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시인을 만나다|신작시-김현옥
김 외 1편
나를 풀고 너를 푼다
엷디엷게 서로의 일생을 풀어 헤친다
너와 나의 일생이 사라지고
너의 그리움과 나의 그리움 엉겨 붙어
네모진 인연이 햇빛 속 지상에 널려진다
바닷속 펄펄했던 꿈과 욕망 죄다 말려지고
거듭난 인연은 가뿐하다
비로소 세상으로 전송된 우리네 삶은
희망의 밥을 온몸으로 껴안으며 완성된다
마침내 육보시로 기꺼이 투신하기 위해
우리는 머나먼 길 고요히 건너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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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도 모르는 채
공원에서 뭐라고 뭐라고 혼잣말하며 할머니가 지나간다 갈 곳 없는 말들이 공중을 주춤주춤 걸어간다 긴 머리 소녀,란 노래가 흘러나오는 카세트가 담긴 휠체어가 지나간다 그 안에 앉아 있는 빼빼 마른 할아버지의 지루한 삶도 지나간다 옛 애인 같은 긴 머리 소녀가 노래에서 나와 기억 속의 찻집에 앉아 있다 어디선가 조영남의 제비,가 색소폰에서 날아오른다 영문도 모르는 채 제비 한 마리, 저 불렀어요? 하는 표정으로 꽁지를 까딱댄다
영문도 모르는 채
중얼거리며 지나가고 걸어가고 앉아 있고 날아오르고 까딱대다
문득 낯선 장면 속으로 들어가는 인생이라는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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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옥
-경북 영덕 출생.
-경북대학교 인문대학 영어영문학과, 동대학원 졸업.
-1994년 영남일보 신춘문예, 199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언더그라운드』, 『니르바나 카페』, 『그랑 블루』, 『룸펜들』, 『댄싱 붓다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