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재의 배산과 다랑이 논 | 대나무 이식하던 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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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못 가 화단 정비 전
달못 가 화단 정비 후 이우재 후원 출입구 정비 후 |
이대 이식 후
물과의 전쟁(연못에 물대기 씨름) | 측백나무 분재 수국 이식하기 옹달샘 청소 |
도랑연못 조성 | 도랑연못 없애고 |
2024년의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금년엔 본사의 일이 많지 않아 놀멍 쉬멍 했던 것 같다.
덕분에 그동안 방치했던 또는 미뤘던 이우재의 곳곳을 손 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지난여름은 돌과 흙 그리고 물과 씨름하며 보냈다.
정원을 정비하기 위해 무거운 돌들을 이리저리 옮기고 연못에 자연수를 대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힘겨운 삽질은 기본이고 쪽시간에 쫓기다시피 해야 하는 일이어서 몸이 감당할 여력이 부족했다.
이제 내 나이도 내년이면 육십이다. 몸을 쓰고나면 여기저기 쑤시고 아프다.
요즘은 손가락 마디가 아파서 아침마다 주물러 주어야 한다.
앉았다 일어서려면 무릎이 아프고 무리하면 허리가 아파온다.
마음은 여전히 오십대 초반으로 생각되는데 몸이 엇박자를 낸다.
그러다 결국 맘이 몸에 순응해야 한다는 걸 깨닫곤 한다.
아무리 운동을 해도 팔다리에 근육이 붙질 않고 머리는 빠지는 정도를 지나 쏟아지고 있다.
나도 모르게 무슨 일을 하기 전에 몸이 감당할만한 일인지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만큼 몸이 늙었다는 증거다. 그렇다고 엄살 떨고 싶지는 않다. 아휴~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탱탱하던 피부는 처지고 주름이 깊어간다.
눈은 침침하고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걸 느낀다.
특히나 인생 오십 중반부터 육십에 이르는 사이에 몸의 변화에 적잖이 놀란다.
아마 이때가 젊음에서 노인의 문턱으로 넘어가는 시기인 것 같다. 심리적 위축감이 상당하다.
정주하는 도시와 직장은 공식적인 나의 삶이다.
그렇다면 이우재는 내게 어떤 의미가 될까.
그곳은 내가 움직이고 즐거워하고 생각하고 또 행동하는 리얼리즘의 기반이다.
둘 다 내겐 소중한 삶의 현장이다.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
난 일찌감치 삶과 즐거움은 구별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삶이란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바탕이기에 누구나 여기에 매달려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직장이 가정이 주는 거룩한 부담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한다.
그러나 그 속에서 주는 개인적인 자유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부부관계 역시 진정한 행복은 언제든 상대방에게 자유를 갖게 해줘야 한다고 믿고 있다.
부부라는 이름으로 상대를 구속하는 건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상대를 존중한다면 그가 그녀가 가진 자신만의 고유성을 깊이 인식하고 그것을 누릴 권한을 줘야 한다.
물론 그것이 도덕적인 인격적인 제한 선을 넘어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우재는 아내가 아닌 나만의 특질과 정서를 부여하는 곳이다.
아내가 찾아와도 그곳에서 만큼은 손님이다. 아내가 나와 동질성을 갖고 함께 이우재를 가꾼다면 예외지만 말이다.
부부라도 서로의 로망 서로 다름을 진정성을 갖고 인정해 줘야 한다.
아무리 맘에 들지 않아도 잔소리를 퍼붓기 시작하면 상대의 고유성을 부정하는 일이므로 파열음이 생긴다.
나 역시 처음엔 이런 문제를 놓고 아내와 실경이를 자주 하였다. 그러다가 어느 날 우린 서로의 울타리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걸 깨닫고 각자의 경계선을 침범하지 않기로 합의하였다. 물론 그 과정은 참 지난한 시간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부부란 반드시 재정이란 공통분모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로망을 위해서 공통분모에 해당하는 재정을 한쪽으로 치우쳐 사용하다 보면 로망이고 뭐고 당장 파산에 이른다.
어쩌다 알바를 하거나 아내가 주는 용돈을 조금씩 모았다가 이우재의 정비에 사용하곤 한다.
그것도 없으면 그저 몸으로 때우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러나 이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몸으로 때우는 일이 겁이 난다.
뭔가를 누리고 즐기는 일에도 시기와 때가 있고 그것을 받쳐 줄 수 있는 체력이 요구된다.
운동선수가 은퇴하듯 더 하고 싶어도 못할 때가 온다.
그러므로 자신의 신체적 능력에 맞춰 인생계획도 조정할 필요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젊었을 땐 모른다. 그저 이다음에 난 이런 일을 하고 살아야지 저런 일에 도전해 봐야지 한다.
그러나 그런 목표설정이 잘못 됐다는 걸 아는 때가 오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현명한 사람이라면 주변의 노인들을 관찰하며 그분들이 가진 한계치가 어떤 것인 줄을 알고
나 역시 그 나이가 되면 동일한 형편이 됨을 알고 거기에 맞는 라이프스타일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암튼 이우재에서 생활하는 나의 라이프스타일에 조금씩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한편으론 서글프지만 한편으론 그나마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