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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남해 산악회 원문보기 글쓴이: ds5 gzj
1차 문수지맥 (2007년 2월 5일 ~ 2월 9일까지 4박 5일)
문수지맥이란 ?
白頭大幹이 함백산(1572.9m)과 태백산 장군봉(1566.7m)을 거쳐 강원도와 경북 道界를 따르다 구룡산(1345.7m)에서는 경북 道內로 살짝 들어와 옥돌봉(1242m)에서부터 분기하는 산줄기를 말함이며 이중 제일 높은 문수산(1205.6m)의 이름을 빌려 문수지맥이라 이름하고 안동 市界를 거쳐 예천군 지보면 나부산(334m)을 끝으로 내성천과 금천이 만나 내려오며 洛東江에 合流되는 三江橋까지의 120여km 이지만 내성천과 낙동강의 수계를 이루는 산줄기가 비록 내륙지역의 낮은 지역이긴 해도 山勢가 뚜렷하고 기름진 옥토가 많아 살기가 넉넉하고 人心이 좋기로 소문난 地域이며 自然의 奧妙함을 직접 느낄 수 있는 文化와 歷史를 바라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첫날 (2007년 2월 5일 맑음)
구 간 : 예천군 지보면 28번 국도상 동막고개~암천리
참가자: 종주대원 5명.
前과 같은 방법으로 移動했다. 중앙고속도로를 달리다 군위에서 나와 28번 국도로 계속 달렸다. 보현지맥 시 묵었던 다인면 소재지를 지나자 飛鳳山이 반갑게 우리를 맞이한다. 낙동강을 건너자 바로 지보면 所在地다. 서울과 春川에서 오신 분들이 먼저 오셔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11時다. 서글서글한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식육식당에서 간단한 점심식사를 하는데 냉장고에서 떡까지 꺼내 난로에 굽어주시면서 친절을 베풀고 우리를 사냥 온 사람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마침 이곳이 狩獵허가 지역이기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下山지점인 암천리 얕은 고개에 차를 대기시키고 우리는 다시 돌아와 지보면 사무소에서 많이 떨어지지 않은 28번 국도상의 동막 고개에서 12시 30분 출발했다.
중간 끊기가 어려워 오늘은 이 구간을 먼저 하기로 한 것이다. 국도 지하도를 통과 세멘포장길을 따라 조금 진행하니 016 중계탑이 우측에 있고 사과 과수원 길을 따라 가는 이곳이 바로 마루금 임을 확인하며 가는데 사과나무가 아주 오래된 것이라 이곳의 과수 재배 경력이 대단함을 느낄 수 있었다. 野山지역이라 길이 險할줄 알았으나 예상 밖이다. 솔 갈비(落葉)가 융단처럼 푹신푹신하고 날씨마저 따뜻하니 봄날 산책하는 기분으로 시작하는 문수지맥 첫 종주이지만 간혹 讀圖가 어려운 지역이 나타나지만 날씨가 좋고 겨울철이라 쉽게 판단 할 수 있어 헛고생은 안한 셈이다.
직동 마을아래 신풍 貯水池가 상당히 커 보인다. 저런 곳은 고기들이 많을 것이라며 산길 걷는 사람이 때 아닌 물고기 얘길 한다는 것도 상대적이라 재미나기도 하다. 아주 깨끗한 임도가 나오며 건너 묘지길 또한 넓고 좋았다. 東來鄭氏 무덤인데 지는 해(太陽)를 바라보며 있는 묘 자리가 상당히 좋아 보인다. 이곳도 역시 강가에서나 있음직한 검은 몽돌과 모래가 많았으며 바위도 콘크리트 해 놓은 듯 한 마이산 바위 같았으며 간벌한 폐목은 정리를 잘 해 운행하기에 아주 편리하여 고마움을 느끼며 진행했다.
예천 466 1978 재설의 삼각점이 있는 199.4봉을 2시 11분에 통과하니 갑자기 길이 없어지는 마루금을 따라 내려오니 淸州정씨 무덤이 지맥을 지키고 있었고 다음은 과수원이라 수확기엔 바로 갈수 없는 어려운 지역이기도 하다. 무거운 짐을 다 내린 빈 과수원을 가로 질러 내려오니 아주 낮은 백현 고개 비포장도로를 통과하여 다시 오르니 과수원과 조림한 임야의 경계이며 2시 45분 암천리에 도착하여 간단한 몸 풀기 산행을 마치고 지보면 소재 대선장 여관에 들었다. 큰 방을 이틀에 80,000원 하기로 했다.
종주 이틀째 (2007년 2월 6일, 맑음)
구간: 삼강 합수지점~라부산(330m)~동막고개
지맥 종주도 중요하지만 이곳에 와서 의성포와 장안사 및 山城을 안 보고 갈수는 없는法,
飛龍山을 돌고 돌아 장안사로 들어가는데 7시가 다되어 가는데도 어둑어둑 하였다. 주차장에 차를 두고 돌아 올라가니 비룡산 장안사의 鐘閣이 마주하고 조금 더 오르니 거대한 石佛像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으며 철도 침목으로 계단 길을 잘 만들어 놓은 소나무 사이를 오르니 각종 안내판과 원형탁자 및 나무 의자도 있었으며 봉수대와 깨끗한 길이 아침 기분을 맑게 했으며 강바람이 코끝을 차갑게 스치고 간다.
7시 18분 삼거리 우측 길로 갔다. 리기다소나무로 대부분 새로 조림한 것 같다.
189.3봉에 오르니 442 78.7건설부 삼각점이 있었으며 7시 36분 圓山城에 도착했다.
이 성은 용궁면 향석리의 비룡산에 위치하고 둘레가 920여m이며 높이는 1.5~3m의 土石 混築城이다. 따뷔성 또는 또아리성 이라고도 부르는 이 성이 郡 誌에는 비룡산성으로 기록 되어 있으나 원형으로 쌓았다 하여 삼국사기에서 원산성이라 불리고 있다.
성 옆으로는 문경에서 흘러오는 금천, 영주에서 오는 내성천, 태백에서 오는 낙동강이 合流하는 삼강을 배수진으로 하고 절벽이 깎아 지른듯하여 성의 정상에서 사방을 바라보면 一目瞭然하게 조망 할 수 있는 自然要塞이고 비룡산 장안사는 民族의 國運이 가장 왕성하던 신라가 삼국을 통일 한 후 國泰民安을 念願하면서 전국 세 곳에 장안사를 건립하였으니 북에는 금강산이요, 남에는 양산이고, 그 가운데 자리 한곳이 바로 용궁의 장안사이다.
꿈속에서 夢精을 경험하듯 자연 속에서도 오르가즘을 느낀다는데 정말 그런 것인가 싶다. 시원한 아침 신선한 솔향기와 황홀한 黎明에 새들의 날개 짓을 일깨우고 회룡포(의성포)를 내려다보는 나의 마음은 자연의 신비함을 또 한 번 느끼게 한다.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은 용이 비상 하는 것 처 럼 물을 휘감아 돌아간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陸地속의 섬 마을이기도 한 마을이다. 맑은 물과 白沙場이 어우러진 천혜의 경관을 가지고 있으며 상당기간 백제의 요새로서 삼국이 충돌 하였고 그 당시 얼마나 격전지였던지 지금도 피끝 이라는 언덕에는 비가 오면 성 아래 마을인 城底마을엔 아비규환과 원혼의 소리가 들려온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기도 하고 역사적 정취가 살아 숨 쉬는 이곳 회룡포 백사장과 비룡산은 野營과 民泊도 가능한 곳이다.
길게 쌓은 산성을 돌아 삼강의 합수점인 풍영교 다리 앞에서 문수지맥을 시작하는 紀念寫眞을 한번 찍고 일출과 강물에 비친 태양을 바라보며 우리는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다. 본격적인 문수지맥을 출발하는 순간 흥분되는 이 마음을 그 어느 누가 느껴 보겠는가 이것이 바로 자연에서 느끼는 오르가즘인 것이다. 일출과 강물속의 태양을 동시에 바라보며 햇살에 반사되는 모래톱과 힘차게 흐르는 물소리는 우리에게 힘을 실어주는 응원가와도 같았다.
9시 10분 사림재를 통과한다. 우측엔 낙동강 좌측엔 용포 내성천이 흐르고 그 가운데 적석봉(257m) 으로 오른다, 내려다 본 회룡포는 말 그대로 용이 꿈틀거리는 모습의 내성천이다. 안동의 하회 마을은 낙동강의 한 부분이고 이곳은 내성천위 한 부분이다.
10시 5분 마산 마을을 가로질러 큰 소나무가 몇 그루 줄지어 서있는 곳 아래로 해서 예천 임씨 무덤으로 직진하여 오르는데 누가 보아도 쉽게 찾을수 있는 마루금 이지만 방심하면 쉽게 놓칠 수도 있는 곳이기도 하여 독도에 세심한 신경을 쓰면서 나부산(330m)을 향해 오르는데 불이난지 10여년 되어가는 모양이다. 아주 큰 불이었고 그 피해 면적 또한 대단하다. 정상엔 큰 무덤이 있었고 그 다음 봉에 오니 산불 감시초소가 있었으며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 근무를 하고 계셨다. 일부는 잣나무를 심어 2~3m자라고 있었는데 그러지 않은 곳은 벌거숭이 산이었다. 이런 곳을 보드라도 나무를 안심은 것은 그만큼 뒤떨어진 것이 확연히 표가 나는 것이다. 심는 것도 중요하지만 절대적으로 산불이 안 나게 조심해야 할 것이다. 초소에서 우리가 진행할 방향을 가름 하고 건너 다 보이는 예천군 축협 직영 축사 뒤로돌아 가면 될 것 같다. 길이 좀 험 하다. 가시밭길이라 상당히 고통스럽다. 왼쪽의 만촌 부락이 보이는 1차선 세멘 포장길을 건넜다. 만촌 저수지엔 고기를 키우는 모양이다. 경고판이 있고 경운기 길을 오르는데 땀이 많이 난다. 날씨가 너무 따뜻하다. 284봉에 오르니 지보면 소재지가 보이고 어제 우리가 올랐던 무선탑이 보인다. 동래정씨 무덤 있는 곳으로 직진하여 내려오니 축협 지보 지소 가있는 동막 고개에 도착했다.
종주 3 일째 (2007년 2월 7일 맑음)
구 간 : 34번국도(구도로)~대봉산(217.5m)~중앙고속도로 터널위 ~ 보문산(641,7m) ~ 학 가산(882m)~임도 마루금
移動 하면서 지름길을 이용하려고 들어섰다가 차가 빠지는 바람에 2시간 이상을 고생고생하면서 겨우 빠져 나오니 힘도 들었지만 아까운 시간 때문에 마음이 아프고 후회스럽다. 시간을 벌려고 하다가 오히려 고생을 사서 한 셈이다. 자욱한 안개에 앞을 분간하기 어렵다. 일기예보에 내일부터 전국적으로 많은 비가 온다기에 이 구간을 앞 당겨 하고 검무산 구간은 비오는 날 하기로 종주 계획을 세웠다. 안개가 너무 짙어 지척을 분간하기 어렵다.
GPS가 없다면 내 있는 위치도 분간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농로가 지나는 안부를 통과 대봉산 정상에 9시 38분 도착했다. 9시 56분 돈사 왼쪽으로 해서 밭을 가로 질러간다. 돈사를 지나자 칡넝쿨 지역이다. 여름엔 맨 몸으로도 지나기 힘 들것 같다. 경찰관의 호출 전화다.행사를 한다며 차를 옮겨 주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대통령이 안동에 오면서 이곳을 통과하는 모양이다. 경호 상 그런 모양이지만 우리는 멀리 있어서 못 간다고 했고 사냥꾼도 아니니 염려하지 말라고 하고 우리는 산행을 계속 했다.
백봉현에 10시 50분에 통과했다. 예천군 호명면은 아스콘 2차선 포장이 되어 있는데 안동시 풍산읍은 비포장 길로 남아있다. 11시 16분 백봉현에서 올라오다 보면 잘난 길은 왼쪽으로 보내고 소나무 숲으로 올라가니 길이라곤 없고 경사가 아주 심한 된 비알을 오르니 폐 무덤이 있는 390봉에 도착 하는데 땀이 줄줄 흐른다. 얼마 안 떨어진 고속도로엔 차 소리가 공장의 기계소음같이 들리지만 도로가 가까워지면 왠지 힘이 나는 것 같다. 소 삼각점이 있는 506.9봉에 오르니 12시 29분이다. 정상은 무덤을 移葬한것 같았고 이곳은 송이가 많이 나는지 入山禁止 간판이 계속 달려있다. 길은 좋으나 독도하기가 까다로운 곳이다. 안동시 풍산읍과 예천군 보문면의 경계인데 풍산읍 쪽은 2차선 포장길이고 보문면은 아직 비포장이나 차량 통행은 가능하다, 고속도로 보문 터널을 지나 소나무 밭을 어렵게 오르니 단양 우씨 무덤이 있는데 바로 이곳이 전망대이다. 21재설 1978.7 건설부 2등 삼각점이 있는 헬기장(50-123-2-25)에 2시 43분 도착했다. 3시 43분 예천군 보문면 산성리 학가산 아래 마을에 도착했다. 우측 안동 쪽으로 가면 관음절 마을이 있고 고개 마루엔 과수 원예용 비료 냄새가 코를 찌르고 큰 정자나무(포구나무)아래엔 비료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당재에 5시 17분통과 했다, 아주 험하고 독도하기 어려운 곳을 내려오니 이제부턴 학가산 일반 등산로이며 리번 들이 많이 붙어있는 아주 좋은 길이지만 경사가 심해 참으로 힘이 많이 든다. 5시 55분 쉬지 않고 오르니 능선에 올라섰다. 학가산 정상 국사봉철계단을 타고 올랐다가 내려오니 어두워진다. 눈길이 미끄러워 조심조심했다. 학가산은 산 모양이 날아가는 학과 같다하여 학가산이란 이름을 얻었으며 이 국사봉은 학의 머리 혹은 학 위에 탄 신선의 모습이라고 알려져 있다, 국사봉은 7개의 봉우리 중 해발 882의 최고봉이고 산성의 중앙에 위치하여 장군의 지휘소로 쓰였고 정상의 우묵한 바위는 難攻不落의 자연 堡砦役割을 하였으며 나라(임금)에 제사를 올렸던 곳이기도 하며 능인굴과 함께 신라시대 능인대사가 수행하던 佛敎聖地로 알려져 있으며 2005년 경북 도민체전 때는 성화를 채화했던 곳이기도 하다. 날은 이미 어두워지고 길까지 얼어 있어 아주 조심스럽게 도로를 따라 내려오니 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은 중계소 관계로 할 수 없이 도로를 따르기로 하고 그 아래엔 도로가 마루금이라 약간은 차를 타고 종주를 대신한 구간이기도 하다.
종주 4일째 (2007년 2월 8일 비)
구 간 : 암천리 ~ 검무산(331.6m) ~ 개고개 ~ 굴뚝고개 ~ 34번국도
새벽에 일어나 밥을 먹고 모텔을 나오니 비가 뚝뚝 떨어진다. 정말 나가기가 싫어진다. 그러나 별다른 方法이 없다. 出動命令은 이미 떨어졌고 우리는 진행만 하면 된다. 하산지점에 차를 갖다놓고 돌아오니 7시 10분이다. 농로도 임도도 아닌 길을 따라 산도 아니고 그렇다고 들도 아닌 야트막한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대형 水路를 따라 계속 진행한다. 과수원자재 창고문이 열려있어 그곳에서 우의를 벗고 간식을 먹으며 조금 쉬었다 갔다. 독도에 아주 어려움을 느끼며 운행을 방해하는데 지나고 보니 참으로 묘한 마루금의 형태를 실감하며 기분 좋은 독도에 흐뭇해하며 밭길을 가다보면 흙이 붙어 장군의 신발이 되며 발이 한 짐이다. 그 무게에 체력을 다 뺏기는 느낌이다. 비가 많이 온다. 안동 24 1880 재설의 검무산(331.6m)에 10시 44분 도착 시야가 좋을 것 같은 산이지만 雨中이라 아무것도 바라볼 수도 느낄 수 도 없다. 축산 폐기물 처리장 탱크가 있는 927번 지방도로에 11시 26분 도착했다. 아주 큰 사과 과수원 왼쪽 농로를 타고가다 바위봉을 오르는데 힘이 상당히 든다. 마당바위를 지나 우측으로 꺽어 내려오면 34번 국도의 차량 소음이 들린다. 점심시간이 되었지만 참고 도착하여 차에서 먹기로 했다. 드디어 1시 국도절개지에 닿았고 국도 위를 통과하는 육교를 건너니 아침에 세워둔 차가 우리를 기다린다. 옷도 젖었고 신발도 젖어 여관으로 가서 먹자고 또 미룬다. 3시가 되어서야 늦은 점심을 먹고 마음 놓고 쉬었다.
종주 5일째 (2007. 2. 9. 흐림)
구간 : 학가산 등산로 중간 지점 ~ 조운산(630m) ~ 천등산(575.5m) ~ 417.4봉 ~ 큰두무 재(928도로)
7시 30분부터 시작했다. 구간이 짧아 서두르지 않았다. 8시 15분 대형 송전탑 아래를 통과하는데 찌지직 찌지직하며 전류가 흐른다 생각하니 기분이 별루다. 9시 21분 鳥雲山에 도착했다. 아주 옹골찬 급경사를 오르니 이곳 역시 무덤이 있었고 몇몇 사람의 명산꾼이 다녀간 흔적이 있었으나 가스 때문에 조망은 좋겠지만 느끼지 못하고 그냥 내려왔다. 과수원이 있는 임도에 10시 15분 도착하여 간식을 먹고 다시 출발하다. 독도하기가 어렵다. 천등산 갈림길 진성 이씨 무덤에서 점심을 먹었다. 지맥은 아니지만 가까이 있는 천등산을 가 보기로 했다. 왕복 50분 거리였고 지명은 알 수 없으나 11 78.7 건설부 일등 삼각점이 있었으며 지리정보원장의 안내 간판도 있었고 조금 남쪽엔 이곳 역시 무덤이 있었으며 15평정도의 조그만 정상이다. 또 50여m남쪽엔 천등산유래의 안내문도 있었고 천등산 길은 노송이 어우러져 운치를 더해 주었으며 666봉에서 천등산까지의 길은 정말 좋다. 솔밭길에다 융단을 펴 놓은 것 같았고 해가 가끔씩 나와 주어서 기분은 상쾌했지만 개스는 여전히 우리의 시야를 괴롭힌다.
천등산은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에 있으며 안동의 명산으로 여러 군데의 고적과 명소를 지니고 있는데 신라 의상조사의 제자인 능인 대사가 수도했다는 천등굴이 있고 그 동쪽엔 신라 고찰인 開目寺가 있으며 남쪽엔 홍건적 난리에 공민왕이 수축했다는 개목산성이 있으며 조금 더 아래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국보 법당과 여러 보물을 소장하고 특히 영국여왕이 다녀간 아름다운 고찰인 봉정사가 자리하고 있다. 또한 조선 초기 지리에 밝았던 명재상 맹사성이 안동의 지세를 둘러보고 안동 땅에 盲人이 많이 나는 까닭은 천등산의 山氣때문이라 하여 개목산이라 고쳐 불렀던 관계로 그 산 이름은 없어져도 개목사 절은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글자 식별이 어려운 417.4봉을 통과하여 1시 22분에 산행을 종료함과 아울러 1차 문수지맥을 마치고 다음 3월은 거제 산줄기를 종주하고 남은 구간은 4월에 하기로 했다. 고르지 못한 일기에도 노익장을 과시한 대원 여러분께 수고하셨다는 격려 말씀과 함께 무사히 마침을 자축했다.
아름다운 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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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남해 산악회 원문보기 글쓴이: ds5 gz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