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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그리스도의 우월성 / 1:1~2:23 (교리 편) | |||
Ⅰ. 서론 |
1. 인사 |
발신자: 바울, 디모데 |
1:1,2 |
수신자: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 |||
인사말: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 |||
2. 골로새 교회의 신앙에 대한 감사 |
1:3~8 | ||
3. 골로새 교회의 성장을 위한 간구 |
1:9~14 | ||
Ⅱ. 뛰어나신 그리스도 |
1. 만물 중에 뛰어나신 그리스도(창조) |
1:15~18 | |
2. 구원의 중심이신 그리스도(구속) |
1:19~23 | ||
3.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 |
1:24~2:3 | ||
Ⅲ. 그리스도 안의 자유 |
1. 교묘한 말로부터 |
2:4~7 | |
2. 헛된 철학과 속임수로부터 |
2:8~10 | ||
3. 율법주의로부터 |
2:11~17 | ||
4. 천사 숭배와 꾸며낸 겸손으로부터 |
2:18,19 | ||
5. 세상의 초등 학문으로부터 |
2:20~23 | ||
제2부: 그리스도에 대한 복종 / 3:1~4:18 (실천 편) | |||
Ⅰ. 신자의 지위 |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존재. 땅의 것이 아닌 위의 것을 생각하고 찾아야 함 |
3:1~4 | |
Ⅱ. 신자의 행위 |
1.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 |
①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 |
3:5~11 |
② 하나님이 택하신 자녀처럼 행하라. |
3:12~17 | ||
2. 그리스도인의 의무 |
① 가정생활 (부부, 부자를 향한 권면) |
3:18~21 | |
② 사회생활 (주종 간에 대한 권면) |
3:22~4:1 | ||
③ 공동생활 (전 교회를 향한 권면) |
4:2~6 | ||
Ⅲ. 결론 |
1. 본 서신을 골로새 교회에 전달할 두기고 소개 |
4:7~9 | |
2. 바울의 동역자들의 문안 언급 |
4:10~14 | ||
3. 몇 가지 당부 및 축도 |
4:15~18 |
<핵심 구절, 단어 및 내용 연구>
제1부: 그리스도의 우월성(1:1~2:23)
1:1~14 서론 : 본문은 관례적인 인사(1,2절)로 시작하여 골로새 교회의 신앙에 대한 감사(3~8절)와 교회의 성장을 위한 간구(9~14절)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Ⅰ. 서론 |
1. 인사 |
발신자: 바울, 디모데 |
1:1,2 |
수신자: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 |||
인사말: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 |||
2. 골로새 교회의 신앙에 대한 감사 |
1:3~8 | ||
3. 골로새 교회의 성장을 위한 간구 |
1:9~14 |
1:2 골로새 교인들을 일컫는 네 가지 명칭:
명 칭 |
의 미 | |
1 |
성도 |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 따로 분리된 자’, ‘하나님께 바쳐진 자’란 뜻 |
2 |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 |
믿는 자들의 영적인 위치를 강조한 말 ‘한 육체의 지체들처럼 그리스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 |
3 |
신실한 (자) |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투철하여 충성을 다하는 자’란 뜻. |
4 |
형제 |
‘한 배에서 난 자’란 뜻. ‘한 분이신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존재들’이라는 의미 |
1:7 에바브라: 골로새 태생(4:12)으로,
골로새 태생(4:12)으로, 골로새뿐만 아니라 라오디게아와 히에아볼리에서 큰 활약을 했으며, 바울과 함께 로마 옥중에 갇혀 있기도 했던 인물입니다(몬1:23).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알린 자니라.”(골1:7,8)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아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언하노라.”(골4:12,13)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 에바브라와.”(몬1:23)
한편, 이는 빌립보 교회의 신실한 일꾼이었던 ‘에바브로디도’(빌2:25)와는 다른 인물로 추정됩니다.
1:4,5 신앙의 3대 요소: 바울은 여기서 골로새 교회의 신앙에 대한 감사를 하면서 믿음, 소망, 사랑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 세 가지는 필시 모든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신앙의 3대 요소일 것입니다(고전13:13).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4,5절)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더 큰 것)은 사랑이라.”(고전13:13)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신앙생활에는 이 세 가지가 있습니까? 균형(均衡) 있게 말입니다. 명심하십시오. 아무리 경건의 그럴 듯한 모양을 지니고 있다손 치더라도,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가 없으면 알맹이가 없는 것과 일반이며,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점을 말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3:5)
또한 기억하십시오. 믿음과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이며(고13:13 상, 모든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이 항상 품어야 할 신앙의 3대 요소라는 점을 말입니다.
지금 나에게는 견고한 믿음이 있습니까? 믿음 안에 있는지 우리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하시길 바랍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 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고후13:5)
지금 나에게는 사랑이 있습니까?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 말입니다. 지금 내가 사랑 안에 있는지 우리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롬14:15 상)
지금 나에게는 소망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하늘에 쌓아둔 그 소망 말입니다.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되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벧전3:15)
1:9~14 골로새 교회의 성장을 위한 간구: 에바브라를 통해 골로새 교회 내에 이단 사상이 만연해 가고 있음을 안 바울은 여기서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즉, 그들이 골로새 교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구별하며, 또한 나아가 영적인 성장을 통해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신앙생활을 계속 하도록 기도했던 것입니다.
1:9 참 지식의 필요성: 당시 골로새 교회 내에 영지주의 거짓 교사들이 침투해 들어와 자신들만이 ‘우월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다면서 성도들을 유혹하고 있었는데, 이에 대해 바울은 참 지식, 곧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9절 하)
한편, 여기서 ‘아는 것으로’(헬, 텐 에피그노신)는 ‘알다’는 뜻으로, 피상적인 인식이 아닌, 근본까지 파헤쳐 철저히 아는 것을 뜻합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알되 힘써서 알아가고 있습니까? 단순히 피상적으로 아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오히려 근본까지 파헤쳐 철저히 알고자 하는 자세와 태도로 그리 하고 있느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6:3 상)
이미 고전이 되어버린 ‘하나님을 아는 지식’(재임스 패커 著)라는 책 제목처럼 말입니다.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골1:9,10) 명심하십시오. 배우려면 제대로 배워야 합니다. 왜 입니까? 선무당이 사람 잡으며, 어설픈 지식이 온갖 이단사설을 잉태케 하기 때문입니다.
<영지주의>
정 의 |
• ‘영지주의’에 해당하는 헬라어 ‘그노시스’는 ‘지식’을 뜻함. • 지식의 중요성과 우월성을 특별히 강조. • 구원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특별한 지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함. • 모든 사람은 영적 계급, 정신적 계급, 물질적 계급으로 구분되며, 특별한 지식을 소유한 영적 계급만이 최고 신(神)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함. • 헬라, 이집트, 페르시아, 인도의 신화(神話), 철학(哲學), 신지학(神智學)에서 끌어온 것임 • 혼합주의적 경향이 두드러짐. |
주 요 사 상 |
① (육체를 포함한) 물질(物質)은 무조건 악(惡)하고 영혼(靈魂)만 선(善)하다. ② 구원의 필수적인 조건은 ‘지식’(知識)이다. ③ 신적 세계는 우열 등급을 갖는 30개의 아이온(aeons)로 구성되어 있다. 세상을 창조하신 유대인의 하나님은 최고 존재가 아닌, 그저 30개의 신적 아이온 중 최하위에 해당한다. ④ 역사적 그리스도는 단지 인간에 불과하며, 결코 성육신 하지 않았다. 즉 역사적 그리스도는 가장 밝은 아이온인 천상의 그리스도가 인간 예수의 몸을 빌려 활동한 것뿐이며,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직전에 천상의 그리스도는 다시 천상의 세계로 돌아갔다. 신성은 육체와 같은 물질과 결코 연합할 수 없기 때문이다. ⑤ 부활은 없다. 물질은 악하고 영혼만 선하며, 인간의 구원은 물질 곧 육신으로부터 영혼이 해방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
문 제 점 |
• 성경의 진리들을 임의로 곡해하여 기독교의 근본정신을 철학 사상 중 하나로 전락시킨 것은 물론 이방 종교 사상과 혼합시키기까지 함. • 지식만 중요하고 윤리나 양심은 별 상관없으며, 영혼만 고상한 지식을 갖추면 되었지 육체는 (본래 악한 것이니) 방탕과 쾌락을 누리게 해도 무방하고, 또 그 편이 더 낫다고 충동질함으로써, 기독교의 엄숙한 윤리 의식을 크게 위협하였음. • 약 150년간 교회 내에서 성행하면서 기독교 공동체에 파괴적인 영향력을 행사함. |
Ⅱ. 뛰어나신 그리스도 |
1. 만물 중에 뛰어나신 그리스도(창조) |
1:15~18 |
2. 구원의 중심이신 그리스도(구속) |
1:19~23 | |
3. 교회를 위하여 바울이 하는 일 |
1:24~2:3 |
1:15~23 기독론 변증: 당시 골로새 교회 내부에 침투한 이단자들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많은 영적 존재들이 있는데 이들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어떠한 교제도 불가능하며, 그리스도도 그들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으므로 그는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없다, 즉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는 ‘천사들’이라고 가르침으로써, 참 중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위와 신분을 피조물의 위치로 격하시켜버렸습니다.
이에 대한 반박으로 사도 바울은 그분은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자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이시며 만물이 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으며(15~17절), 또한 그분은 교회의 머리가 되신 분(18절)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 후, 오직 그분만이 하실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성역(聖域), 즉 이른바 단번에 이루신 구원의 도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19~23절).
1:24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주의 몸된 교회가 당할 고난):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감내하신 고난이 부족하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가리키는 말입니까?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이라는 표현으로 미루어 볼 때 이는 곧 주의 몸된 교회가 당할 고난을 가리킵니다. 즉 바울은 이 같은 고난들을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해 기꺼이 감내해 나가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24절)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지금껏 온통 내 고난, 내 고통 밖에 생각할 겨를이 없지는 않았습니까? 이제부터라도 (내 걱정, 내 고민만 걱정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오직 ‘주의 몸된 교회가 당하는 고난’에 대해 염려하고, 또한 묵묵히 그 고난들을 감내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바울과 같이 말입니다.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타지 않더냐).”(고후11:28,29)
1:28 바울의 사명의 목적 및 그 이행방법:
사명 |
목적 |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 |
이행방법 |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권하며 가르침 |
2:1~23 골로새 교회를 향한 관심과 염려: 여기서 바울은 골로새 교회를 위한 자기의 관심과 염려를 토로하고 있습니다. 즉 그는 비록 그들을 직접 대면하여 보지는 못했으나, 그들로 하여금 교묘한 말, 헛된 철학과 속임수, 율법주의, 천사숭배와 꾸며낸 겸손, 금욕주의 등에 미혹되지 말고 오직 자유할 것을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Ⅲ. 그리스도 안의 자유 |
1. 교묘한 말로부터 |
2:4~7 |
2. 헛된 철학과 속임수로부터 |
2:8~10 | |
3. 율법주의로부터 |
2:11~17 | |
4. 천사 숭배와 꾸며낸 겸손으로부터 |
2:18,19 | |
5. 세상의 초등 학문으로부터 |
2:20~23 |
2:4 교묘한 말: ‘그럴듯한 인기 있는 이론’을 의미함.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혹 이와 같은 그럴듯한 인기 이론들에 무분별하게 노출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아무도 교묘한 말이나, 그럴듯한 이론들로 우리를 속이지 못하게 하십시오.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교묘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4절)
2:8 철학과 헛된 속임수: ‘영지주의 철학’을 의미함. 이는 분명 (본문에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를 따른 것, 곧 하나님의 영적 진리가 아닌,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른 것임이 분명합니다. 이런 것들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주의하고 또 주의 하십시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8절)
2:11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 이는 ‘육의 몸을 벗는 것’과 ‘그리스도의 할례’ 등과 마찬가지로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우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는 것(엡4:22,23), 곧 중생을 의미합니다.
2:11~17 골로새 교회 내에 침투한 율법주의에 대해: 이 부분은 골로새 교회 내의 율법주의적 이단 사상, 즉 엄격한 율법 준행이 구원의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며, 혹 구원의 조건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구원의 완성 내지 성취에 이르는 조건이라는 주장에 대해 반박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16,17절)
2:18,19 꾸며낸 겸손과 천사숭배: 이는 골로새 교회 내에 침입한 이단 중 천사숭배를 주장하는 무리들로, 그들은 사람이 직접 절대자이신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은 ‘교만’하므로, 그보다 못한 천사에게 경배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곧 ‘겸손의 행위’라 일컬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인간의 이성에서 비롯된 반성경적이며, 반기독교적인 이단사설에 불과합니다.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18절)
2:20~23 금욕주의(禁慾主義)에 대해: 이는 인간이 만든 규정을 하나님의 지지를 얻는 수단으로 강요하는 금욕주의에 대한 것으로, 결국 이는 성도들에게 아무런 유익을 끼치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가식적인 존재로 만들기 때문에 단호히 배격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를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22,23절)
결론적으로, 우리는 이 같은 그럴듯한 인기이론과 영지주의 철학, 율법주의, 천사숭배, 금욕주의 등을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는 것들일 뿐 결코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21,22절)
2부 그리스도에 대한 복종(3:1~4:18)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로서’ 마땅히 옛 사람의 죄된 행위를 벗어버리고(3:5~11),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산 자로서’ 응당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새 사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3:12~17). 이러한 원리적 측면(3:1~7)이 가정생활을 비롯한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될 때 비로소 성숙한 성도의 삶이 구현될 수 있는 것이구요(3:18~4:6).
Ⅰ. 신자의 지위 |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존재. 땅의 것이 아닌 위의 것을 생각하고 찾아야 함 |
3:1~4 | |
Ⅱ. 신자의 행위 |
1.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 |
①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 |
3:5~11 |
② 하나님이 택하신 자녀처럼 행하라. |
3:12~17 | ||
2. 그리스도인의 의무 |
① 가정생활 (부부, 부자를 향한 권면) |
3:18~21 | |
② 사회생활 (주종 간에 대한 권면) |
3:22~4:1 | ||
③ 공동생활 (전 교회를 향한 권면) |
4:2~6 | ||
Ⅲ. 결론 |
1. 본 서신을 골로새 교회에 전달할 두기고 소개 |
4:7~9 | |
2. 바울의 동역자들의 문안 언급 |
4:10~14 | ||
3. 몇 가지 당부 및 축도 |
4:15~18 |
3:1~17 그리스도인의 삶의 근본원리: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해서 죽고, 다시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에 대하여 다시 살리심을 받은 존재이므로(3:1), 응당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고 위의 것을 생각해야 하며(3:2), 또한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우리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은 입은 새 사람을 입어야 할 것입니다(3:9,10)
<그리스도의 삶의 근본원리>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해 죽고(3),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 받은 존재(1) | |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고(2) |
위의 것을 생각하고(2) |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5) (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 탐심 등) |
위의 것을 찾으라(1) |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라(9,10) (분함, 노여움, 악의, 비방, 거짓말 등) |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새사람을 입으라(10) |
|
그러므로 성도는 ①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을 옷 입고(12), ② 서로 용납하고 피차 용서하며(13), ③ 그리스도의 평강이 그 마음을 주장케 하며(15), ④ 그 말씀이 그 속에 풍성히 거하게 하며(16), ⑤ 말과 일에 다 ‘주의 이름으로’ 해야 함(17) |
3:5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사실 사람이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은 다 무엇 때문입니까? 죄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6:23) 이 죄는 다시 무엇으로부터 비롯됩니까? 욕심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
헌데 이 욕심, 곧 탐심은 무엇의 동인(動因)으로 지적되고 있습니까? 우상숭배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골3:5) 결국 이는 무슨 말입니까? ‘이 욕심 때문에’ 사람은 죄를 범하게 되고 결국 이 죄로 말미암아 사망에 이르게 되는 한편, 동시에 ‘이 탐심 그 자체가’ 우상숭배의 동인으로 작용, 그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 수밖에 없다는 말인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 탐심 등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고 있습니까? 특히, 탐심을 말입니다. (사실, 탐심은 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 등 모든 종류의 죄를 잉태케 하는 ‘죄의 씨앗’으로, 결국 이 탐심이 자라서 각양각색의 죄들을 결실케 되는 것입니다.)
3:14 사랑의 띠: 본문은 여기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택하신 자녀처럼, 긍휼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 용서 등으로 옷 입을 것을 권면하고 하면서,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입니까? 사랑은 온전하게 매는 띠와도 같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14절)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성령의 열매들(갈5:22,23)을 맺어가되 오직 사랑으로 그리 하고 있습니까? 명심하십시오. 사랑은 이 모든 것을 온전하게 매어주는 띠와 같다는 점을 말입니다.
참고로, 본문의 ‘띠’의 배경은 성막의 널판들을 하나도 묶어주는 ‘띠’ 혹은 ‘중간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너는 조각목으로 ‘띠’를 만들지니 성막 이쪽 널판을 위하여 다섯 개요 성막 저쪽 널판을 위하여 다섯 개요 성막 뒤 곧 서쪽 널판을 위하여 다섯 개이며 널판 가운데에 있는 ‘중간 띠’는 이 끝에서 저 끝에 미치게 하고.”(출26:26~28)
3:17 주 예수의 이름으로: ‘주 예수의 이름으로’ 라는 말은 종종 ‘주 예수를 힘입음으로’ 라는 말과 동의어로 종종 사용되곤 합니다. 본절에서 볼 수 있듯 말입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3:17)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말이나 일에나 무슨 일을 하든지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즉 그분을 힘입어 그리 하고 있습니까?
본 문 |
골로새서 3장 17절 |
1. 읽 기 |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
2. 끊어 읽기 |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
3. 구조분석 |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 |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 |
4. 단어분석 |
무엇을 하든지 = 말에나 일에나 (언행에 있어서) 다 |
주 예수의 이름으로 = 그(주 예수)를 힘입어 | |
(행) 하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 |
5. 종 합 |
성도는 말에나 일에나 무엇을 하든지,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그분을 힘입어)’ 행하여야 하고, 또한 ‘주 예수를 힘입어(그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기를 힘써야 한다. |
6. 적 용 |
‘주 예수의 이름으로’라는 말은 곧 ‘주 예수를 힘입어’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지금의 나는 어떤까? 말과 행실에 있어서 다 주 예수를 힘입어 하며, 또한 주 예수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힘쓰고 있는가? |
참고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의 근거구절로, 요14:13,14를 꼽을 수 있는데 이 역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예수님을 힘입어 기도합니다’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 것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14:13,14)
<참고: 대조 대귀법 해석>
잠언에는 무려 삼백여개에 달하는 짧막한 경구들이 주로 대조 또는 대귀법에 의해 표현되어 있습니다. 물론 잠언 외에 성경 다른 곳들에서도 대조 대귀법에 의해 표현될 부분들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구요. 따라서 우리는 본문 해석 시 다음과 같은 점들을 고려, 보다 더 원문에 충실한 해석을 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 먼저, 우리는 본문이 대귀법으로 사용되어, 다른 곳에 설명어가 있지 않는지 관할해야 합니다. 사상이 반복되어, 둘째 행(line)에 있는 단어나 구절이, 첫째 행의 그것에 대답을 주는 경우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 본문을 잘 해석하기 위해서는 여러 형태의 대귀법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동의어 대귀법, 대조 대귀법, 종합 대귀법, 교차 대귀법 등)
* (단어유사이던 사상유사이던 간에) 유사 구절들 등과 유사점을 잘 관찰해야 합니다.
<예시 1>
본문 |
잠언 9장 7~9절 |
1. 읽기 |
7절 거만한 자를 징계하는 자는 도리어 능욕을 받고 악인을 책망하는 자는 도리어 흠이 잡히리라 8절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9절 지혜 있는 자에게 교훈을 더하라 그가 더욱 지혜로워질 것이요 의로운 사람을 가르치라 그의 학식이 더하리라 |
2. 끊어 읽기 |
7절 거만한 자를 징계하는 자는 도리어 능욕을 받고 악인을 책망하는 자는 도리어 흠이 잡히리라 8절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9절 지혜 있는 자에게 교훈을 더하라 그가 더욱 지혜로워질 것이요 의로운 사람을 가르치라 그의 학식이 더하리라 | |
3. 구조분석 |
거만한 자(악인)를 책망하지 말라. 거만한 자(악인)를 징계(또는 책망)하는 자는 도리어 능욕을 받고, 흠이 잡히며, 미움을 받게 된다. |
(오히려)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고 교훈하라. 그리하면 그가 더욱 지혜로워지고, 학식이 더하며, 의로운 사람을 가르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너를 사랑하게 되리라. | |
4. 단어분석 |
악인 =거만한 자 = 징계 또는 책망을 싫어하는 자 |
의인 =지혜 있는 자 = 책망과 교훈을 달게 받는 자 | |
5. 종합 |
나는 거만한 자인가 아니면 지혜로운 자인가? 이는 무엇으로 구분될 수 있는가? 책망과 교훈에 대한 반응으로 즉, 책망과 교훈을 받기 싫어하면 거만한 자임이 틀림없고, 반대로 달게 받으면 지혜로운 자임이 분명하다. |
6. 적용 |
결국 나는 어떤 쪽에 더 가까운 사람인가? 지혜자가 되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나를 향한 책망과 교훈을 달게 받자. 또한 기꺼이 나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 그 사람을 사랑하자. |
<예시 2>
본 문 |
잠언 15장 15절 |
1. 읽 기 |
고난 받는 자는 그 날이 다 험악하나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 |
2. 끊어 읽기 |
고난 받는 자는 그 날이 다 험악하나 |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 | |
3. 구조분석 |
고난 받는 자는 그 날이 다 험악한 날들과 같으나 |
마음이 즐거운 자는 (그 날이) 다 잔칫날과 같다. | |
4. 단어분석 |
고난 받는 자 = (죄악된 생각과 행동으로 인해) 늘 불안 속에 둘러쌓인 자 |
마음이 즐거운 자 = 온갖 역경 중에도 주님 주시는 평안과 즐거움이 가득 한 자 | |
5. 종 합 |
죄된 생각과 행동으로 인해 늘 불안 속에 있는 자는 그 모든 날이 다 험악할 수밖에 없으나, 하나님의 평안과 즐거움이 가득한 자는 온갖 환난과 역경 중에도 (그 모든 날이) 다 잔칫날과 같아 질 수 있다. |
6. 적 용 |
지금의 내 모습은 전자인가? 아니면 후자인가? 여러 가지 환난과 역경을 피할 수 없을진대, 이 모든 상황과 형편에 끌려 다니기보다, 차라리 마음이 즐거운 자, 즉 주님 주시는 평안과 즐거움으로 가득한 자가 되기를 힘쓰자. 그러면 곧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며 이 모든 날이 다 잔칫날이요 그 어디나 하늘나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3:18~4:6 모든 삶의 영역에서 주께 하듯 하라: 앞서 언급된 원리들은 아는 데에서만 그쳐선 안 되며, 삶의 구체적인 현장에서 적용되어져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3:18~21) |
아내들아 |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한 바(3:18). |
남편들아 |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3:19). | |
자녀들아 |
매사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3:20). | |
아비들아 |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낙심할까 두려움(3:21). | |
사회에서 (3:22~4:1) |
종들아 |
모든 일에 상전들에게 순종하라. 매사에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알기 때문(3:24) |
상전들아 |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라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기 때문(4:1) | |
공동체에서 (4:2~6) |
성도들아 |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2절). 특히, 복음전파와 전도자들을 위해 기도하라(3~4절) |
성도들아 |
믿지 않는 사람들(외인)에게 증거의 삶을 살라(5,6절) |
4:5 외인에 대해: 여기서 ‘외인’은 ‘불신자’, ‘세월을 아끼라’는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선용하라’는 뜻임. 즉 본 절은 불신자들에 대해 지혜롭게 행하되,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선용하여 복음 증거 하기를 힘쓰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외인에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기회를 사라).”(5절)
참고로, 본 절의 ‘세월을 아끼라’라는 표현은 엡 5:16에도 동일하게 발견될 수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기회를 사라) 때가 악하니라.”(엡5:15,16)
4:6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이 부분은 그리스도의 언어생활에 대한 말씀으로, 이는 증거의 삶을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외인, 즉 불신자들 가운데서 어떤 언어생활을 해야 하는지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편, 본절의 ‘은혜’라는 말은 ‘기쁨’, ‘매력적임’, ‘쾌활함’ 등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어서 재기가 넘치는 대화를, ‘은혜 가운데서’라는 구절은 또한 ‘감사하는 가운데서’라는 말로 달리 표현될 수 있어서 감사가 넘치는 대화를,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라는 말은 ‘순수함’, ‘건전함’ 등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어서 그리스도인들의 대화가 순수함과 건전함 가운데서 이루어져야 함을 각각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막9:50 하)는 구절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순수함과 건전함 가운데서 서로 화목하라.’
4:7~18 결론: 본문은 본서신의 결론 부분으로 먼저 본 서신을 골로새 교회에 가져갈 동역자를 소개하고(7~9절), 또 그들을 향한 바울의 동역자들의 문안을 언급한 후(10~17절) 축도로서 끝맺고 있습니다(18절).
Ⅲ. 결론 |
1. 본 서신을 골로새 교회에 전달할 두기고 소개 |
4:7~9 |
2. 바울의 동역자들의 문안 언급 |
4:10~14 | |
3. 몇 가지 당부 및 축도 |
4:15~18 |
4:7 두기고: 두기고는 아시아 지방 태생(행20:4)으로, 바울의 제3차 여행 때 그를 수행했고, 바울의 신임을 받아 골로새 교회에 본 서신을, 에베소 교회에도 에베소서를 각각 전해 주었으며(엡6:21,22). 후에 디도가 사역했던 그레데(딛3:12), 에베소 등에 파송되기도 했습니다(딤후4:12). 교회사 전승에 위하면 그는 후에 콜로폰(Colophon)의 주교가 되었으며 얼마 뒤에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행20:4) /“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리려 하노니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꾼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리리라 우리 사정을 알리고 또 너희 마음을 위로하기 위하여 내가 특별히 그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라.”(엡6:21,22) /“내가 아데마나 두기고를 네게 보내리니....”(딛3:12)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딤후4:12)
4:9 오네시모: 그는 본래 골로새 교회의 성도 빌레몬의 종이었으나, 그 집에 도망 나와서 방황하다가 로마 옥중에서 바울을 만나 회심했으며(몬1:8~21), 본문에 의하면 두기고와 함께 빌레몬이 있는 골로새 교회로 보내어졌던 것입니다. “신실하고 사랑을 받은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그들이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9절)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네게 그를 돌려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몬1:10~12)
4:10~14 그 밖의 동역자들: 당시 디모데(1:1), 두기고와 오네시모 외에도 아리스다고, 마가 요한, 유스도라 하는 예수, 에바브라, 의원 누가 등의 신실한 동역자들이 바울 곁에서 그를 도와 주의 일을 동역하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 에바브라와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몬1:23,24)
4:17 아킵보: 그는 추측컨대 빌레몬의 아들로, 에바브라의 부재(不在) 중에 골로새 교회에서 사역을 맡고 있던 목회자로 생각됩니다. “아킵보에게 이르기를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하라.”(17절)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자매 암비아와 우리와 함께 병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노니.”(몬1:1,2)
4:18 매인 것: 이는 바울 자신의 수감 중인 형편을 가리킵니다.
열린 문과 닫힌 문(4:3)
*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 4 : 문(門)들을 통해 인도하신다.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
인생에는 열린 문과 닫힌 문(폐문) 두 가지 정도의 문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 특히 많은 성실한 그리스도인들이 ‘폐문(閉門)’과 관련, (모든 문제를) 몇 번 두드려보고 안 되면 쉽게 포기하거나, 주의 깊은 관찰 없이 부딪히다가 ‘이루지 못하면 그만이다’는 식의 부주의한 태도를 보여 오는 등 수많은 좌절과 불만의 결과를 스스로 초래해 왔던 것입니다.
이는 소위 ‘폐문응답’으로 관련된 모든 요인을 신중하고 합리적으로 평가분석하지 않고 어떤 결정에 있어서 우연한 요소를 허용하기 때문에 비논리적입니다. 성령이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주신 이성의 능력을 활용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비성경적입니다. 먼저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최고의 것을 찾기 보다는 응답되지 않는 것은 포기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 한다는 점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혹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몇 번 두드려보고 안 되면 쉽게 포기하거나, 주의 깊은 관찰 없이 부딪히다가 ‘이루지 못하면 그만이다’는 식의 부주의한 태도를 지양하고 있습니까? 모든 요인을 신중하고 합리적으로 평가분석하고 어떤 결정에 있어서 우연한 요소를 배제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이성의 능력을 성령 안에서 잘 활용하고 있습니까? 응답되지 않는 것은 포기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 하기보다 먼저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최고의 것을 찾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까?
혹 아니면, 여전히 자신의 지적 능력이 참 신앙을 방해하여 성령을 슬프게 하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자신의 감정이나 예감을 더 의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단순히 부딪힌 난관 때문에 문이 닫혀졌다고 섣불리 단정 내리려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은 때때로 재정적 궁핍, 건강의 상실, 애정의 시련, 지인의 비난 등 엄청난 시련의 시기를 겪은 후에 오기도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부활의 승리가 있기 전에 십자가의 비참한 패배가 있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닫힌 문이 있으면 어딘가 열린 문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계3:8 상)
한편, 우리는 ‘폐문’, 즉 ‘닫힌 문’을 만나면 어찌해야 합니까? 환경이 기회의 문을 닫는 것처럼 보여지고, 또한 모든 것이 막힌 것처럼 느껴진다면 어찌해야 한단 말입니까?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애초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느꼈을 때, 하나님이 정확히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를 알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 분이 뭐라고 말씀하셨는지를 명확히 하십시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부르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행16:6~9)
하나님은 모든 문을 닫아 놓으시지 않으십니다. 한 문이 닫혀있으면 반드시 다른 한 문을 열어 놓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열린 문을 통해서도 수많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교훈을 얻을 수 있지만, (우리가 교훈을 받을 준비만 되어 있다면) 동시에 닫힌 문을 통해서도 그에 못지않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문 두드리기를 주저하거나 망설이지 마십시오.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7:7) 기회란 소위 '열린 문'으로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나 기도로 구하던 기회를 가리켜 종종 ‘열린 문’이라고 표현했으며, 그 열린 문들 중에는 사상 초유의 기회가 된 것도 있었습니다.)
혹 우리에게 닥친 일들이 우리를 특정한 소명으로 떠미는 경우가 있습니다. 남편을 암으로 잃은 젊은 여인이 호스피스로 일하게 되고, 수년간 구타당하며 산 여인이 구타당하는 여인들을 위한 클리닉을 개설하기도 하며, 중학교를 죽도록 싫어하던 대학생이 중학교에서 훌륭하고 인기 있는 상담자가 될 수 있으며, 미지근한 교회에서 자란 사람이 훌륭한 전도자가 될 수 있으며, 비전에 대해서 배고파 본 사람이 비전가이드가 될 수 있으며, 영적 학대에 대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내적치유 상담자의 길을 걷게 되며, 주일학교 교육의 부재를 뼈저리게 경험한 사람이 훌륭한 주일학교 교육자가 될 수 있으며, 어릴 적에 성폭행을 당한 여성이 여성들을 위한 성상담 사역자가 되기도 합니다.
또한 누군가로부터 문서선교의 도움을 받아 본 사람이 또 다른 사람들을 돕는 문서사역자가 되고, 특수한 질병을 겪은 사람이 같은 처지의 희귀병 환자들을 돕기 위한 사역을 시작하게 되며, 마약이나 약물에 중독되어 고통을 경험한 사람이 후에 중독자들을 돕는 사역에 뛰어들게 되며, 캠퍼스 시절 예수님을 알게 된 사람이 후에 다시 캠퍼스 선교의 현장에 발렌티어(volunteer)로 뛰어들게 되며, 리더십의 부재로 큰 위기를 겪었던 사람이 리더십센터를 세우며, 자신이나 가족 중 장애를 입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 장애인사역에 뛰어 들게 되며, 불의의 사고로 시력을 잃은 사람이 시각장애인을 위한 선교‧복지‧교육 등에 투신하게 되며, 어릴적 병으로 청력을 잃은 사람이 청각장애인을 위한 훌륭한 목회자가 되며, 큰 병에 걸려 오랫동안 병원생활을 한 사람이 탁월한 병원선교사의 길을 걷게 되며, 불치병을 선고 받은 사람이 또 다른 불치병 환자들을 돕고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주님의 훌륭한 사역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때로 적시에 찾아오는 사소한 경험이 도화선이 되는 경우도 있고, 대학시절의 경험이나 뜻밖의 사건, 호의 등이 문단이나 특정 분야로 그 첫발을 내딛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며, 생각지도 못한 기회를 통해 한 줄기 인생의 빛을 발견하게 되며, 인생의 특별한 고난을 통해 다른 식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영감이나 통찰력을 얻게 되기도 합니다.
* 열린 문만큼이나 닫힌 문 역시 중요합니다.
혹 닫힌 문을 먼저 발견했다고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왜 닫힌 문을 만나게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하다보면, 여기가 결코 끝이 아니라는 점을 이내 깨닫게 될 테니 말입니다. 혹 폐문(閉門)을 먼저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너무 낙심하지 마세요. 왜 폐문 앞에 서 있는지를 침착하게 사고(思考)하다보면, 여기가 결코 막다른 골목이 아니라는 사실을 곧 알게 될 테니 말입니다. 혹 (내 앞에 있는 그 문이) 열린 문이 아니라고 해서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열린 문만큼이나 폐문 역시 (내게) 이롭다는 점을 오래지않아 깨닫게 될 테니 말입니다.
아울러 여기 닫힌 문이 있다면 이 방 어디엔가 반드시 열린 문이 있다는 사실 역시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희망을 가지십시오. 여기 헬렌 켈러의 고백처럼 말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 문을 닫아 놓으신 이유는 우리의 머리로는 미처 다 헤아릴 순 없습니다. 그렇지만 분명히 그 문이 닫혀있는 것이 우리 자신에게 유익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하나의 문이 열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미련을 가지고 너무도 자주 후회 속에서 오래도록 닫혀진 문을 쳐다보며 아쉬워한다. 우리 앞에 또 하나의 새로 열린 문이 열려져 있는 것도 알지 못한 채’ - 헬렌 켈러 -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어떤 문 앞에 서 있습니까? 두드리십시오. 언제까지 말입니까? 열릴 때까지. 어떻게 말입니까? 간청함으로. “...비록 벗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으로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눅11:8,9)
한두 번 두드리다 그치지 마십시오.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눅18:1~7).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문이 열리지 않는다면, 그 길이 당신에게 적합하지 않거나 혹은 아직 때가 안 되었으므로 훈련을 기다리라는 신호일 수 있으므로, 좀 더 기다려보거나 그 곳 어딘가에 있을 다른 문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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