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래를 보게 된 것은 어쩔 수 없이 독후감을 쓰기 위해서였다. 세 가지의 책 중에서 고르는 것이었는데 박완서의 책을 보려고 했으나 도서관에서 찾을 수가 없어서 대책으로 고래를 본 것이다. 빌려놓고도 한참 동안 방구석에 박아놓고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소설책을 즐겨보는 편이지만 우리나라 소설은 즐겨보지 않았다. 우리나라 소설은 대게가 너무 진지하고 무슨 내용인지도 잘 모르겠어서 보고나면 정말 작품을 읽었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게다가 두께는 왜 그렇게 두꺼운지 거부감이 밀려왔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어느 날 컴퓨터를 하다가 로딩이 너무 느려서 답답한 마음에 옆에 있던 고래를 펼쳐 보았는데 한 장, 두 장 넘어가면서 책 읽기를 중단할 수 없게 돼버렸다. 결국 컴퓨터를 끄고 책 읽기에 전념하게 되었다.
이 책의 내용은 특이하면서도 재미있고 판타지를 보는 느낌도 드는 것이 이제까지 읽었던 소설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우리나라 소설을 많이 읽어보지 않았지만 이제까지 우리나라 소설에 이런 느낌을 갖는 책은 매우 드물었을 것이다. 내가 본 책에선 이게 처음이었다. 드디어 우리나라의 소설도 외국 소설처럼 변화되어가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재미있고 흥미를 끌면서도 판타지 소설처럼 가벼운 글쓰기라는 느낌이 아니었다. 정말 멋진 소설은 끝장까지 다 읽고 책을 덮었을 때 마음에 남는 것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이 소설은 끝까지 읽고 책을 덮었을 때 무언가 마음에 남는 것이 있었다.
이 소설에서 크게 나오는 인물은 아무래도 못생긴 노파, 금복, 춘희일 것이다. 춘희하면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하는 생각이 들어 생각해보니 춘희라는 소설이 있었다. 그 소설에서 춘희라는 별명을 가진 여인은 아름다운 고급 창녀였다. 하지만 고래에 나오는 춘희는 너무도 순진하고 어수룩하고 덩치 큰 여인이었다. 어찌 보면 정 반대라고도 할 수 있는 두 인물의 같은 이름이었다.
노파가 나오는 장면마다 나는 이해력이 딸렸다. 노파는 분명히 앞부분에서 죽었는데 뒤에 태연하게 나와 세상에 대한 복수를 했다. 물리적으로 영향을 끼치면서 말이다. 이제까지 내가 읽어왔던 보통 소설에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으론 이해를 하면서 머릿속에선 자꾸 물음표가 그려졌다.
금복이란 인물이 이 소설에서 가장 많이 나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아닐지도 모르지만 나에게 있어선 금복을 읽는 것이 가장 재미있었다. 뒤에 가면 약간 실망스럽게 변하지만 금복은 참 멋진 여성으로 나왔다.
이 소설에선 이 세 명의 여인들이 차례로 나오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처음엔 춘희가 나오는 장면부터 시작되지만 갑자기 노파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나는 노파이야기가 얼마 안나오고 금방 춘희 이야기로 넘어갈 줄 알았지만 의외로 노파는 금복으로 연결되고 금복은 춘희로 연결되면서 한참 만에 춘희를 볼 수 있었다.
노파는 아주 못생긴 여인으로 남자들이 못생긴 그녀를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양반집의 반편이 아들 시중을 들게 되고 아무것도 모르는 반편이를 꽤서 잠자리를 자주 갖다가 들키는 바람에 두들겨 맞고 쫓겨난다. 하지만 그녀는 독한 성격이었던 지라 반편이를 죽이는 복수를 한 뒤에 떠난다. 그녀는 반편이의 딸을 낳게 되었는데 딸이 반편이를 닮아 죄책감이 들어 딸을 학대하고 눈을 멀게 하고 결국엔 벌치기에게 팔아버린다.
보는 내내 충격적이었다. 야하기도 했고 빠른 전개로 재밌는 내용이 자꾸 나오니 한눈을 팔수가 없었다.
그리고 노파가 된 그녀의 국밥집에 벌치기에게 팔아버린 딸이 찾아온다. 벌에 둘러싸여 찾아온 여인은 다쳐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노파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닦달한다. 하지만 그 독한 노파는 죽을 때까지 돈을 가져갈 셈인지 돈을 주지 않는다. 결국 노파는 죽고 딸은 돈을 찾지 못한 채 떠난다.
그리고 금복의 이야기이다. 금복은 그렇게 아름답진 않았지만 남자를 홀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래서 인생에 많은 남자들을 거쳐 가게 되는데 걱정과 칼자국이 나오는 내용은 무슨 로맨스 소설을 읽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재미도 있었고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 은근히 들기도 했다. 금복은 힘이 장사지만 좀 멍청한 걱정과 살고 있었는데 걱정이 사고로 몸을 다쳐 예전처럼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금복은 그래도 걱정을 너무 사랑했기에 걱정을 돌보지만 걱정은 금복이 떠날까봐 무서워하고 의처증으로 발전하게 되어 금복을 학대한다. 그러던 중에 만나게 된 칼자국이라는 남자는 한때는 야쿠자였던 사람인데 지금은 마을을 거의 손아귀에 쥐고 있었다. 칼자국이 영화를 공짜로 보여준다고 해서 금복은 현실의 고통을 잊고 싶어 자꾸 영화관에 가게 되고 결국 칼자국과 함께 살게 된다. 걱정도 데려와 방을 내주는데 걱정은 걸신이 들었는지 자꾸만 먹어 몸이 풍선처럼 거대해진다. 하지만 그래도 금복은 걱정을 사랑했는가보다. 어느 날 밤 금복은 이상한 기분에 새벽에 잠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옆에 있던 칼자국과 다른 방에 있던 걱정이 없었다. 놀란 금복이 부둣가로 나가 보니 칼자국이 바다를 보고 있었다. 금복은 칼자국이 걱정을 죽였다고 생각하여 작살로 칼자국을 뒤에서 찔렀다. 칼자국은 죽으면서 자신이 죽인 게 아니라고 한다. 걱정은 어느 날 제정신이 들어 자살을 한 것이다. 결국 금복은 자신이 사랑하던 두 명의 남자를 잃게 되었다.
한편의 신파극이었다. 잘 되길 바랐지만 그러면 소설은 그대로 끝이 나버릴 테니 아쉬워도 어쩔 수 없었다.
금복은 그 뒤로 거지처럼 살아가다가 아이를 낳게 되는데 놀랍게도 그 여자 아이는 4년 전에 죽은 걱정과 닮아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 아이를 가깝게 대하지 않는다. 금복은 아이를 낳기 위해 간 곳에서 쌍둥이 자매를 만나고 그들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서게 된다. 카페를 만들고 벽돌공장을 짓고 결국 영화관 까지 짓는다. 금복의 딸 춘희는 커다란 덩치의 여자아이로 벽돌공장에서 벽돌을 만드는 법을 배우고 쌍둥이 자매의 코끼리와 대화를 할 수 있다. 춘희는 말을 못한다. 하지만 동물과 마음속으로 대화를 나눌 수는 있다. 황당하지만 왠지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춘희의 코끼리 친구는 사고로 죽어 박제가 되고 춘희는 코끼리 친구를 위해 박제를 불에 태워주는데 그 사건 때문에 나중에 방화범으로 몰려 감옥까지 가게 된다.
금복은 고래 모양의 극장을 세워 장사를 한다. 그리고 남성화가 되어 가는데 그것이 그녀에겐 타락의 시작이었다.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지만 그 여자는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나서 도망가 버리고 금복은 절망하다가 극장과 함께 죽게 된다. 노파가 나와서 불이 나기 전에 극장 문을 다 잠그는 것이 나오는데 노파의 세상에 대한 복수도 이것으로 막을 내리는 게 아닌가 싶다.
극장에 불이나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고 이 방화범으로 춘희가 지목되어 춘희는 감옥에 가게 된다. 감옥에 가서 그녀는 나쁜 간수에게 잘못 보여 괴롭힘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젊음을 교도소에서 다 보내고 어느 날 풀려나게 된다. 풀려난 뒤 그녀는 벽돌공장으로 가서 다시 벽돌을 굽는다. 벽돌을 만들면 다시 사람들이 자신을 찾아와 줄 것이라 기대를 한다.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다가 어느 날 한 남자가 찾아오는데 춘희만큼 힘이 세던 옛날에 본 소년이었다. 그 남자는 이상하게도 한군데에 정착하지 못하는 습성이 있었다. 그래서 춘희가 아이를 낳게 만든 뒤로 한 동안 떠나버린다. 그동안 추운 겨울이 와서 춘희는 먹을 것을 구하기가 힘들어지게 되고 아이는 결국 죽어버린다. 몇 년 뒤 트럭운전수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춘희에게 돌아가지만 가는 길에 사고로 죽어버린다. 결국 춘희는 혼자서 오랜 시간동안 벽돌을 굽다가 죽게 된다. 마지막에 그녀 앞에 나타난 코끼리 점보는 죽어도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면 그것은 존재하고 있는 것이라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정부에서 의뢰한 건물을 짓기 위해 벽돌을 찾던 건축가가 옛날 벽돌공장의 벽돌로 지은 건물을 찾아낸다. 그래서 그 벽돌을 만드는 사람을 국가적으로 찾게 되는데 춘희의 벽돌공장을 결국엔 발견하게 된다. 물론 그때 춘희는 죽고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의 흔적을 찾고 그녀는 ‘붉은 벽돌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면서 결국 죽어서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존재하고 있게 되었다.
사실 이 소설은 너무 많은 내용이 한권에 들어가 있다. 읽는 도중에는 전혀 느끼지 못하지만 나중에 내용을 곱씹어 보면 정말 많은 이야기를 봤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내가 위에 간략히 적은 줄거리 말고도 아주 많은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잘 살펴보면 우리나라에 대한 배경도 조금씩 나오는 게 재미있다. 남한에서 북한의 건물을 보고 우리도 은근히 자랑하기 위해서 건물을 멋지게 지으려 한다던지, 옛날 장군이 통치하던 시대에 말만 잘못하면 공산당으로 몰려서 고문을 받는다던지 하는 내용은 현실의 무언가를 짐작하게 만들었다. 공상이 많이 들어간 소설이지만 그런 점이 나오는 건 또 현실적이었다.
그리고 코끼리 점보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린왕자를 보는 느낌이었다. 어린 왕자가 여우나 장미등과 대화를 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아무도 없는 행성에서 홀로 자란 순수한 어린왕자처럼 춘희도 순수한 마음을 지닌 게 아닐까 생각한다.
이 소설은 정말 멋진 소설인 것 같다. 내가 멋지다는 말을 붙이는 소설은 정말 재미있게 읽었고 소장할 만큼 마음에 드는 소설이라는 뜻이다. 긴 내용을 진행하면서도 눈을 땔 수 없게 만들고 다양하면서도 기발한 내용으로 가득 찬 이 소설이 멋지지 않다면 뭐가 멋질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은 내 친구들은 참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이 책을 먼저 읽은 내가 멋지다고 추천을 하자 여러 명의 친구들이 봤는데 어떤 아이는 나와 같은 반응을 보이고 어떤 아이는 어두운 분위기에 상스러운 말이 나와 천박한 느낌이라고 하고 어떤 아이는 그냥 그저 그렇다고 하였다. 보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의 느낌을 가져다주는 것이 소설이지만 이 소설은 더욱 더 그런 것 같았다. 이 소설에 욕이나 야한 것이 나오긴 하지만 그것으로 이 책이 천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이 있음으로서 몰입이 잘 될 수도 있고, 소설에 있어서 필요한 부분일 수도 있고, 또 모든 소설이 법전처럼 엄숙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우리나라 문학에도 이런 소설이 많이 나올 것인가 생각해 본다. 이런 소설이 많이 나온다면 이제까지 우리나라 소설이 진부하다고 읽지 않았던 사람들도 많이 접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소설이 좀 더 발전하고 책을 안 읽던 사람들도 많이 책을 읽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내 입장에선 이런 책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이런 내용의 책이 많이 나오길 바란다기보다는 이렇게 흡입력이 있고 특별한 소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램이다.
첫댓글한번 읽어봐야겠는데 길어서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외국소설은 새로운 내용과 아이디어를 주지만, 우리나라 소설을 읽어야 하는 건 단어나 문장 때문이에요. 우리말을 모르면 한국문학을 할 수 없으니까요. 우리나라 소설도 많이 읽읍시다. 전 개인적으로 김유정 씨 작품이 좋던데요. 2년동안 발표한 소설이 고전이 되었으니 천재라고 해야겠지요.
첫댓글 한번 읽어봐야겠는데 길어서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외국소설은 새로운 내용과 아이디어를 주지만, 우리나라 소설을 읽어야 하는 건 단어나 문장 때문이에요. 우리말을 모르면 한국문학을 할 수 없으니까요. 우리나라 소설도 많이 읽읍시다. 전 개인적으로 김유정 씨 작품이 좋던데요. 2년동안 발표한 소설이 고전이 되었으니 천재라고 해야겠지요.
저는 이효석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