 당신들은 죽었어요 이 땅에는 지분이 없어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살아 하늘의 시민이 되었기 때문에 땅에서는
이방인이며 나그네가 되었으니 위의 것을 찾고 구하고 두드리세요 하는 말이
때로는 공허한 메아리로 되돌아오는 걸 느끼고 허탈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기나 말거나 그리스도 안에서 위의 것을 구하고 또 구하면 드디어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나타나심으로 우리 또한 주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는 그 복이 우리의 면류관이 되고 자랑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산 자로 발견이 되었다면 우리 다 함께
위의 것을 구하여 그 영광의 보좌를 향해 나아가므로 그 영광중에 있는
자신을 바라보고 즐거워할 뿐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으로 그 영광의 광채가
우리의 생명의 기운이 되고 후광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있기를 권합니다.
첫댓글 아멘!
할렐루야 주께 찬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