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의 향기
- 내가 사랑한 예술가 -
무엇을 쓸 것인가는 삶의 어떤 모습에 주목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되는 듯하다. 어렸을 때 작가는 범상치 않은 인물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천재와 광기. 요절하거나 광기에 사로잡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여성 작가인 경우 생애가 더욱 평탄해서는 안 되었다. 200년이 지나서도 젊은 여성들의 연애 세포를 자극하는 품격 있는 로맨스 <오만과 편견>을 쓴 제인 오스틴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를 번역 소개한 전혜린은 불꽃처럼 삶을 태우다 서른한 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시대를 잘못 타고난 비운의 천재 허난설헌은 짧고 불행한 생애로 더욱 가슴을 시리게 했다.
하늘거리는 창가의 난초 가지와 잎 그리도 향기롭더니
가을바람 잎새에 한번 스치고 가자 슬프게도 찬 서리에 다 시들었네
빼어난 그 모습은 이울어져도 맑은 향기만은 끝내 죽지 않아
그 모습 보면서 내 마음이 아파져 눈물이 흘러 옷소매를 적시네
허난설헌의 ‘감우’라는 시이다. 난초는 시들어버리지만 눈처럼 찬 공기 속에 난초 향기는 그대로 남아 있으니 곧 난설헌(蘭雪軒)이다.
달빛 비친 누각, 가을이 가도록 빈 옥 병풍
서리 내린 갈대밭에 내려앉은 저녁 기러기
거문고 한 곡조 타보아도 사람은 뵈지 않고
연꽃만 이울어간다, 들판의 연못에
쓸쓸한 가을 들판의 연못에서 혼자 이울어 가는 연꽃은 외로운 허난설헌 자신이리라. 난설헌은 자신이 죽고 난 뒤 작품을 모두 불태우라고 했다. 하지만 허균은 누이의 유고집을 꾸렸는데 “살아서는 부부 사이가 좋지 않더니 죽어서도 후사가 끊김을 면치 못했다. 어질고 문장이 높았으나 시어머니에게 사랑받지 못했다.”고 적었다.
허난설헌은 당대 최고의 문벌 집안에서 태어나 최고의 문학 교육을 받고 오라비 허봉과 동생 허균이라는 최고 문인을 형제로 두었다. 하지만 허난설헌의 뛰어난 재능과 당당한 태도에 대한 선망과 질시는 평범한 남편에 대한 놀림으로 돌아갔고 결혼 생활은 불행하고 외로웠다. 허난설헌은 ‘나에게 세 가지 한이 있으니, 첫째가 여자로 태어난 것이요. 둘째가 조선에 태어난 것이요. 셋째가 김성립의 아내가 된 것이다.’고 했다.
허난설헌은 연이어 아이들을 잃고 친정아버지, 오라비의 안타까운 죽음을 겪으며 스물일곱 해로 세상의 끈을 놓았다. 중국에까지 전해져 중세 동양 문화의 중심지에서 극찬을 받은 시인이었지만 후대로 갈수록 유학자들에 의해 악의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여성의 성을 표현하여 음탕하며 여성으로서 부덕이 부족했다는 악담이 그것이었다.
허난설헌을 꿈꾸던 시절은 이제 지나갔다. 불꽃이 꺼져버린 심장은 아무리 벼려도 무딘 칼날로는 베여도 피가 나지 않는다. 예리한 감성이 사그라진 자리는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그동안 고루하다고 외면했던 신사임당을 만나 삶의 지혜를 배워볼 요량이다.
커다란 수박 두 덩이가 바닥에 있고 아직 어린 수박 하나가 줄기에 달려 있다. 수박 하나는 밑 부분이 떨어져 나가 빨간 속살이 보이는데 그 앞에서 쥐 두 마리가 수박씨를 갉아먹는다. 이 그림에는 ‘오래오래 기쁨을 누리며 사세요.’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조선 시대 화가 신사임당이 그린 이 그림에는 <수박과 들쥐>라는 제목이 붙었다. 신사임당은 우리 자연에서 흔히 보던 풀과 벌레를 보이는 그대로 섬세하게 그려내고 자연 고유의 색으로 채색하였다. 당대에는 섬세한 필치와 색감으로 산수도의 높은 경지에 올랐다는 평가를 들었고 후대에 많은 선비들이 그림을 보고 시를 지어 붙였다.
그림이란 오랜 수련 과정이 있어야 하고 작업을 하려하면 공간을 넓게 차지할 뿐 아니라 시간도 오래 걸릴 터였다. 신사임당이 어려서부터 남다른 재능을 꽃 피울 수 있었던 배경에는 외가의 영향이 컸다. 사임당의 어머니 이 씨는 무남독녀로 친정 부모를 모시고 딸 다섯을 길렀다. 둘째인 사임당은 아버지 신명화에게 시, 서, 화를 배우고 경전을 익혔다. 결혼 후에도 바로 시댁으로 가지 않고 부모 곁에 머물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으로 삼년상을 치룬 뒤에야 시댁에 갔다.
늙으신 어머님을 고향에 두고
외로이 서울로 가는 이 마음
돌아보니 북촌은 아득한데
흰 구름만 저문 산을 날아 내리네
신사임당은 강릉에 홀로 계신 친정어머니를 그리며 눈물짓는 날이 많았다. 남편 이원수는 부인의 재능을 인정하고 자랑스러워한 도량이 넓은 남자였으나 학식이 뛰어나지는 못했다. 쉰 한 살에 벼슬길에 나가는데 그런 남편을 사임당이 무시하고 살림에 소홀했다는 이야기는 없다. 사임당은 칠남매를 두어 훌륭하게 키웠다. 둘째 아들 율곡이 학문으로 가장 뛰어났고 첫째 딸 매창은 사임당의 학문, 인격, 시, 글씨, 자수, 바느질을 모두 물려받았으며 넷째 아들 이우는 거문고, 글씨, 시, 그림 등 예술적 재능이 뛰어났다.
어쩌면 신사임당의 작품과 행적이 지금까지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율곡 이이라는 걸출한 아들을 두었기 때문일 수 있다. 현모양처라는 굴레와 함께 말이다. 하지만 사임당의 그림을 부덕이나 율곡의 어머니로 평가하는 것은 가당치 않은 일이다. 마찬가지로 허난설헌에 대한 편파적이고 부당한 평가는 오늘날에는 조소의 대상일 뿐이다.
유연하고 지혜롭게 삶을 경영했던 원숙한 여인이든 서리 맞은 연꽃처럼 기개가 높았으나 외로웠던 젊은 여인이든 예술과 삶에 진실하고자 했던 멋진 선배들의 숨결에 가슴이 뿌듯하다. 다만 타고난 재능이 없음에 스스로 한탄스러울 뿐이다. 눈을 감으니 어디에선가 깊고도 아련한 묵향이 풍겨오는 듯하다.
2014년 6월 5일
첫댓글 마지막 부분에서 한동안 가슴이 먹먹하여 먼곳을 응시했네요. 가슴이 저리고 긴 한숨을 내뱉었습니다. 안타까움과 슬픔이 동시에 밀어닥쳤습니다. 이번기회에 허난설헌에 대해 책을 읽어볼 요량입니다. 매력적인 인물이네요. 신사임당은 육아의 대가로만 대했는데 다시 보여지고요. 그들이 몹시 궁금해졌습니다. 그들을 궁금하게 만들게 하는 조용하면서도 강력한 그 무엇이 시경님 글에 그득해요. 좋은 선생님 두분을 소개받은 것 같아요. 시경님 감사해요. ^^
시경님의 내공 장난아님이 느껴져서 댓글 달기도 부끄럽네요. ^^;;
캘리님 말씀대로 허난설헌과 신사임당이 어떤 인물인지 자세히 알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시경님과 닮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허난설헌에 대한 책은 <난설헌, 나는 시인이다>/예담
을 읽어보세요.
저도 읽지는 않았으나 제 1회 혼불문학상을 수상한 최문희 작가님의 소설 <난설헌>도 있네요^^
글은 정말 그사람인가 봅니다.
읽어내는 마음도 정말 그 사람인가 봅니다.
같은 책을 읽어도 다르게 보아지고 소화하는 것도 정말 그 사람인가 봅니다.
멋진글 잘 읽었습니다♥ 안타까운 여인의 향기입니다♥감사합니다♥
허난설헌 하면 여자의 슬픔 여자의 한이 느껴져요. 슬프게 살다 갔지만 최선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도 진지합니다. 누구라도 삶의 아쉬움은 남는다고 생각합니다.
대조적인 삶을 살다 간 두 여성 예술가죠.
그러나 어떤 환경과 처지에 있더라도 변하지 않는 건 그 예술혼이겠죠. 우리는 그 예술가와 작품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요. 김시경샘에게도 그 예술혼이 엿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