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는 정말 과학일까? 유수의 대형 가구업체 광고카피처럼 요즘 가구는 과학적인 설계로
심플하고 모던해졌으며, 생산방식 역시 가장 합리적인 방법으로 일편화 되고 있다.
특히 경기가 어려울땐 생필품위주로 소비패턴이 바뀌는데다 클래식가구의 경우 오브제(objet)
개념이 보편화되어 있어 매출에 큰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게 현실이다.
1998년 IMF경제위기를 시작으로 계속되는 불경기에도 끊임없이 성장 하고 있는 전통
클래식 가구 치펜데일. 이 놀랄만한 성장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엇이 있지 않을까?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지난 8월 김헌경 동문회장을 필두로 이왕주 사무국장과 함께
경기도 김포시에 위치한 치펜데일 본사에서 한철우 동문을 만났다. 8,300 m²(구2,500평)
의 드넓은 대지에 들어선 공장에는 가구제작에 필요한 목공기계뿐 아니라 소품금속을 가공
할 수 있는 선반과 프레스 주조라인까지 완벽하게 설비되어 있었다.
▶아래는 한철우 동문과의 일문일답
구본정 편집위원장
바쁘실텐데 이렇게 동문탐방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동문여러분께 인사 한마디
하시죠?
한철우 동문
먼길인데 이렇게 직접 방문해 주신 부성초 총동문회 사무국 여러분께 감사 말씀 드립니다.
사회 다방면에서 많은 선후배 동문들이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데 이렇게 먼저 기회를
주셔서 송구스럽기만 합니다.
구편집장
듣기로 치펜데일 가구가 오늘날 성장하기까지 고생을 많이 하셨다고 하던데 가구사업을
하게된 동기와 그 과정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한철우 동문
고향을 떠나 1976년 인천기계공고에 입학하면서 진로를 고민하던중 목공기술이 장래성이
있다는 판단하에 학업을 중도포기한게 계기가 되었습니다. 현장경험을 쌓기 위해 당시
대기업인 한양목재에 취직하여 본격적으로 가구 제작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라자가구, 조지연가구, 명한가구 등 내노라 하는 가구업체에 취직해서 실전감각도 익혔죠.
그러던중 98년 글로벌 금융위기인 IMF사태가 터지면서 수많은 업체들이 도산하더군요.
당시 공장장으로 근무하던 우리 회사 역시 여러 노력에도 결국 부도가 났고, 고민 끝에
공장을 인수하여 지금의 ‘치펜데일’ 이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구편집장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포기하지 않고, 역발상으로 위기를 기회로 만드신거군요. 치펜
데일은 고급 클래식가구로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고 하던데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요?
한철우 동문
회사를 인수후 사업의 성쇠를 떠나 줄곧 자신만의 강점과 특색을 개발하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국내에서 디자인과 품질면에서 상품성을 인정받기 시작했고,
입소문을 듣고 미국을 포함하여 외국 바이어들의 주문이 밀려 들어왔습니다. 한때 150
여명의 직원으로도 일손이 딸릴때가 있었으니까요.
미국 하이포인트 가구박람회 전시를 비롯하여 영국왕실, 부시 대통령 집무실에 납품
했을때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구편집장
가구라는게 경기를 많이 탈것 같은데 사업하면서 어려운 점은 무엇이며, 어떻게 극복하시
는지요?
한철우 동문
가구의 주재료는 목재이며,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관세도 높고 경기가 나쁘면
가구는 내구소비재라 매출이 30% 이상 떨어지기도 합니다. 항상 어려울때를 대비하고, 나만의
강점을 살려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끊임없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구편집장
끝으로 우리 동문여러분께 한말씀 하신다면?
한철우 동문
‘치펜데일’ 이란 18C 영국 궁중가구 장인인 토머스 치펜데일(Tomas Chippendale)의 이름입니다.
아무리 시대가 변한다고 해도 장인정신에 대한 제 소신은 결코 변함이 없을것입니다.
비록 출향하여 고향을 떠나 있지만, 고향에 대한 노스텔지어는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입니다. 소중한 6년간의 추억이 어려있는 모교에서의 3개교 화합대회를 진심으로 축하하며,
이렇게나마 동참하게 된것에 대하여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취재:구본정 편집위원장/정리:부성초 동문회 사무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