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요점 강설(金剛經 要點講說)
제25장 진정한 교화(敎化)
[화무소화분(化無所化分)]
◎ 화무소화분(化無所化分) 요점 강설 ①
♣ 진정한 교화(敎化)
푸른 숲이 무성한 여름
가지마다 흰 눈이 쌓여 있는 겨울
푸른 숲과 흰 눈이 모양은 다르지만
오고 가는 그 자리는 다르지 않네.
나라고 말하나 나 없으니
있음과 없음을 함께 떠났네.
한 중생도 제도한 바 없음이여!
이것이 부처님의 진정한 교화라네.
요즘 메르스라는 전염병이 온 나라를 휩쓸고 있어 연일 방송에서 외출을 자제해 달라고 하는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기 위해 어러움을 무릅쓰고 여기까지 오신 여러 불자님들은 보니 그 간절한 심심이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옛날이나 오늘이나법을 구하는 곳에는 항상 어려움이 따르지만 그것을 극복할 때 높은 차원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옛 스님들은 법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설산을 넘어 인도에 다녀오셨습니다. 우리가 지금 배우는 《금강경》도 구마라습(鳩摩羅什)이 천신만고 끝에 인도에 가서 구해온 경입니다. 이렇게 옛 스님들이 목숨 걸고 구해온 《금강경》을 우리는 잘 배워야 하며 여기에서 진정한 진리를 깨우쳐야 합니다. 그리고 이 가르침을 통해서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고, 모든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시대가 혼란스럽고 어려워도 진리에 의지하여 참된 삶을 영위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시대적 혼란으로 인해 근본을 잃어버린다면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불행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우리의 근본인가요? 《금강경》은 무아(無我) 무상(無相)을 가르쳤지만, 무아를 통해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것이 《금강경》의 본질이요, 숨은 뜻입니다. 어째서 무아인데 '참나'를 찾아가는 것이 《금강경》 정신이 되는가요?
무아의 본뜻은 무상(無相)입니다. 무상의 본뜻은 중도실상이라는 '참나'를 실현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내가 '나'를 찾아가는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다름 아닌 '나'입니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금강경》에서 '나'라는 아상을 소멸하기 위해 무아ㆍ무인ㆍ무중생ㆍ무수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 본문
"수보리여, 너희들은 여래가 마땅히 중생을 제도한다고 말하지 마라.
왜냐하면 실로 여래가 제도할 중생이 없나니,만약 여래가 제도할 중생이
있다 하면 여래는 곧 아상ㆍ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이 되느니라."
須菩提 於意云何 汝等 勿爲如來 作是念 我當度衆生 須菩提 莫作是念
수보리 어의운하 여등 물위여래 작시념 아당도중생 수보리 막작시념
何以故 實無有衆生 如來度者 若有衆生 如來度者 如來卽有 我人衆生壽者.
하이고 실무유중생 여래도자 약유중생 여래도자 여래즉유 아인중생수자
⊙ 강설
본 장의 대의는 이제 금강회상(金剛會上)에서 부처님께서 설하신 《금강경》 법문을 제자들이 널리 펴야 하는데, 어떻게 경을 설할 것인가에 대해, 교화(敎化)를 하나 교화하는 바가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중생을 구제한다고 하면 곧 아ㆍ인상에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본 장에서는 부처님께서 경전 유포를 부촉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경전을 배웠으면 배운 대로 실천해야 하고, 이 실천을 바탕으로 교화를 하되 거기 아상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법을 듣고도 이해를 못했다면 교화도 불가능하겠지요. 교화를 하지 못하면 부처님 법은 후대로 전해질 수 없으므로 단절이 됩니다. 그래서 《금강경》 정신에 입각하여 바른 교화를 펼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금강경》 법문을 널리 전해야 합니다. 이때 교화하되 교화한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오직 《금강경》의 무주(無住) 무상(無相)의 정신을 실현하라는 것입니다. 만일 교화할 때 내가 교화한다고 생각하면 교화하는 자는 주체가 되고 교화의 대상은 객이 되어 아ㆍ인사상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교화는 아ㆍ인사상이 없으므로 주객이 나눠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교화하되 교화하는바가 없어야 합니다. 진정한 교화는 이 네 가지 상이 끊어진 자리에서 이루어집니다. 때문에 《금강경》에서는 교화 설법할 때 설법하는 자도 없고 설법을 듣는 자도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금강경》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아상을 무너뜨리는 내용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여기 일생을 무소유라는 《금강경》 정신으로 살다간 산승의 절친한 도반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진정한 금강수행자 우암 스님!
며칠 전 산승은 절친한 도반 영결식에 다녀왔습니다. 이 도반은 《금강경》만 독송하고 경의 무상 무아 정신을 실천하는 숨은 도인이라 특별히 인연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부득이 산승이 결제 중에 대중스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전라도 정읍으로 아침 일찍 출발했다가 영결식에 참석한 후 저녁 늦게 돌아왔습니다.
그 도반스님과 나는 오래 전부터 인연이 있었습니다. 산승이 수도암에서 행자를 하던 시절부터 인연이 있었는데, 우암 스님도 그때 막 스님이 되어 수도암에 와서 《금강경》을 즐겨 독송 했습니다. 이 스님은 《금강경》을 읽는 자세가 너무 진지하고 여법해서 내 마음에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습니다.
우암 스님의 목소리는 매우 특이하여, 젊은 나이에도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의젓하고 목소리는 굵고 잔잔하였는데, 《금강경》을 읽는 것으로 주 공부를 삼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이 스님은 《금강경》 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금강경》의 무심ㆍ무아ㆍ무상 정신을 일상 속에서 평생 동안 변함없이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간간이 수도암과 여러 곳에서 우연히 만나도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자세로 일관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산승의 나이 삼십이 넘을 무렵(1986년 여름), 이 도반스님이 목포의 축성암(지금은 대불단지가 들어섰음) 주지를 잠시 맡았는데, 비록 주지를 맡았지만 일반대중과 다름없이 조용할 때 항상 《금강경》을 즐겨 읽었습니다.
한 번은 어떤 영적인 거사가 축성암에 와서 우암 스님의 《금강경》 읽는 소리를 듣더니 이 스님의 독경소리는 범부의 경계를 확실히 넘어섰다며 이 절에서 진정한 도인을 친견했다고 감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절 바로 밑에는 바닷가였는데 그 근처에 동굴이 있었습니다. 그 동굴은 사명대사의 세속의 누님과 약혼녀가 비구니가 되어 도를 닦았다는 곳입니다. 우암 스님과 산승은 간혹 교교하게 달빛이 비치는 저녁에 종루에 올라가서 《금강경》을 읽곤 하였는데, 우암 스님의 독경소리를 들어보면 이미 세간을 벗어나 출세간적인 무념무상의 경지에서 독경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 몇 년 지나 인도 불적지 성지순례를 했는데, 룸비니에서 우연히 우암 스님을 만났습니다. 이때 산승은 대중들과 함께 법단을 마련하고 우암 스님을 법단에 모시고 대중들과 절 삼배를 한 뒤 《금강경》 독송을 청해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우암 스님의 《금강경》 독송을 들으면 《금강경》의 뜻을 완연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불적지에서 우암 스님의 《금강경》 독송을 들으니 홀연히 몸과 마음이 사라지고 황홀한 부처님의 기운으로 충만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우암 스님과 산승은 이런 저런 인연으로 절친한 도반이 되었는데, 우암 스님의 세납 67년이라는 길지 않은 세월을 끝으로 우리 곁을 떠나갔습니다.
우암 스님은 몇 년 전 홀로 된 어머님을 모시기 위해 정읍에 조그마한 절을 구입하여 삼 년간 극진히 모셨습니다. 그러다 작년에 모친이 돌아가셨는데 장례를 치루고 난 뒤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도 이제 오래지 않아 떠날 것이라 말했습니다. 전생 빚을 갚으려고 이생에 태어났는데 모친을 보낸 이상 이제 세상에서 자신은 아무 할 일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어머님을 떠나보내고 여러 곳을 떠돌다 최근에는 직지사에 살았는데, 어느 날 머리가 조금 어지러워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보니 의사가 "뇌에출혈이 있으니 빨리 수술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스님은 치료를 거부하면서 "갈 때 되면 가야지 수술할 필요는 없습니다."라고 하고는 얼마 후 의식불명의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 뒤 호흡이 빨라지니 병원에서 호흡기를 달아 주었는데, 그 이후 눈도 뜨지 못하고 말도 못하니 오로지 식물인간처럼 병상에 누워 있을 뿐이었습니다. 보름 정도 늦게 산승이 그 소식을 듣고 찾아가서 "나 원인 스님 왔소. 눈을 좀 떠보시오."라고 하니 문득 눈을 뜨고 나를 보면서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옆에서 간호하는 상좌가 "우암 스님이 병원에 온 뒤 이렇게 눈을 뜬 적은 처음이며 더욱이 미소를 지어 보인 것은 참으로 신기하기만 합니다. 아마 절친한 도반스님을 엄청 기다리신 것같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이후 산소호흡기에 의지하여 얼마 지내지 못하고 마침내 우암 스님은 열반에 들었습니다. 평생을 오직 《금강경》에 의지하여 수행하다가 떠난 도반을 보면서 오늘 산승이 이렇게 《금강경》을 설하니 이 특별한 인연에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영결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맑은 하늘에 한 점 흰 구름이 홀로 떠나가는 것을 보며 저렇게 살다간 도반의 모습이 끊임없이 겹쳐졌습니다. 누구나 한 세상을 살아가지만 오직 《금강경》 정신으로 살다간 도반이야말로 이 시대에 보기 어려운 진정한 《금강경》 수행자였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 이렇게 《금강경》 강설 중에 도반스님을 이야기하는 것은 평생을 《금강경》의 무아 무상 정신으로 일관한 우암 스님을 통해서 함께 공감하기 위함입니다. _(())_
출처 : 큰 마음 카페 원인 스님 강설 <금강경 요점 강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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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_()_
우암스님의 생전에 한 번이라도 금강경 독송을 못 들었는
인연이 없음과 한 번의 친견도 없었음에 잠시 안타까움을 표해봅니다.
원인스님의 금강경 강의 수희찬탄드립니다_()()()_
나무금강반야바라밀 나무금강반야바라밀 나무금강반야바라밀_()()()_
참참!
위의 글에 잠시 실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
구마라즙 존자님께서 인도에 가셔서 금강경을 가져 오신게 아니고 구마라즙 존자님은 인도분으로서 인도에서 중국에 오셔서 금강경을 역경하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