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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계시록!(1) : 힘들어도 잘 견디면 승리합니다!”
+ 본 문 : 요한계시록 1장 1절 - 6절 (신약성경 399쪽)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6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최근에 군대에서 벌어진 모 사단 의무대에서, 윤 일병 집단구타 사망 사건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아마 자녀를 군대에 보낸 부모님들뿐만 아니라, 온 국민들이 충격과 분노에 빠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 윤 일병 구타 사망 사건이 온 국민들에게 충격과 분노를 더했던 이유는, 피해자인 윤 일병을,
그 괴롭혔다는 방법들이 감히 인간으로서는 해서는 안 될 너무나 잔인하고 끔찍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 역시 가해자들의 잔인한 태도와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모습에, 마음이 착잡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해자들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괴롭히는 과정에서, 피해자 윤 일병과 부모 사이를,
철저하게 격려 시켰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건을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한 군 인권센터 소장의 인터뷰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윤 일병은 24시간 감시를 당해, 부모님과 통화할 수도 없었다.” 고 했습니다.
이런 내용도 있었습니다. 올해 초 윤 일병이 자대 배치를 받은 뒤 부내 내 운동회가 열려 부모님을,
초청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제왕적 권력을 행사했던 상관 이 병장이 마일리지가 모자란다는 이유로,
윤 일병의 부모님이 부대 내 운동회에 와서, 아들을 만나는 일까지도 다 막아버렸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 윤 일병의 기사를 보면서, 오래 전에 있었던 대구 어느 중학생 자살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윤 일병의 구타 사망 사건과 대구 중학생의 자살 사건은, 둘 다 공통점이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대구의 그 중학생 역시 학교 폭력사건의 희생자였습니다. 피해 학생은 가해자들인 학교 친구들로부터,
상습적으로 폭행을 당하였고, 수시로 돈을 빼앗기고, 심지어는 물고문까지 당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것 외에도 윤 일병과의 공통점이 하나 더 있는데, 부모가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피해 학생의 삭제된 휴대전화 문자를 복원했더니, 우려 300통이 넘는 협박 문자 메시지가,
쏟아져 나왔다고 합니다. 피해 학생이 그 협박 문자 메시지를 부모님에게 보여 드리기만 했어도,
꽃다운 학생이 자살로 마지막 목숨을 끊는 비극은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참으로 마음 아픈 일입니다.
어느 해인가 ‘청소년 폭력 예방 재단’ 이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재학생 3,560명을 조사했더니, 무려 22.7 %가 1년 사이에 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그 일로 학교 가는 것이 싫었다는 학생이 무려 52.1 %나 되었고,
심지어는 그 일로 인해 한 번 이상 자살할 생각해 봤다는 학생도, 무려 30.9 % 나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도 그 누구에게도, 심지어 부모님이나 가까운 친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못하고,
혼자서 고통스럽게 견딜 수밖에 없었다고 응답한 학생들이, 무려 57.5 % 나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가끔은 자녀들의 문자 메시지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윤 일병의 가해자들이, 왜 그토록 철저하게 윤 일병과 부모 사이를,
그토록 철저하게 격리시키려고 했는지에 대한 분명한 이유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 아닙니까?
그래서 그 사건을 접한 대한민국의 모든 부모님들은, 자녀들에게 당부하고 또 당부했을 것입니다.
“만약에 너에게도 이런 일이 있으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꼭 부모인 우리에게 알려야 한다. 알겠니?”
제가 장황하게 군 폭력으로 숨진 윤 일병 사건과 학교 폭력으로 자살한 중학생 이야기를 한 것은,
그런 사건을 접한 부모님들이 자식들에게 “만약에 너에게도 이런 일이 있으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꼭 부모인 우리에게 알려야 한다. 알겠니?” 라고 수백 번 신신당부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저는 요한계시록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어렵고 험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랑하는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구구절절이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요한계시록을 무섭고, 해석하기 어려운 책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말씀들에 대한 해석이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믿는 형제와 자매들이,
서로 싸우고, 심지어는 서로에 대해 미워하고, 분노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많은 이단들이 바로 이 요한계시록을 잘못 왜곡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그런 책이 아닙니다.
성경 전체를 통해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지만, 요한계시록은 당시 로마 당국의 핍박을 당하고 있는,
초대교회 성도들을 배려해서 주신 책입니다. 고통당하던 성도들을 위로해주시기 위해 주신 말씀이요.
한 결음 더 나아가 그 어려운 삶의 현실을 잘 이겨내고 기어이 승리하도록 돕기 위해서 쓴 편지입니다.
그래서 요한 계시록은 핍박의 고통을 잘 이기도록 힘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담은 성경입니다.
러시아의 유명한 차이코프스키의 발레극 “백조의 호수” 를 러시아에서 직접 본 적이 있습니다.
제가 조금은 무식해서 발레극을 다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들은 것이 있어 자세히 본 장면이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보면, 백조의 호수의 주인공인 여성 발레리나가 보여주는, 발레에 있어 최고의 기술인,
“32회전 푸에태” 가 나옵니다. 날씬한 몸매의 여성 발레리나가 한 다리로 발끝에 몸을 지탱하면서,
또 다른 한 다리를 높이 들고는 지탱한 발끈 주위를 휘저어 32회전을 하는 동작을 보고 있노라면,
발레에 문외한인 저도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을까하는, 감탄과 찬사가 저절로 나올 정도였습니다.
“어떻게 서른두 바퀴를 그렇게 한 발끝으로 서서 360도를 돌면서도 넘어지지 않을 수가 있을까?”
360도라는 고난도의 회전 기술을 소화해내는 것도 감탄스럽지만, 32회전을 돌면서도 전혀 균형을,
잃지 않고, 똑 같은 몸의 균형 감각을 유지할 수 있다는 그 자체가, 너무나 신비롭기만 하였습니다.
그래서 발레리나가 몸의 균형을 유지하는 법에 대한 설명을 듣고서 머리가 끄덕여졌습니다.
발레리나가 회전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중앙에 있는 관객 중 한 명을 골라 그를 응시한답니다.
그리고 몸을 360도 회전할 때, 손을 비롯하여 다른 모든 신체가 돌아가도, 얼굴은 끝까지 그 사람을,
응시한답니다. 그렇게 몸을 돌리고, 다시 몸과 손이 움직이기 전에 머리를 먼저 돌려 다시 그 사람을,
응시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32회전을 하는 내내 중앙에 있는 그 한 사람만 바라보면서 도는 것이,
발레리나의 몸이 흐트러지거나 넘어지지 않고, 똑 같은 자세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비결이랍니다.
목사는 무슨 말을 듣든지, 전부 하나님의 말씀과 연결시키는 묘한 버릇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이드가 설명해 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의 삶의 자세를 배웠습니다.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에게 요한계시록의 말씀은 힘겹고 어려운 삶을 그냥 참고 견디라는 말씀이 아니라,
괴롭히는 상급자들에게 희생당했던 윤 일병이나, 자살했던 중학생처럼 혼자서 버티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도우시는 아버지 하나님!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만을 바라보라고 말씀합니다.
십자가를 앞에 놓고 겟세마네동산에서 피땀 흘리시며 기도하셨던 우리 예수님이셨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장차 제자들이 겪게 될 핍박과 고난의 아픔을 생각하면서 주셨던 누가복음 22장 31절,
32절 말씀을 기억합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를 위한 주님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바로 이 주님의 마음으로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읽고 설교를 들어 제대로 은혜를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교리를 다룬 성경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으로 읽어야 하는 성경입니다.
그래서 로마서를 통해 복음이 무엇이냐? 복음을 예수 그리스도요. 성도는 누구냐? 바로 이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요.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인 우리가 어떻게 믿어야 하고,
어떻게 성도답게 살아야 하는가를, 그 동안 수요예배를 통해서 함께 말씀을 나누면서 은혜받았습니다.
이제 로마서에 이어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함께 나누면서,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들인 저와 여러분이,
저와 여러분을 응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알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더 믿고 의지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요한계시록 강해의 말씀을 나누고 선포하려고 합니다.
덧붙인다면 사도 요한이 쓴 성경으로 알려진 신약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은,
세상 종말! - 말 그대로 마지막 때에 되어 질 일들을 기록한, 사도 요한이 쓴 계시의 말씀입니다.
그러면서도 요한계시록에는 일곱 가지의 복을 기록한, 복을 받을 수 있는 비결의 책이기도 합니다.
첫째 복은, 1장 3절에 나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지키는 자가 복이 있나니”
둘째 복은, 14장 13절 말씀에 있습니다.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사람들은 복이 있나니”
셋째 복은, 16장 15절에 나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깨어있어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사람이 복이 있느니라.” 넷째 복은, 19장 9절 말씀에 나옵니다.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복이 있다” 다섯째, 20장 6절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복이 있다”
여섯째 복은, 22장 7절 말씀에 나옵니다. “예언의 말씀을 가감 없이 지키는 사람들이 복이 있다.”
일곱 번째 복은, 22장 14절에 나오는데 “죄로 더러워진 두루마기를 빠는 사람들이 복이 있느니라.”
이처럼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복에 대한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마지막 때에도 그리스도인들에게,
위로와 격려도 주시고, 힘을 주시고, 치유와 회복도 주시지만, 예비 된 하늘과 땅의 복도 주십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읽고, 설교를 통해서 들으시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발견하시고,
그 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이 일곱 가지의 복은 차례차례 말씀을 나누면서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물론 요한계시록을 본문으로 하는 설교나, 특히 요한계시록 강해 설교는 참 조심스럽습니다.
그래서 이미 앞에서 말씀을 드린 대로, 줄거리가 아닌 중요한 부분의 본문 중심의 말씀으로만 골라서,
말세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을 응원하시는, 오직 주님의 마음으로 – 격려하고 위로하는 마음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늘 드리는 부탁입니다만 저를 위해서 기도를 더 많이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수요예배를 통해서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설교로 저와 여러분이 함께 나누겠습니다만,
제가 영성이 많이 부족해서,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모든 신비를 다 밝히 말씀드릴 수는 분명 없겠지만,
제가 바라는 것은 오직 이것 하나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요한계시록이 무서운 성경이 아니라는 것,
요한계시록의 말씀들은 말세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에게, 위로와 격려를 주는 주님의 말씀이라는 것,
그래서 정말로 힘들 때, 정말로 어려운 가운데 처했을 때, 마음에 위로가 정말 절실하게 필요할 때,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펴서 읽고 듣고 지켜 행하면 복을 받을 수 있으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위로와,
격려를 받고 일어서고, 살아나고, 치유되고 회복될 수 있고, 천국이 보이는 소망이 있기를 원합니다.
이 복과 위로와 격려와 소망을 가졌던 히브리서 기자가 선포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아멘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말씀을 붙잡고, 힘든 마지막 때를 잘 견뎌내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우리의 위로와 격려가 되시고, 다시 오실 우리의 참 소망이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