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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국 측 |
북 한 측 | ||
수석대표 |
박기륜(대한적십자사 사무총장) |
단 장 |
최승철(북한적십자회중앙위원회 상무위원) |
대 표 |
고경빈(이산가족대책본부 실행위원) 최기성(이산가족대책본부 실행위원) |
대 표 |
리금철(북한적십자회중앙위원회 상무위원) 최창훈(북한적십자회 부서기장) |
* 우리측 최기성 대표는 제2차 회담부터 참가(제1차 회담에는 김장균 이산가족대책본부 실행위원이 참가)
1. 제1차 남북적십자회담
제1차 남북적십자회담은 2000년 6월 27일부터 30일까지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개최되어 전체회의 4회, 실무대표접촉 2회 등으로 진행되었다.
우리측은 8․15를 전후하여 이산가족방문단을 우선적으로 교환하고 이산가족면회소를 설치․운영할 것을 제의하면서 9월중에 비전향장기수를 송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리측은 「이산가족방문단 교환방문」과 관련하여, 방문단은 인솔단장을 포함하여 이산가족 100명, 지원인원 30명, 취재기자 30명 등 총 161명으로 구성하며, 교환 방법은 8월 10일부터 12일까지 북측 방문단이 서울을 방문한 후 8월 16일부터 18일까지 남측 방문단이 평양을 방문하는 순차방문 형식을 제시하였다.
「남북이산가족면회소」 설치․운영에 대해서는 면회소를 8월중에 판문점 「자유의 집」 또는 「통일각」에 설치하여 월별 4회, 매회당 100명씩 면회를 실시할 것을 제의하였다. 아울러 서신교환도 매월 2회 이상, 생사가 확인된 숫자 내에서 실시할 것을 제시하였다.
「비전향장기수 송환 및 납북자․국군포로 귀환」 문제와 관련하여서는, 우선 비전향장기수의 경우 본인의 의사를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 원하는 사람은 이산가족방문단 교환 후 송환하며, 구체적인 송환방법 등은 9월중 협의하자고 하였다. 아울러 북측도 본인의사와 관계없이 남쪽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성의있는 조치를 취해야 할 것임을 강조하였다.
이에 대해 북측은 8․15 이산가족방문단 교환방문과 비전향장기수 송환 문제를 일괄 협의하되, 비전향장기수 송환사업을 우선 시행할 것을 주장하였다.
북측은 우선 8․15 이산가족방문단 교환과 관련하여 8월 15일부터 3박 4일간 동시에 교환방문하며, 방문단은 지원단장을 포함하여 이산가족 100명, 지원인원 30명, 기자 20명 등 총 151명으로 구성할 것을 제의하였다. 나머지 교환 절차에 관한 사항은 1985년 이산가족고향방문단 교환시의 전례를 따를 것을 주장하였다.
또한 북측은 비전향장기수 송환문제에 대해 우리측이 비전향장기수들에 대한 실태자료를 송환 15일전에 북측에 통보하면, 북측은 송환을 희망하는 인원들을 송환 10일전에 우리측에 통보하는 방식으로 하자고 제의하였다.
이와 같이 쌍방은 8․15에 즈음하여 이산가족방문단을 교환하고 비전향장기수를 송환한다는 기본입장은 같았으나, 우리측은 이산가족방문단 교환 합의후 9월중 비전향장기수 교환문제를 협의할 것을 제시한 데 대해 북측은 ‘선 비전향장기수 송환, 후 이산가족방문단 교환’ 입장을 고수함으로써 의견 접근을 보지 못하였다.
제2일차 전체회의에서 북측은 기존입장을 바꿔 8․15에 즈음한 이산가족방문단을 교환한 후 9월초에 비전향장기수를 송환하고 이어 적십자회담을 계속하여 이산가족면회소 설치 문제를 협의․타결하자는 수정안을 제시하고, 이를 우리측이 수용함으로써 곧 문안조정을 위한 실무대표접촉을 가졌다.
그 결과 방북 제3일째 열린 전체회의에서 쌍방은 「남북이산가족방문단 교환과 면회소 설치․운영 및 비전향장기수 송환에 관한 합의서」에 채택․서명하였다.
쌍방은 이 합의서에서 이산가족방문단 교환을 2000년 8월 15일부터 18일까지 동시 교환하고, 이산가족면회소를 설치․운영하는 데 기본적으로 합의하였으며, 북으로 가기를 희망하는 비전향장기수 전원을 2000년 9월초에 송환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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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차 남북적십자회담 합의서(요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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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이산가족방문단 교환 - 2000년 8월 15일부터 8월 18일까지 이산가족 100명씩 서울과 평양 동시 방문
o 이산가족면회소 설치․운영 - 구체적인 사항은 비전향장기수 전원 송환 즉시 적십자회담을 통해 협의․확정
o 북측으로 갈 것을 희망하는 비전향장기수 전원을 2000년 9월초 송환 |
2. 제2차 남북적십자회담
제1차 회담에서의 합의에 따라 우리측은 2000년 8월 26일 대북전화통지문을 통해 제2차 적십자회담을 9월 5일 오전 10시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개최할 것을 제의하였으나, 이에 대해 북측은 회신을 보내오지 않았다.
이같은 상황에서 북측의 김용순 특사가 9월 11일부터 14일까지 서울을 방문하여 우리측과 여러 차례 접촉을 갖고 남북간에 제기되고 있는 주요 현안문제들에 대해 협의하는 가운데 제2차 적십자회담 개최 일자도 합의되었다.
이에 따라 제2차 적십자회담이 9월 20일부터 23일까지 금강산호텔에서 개최되었다.
우리측은 이산가족 생사 및 주소확인 사업과 관련하여 동 사업을 9월중에 시작하여 빠른 시일내 마칠 것과, 10월 중순부터 매월 2회 통보하고, 서신교환은 10월부터 매월 2회씩 실시할 것을 제의하였다.
또한 이산가족면회소 설치․운영사업에 대해서는 판문점 자기측 지역에 설치하여 매주 쌍방 각기 100명씩 면회를 실시하는 방안을 제시하였으며, 이산가족방문단 추가교환 사업과 관련해서는 2차 방문단을 10월 16일부터 18일까지, 3차 방문단을 11월 16일부터 18일까지 교환할 것을 제의하였다.
아울러 우리측은 1차 적십자회담에 이어 납북자, 국군포로 문제도 넓은 의미의 이산가족해결차원에서 풀어나갈 것을 촉구하였다.
이에 대해 북측은 이산가족방문단 추가교환은 연내 2차례 추진하되, 생사․주소확인, 서신교환 등은 분단 이후 처음으로 하는 사업인 만큼 단계적으로 추진할 것을 주장하였다.
생사․주소확인 사업은 경험부족 등을 내세우며 시범적인 단계를 거쳐 점차 확대하자고 주장하였고, 서신교환과 관련한 구체적 문제는 12월 중순경 제3차 적십자회담을 개최하여 확정하자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이와 함께 북측은 이산가족면회소 설치․운영문제와 관련 금강산에 면회소를 설치하되, 운영과 관련한 실무적 문제는 12월 중순에 결정할 것을 주장하고, 이산가족방문단 추가교환은 2차를 11월 2일부터 5일까지, 3차를 12월 5일부터 8일까지 실시할 것을 주장하였다.
쌍방은 여러 차례의 수석대표 접촉과 실무대표 접촉을 통해 상호 수정안을 제시하는 등 절충을 계속하여 이산가족문제 해결을 위한 세부사업에 대해 합의하였다.
그 결과 쌍방은 제2차 이산가족방문단을 2000년 11월 2일부터 4일까지, 제3차 방문단을 12월 5일부터 7일까지 교환키로 하였다.
생사 및 주소확인사업에 대해서도 시범적으로 9월에 100명, 10월에 100명씩 교환하고 서신교환은 이산가족찾기 신청자들의 생사․주소가 확인되는데 따라 진행하며 11월중에 시범적으로 생사․주소가 확인된 300명을 대상으로 서신교환을 실시하고 점차 규모를 확대해 나가기로 하였다.
한편 이산가족면회소 설치․운영사업은 제3차 적십자회담에서 협의․확정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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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차 남북적십자회담 합의서(요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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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이산가족방문단 추가교환(100명씩) - 제2차 교환은 2000년 11월 2일부터 4일까지, 제3차 교환은 12월 5일부터 7일까지 동시 교환
o 이산가족찾기 신청자 명단을 교환하여 생사․주소확인하여 통보 - 9․10월에 시범적으로 100명씩, 그 후 교환 규모 확대
o 이산가족 생사․주소확인 후 서신교환 - 11월중에 시범적으로 생사․주소확인된 3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점차 규모 확대하며, 구체적 문제는 제3차 남북적십자회담에서 협의․확정
o 제3차 남북적십자회담을 통해 이산가족면회소 설치․운영에 따른 구체적 절차문제를 협의․확정
o 제3차 남북적십자회담 12월 13일부터 15일까지 금강산에서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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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12월 개최하기로 한 제3차 적십자회담은 북측의 사정으로 2001년 1월말(29 ~ 31일, 금강산)로 연기
첫댓글 통일백서 대부분이 긴 글이어서 읽기에 부담이 가실 것입니다..그러나 우리의 역사이기에 제목이라도 기억해두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특히 통일편지를 쓰는 관촌중학교 친구들에게는 한 번쯤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귀중한 자료라고 생각함.
제 아이들에게도 읽게 해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