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편

◁ 아잔타
석굴 사원 2; 아! 아잔타▷
1819년 영국군
장교가 호랑이 사냥을 하다가 우연히 바위로 된 이 사원군을
발견했다. 이 사원군은 정글 깊숙한 곳에 완전히 숨겨져
있었으며, 8세기 이후에 폐허가 되어 있었다. 30개를 헤아리는
불교 석굴 사원은 고대 인도에서 가장 뛰어난 벽화의 아름다운
자태를 벽과 천장에 남기고 있다. 이 벽화들은 세세한 부분에까지
치밀함과 높은 예술성을 보여주며 전성기 굽타왕조의 궁정생활을
그대로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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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아잔타 석굴 제17굴 벽화 /
제 17굴 내부, 중앙홀에는 "비슈반타라(Visvantara)
본생담"(부처의 전생 이야기)을 그린 벽화의 일부분이
남아 있다. 즉 부처의 전생인 베산도른(Vessantra)
왕자로서의 삶이 벽화로 묘사되어 있다. 그는 지나치게
관대한 성격 때문에 왕비와 함께 왕궁에서 추방당하고 말았다. 이
부분은 주인공인 왕자가 아내에게 부왕(父王)이 자신을
왕궁에서 쫓아내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전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의 오른쪽에는 오렌지색 벽과 붉은색 기둥을 가진
누각 아래 가무잡잡한 피부의 왕자가 실신한 아내를 안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숙인 고개, 축 쳐진 팔다리의 자세는
그녀의 절망감을 암시한다. 남편에게 도움을 청하는 듯
꼭 붙어있는 자세에서 왕자빈의 불안한 마음이 잘 나타나
있으며, 왕자의 근심은 술잔을 권하는 자세에 드러나 있다.
근심에 쌓인 분위기는 침상에 앉아 걱정스레 위를 올려다
보고 있는 난장이와 부부의 뒤쪽에 물병을 들고 서
있는 시녀를 통해 더욱 고양되고 있다. 주요 등장 인물들의
시선이 모두 이 불행한 왕자를 향하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 하다. '흑인
왕자'의 육감적인 모습과 왕궁의 경관이 매우 독특하게
묘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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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아잔타 석굴 제 17굴 벽화의 일부(위 벽화의 왼쪽
부분도 세부) / 제
17굴 왼쪽 벽에 남아 있는 벽화(윗 그림)의 일부로서. '비슈반타라의
전생'의 한 장면으로 우산을 받들고 있는 시녀를 거느린 왕과 왕비가 외출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왕자와
그의 아내는 산개(傘蓋; parasol)를 든 시종들과 함께 등장한다.
이 장면에는 바리(과일 담은 그릇)와 휘어진 지팡이를 지닌,
걸인의 모습도 보인다. 이들 인물 뒤에는 이국적인
나뭇잎들이 대담한 형태로 그려져 있다. 이처럼 아잔타 벽화에는 관능적인 궁정생활을 묘사한 것이 아주
많다. 5세기
말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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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과거세의 7불과 미륵불(아잔타 17굴의 벽화) / 제일
윗 줄에 늘어선 좌상의 불화가 과거
7불과 미륵불(오른쪽 끝)이다. 그 바로 아랫 줄(문틀 바로
위)엔 검은 얼굴의 남녀가 서로 마주보며 대화하는 여러
가지 모습이 줄이어 그려져 있다. 이는 귀족과 부유한 상인들의
세계를 묘사한 것으로서 일종의 생활 풍속도이다.
인물들의 풍요롭고 즐거운 일상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그리고
문틀 양쪽에 새겨진 조각상은 여신(女神) 강가(Ganga)인데,
마카라(물고기의 왕)를 타고 있다. 이것은 불교에서 물의
중요성을 상징하는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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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아잔타 제 17굴 벽화; 오취륜도 / 윤회하는
다섯 세계(천계, 인간, 축생, 아귀, 지옥의 다섯세계(5도)의
그림, 즉 오취륜도(五趣輪圖)를 승원의 입구에 그려 놓았다.
불교신자들은 이 그림을 보거나 비구의 설법을 듣고서 천계의
안락한 생활을 동경하고, 지옥의 무서움에 겁을 내어 일상생활
속에서 몸가짐을 바르게 했다. 벽화의
많은 부분이 마멸되고 퇴색해버려 아쉬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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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아잔타 석굴 제 19굴 외부 전면 / 아잔타에
차이티야 굴(예배굴)은 5개뿐이며, 나머지는 모두 비하라 굴(승원굴)이다.
이곳 제 19굴은 5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차이티야 굴로
앞뜰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원주가 서 있는 현관이
완전하게 남아 있다. 현관 위에는 채광을 위한 커다란 창이
있으며, 주위 벽면에는 엄청난 숫자의 불상이 조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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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화려한 불상 조각들(아잔타 19굴 외부, 건물 앞면의
부분) / 19굴
건물 전면에 조각된 수많은 불상들 가운데 아랫쪽의
의좌상과 윗쪽의 나란히 선 두 불상이 두드러져 보인다.
특히 의좌상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작은 소형 불상들의
자세와 수인(손모양)이 매우 다채로워 눈길을 끈다.
즉 구획을 작게 나눈 소형 불상들의 자세는 입상, 좌상, 의좌상으로, 수인은 설법인, 선정인,
여원인 등으로 매우 다양한 형태로 의좌상 주위를
에워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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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석불 입상 조각(아잔타 19굴 외부, 전면 우측) / 나신처럼
보이는 이 불입상은 사실은 옷주름 없는 의복의 표현으로서,
투명하고 얇은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다. 이는 굽타제국
시대에 제작된 것인데, 이전 시대 불상에 비해 인도 전통의
관능미가 되살아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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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아잔타 석굴 제 19굴 외부 전면 / 불교가
일반 대중의 생활문화로 정착할 때 민간신앙적인 여러 관념과
신격, 귀령 등이 싫든 좋든 간에 불교문화 속으로 흡수된다.
여기에 새겨진 야크샤(yaksa)는 드라비다 계통의 신으로
풍요의 여신이다. 야크샤는 토지의 풍요로움과 관계가 있고,
선한 나무의 정령으로서 종종 성소를 지키는 수호자로도
묘사된다. 수호신과 자연신들이 인격화된 이 약샤는 나무신,
지하에 묻힌 광물을 지키는 신, 부와 풍요를 가져다 주는
신으로 알려져 있다. 매우 관능적인 묘사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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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아잔타 석굴 제 19굴 외부 전면 / 굽타시대
불교 조각에서의 이런 관능적인 표현은 그 후에 밀교사상과
밀착되어 퇴폐적인 불상 양식을 낳게 되며, 한편으로 중국에도
영향을 끼쳐 당나라 전성기 때의 불상양식에 관능미를 부여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석굴암 불상 제작 이후 통일신라
하대의 많은 불상들도 멀게는 인도의 굽타시대 불상으로부터의
영향받은 것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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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잔타 석굴 제 19굴 외부 전면 / 인도
전통의 관능미가 되살아난 이 옷주름 없는 불상들은 열대
문화의 특성으로 말미암은 인도 미술의 뿌리깊은 인체 표현
기법의 조형 전통이다. 이는 당시 난만한 굽타제국의 문화성격과도
관련이 있으며, 당시 힌두 조각에도 일률적으로 적용되어
이후 인도 조각의 주된 흐름을 이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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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 석굴 제 19굴 외부 벽면 조각/ 제
19굴 앞뜰을 둘러싼 벽면 중 오른쪽 아랫 부분에 조각된,
부처가 비스듬히 앉아 있는 조각상의 머리 부분이다. 후세의
힌두 조각과 비교해볼 때 훨씬 정적이고 평온함이 넘치는
불상이다. 두손을 마주잡아 법륜을 나타내면서 온화하게
명상을 하고 있는 모습인데 아랫 부분이 사진에 잘려 있다. 머리 부분 좌우에는 천상계의 여자인
비천상이
조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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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아잔타 석굴 제 19굴 내부 / 예배굴인 19굴에서 부처는 스투파(탑) 앞에 입상으로 모셔져 있다.
이는 아잔타 석굴의 제 2기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특성이다.
스투파 위로 3개의 우산 모양- 3개의 보배, 곧 불보, 법보,
승보를 상징한다-의 왕관은 훗날 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되는
파고다('탑'의 의미) 구조의 초창기 형태라 할 수 있다. (사진이
어두워 우산 모양이 잘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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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아잔타 석굴 제 17굴 / 이
석굴은 비하라굴(승원굴)이다. 비하라굴은 원래 수도승들이
기거하는 승방이었으나, 나중에 중앙에 위치한 가장
화려한 기둥을 중심으로 부처를 모시는 제단을 설치하여
예배와 수도를 겸하도록 하였다. 그러니까 승방에다가 불당을
끌어들인 것이다. 중앙에 모셔진 불상은 석가모니가 녹야원에서
설법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수인(손모양)이 설법할 때
하는 제스춰(gesture)이고, 좌대에는 사슴 두 마리가 법륜(진리의
수레바퀴)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모습이다. 바로
이 곳이 석가모니 부처가 최초로 제자들에게 설법을 했던
사슴 동산, 즉 녹야원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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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아잔타 석굴 제 26굴 내부 / 석굴 내부의 스투파(탑)에서 붓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잔타의
차이티야 굴(예배굴) 가운데 가장 큰 제 26굴 내부이다. 차이티야
굴은 이와 같이 2층 정도의 높이를 가진 원통형의 천장으로
안쪽으로 깊게 되어 있는 전방후원형(석굴 내부 구조가
입구나 문쪽은 사각형
모양이고, 안쪽은 원형 모양이라는 뜻) 구조를 하고 있다.
초기에는 뒤쪽 둥근 부분 중앙에는 산치대탑처럼 단순한
스투파가 모셔져 있었으나, 후기가 되면서 이 스투파처럼
앞면에 불상이 조각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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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6굴 내부, 스투파에 새겨진 불상 / 여기에서 부처는 양쪽에 코끼리와 사자가 떠받치고 있는
왕좌에 서구식으로 앉아 있다(의좌상). 비디아다라(하늘을 나는
수호신; 즉 비천상)는 지식의 상징인 화관을 들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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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에 든 석존(아잔타 제 26굴) / 병의
고통을 참고 견디면서, 석존은 아난다와 함께 쿠쉬나가라에
이르러 사라나무 숲으로 들어간다. 석존은 "아난다여,
그대는 나를 위해 사라쌍수 사이에 머리를 북쪽으로 향할
수 있도록 자리를 깔라. 나는 피곤하다. 나는 자리에 누울
것이다." 라고 하여, 아난다에게 자리를 깔게 하고
나서 오른쪽 옆구리를 아래로 두고 발 위에 발을 포갠 자세를
취한 다음 선정에 들어간 채로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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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에 든 석존(아잔타 제 26굴 부분도) / "모든
것은 변한다. 어찌 이 세상에 영원토록 변치 않는 것이
있으리요. 모든 것은 태어나면 사라지고, 사라져서는 다시
태어난다. 이 고요 속에서 영원히 변치 않는 생명을 찾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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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딱 팔배개하고 자는 모습이 너무 평온해보입니다. 그리고 정말 대단한 부처님달 입니다. 관리도 엄청 잘하고 있네요. 사진이라도 볼 수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찬찬히 한줄한줄 성의있는 유익한 얘기 잘 읽었습니다. 부처의 헤어가 현대적이네요.돌고돌아 오늘날 그렇게 보이는갑네요
마지막 사진 - 열반에 든 세존의 표정이 압권입니다. 조명 때문에 3-4개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어서 미소띤 얼굴이 더욱 신비스럽슴다. (음악 데이터 iframe 때문인지 일부 회원들이 이 자료를 크릭하면 컴이 다운이 되는 모양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