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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BMW를 보면 얄미운 생각부터 든다. 연구 개발부터 생산, 마케팅까지 자동차 회사의 기본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은 물론, 세계 자동차 업체들에게 저주로 불린 ‘고유가와 친환경’이라는 위기 요소를 오히려 남들과 구별되는 경쟁력으로 특화시켰기 때문이다.
무슨 이야기냐고? BMW는 누가 뭐래도 잘 달리는 ‘드라이빙 머신’의 상징이다. 그러다 보니 연비는 늘 약점이었다. 미국차보다 연료 효율은 좋지만 아무래도 쌩하고 달리려면 기름을 펑펑 써야 한다.
그런 BMW가 2000년대 들어 고유가 시대가 닥치자 재빠르게 친환경이라는 시대의 흐름을 꽤 찼다. 기술력을 집중해 연비를 좋게 하기 위해 차량은 더 가볍게 하고 디자인은 공기역학으로 다듬었다.
세계 최초 발명이라는 타이틀이 수두룩한 엔진에서는 최적의 효율성을 지닌 터보 가솔린과 디젤 엔진을 앞에 내세우고 ‘이피션트 다이내믹스’라는 새로운 기업 이미지로 무장했다. 엔진뿐 아니라 디자인, 소재까지 연비를 극대화하기 위한 최적의 조합이라는 의미다. 연비는 올리면서도 잘 달리는 BMW 유전자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셈이다.
2006년에는 숙적 메르세데스-벤츠를 제치고 역사상 처음으로 고급차(프리미엄 브랜드) 시장에서 1위에 등극했다. 이후부터는 승승장구다. BMW뿐 아니라 자회사도 최고 매출을 기록 중이다. 1990년대 후반, 영국에서 인수한 미니는 호박이 덩굴째 굴러온 효자 노릇을 했다. 소형 고급차 시장을 새로 만들어냈다. 롤스로이스도 제 역할을 하며 초럭셔리카 시장에서 정상을 지키고 있다.
BMW의 역사는 독일 자동차 업계의 거인 메르세데스-벤츠와 투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00년대 초반부터 항공기용 V12 엔진을 만들던 BMW는 1938년 V12기통 엔진을 얹은 335 프로토 타입 승용차를 런던 모터쇼에 출시하며 기술력을 과시했다. 안타깝게도 이듬해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335 V12는 양산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항공기 엔진 제작에서 습득한 BMW의 노하우를 유감없이 보여준 사례였다.
그 후 거의 50년간 직렬 6기통에 매진하던 BMW는 기함 7시리즈가 메르세데스-벤츠의 대형 세단 S클래스에 밀리자 판세를 뒤집기 위해 1987년 V12기통 엔진을 부활시켰다. 2차 세계대전 후 독일 브랜드로는 처음으로 12기통 엔진을 2세대 7시리즈(E32)에 얹은 것이다. 1세대 7시리즈(E23)는 스포티한 대형 세단이라는 이미지를 쌓는 데 성공했지만, 고급차라는 이미지에서는 V8 엔진을 얹은 S클래스에 밀렸다. 하물며 BMW는 7시리즈 같은 대형 세단에도 직렬 6기통 엔진만을 얹고 있었으니, 여러모로 S클래스에 역부족이었다.
12기통의 위엄은 대단했다. 자동차 업계의 상식을 뛰어넘는 BMW의 도전은 단숨에 7시리즈를 S클래스의 경쟁자로 부각시켰다. 이후 20여 년 동안 발전을 거듭한 BMW의 V12 엔진은 최고급 7시리즈에 주로 장착되면서 고성능을 상징하는 BMW만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2009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연비를 앞세운 친환경 시대가 오면서 이 엔진은 사라지고, 더 작지만 힘과 효율성이 좋은 V10 엔진으로 대체됐다.
BMW의 역사 속에는 비행기와 엔진, 바이크 그리고 역동적인 자동차 이야기가 가득하다. 우선 로고부터 특이하다. 프로펠러 모양이다. 첫 사업이 항공기였기 때문이다. 회전하는 프로펠러 디자인은 ‘하늘에서 땅으로, 두 바퀴에서 네 바퀴로’라는 의미를 담았다. 본사가 있는 바이에른 주 창공을 상징하는 파란색과 알프스의 눈을 나타내는 흰색을 사용했다.
BMW는 자전거를 만들던 독일 기술자 칼 라프(Karl Rapp)에서 시작됐다. 그는 1913년, 항공기 엔진을 만드는 ‘라프 원동기 제작소’를 설립했다. 이것이 BMW의 모태다. 하지만 새 엔진은 형편없는 성능과 심각한 진동 때문에 잘 팔리지 않았다. 그러다 다임러(벤츠의 전신)의 V12 항공기 엔진을 조립 생산해 큰돈을 벌었다. 라프는 신규 사업을 한다며 1917년 회사를 떠났고, 동업자들이 이 주식을 사들이면서 회사 이름을 BMW로 바꾸었다. ‘바이에른에 있는 엔진 공장’이라는 의미의 바이에리쉐 모터렌 베르케(Bayerische Motoren Werk)가 원래 이름이다.
BMW는 1차 세계대전 때 V12 전투기 엔진을 납품해 떼돈을 벌었다. 하지만 독일이 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국이 되면서 항공기 산업은 붕괴됐다. 민항 수요조차 전무했다. 생존을 위해 BMW는 1924년 모터사이클,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었다. 항공기 엔진을 만든 경험을 살려 모터사이클 엔진도 항공기처럼 기통을 좌우 수평으로 달았다. BMW 모터사이클의 명성을 높인 수평대향 엔진이다.
BMW 자동차는 초기에 잘 달리지 못했다. 처음에는 영국 오스틴사의 승용차를 라이선스 생산했다. BMW는 이 차에 불과 15마력짜리 오토바이 엔진을 달았다. 잘 달린 차의 처음은 1936년에 출시한 독일 장교의 전용차 326 세단이다. 라디에이터 그릴이 사람의 콩팥처럼 둘로 나뉜 키드니 그릴을 단 이 차는 속도 제한이 없는 아우토반(독일 고속도로)을 질주했다. 고속질주 BMW의명성은 326부터 시작됐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BMW는 버릇을 못 버리고 다시 군수사업을 시작해 전투기 엔진을 만들었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독일의 패망으로 뮌헨 공장이 초토화됐다. 런던 폭격을 당했던 연합국인 영국 주도로 BMW는 1952년까지 일절 엔진을 만들지 못했다. 이때는 자동차 대신 자전거와 주방용품을 만들며 근근이 버텨냈다.
1955년에는 이탈리아 스쿠터 제조업자인 이소 스파에게 라이선스를 얻어 냉장고처럼 문이 열리는 ‘이세타’라는 차를 만들었다. 당시 수에즈 운하 봉쇄로 기름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이세타는 250cc 오토바이 엔진을 달고 최고 시속 88킬로미터를 냈다. 연비는 무려 18km/L나 됐다. 특이한 디자인에 희소성까지 겹쳐 아직도 자동차 광들의 인기모델이다.
BMW의 전성기는 1959년 독일 콴트 일가가 지분의 40퍼센트를 인수하면서 시작됐다. 독일 자동차 업체 가운데 유일하게 오너가 있는 회사가 된 것이다. 그동안 딱히 대주주가 없는데다 독일 자동차의 거인인 벤츠가 호시탐탐 BMW를 노려 경영이 불안했다. 당시 미국 GM이나 포드도 욕심을 냈다. 콴트 패밀리는 이사회 멤버로 참여할 뿐 사장 같은 경영진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대신 BMW를 대표하는 회장 선임은 콴트 일가의 동의가 있어야 했다.
이후 BMW는 후륜구동과 세계에서 가장 효율이 좋은 직렬 6기통 엔진으로 스포츠 세단의 명성을 차곡차곡 쌓아갔다. 지금처럼 3시리즈, 5시리즈, 7시리즈 등으로 이름을 붙인 것은 1972년부터다.
BMW는 1993년 일대의 전기를 맞았다. 당시 세계 자동차 업계는 ‘생산 대수로 빅5에 들지 못하면 망한다’는 인수합병이 대세였다. 비싼 고급차를 팔아 40년간 흑자를 내 곳간이 차 넘치던 BMW는 그해 영국 대중차 1위 업체인 로버를 인수했다. 인수 이후부터 파국이 시작됐다. 로버는 전륜구동이라 BMW와 기술 공유가 어려운데다 영국·독일의 문화 차이가 거세지면서 실패만 거듭했다. 결국 7년 만에 7조 원 이상을 날리고 단돈 1달러에 로버를 매각했다. 이후 메르세데스-벤츠의 크라이슬러 인수와 함께 자동차 업계의 ‘잘못된 인수’ 교훈이 됐다.
하지만 얻은 것도 있었다. 로버의 자회사였던 랜드로버를 통해 사륜구동 기술을 익혔고, 이를 통해 1990년대 말 SUV X5를 개발했다. 이 차는 미국에서 대성공을 거두면서 BMW가 2003년 ‘100만 대 클럽(연간 판매 기준)’에 가입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또 매각 과정에서 주옥같은 브랜드를 헐값에 주워 담았다. 영국 소형차 미니(MINI)와 귀족들의 명차 롤스로이스를 흡수한 것이다.
BMW는 MINI를 소형차 프리미엄 브랜드로 새롭게 재구성해 2001년 전 세계 시장에 선보였다. 새롭게 탄생한 MINI는 BMW 그룹의 최첨단 기술을 접목하고 감성적인 요소들을 지닌 기존 미니의 특성들을 살려내 전통적인 콘셉트를 미래 지향적인 스타일로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BMW의 브랜드 슬로건은 ‘Sheer Driving Pleasure(진정한 드라이빙의 즐거움)’이다. 그러한 슬로건답게 역동적이지 않은 차는 만들지 않았다. SUV를 만들 때도 유독 다이내믹한 SUV만 만들어 세상에 내놨다. 남들이 만들지 않는 쿠페형 SUV X6을 만들어 이를 확인시켰다. 사실 X6의 실내는 SUV의 기본인 넓은 공간과 달리 비좁다. 대신 잘 달리는 날렵한 디자인과 성능이 특징이다. 그래서 BMW SUV 대신 스포츠액티비티차량(SAV)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X6에 붙였다.(BMW 본사 상품 담당이 2005년 한국을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고 한다. 거리에서 쌍용자동차의 액티언을 보고 X6를 연상했다는 농담도 들린다.)
잘 달리기에는 무리인 SUV에 고성능 버전 M을 붙여 X5M과 X6M까지 만들어냈다. 555마력이나 되는 걸출한 엔진에, 4.7초만에 시속 100킬로미터까지 가속되는 초특급 SUV를 내놓은 것이다. 혹자들은 “SUV에 555마력 엔진이 왜 필요한가. 그렇게 빨리 달릴 필요가 있느냐”하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BMW는 별다른 말이 없다. BMW니까 그런 괴물 같은 자동차를 만든 것뿐이다.
요즘 판매 성장률만 따져 보면 BMW는 전 세계에서 한국이 가장 높다. 유럽·미국 같은 선진 시장에서는 벤츠에 늘 뒤졌다. 하지만 한국은 예외다. 1998년, 외환위기 때 상당수 수입차 업체들이 철수하거나 투자를 줄였을 때 BMW는 거꾸로 물류센터와 딜러망을 확장했다. 쉽게 끓는 냄비 같은 ‘다이내믹’ 한국인들의 소비 성향을 제대로 간파한 것이다. 여기에 독일인이 아닌 한국인 사장이 1999년 바통을 물려받아 14년째 장수하면서 독일과 한국의 특징을 잘 버무린 특유의 조직문화를 만들어냈다. BMW 코리아는 2000년부터 12년 동안 세 번(렉서스, 혼다)을 제외하고는 모두 수입차 시장에서 1위를 했다. 2012년에는 아무도 못 할 것 같은 연간 2만 대 판매를 훌쩍 뛰어넘었다. 2013년에는 신형 3시리즈까지 가세해 3만 대를 돌파했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독일 본사를 놀라게 하는 한국의 판매 숫자다. 2010년 이후 7시리즈 판매는 전 세계 5위(중국, 독일, 미국, 영국 다음), 5시리즈는 4위(독일, 중국, 미국 다음)다. 한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수입차인 520d는 전 세계 3위다. 일본은 이미 안중에도 없다. 2011년부터 판매 대수도 가볍게 일본을 제쳤다. 참고로 BMW의 전 세계 100여 개 지사 가운데 수입차 1등은 한국뿐이다.
나는 BMW가 한국 시장에서 강한 이유를 세 가지 꼽는다. 첫째는 무엇보다 강한 브랜드 파워다. 한국인에게 ‘BMW=럭셔리한 잘 달리는 차’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한국이 글로벌화하고, 유학생과 해외 주재원이 급증하면서 BMW는 어부지리를 얻은 점도 있다. 둘째는 한국 친화적 경영이다. 해외 어떤 자동차 업체보다 본사에서 한국에 신경을 많이 쓴다. 한국 수입차 시장의 폭발력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데다 한국인 사장의 세밀한 리더십이 잘 맞아떨어졌다는 점이다. 한국 소비자가 원하는 옵션을 개발하는 데 가장 적극적이고 빠른 대응력을 갖추었다. 셋째는 상품성이다. BMW는 수입차 가운데 가장 많은 제품 라인을 가지고 있다. 한때는 시장에서 판매하고 있는 차가 60종이 넘어 영업사원이 자사에 어떤 차가 있는지 모를 정도였다. 여기에 2009년 이후 ‘친환경=디젤=연비’라는 바람이 불면서 더욱 승승장구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2000년대 초까지 직렬 6기통 자연흡기 가솔린 엔진의 대명사였던 BMW가 한국에서는 연간 판매량의 70퍼센트가 4기통 디젤 모델이라는 점이다.
얄밉도록 잘 만들고, 잘 팔고, 확실한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까지 구축한 BMW가 시대에 맞춰 어떻게 변신하는지는 경영자라면 누구나 주목해야 할 요소다.
2007년, 독일 뮌헨 BMW본사에서 40대 후반의 마케팅 담당 여성 임원과 유럽에서 독일 이외에 특히 프랑스의 자동차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한국, 독일에 비해 프랑스 근로자들이 주당 36시간 일할 뿐 너무 많이 놀아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게 화제가 됐을 때다. 그는 “BMW 임원이 된 이후 거의 매일 야근이다. 토요일도 일할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12월에 2주일 이상 휴가는 꼭 즐긴다”고 답했다. 드라이빙 머신뿐 아니라 일하는 머신 같은 BMW라고 할까. 그래서 1등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BMW 본사가 있는 뮌헨에 가면 거리나 사람들이나 ‘BMW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깔끔하게 정돈된 세련된 거리와 BMW는 잘 어울린다. 태어날 때부터 기계공학적인 사고를 하게끔 하는 유전자를 이어받은 독일인의 전형이랄까. 시원하게 뚫린 아우토반과 푸르른 삼림, 큰 키의 독일인들이 검약하면서도 풍요롭게 삶을 즐긴다. 이런 분위기에 BMW의 균형 잡인,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디자인은 딱 맞아떨어진다. 번잡한 파리나 한국의 서울에서 느낄 수 없는 어울림이다. 자동차는 해당 국가와 지역을 반영하는 문화 코드라는 점에서 BMW와 뮌헨을 들여다보는 것도 재미있는 시각이다.
1980, 90년대 연세대와 국가대표 간판투수이자 롯데 자이언츠의 심벌이었던 고(故) 최동원 선수는 고급차의 선두주자인 독일 BMW와 흡사한 점이 많다.
최 선수는 강속구와 타자 앞에서 뚝 떨어지는 커브가 일품이었다. 전 타석에서 홈런을 맞은 타자와 다시 상대해도 강속구를 꽂아 넣으며 삼진을 잡아내곤 했다. 더구나 몸집이 크지 않았는데 와인드업만큼은 다이내믹하고 시원했다.
슬라이더나 포크볼 같은 다양한 구질은 없었지만 보란듯이 강속구로 삼진을 잡아내 고정 팬이 많기로도 유명했다. 나 역시 이런 최 선수 팬이라 야구장을 여러 번 찾아 빠른 볼이 보이는 포수 뒤쪽에 앉아 경기를 즐겨 보곤 했다. 최 선수는 두 가지 구질로 한국시리즈에서 혼자 4승을 거두는 세계 야구사에 전무후무한 기록을 만들어냈다. 2012년 국보급 투수라 불렸던 해태 타이거즈의 선동렬 선수와 맞대결을 그린 영화 〈퍼펙트 게임〉을 보면서 눈물이 나기도 했다.
BMW도 2000년 초까지는 그랬다. ‘드라이빙 머신(강속구)’과 ‘자로 잰 듯한 핸들링(낙차 큰 커브)’이 주무기였다. 메르세데스-벤츠처럼 다양한 차종을 구비하지 않았지만, 후륜구동을 고집하면서 고속주행으로 승부를 걸었다. 그래서인지 연간 100만 대 조금 넘게 팔면서도 꾸준히 이익을 내는 강소업체였다. 여기에 고정 팬이 유난이 많은 회사이기도 했다.
그런 BMW가 2000년대 중반 고유가와 친환경 시대라는 새로운 조류를 만나면서 변신했다. 강속구 위주에서 다양한 구질의 변화구 투수로 변신한 것이다. 최강의 엔진이자 부드러움의 대명사였던 자연흡기 방식의 직렬 6기통 가솔린 엔진 대신 연비와 구동력(토크)이 좋은 디젤을 주무기로 삼았다. 여기에 가솔린도 자연흡기를 버리고 압축된 공기를 불어 넣어 출력을 높이는 터보엔진이 주류가 됐다. 친환경이라는 암초가 강속구에서 변화구 투수로 변신시킨 것이다. 요즘 전 세계 BMW 판매의 절반 이상이 디젤이다. 쌩 달리면서 날렵한 핸들링을 자랑하기보다는 연비에 치중한다. 뭔가 이상한 것은 엄청난 개발비와 기술력을 투입해 출력을 높여 놓고는 연비를 위해 다시 감소시키는 장치(이피션트 다이내믹스)까지 달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피는 속일 수 없나 보다. BMW에 강속구 자존심이란 유전자는 신차가 나올 때마다 곳곳에 남아 있다. 친환경 세상을 한탄하는 것이 만사가 아니다. 강속구의 BMW 유전자를 고집하며 강력한 가솔린 엔진으로 승부를 거는 게 바로 M시리즈다. M은 서킷을 시속 300킬로미터로 질주하는 모터스포츠의 첫 글자다.
BMW의 M은 벤츠 AMG와 오랜 세월 경쟁을 이어온 고성능 브랜드다. M은 1972년, 레이싱 경험이 많은 직원 35명으로 구성된 모터스포츠 부서로 출발했다. 자동차 레이스에서 탁월한 성과를 내면서 M의 규모와 위상도 빠르게 성장했다. 급기야 1993년에 분사해 자회사로 거듭났다.
1980년대만 해도 M은 BMW 가운데 스포츠카 성격이 두드러진 모델만 추려 고성능 버전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젠 범위를 한껏 넓혔다. 급기야 2010년에는 거대한 덩치의 스포츠유틸리티(SUV)인 X5와 X6마저 손댔다. 현재는 7시리즈와 X1, X3을 제외한 전 차종을 아우른다. 맞상대 AMG를 의식한 결과다.
BMW의 M은 전형적인 독일 병정을 연상시킨다. 감성에 호소하기보다 철저한 기술로 승부한다. BMW만의 핸들링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그래서 심오하고 섬세한 운전이 어울린다. 20년 넘게 M을 개발해온 로란트 아스트 엔지니어는 M을 “엔진은 엑셀을 밟는 만큼 1분당 1만 회전수(RPM)가 넘는 까마득한 고회전에서도 활기차게 움직인다. 레이싱카 수준의 기계적 완성도에서는 경쟁 차 중에 최고일 것”이라고 자랑한다.
‘우릉’ 하는 배기음만으로도 자동차 마니아를 흥분시키는 M이 2012년 11월 40주년을 맞았다. 독일을 세계 최강의 자동차 산업으로 탄생시키는 데 일조한 길이 20.832킬로미터의 뉴르브루그링 노드 슈라이페 서킷에서 시승 행사가 열렸다.
가장 눈길을 끈 차는 M의 효시, 1978년에 출시된 오렌지색 M1이다. 당시 BMW가 모터스포츠의 최강자였던 이탈리아 람보르기니에 디자인과 차체를 위탁해 제작한 차량이다. 디자인부터 람보르기니 냄새가 물씬 풍긴다. 사람 신장 모양의 키드니 라디에이터 그릴과 보닛에 붙은 BMW 로고, 그리고 직렬 4기통 엔진이 BMW의 혈통이다. 서른 살이 넘은 32년 된 차를 그대로 복원해 안전장치만 추가해 서킷에서 타보는 것이다. 사실상 1970년대에 제작된 차나 2000년대 신차를 기계적으로만 뜯어보면 큰 차이가 없다. 1970년대에도 500마력에 육박하는 슈퍼카들이 줄줄이 나왔다. 달라진 점은 자세제어장치(ESP) 같은 반도체를 이용한 각종 안전 관련 전자제어 장비다. 전자기술이 접목돼 운전을 편하게 도와주는 각종 편의장치가 추가됐을 뿐이다.
M1은 이슬비가 내리는 서킷을 최고 시속 180킬로미터까지 무난하게 주파했다. 코너링도 전자제어장치가 없어 빗길에 미끄러지면 중심을 잡기 어려웠을 뿐 수준급이었다.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고성능 차이자 오늘날 M의 성공을 가져다준 1986년산 첫 M3도 시승차로 나왔다. 1톤이 조금 넘는 중량에 195마력을 내는 2.3L 직렬 4기통 엔진을 얹었다. 가벼운 중량 덕분에 출력이 제대로 전달될 뿐 아니라, 코너링도 일품이다. 차체와 엔진의 궁합이 절로 느껴진다.
2011년에 나온 M5는 괴물 그 자체다. 4.4L V8 엔진은 무려 560마력을 낸다. 연비도 수준급이다. 서킷이 아닌 일반도로에서 살살 밟아주면 7km/L가 넘게 나온다. M5는 4도어 세단에 트렁크도 넓어 출퇴근뿐 아니라 주말 레저용으로 쓰임새가 폭넓어 차를 좋아하는 전문직들이 선호한다.
통상 자동차 업계에서는 이런 차를 고성능차(Hi-Performance Car)로 분류한다. 주로 독일 업체가 대표적인데, 메르세데스-벤츠 AMG, BMW M, 아우디 RS, 폴크스바겐 R시리즈가 여기에 속한다. 미국 크라이슬러의 SRT도 비슷한 급이다. 현대차도 제네시스 쿠페를 필두로 고성능차 개발에 관심이 많다.
이들 업체가 만드는 고성능 버전의 공통점은 외관 디자인은 90퍼센트 이상이 일반 대중차와 똑같다는 점이다. BMW 3시리즈 세단이나 M3의 외관은 두꺼운 타이어와 M 로고를 제외하고는 쌍둥이처럼 닮았다. 하지만 성능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이 때문에 평상시 얌전하게 출퇴근하고 주말 가족용으로 쓰다가 갑자기 ‘필(feel)’을 받으면 전문 레이서로 변신을 가능하게 해주는 차다. 양의 탈을 쓴 늑대라고나 할까. 뻥 뚫린 고속도로에서 엑셀을 살짝 밟아주면 시속 200킬로미터를 손쉽게 넘긴다.
2000년대 초반, 고유가가 휩쓸고 지나간 이후, 또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 자동차 업계를 휩쓰는 화두는 ‘친환경’이다. 모두 연비에 신경을 바짝 쓴다. 예전 같으면 1억 원대 차량을 구입하는 소비자는 통상 최고 마력 같은 성능이나 고급 소재만 따졌는데, 요즘은 연비까지 꼼꼼히 챙긴다.
친환경 시대에 미운 오리새끼가 돼야 할 고성능차가 오히려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됐다. 신자본주의의 영향일까. 1억 원이 넘는 이런 차를 살 수 있는 부자가 늘어서다. IT와 금융 부자뿐 아니라 브릭스(BRICs) 국가에서 자원개발로 대박난 부자들이 이런 차의 주 고객이다. 돈은 넘쳐나지만 페라리, 람보르기니 같은 차는 매일 몰고 다니기에 부담스러울 뿐 아니라 주변의 시선을 너무 끈다. 남과 다른 것은 강조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부담스럽지 않은, 똑똑하고 괴력을 발휘해주는 차가 바로 고성능차다. 부자들의 눈길을 끌기 충분하지 않은가.
이런 고성능차의 또 다른 장점은 대량생산하는 양산차가 기본 뼈대라는 점이다. 최고급 슈퍼카보다 가격이 절반 정도로 저렴(?)해 통상 9,000만~3억 원 정도다. 페라리가 5억 원을 훌쩍 넘는 것에 비하면 아주 착한 가격이다. 여기에 양산차 개발에 쌓은 노하우가 그대로 녹아들어 똑같은 수준의 품질과 안전, 서비스를 보장한다. 고성능인 만큼 고속에서 이겨낼 수 있는 차체 강성과 엔진은 튜닝한다. 아울러 쌩 달리는 만큼 브레이크 성능은 양산차보다 두세 배 강력하다.
BMW M시리즈 이외에 각 브랜드 별로 고성능 버전의 성향은 뚜렷한 차이가 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고성능 버전 AMG는 벤츠 출신 엔지니어 둘이 의기투합해 1967년에 설립했다. AMG는 처음 메르세데스-벤츠와 아무 상관없는 독립회사였다가, 2005년 벤츠가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기술력과 노하우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AMG는 벤츠 거의 전 모델을 고성능 버전으로 만들지만, 초보 운전자도 다룰 수 있는 쉬운 운전을 추구한다. 하지만 배기음만큼은 레이싱카 수준이다. 가속페달을 밟는 깊이에 따라 머플러도 정확히 반응한다. 조용하다가 별안간 펑펑 터진다. AMG는 향후 5년 내에 차종을 현재의 22개에서 30개까지 늘릴 계획이다.
아우디의 고성능차 RS는 M과 AMG에 비해 좀더 모터스포츠에 가깝다. 1983년에 처음 나온 RS는 독일어로 ‘모터스포츠’의 약자다. 경쟁사와 달리 전부 사륜구동 방식이며, 연간 7,000대 정도 생산한다. 국내 시판하는 RS5는 V8 4.2L 자연흡기 직분사로 450마력을 낸다. 여기에 변속이 빠른 자동 7단 S트로닉을 짝지었다. 시속 100킬로미터까지 도달하는 시간이 4.5초밖에 안 걸린다. 특별한 운전 기술이 없어도 누구나 쉽게 다룰 수 있다.
폭스바겐은 대중차지만 고성능 버전 R시리즈를 만들었다. 대표는 2012년 국내에 선보인 시로코R이다. 엔진은 직렬 4기통 2.0L 가솔린 터보 직분사로 골프 GTI와 같은 구성이다. 하지만 출력은 265마력으로 GTI보다 54마력이나 더 높다.
크라이슬러의 SRT는 ‘스트리트&레이싱 테크놀로지’의 머리글자다. 크라이슬러 코리아가 2012년 출시한 300C SR8은 외관은 300C와 거의 똑같은데 엔진은 V8 6.4L로 세 단계나 올렸다. 472마력을 내고 시속 100km 가속을 4초대에 마치는 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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