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주차
해학, 우스운 말로 웃기자
재미는 한자 ‘자미(滋味)’¹⁰¹⁾에서 온 말인데, 아기자기한 즐거운 기분이나 흥취를 말합니다. 시에서 재미의 문제는 연원이 오래된 비평적 관심이었습니다.¹⁰²⁾ 서사의 긴장과 충돌, 반전을 통한 극적 구성 등이 산문에서 재미를 산출하는 방법¹⁰³⁾ 이라면, 시 창작에서 재미를 산출하는 방법은 해학(유머), 풍자(새타이어), 풍유(알레고리), 역설(패러독스), 모방적 개작(패러디), 언어유희(펀), 기지(위트), 농담(조크), 상황에 따라 재빨리 발휘하는 재치, 축소와 과장, 자기비하와 폭로 등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재미의 시학’을 위한 준비된 근원과 시적 전통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민중의 감정이 스민 민요, 신화와 설화, 향가, 고려가요, 한시, 시조와 사설시조, 판소리와 민속극에서부터 우스갯소리를 수용한 현대의 시에서까지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재미는 우리의 전통적 문학자질 가운데 중요한 요소였으며, 이는 현대시에도 중요한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¹⁰⁴⁾ 그 가운데 해학은 비판적 내용을 희화화시키는 것입니다.(공광규, 시 쓰기와 읽기의 방법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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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재미는 자미(滋味)에서 온 말로 보이며, ‘이’ 모음 역행동화이다. 지팡이를 지팽이, 학교를 핵교라고 하는 것과 같다.
102) 중국 남조시대 문학이론가인 종영(서기 466?~518)은 시가평론집인 『詩品의 서(序)에서 자미를 언급하여 “5언시가 문학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까닭은 많은 작품들이 자미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五言居文詞之要 是衆作之有滋味者也)라고 하였다. 종영은 자미를 기준으로 영가(진나라 회제 연호, 서기 307~312) 시기에 한때 유행한 현언시(玄言詩)가 “이치가 문사를 넘어섰고 담담하여 맛이 부족”(理過其辭 淡乎寡味)하다고 비판하였다. 현언시는 현리(玄理)를 드러내기에 골몰해서 정작 시의 형상이나 의경은 소홀히 했으며 추론만 중시해 걱정은 결핍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현언시의 전반적인 병폐는 독자들에게 정서적으로 호소할 수 있는 힘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풍력을 근간으로 삼아 단청과 채색으로 윤색하면 이를 맛보는 사람이 다함이 없을 것이고 듣는 사람의 가슴은 진동할 것이다.”(之以風力 潤之以丹彩 使味之者無極 聞之者動心)라고 시맛의 창조 문제로 풍력과 단채의 결합을 주장하였다. 종영은 자미설로 시를 논하는 표준으로 삼았다.(임종욱, 『중국의 문예인식』, 이회, 2001, 167~171쪽 참조)
103) 일반 서사에서 재미를 산출하는 핵심은 다중구조와 복선, 긴장의 축적과 반전, 창작자와 독자의 공유경험일 것이다.
첫째, 다중구조와 복선; 손오공이 요괴들을 만났다. 머리털을 뽑아 훅 불자 털들은 각각 손오공의 분신이 되어 싸우기 시작했다. 얼핏 보니 할아버지 한 분이 열심히 싸우고 있는 것이었다. 손오공이 고마워서 이름을 묻자 “저는 새치인데요" 했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숨은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할 때 재미의 첫 번째 요인이 생성된다는 것이다. 예에서 드러난 이야기는 정의를 위해서 싸우면 돕는 사람이 나온다는 것이고, 숨은 이야기는 흰 털은 늙음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둘째, 긴장의 축적과 반전 길에서 두 여고생이 싸우고 있었다. 한 여학생이 상대방의 배를 멋지게 걷어찼다. 차인 여학생의 말에 구경하던 사람들이 순간 자지러졌다. “어쭈구리이 X이 내 똥배를 넣어주네!” 배를 걷어차인 곤란한 상황의 여학생은 긴장감을 자아낼 것이다. 그러나 여학생들은 몸매에 고민이 많다는 숨겨진 이야기가 튀어나오면서 순식간에 긴장이 해소된다.
셋째, 공유경험; 미모의 여학생이 미팅에 나갔다. 상대는 못생긴데다 매너도 꽝이었고 자기 자랑만 늘어놓았다. 여학생은 남자 입에 담배를 물리고 불을 붙여 주었다. 어떤 뜻이었을까. “터져라 폭탄아!” 였단다. 매력 없는 미팅 상대를 폭탄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모르면 이 이야기에 대한 재미를 느끼기 힘들다. 그래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려면 공유경험이 필요하다. 재미에 관한 일반이론을 작품분석이나 창작방법에 적용하는 것도 가치가 있을 것 같다. 재미 요인이 되는 다중구조와 복선, 긴장의 축적과 반전, 공유경험은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에서는 물론 시 창작에서도 가능할 것이다.(이현비, 재미의 경계』, 지성사, 2004)
104) 권혁웅은 최근(2005년)의 몇몇 젊은 시인들에게는 1980년대 시인들이 걸머져야 했던역사와 시대에 대한 채무 의식이 없고, 1990년대 시인들이 내세운 그럴듯한 서정과 고만고만한 서정이 없는 대신에 ‘재미’가 있다고 하였다. (권혁웅, 「미래파-2005년 젊은 시인들, 미래파』, 문학과지성사, 2005, 149~150쪽 참조)
2024. 3. 30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