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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이어도 아리랑
이 달
마라도 너머에서
연자매 돌아가는 소리 들려온다
하늘 길을 거스르며
뒷덜미를 잡아채는 거센 바람에도
움츠러 들지 않는 숨은 보물섬,
너, 이어도를 만난다
수만리 태평양에서 밀려오는 파도의 원망을
들려주려는가
수억 년 엎드렸던 인류의 상처를
보여주려는가
달을 보고 우는 연자매는
깊은 바닷속 여인의 숨소리로 끌려 나와
꿈을 꾸듯 에메랄드 바람을 빚어내고
십 리 바위 뒤에 숨은
이어도 사내의 그림자를 밟는다
이어~ 이어~ 이어~
바위 뒤에 숨어 우는
이어도 사내를 따라 간다
바다의 물길이 모이는 새벽,
달의 문이 열리고
연자매를 닮은 별자리 하나
백록담에 닿는다
아, 여기
한반도의 뿌리를 이어, 이어
백두대간을 넘어가는 물길이 있다
아리랑 아리랑,
이어 이어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이어 이어 아리랑,
나를 두고 떠나간 님은
이어도의 꽃구름 되어 나를 따라오리라
천지의 노둣돌 되어 나를 비추리라
[수상 소감]
실존의 섬, 이어도의 해양 영토를 지키는데 기여할 수 있기를
이어도 문학회에서 주최한 영광스러운 상을 수상하게 되어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수상 소식을 듣고 이어도 수역에 2003년에 건설된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가 망망대해에 우뚝 서서 위용을 자랑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단순한 개인의 영예를 넘어, 이어도라는 섬과 그 주변 해양 생태계에 대한 깊은 애정과 책임감을 느끼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의 해양 영토를 수호하는 일에 기여를 할 수 있어서 행복하고, 이어도가 단순한 암초나 해양기지로 남지 않고 미래의 해양 영토로 확고히 자리 잡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실존의 섬인 이어도를 더욱더 사랑하고 널리 알리는 일에 게을리 하지 말라는 가르침으로 알고 열심히 앞장서겠습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시인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페이스메이커가 되어주신 스승님, 동무로 동행해 준 동인들에게 감사와 존경을 보냅니다.
귀한 상을 주관해 주신 ‘이어도문학회, 주식회사 문화앤피플’에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이어도는 단순한 지리적 위치를 넘어, 우리에게 소중한 자산이자 미래의 희망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어도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확산되기를 바라며, 다시 한 번, 이 귀한 상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이어도와 함께하는 여정을 계속해 나가겠습니다.
[금상]
이어도 안개는 신화의 꽃을 피운다
문상식
이어도는 오늘도 울었다
몇 해 전 고기잡이 나간 후 돌아오지 않는 남편
떠나보내기 싫어서
여인국 이어도*에서 잘 지내기를 바라는 제주 아낙의
지아비를 향한 사랑 때문에
이어도는 울었다
단단한 지반 위에 탑*을 세우거나 공중 높이 깃발을 펄럭이지 않아도
우리는 훨씬 전부터 알고 있다
이어도가 제주와 같은 핏줄이라는 것을
전설과 신화 속에 똬리 틀고
제주를 향해 힘차게 발걸음 내디뎌온 이어도
제주 아낙의 끝나지 않을 사랑노래가 쉼 없이 동심원을 그리는 이어도는
안개가 집을 짓고 살고 있는*
신비의 땅
이어도 바다의 안개는 날마다 두 팔 넓게 펼쳐
이어도의 신령스러운 모습을 가리고 영원히 지지 않을
신화의 꽃을 피운다
자존감 넘치는 영국 ‘고립의 꿈’을 꽃 피우는
도버 해협의 안개처럼
* 제주지역에는 ‘여인국 이어도’ 관련 전설(혹은 설화)이 있음
* 파랑도(이어도)에 세워진 해양관측기지
* 이어도는 한난류의 전선이 형성돼 안개가 자주 발생
[수상 소감]
시의 얼굴을 확인하게 된 소중한 기회를 안고
시가 내게로 왔습니다. 긴 부화기간을 거쳤던 것 같습니다. 대학 때 여인국 이어도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거든요. 저는 그 이야기의 내면에 흐르는 지혜랄까, 의지랄까 하는 것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고기잡이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남편. 그건 정말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아픔이겠지요. 그러나 제주 아낙들은 가혹한 운명에 무력하게 무릎 꿇지 않았습니다. 신비의 나라를 하나 세웠던 거지요. 여인국 이어도. 남편이 어여쁜 여인들과 신바람 나는 삶을 산다고 하면 미워 죽겠을 법도 한데, 제주 아낙들은 그래도 그 나라를 세웠습니다.
그리움만으로 길고 긴 세월을 살아내기란 쉽지 않겠기에, 그리움 반 미움 반으로 마음의 갈피를 잡으면서 운명과 싸워 승리하는 길을 택했던 것이겠지요.
서두가 길었습니다. 아직 시의 세계는 제게 어둠의 속살처럼 깜깜하기만 합니다. 시의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으니까요. 느지막이 끌어안게 된 열정 손잡고 나란히 걸어가다 보면 가슴속에 와락 안기는 얼굴 하나 있겠지요.
장차 이어도 문학회가 저의 새 둥지가 되어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한 발 한 발 걸어가 볼까 합니다. 이번에 저를 뽑아주신 것은 저의 이런 마음에 대한 화답이라 생각하고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은상]
2024년 여름, 이어도
권인찬
“태풍, 한반도로 접근 중”
노란 비옷의 기자가 날려갈 듯 속보를 전한다
흔들리는 카메라는 비구름의 속살을 파고들고
태극기는 찢어질 듯 펄럭인다
거칠게 밀려드는 파도에도
의연히 버티고 선
우리 땅 남쪽 끝자락 기지氣志
세찬 비바람 속에서도
주작朱雀의 심장은 멈추지 않는다
부서지는 포말조차도 부끄러워
바다에 몸을 숨긴 신부는, 이제
인류 생존을 위한
미래의 희망이 되고
검은 진주를 품은
어머니의 대지大池가 된다
설문대할망 잠 깨어
치마끈 다시 동여매는 그날
전설은 과학으로 이어지고
은둔의 섬은 도약의 첨단이 되리라
[수상 소감]
이어도가 대한민국 미래의 희망으로 이어지길
2024년 여름은 유난히 뜨거웠다. 연일 무더위와 열대야 지속 일수가 신기록을 경신해 나가던 즈음 나는 태풍이 오길 기다렸다. 8월의 열기를 식혀주기를 기대하면서.
사실 내가 태풍을 기다린 것은 이어도문학상 공모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태풍이 한반도 남단 이어도 해양과학기지를 통과하는 것을 이미지화하여 쓴 시 ‘2024년 여름, 이어도’가 실제 태풍이 온다면 더 현실성이 더해질 것 같다는 욕심이 있었다.
그렇게 태풍 ‘종다리’가 열대저압부로 소멸하는 끝자락 비가 내리는 날, 뜻밖의 수상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날씨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나약한 나 자신에 부끄러웠고, 그럼에도 좋은 평가를 해 준 이어도문학회와 심사위원님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무엇보다도 이번 수상의 기쁨과 영광을 함께 글공부하는 방송대 국어국문학과 강원지역 동아리 「임시정부(臨時情敷)」 학우들에게 돌리고 싶다. 「임시정부(臨時情敷)」 동아리는 어렵고 힘든 여건 속에서도 매주 화상을 통하여 각자의 글을 쓰고, 서로 평을 해 주며 ‘뜻을 펼 때’를 기다리며 노력하고 있다. 시적인 감성도 부족하고, 글 쓰는 능력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내가 이런 기회를 얻은 것은 함께 하는 학우들의 지도 편달과 격려 덕분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저에게 은상의 영광을 주신 이어도문학회와 심사위원,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우리 땅 이어도가 전설이 아닌 과학으로, 해양과학기지(基地)가 아닌 기지(氣志)로 대한민국의 미래에 큰 희망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동상]
여섬, 물숨 쉬다
박현구
사람은 저마다 정해 받은 숨의 길이를 가지고 태어난다는데요
동쪽 어깨놀이에 누운 소를 닮았다는 그 섬의 해녀들은 물숨 쉬며 살아왔다는데요 아가미도 없이 어찌 허파로 물을 쉰다는 건가요
숨은 금세 끝나가는데요 샛서방에게 기어이 먹이고 싶은 전복이 쫙 펴진 손바닥만 하게 얼핏 눈에 띄더라지요 욕심이 물숨을 부른다는데요 목숨 걸 때 물숨이 문득 찾아온대요
발끝 멀리 바다에 여가 하나 있었는데요 태풍 같은 물결이 어여차 하고 덮칠 때면 에여라차 하고 사나워진 물을 되받아치며 설핏설핏 얼굴을 보여줬다는데요
그 얼굴 본 사람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네요
거기 여에 모여 사는 해녀들도 물숨을 쉰다는데요 큰 섬 바닷가 여기저기 흩어져서 물질하며 살다가 물숨 쉬며 이사 온 해녀들은 물 위로 머리 내민 적 없어 얼굴 본 사람이 없다는데요 욕심도 없고 곤난진니도 없다는데 세월 내내 물숨 쉬며 여를 끌어안고 살아 번호 없는 주민이 되었다네요
수억 년,
수평의 바닷길만 오고 가다가 수직으로 물길이 탁 트이던 어느 해였던가요
물숨으로 앙버티던 광원光源이 부챗살빛을 뿜으며 느닷없이 하늘로 솟아올랐데요
광원은 빛의 씨라지요
합죽선合竹扇 되어 세상을 부채질했다는데요
여가 섬이 되는 태초의 탄생입니다
숨길 트여 시원하네요
[수상 소감]
대한의 섬 이어도가 부챗살빛을 뿜으며 하늘로 솟아오르는 순간을 기억하며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기려고 기를 씁니다.
언젠가 훗날 분쟁이 염려되는 해역, 이어도 주변에는 욕심 많고 힘이 센 나라들이 있습니다.
기록이 쌓이면 힘이 된다는 굳은 믿음 안에 모인 이어도 문학회.
통보받은 이어도 문학상 수상에는 역사 기록의 한 페이지를 메웠다는 영광이 함께 왔습니다.
하르방들의 이야기 말고, 해녀들의 애환으로 역사의 쪽을 채워보았습니다.
아련한 전설 속의 여에 수직으로 된 ‘이어도 해양과학기지’가 번듯하게 세워지던 날, 비로소 대한의 섬 이어도가 부챗살빛을 뿜으며 하늘로 솟아올랐습니다. 석양이 내리기 직전 서쪽 하늘의 빈틈을 뚫고 솟는 합죽선合竹扇처럼 태양과 같은 광원光源인 여섬이 이어도가 되는 순간입니다. 속이 시원합니다.
상을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리며 이어도 문학회의 역사 쌓기를 응원합니다.
[동상]
이어도에 가자
김파란
이어도에 가자
이어도에 가서 살자
헤어짐도 없고
죽음도 없는
그리운 섬 이어도에 가자
바닷속 오래된 뿌리로
마라도와 이어지고
수평선 위로
끊어진 백록담을 우러르는 곳
함경북도 온성에서 출발해
평화의 땅 제주에 다다르면
북위 32도 동경 125도
대한민국의 최남단 이어도에 다다른다
인류의 시작부터 끝까지
아름다운 사람들을
울게 할 백무의 섬
향기로운 사람들을
웃게 할 만유의 섬
오늘 나는 이어도에 간다
우주에서 소멸한 별들이
가로등되어 길을 안내하는
꿈에서도 만날 수 없었던
애닯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
이제 가슴 시린 사람들이 모두
한결 같은 뜨거움으로 만나
다시 사랑을 시작하는 곳
그곳에서 우리
다시 만난다면 세세 년년
그리움을 잇고
인연을 이어서
하늘과 땅의 맹세를 북극성처럼
밝혀 놓고
파랑 파랑, 파랑도의 뿌리가 되어 보자
[수상 소감]
대한민국 최남단 피안의 섬 이어도를 지켜나가기를 기원하며
이어도 문학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여러 시간동안 이어도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관찰하고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이 세삼 맞는 말이었습니다. 해녀들의 삶과 애환이 담겨있는 “이어도 타령”은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들어왔던 구전민요였으나 2003년 5월 암초위에 세워진 이어도 해양과학기지가 있다는 것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입니다. 이어도에 관심을 갖게 되니 주변에 국립해양조사원으로 파견된 분이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일과시간 외에는 워낙 낚시를 좋아해서 원 없이 낚시를 하였다고 하는데, 비와 바람이 심한 날에는 파도가 높아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올라왔다고 합니다.
이어도 문학회에서 매년마다 이어도 문학상을 시상하고 문집을 발간하고 많은 예술인과 문학인을 하나로 연결한 다는 것은 매우 가치 있는 일입니다. 우리 국민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어도에 대한 가치를 깨닫게 되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이어도에 대한 연구를 지속해 주시기를 간청 드립니다. 이어도 문학관이 건립이 되고 문학과 예술적 가치가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부족한 저의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어도 문학회의 한 일원되어 관심과 사랑을 갖고 대한민국 최남단의 섬, 피안의 섬 이어도를 지켜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동상]
섬들의 섬, 이어도
노재필
눈을 감아야 보이는 섬이 있다
눈을 감아도 보이는 섬이 있다
하늘을 이고 바다의 손을 잡고
태평양으로 나아가는 길목에서
파도소리를 베고 잠드는 외로움이 있다
황지연 물줄기와 태백산맥 등줄기를
타고 내려가 남해에 이르자
해양국가의 꿈이 파도 심장을 박동질하였다
동백꽃은 언덕에 앉아 바다를 흠모하고
능소화도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섬이 떠나간 마을 포구엔
연신 그리움만 자맥질하고 있었다
물결이 섬을 재워놓고 아침 해를 들어올린다
푸른 밤이 섬 위로 어슷하게 별빛을 토해낸다
남방돌고래가 대양의 소식을 들고 오고
항해에 지친 배들이 잠시 쉬었다 가는 섬,
이어도는 어느 날 외로운 바다를 위해
해양과학기지 하나 세워 두었다
파도가 높은 날이면 얼굴을 드러내었다
폭풍이 몰려오면 섬들을 부둥켜 안았다
북위 32도, 동경 125도, 바다 한가운데
섬들의 애환을 보듬으며
섬들을 위한 섬으로 살아가는 사랑섬
바닷바람에 기침을 쿨럭거리는 저녁
멈춰버린 꿈이 생각나면 섬은
수면 위에 온통 붉은 울음을 쏟아놓았다
아버지의 등짝처럼 의연해 보이지만
눈시울이 그렁그렁한 섬들의 섬, 이어도
[수상 소감]
이어도는 어쩌면 우리의 인생을 닮아 있습니다
모든 것이 우연인 듯 시작되지만 필연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릴 적 끄적였던 글짓기가 무려 40년이 지나 다시 시작된 것은 우연이었지만 필연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어도’라는 단어는 어감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오래 생각해보니 외롭고 쓸쓸했습니다.
어쩌면 우리들 인생과 닮아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멈춰진 꿈들을 안고 나름의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우리들 말입니다.
글을 쓰는 과정은 지난했습니다.
이어도에 대해 알고 있는 서사나 이미지를 가지고 시를 착상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실패하며 한발짝 나아간다는 생각으로 응모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저도 모르게 이어도와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이어도문학상의 취지와도 맞닿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게 어떤 의미일까,
시는 나에게 어떤 존재일까, 어떤 시를 써야 하는 것인가 등등 질문을 하며 시쓰기의 걸음마를 하고 있습니다. 수상결과를 받고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었습니다.
짧은 필력에 과한 수상을 받은 것이 감사하면서도 졸작이 대외적으로 공표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치열하게 읽고 쓰고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부족한 졸작에 동상이라는 영예를 주신 것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늘 애정을 가지고 지도해주시는 스승님과, 응원해주신 달빛 문학회 동인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어도문학상이 번창하여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학상으로 자리매김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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