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부족 상황이 갈수록 심해지는 가운데, 국민 건강을 위한 혈액의 원활한 확보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지난 7월 3일 헌혈 횟수에 따라 소득공제를 해주는 법안을 대표 발의한 김정권(46·경남 김해갑) 한나라당 의원의 말이다. 김 의원이 발의한 소득세법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된다면, 보건복지부가 매년 고시하는 산정가액에 따라 대략, 평균 5,000원 정도의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
김 의원은 “금액은 그리 크지 않지만, 이 법안이 통과되면 국가가 제도적으로 헌혈자들의 봉사정신을 지원한다는 입법취지를 살릴 수 있다”면서 “헌혈문화를 널리 확산하는 데 소득공제제도가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했다.
혈액을 ‘돈’으로 사고판다? 사실, 우리나라는 혈액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까지 학교와 군 중심의 단체헌혈에 의존해 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매년 학생들이 등교하지 않는 방학기간이나 휴가철만 되면 혈액수급 비상사태가 반복되곤 했다. 이러한 이유로 김 의원이 발의한 소득세법개정안이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처음 입법 단계에서는 난항을 겪기도 했다. “혈액을 돈으로 사고파는 게 아니냐”는 지적 때문이다. 이에 김 의원은 “국내 혈액수급 상황이 심각한 만큼, 내 아들 딸 가족이 응급실에 실려가 있다면, 사람의 목숨을 죽고 살리는 헌혈을 두고 ‘매혈’이라고 비판할 만큼 한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소득세법개정안의 진정한 의의는 소득공제를 받기 위해 헌혈을 하는 게 아니라, 생명을 살린다는 취지에서 자발적인 ‘헌혈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있다는 얘기다. 소득공제액은 비록 5,000원 정도의 금액이지만, 헌혈 홍보와 국민인식 개선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김 의원은 현재 헌혈을 증가시키기 위한 다른 방안도 검토중이다. 헌혈 필요성과 혈액의 사용, 건강헌혈 참여방법, 혈액형 이야기 등을 학교 교과서에 반영하는 방안이 그것이다. 이 외에도 법안을 준비하는 토론회 과정에서 “학생들이 헌혈 참여시 헌혈횟수를 생활기록부에 기재하고, 헌혈횟수를 봉사시간으로 산정하여 적용해야 한다, 국립공원·국립박물관 입장시 무료입장을 시켜줘야 한다”는 등 여려 의견들이 개진됐다.
중앙-시·도 업무 중복 심각 한편, 17대 국회 전·후반기 모두 행정자치위 상임위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 의원이다. 재경위 소관인 소득세법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을 물었다. “정치적 이슈보다 국민의 생활편의를 도모할 수 있는 ‘생활법’과 ‘생활정치’에 주력하고 싶다.” 김 의원은 이미 거주지와 관계없이 전국 어디서나 전입신고를 할 수 있는 주민등록법, 자동차등록원부의 열람 및 발급시 원부에 기재된 개인정보 유출을 막는 자동차관리법 등을 대표발의한 상태다. 김 의원의 국정감사 역시 ‘생활국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난해 그는 1급 이상 고위 공직자들의 불성실 재산신고 급증, 시·도별 화재발생률과 가정용 소화기 보급률의 상관관계 등을 분석해 공직사회의 각성과 대책을 촉구한 바 있다. 지난 4월 발의한 ‘정부조직법개정안’과 ‘지방자치법개정안’도 이러한 연장선상에 있다. 두 법안의 골자는 기존의 국가기관이 가지고 있던 중앙행정기관의 특별지방행정기관의 기능, 조직, 장비, 인력, 예산을 시·도 정부로 이관, 각 부처와 시·도가 핵심역량에 집중하도록 개선시키는 내용이다. 김 의원은 “중앙행정기관의 특별지방행정기관의 경우 중앙부처가 국회의 동의 없이 각 부처별로 대통령령으로 일방적으로 설립해 왔다”면서 “이로 인해 시·도와 업무가 중복돼 정비가 시급한 실정”이라고 했다.
‘유급 지방의회’ 감시 강화 당연 김 의원의 의정활동 방향이 생활법과 생활정치를 향하고 있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그는 3선의 경남도의원 출신이다. 앞서 김해 민주청년회 회장으로서 김해의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던 젊은 날의 기억도 생생하다. 김 의원은 얼마 전 원내 입성 이후 첫 지방선거를 치렀다. 한나라당의 경우 높은 정당 지지율 덕에 일찌감치 ‘공천=당선’이라는 판세가 결정돼 있었다. 하지만, 이같은 높은 기대치 때문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터다. 김 의원은 “막대한 부담을 지우면서 출발하는 ‘유급 지방의회’인 만큼, 그에 따른 책임과 시민들의 감시도 강화하는 것이 마땅한 이치”라면서 “당선보다 ‘당선 이후’에 공천기준을 맞춰 제대로 의정활동을 할 수 있는 후보 선출을 위한 공천 기준도 강화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금미 기자>nicky@ilyoseoul.co.kr
# 소득세법개정안이란?
헌혈 횟수에 따라 소득공제 혜택 김정권 의원이 대표발의한 소득세법개정안은 헌혈에 참여할 경우 보건복지부가 매년 고시하는 혈액의 산정가액(400㎖당 4만4,520원)과 그 횟수에 따라 소득공제 금액을 산정, 공제를 해주는 법률안이다. 매년 우리 국민의 평균 헌혈 횟수는 1.4회이다. 이를 기준으로 현재 평균적인 소득공제금액을 계산하면 ‘1.4회×4만4,520원×0.08=5,058원’이다. 따라서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헌혈 1회당 평균 5,000원 정도를 소득공제 받을 것으로 추정된다. 헌혈 횟수에 따라 소득세를 깎아주는 방안을 마련할 만큼, 우리나라 혈액 부족 사태는 심각하다. 가까운 일본이나 선진국은 30대 이후 직장인 세대의 헌혈인구가 50%에 이르는 데 반해, 우리나라 30~40대 직장인들의 헌혈은 17%에 불과하고 그나마 학생과 군인 등 단체헌혈의 의존도가 높다. 복지부가 혈액의 ‘장기수급전망’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2030년경에는 필요 수혈량의 44.5%만이 공급 가능할 정도로 혈액수급상황이 불안하다. 게다가 인구의 노령화에 따라 암 등 중증질환의 증가로 수혈 필요량은 앞으로 37% 증가할 것이라는 예견이 많다. 또 학생, 군인 중심의 헌혈자는 현재보다 32%가 감소해 심각한 혈액수급 불일치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김 의원은 “헌혈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피를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는 소중한 일이라는 사실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면서 “우리나라도 선진 헌혈문화 정착을 위해 30대 이후의 직장인들에게 자발적인 헌혈 참여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