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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은 정말 비극…무용으로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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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이 만난 사람]현대무용가 홍신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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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은 동양인 무용수가 우리 전통 곡소릴 내는 것으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객석은 숨을 죽였다. 죽음의 의식들을 변형시켜 구성한 정적인 무용 '제례'. 50명 도전해서 다섯명 쯤 무용가의 길이 열린다는 세계 실험예술의 본고장 뉴욕. 1973년 3월이었다. 같은 해 9월, 한국에서는 국악인 황병기의 주선으로 올려졌다. 엄청난 관객, 무용계가 발칵했다. 반응은 엇갈렸다. '춤도 아니다'고 한 이들은 대개의 무용가들, 평론가들은 "1940년 이후 처음보는 감동적인 독무였다"고 크게 호평했다. 뉴욕타임즈는 이례적인 평으로 동양의 정서를 이해하고 젊은 예술가의 탄생을 알렸다. 그녀, 홍신자였다. 중국의 저명한 평론가 우장핑은 「세계 무용사를 만든 18인」에서 홍신자를 이사도라 덩컨, 니진스키, 마사 그레함, 머스 커닝햄 등의 위대한 인물들과 함께 선정했다. 동양 전통미학에 뿌리를 둔 무용이라며. 국내에서는 황병기·백남준·김덕수 등의 예술인과 장르를 넘나드는 활동을 했다. # 고희 앞둬 솔로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 고희를 눈앞에 둔 그녀가 한시간의 솔로 '고도를 기다리며'를 췄다. 작년 11월 뉴욕. 사무엘 베케트의 베스트셀러를 배경으로 한 무용. '고도…'는 세계에서 공연을 안 한 곳이 없는 연극이지만 무용은 세계 초연. 라이브 음악, 춤과 연기가 결합된 댄스 드라마였다. "무용에 극적인 요소가 너무 많다. 이것은 경이롭다"고 뉴욕의 신문들이 평했다. 서울 예술의 전당 무대에도 올려졌다. 50㎝ 높이의 철제신발을 신고, 대나무 장대를 어깨에 걸친 채 망토를 걸치고 나오는 무용수들, 아슬아슬한 고통의 걸음에 관객들은 숨죽인다. 그들은 우리의 삶 자체가 순례 아닌가 묻는다. 1997년 국내 초연이래 제주에서도 선보인 작품 '순례'. 15개국을 순회하면서 지난해까지 이어져왔다. 지난 2월 예술의 전당에서 이 무용극 '순례'는 '순례자'로 새롭게 변신, 주목을 끌었다. 한단계 더 구원과 해탈로 나아갔다는 평. 현대무용가인 홍신자에게 전위무용가란 이름은 왜 꼬리처럼 붙어다닐까. "60~70년대 뉴욕에서는 전위적, 아방가르드가 유행했죠. 앞서가는 여러 무용이며 연극이며 미술이며 앞서가는 사람들보고 전위라고 했잖아요. 내 무용이 앞서갔는데, 한국에서는 무슨 카테고리에 속하냐? 물었죠. 뉴욕에서 아방가르드라고 했다했죠. 언론은 '전위'라고 표현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전위무용은 빨개벗고 하는 것 아니냐는 이상한 인식이 된거죠. 퍼포먼스로 알고. 그때 한국 실정을 전혀 몰랐으니까. 물론 현대무용이죠." # '이게 아닌데'…갠지스강에서 찾은 건 '웃음' "어디서 계집애가 흰 이빨을 드러내 소리까지 내며 웃는거냐!" 이른바 뼈대있는 충청도 시골양반 집에서 태어난 아이. 소리내 잘 웃던 그 아이에게 주위 어른들의 이런 소리가 늘 따라다녔다. 그런 시련속에서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실컷 웃는 것이 어린시절의 꿈. 허세나 억압이 빚어내는 무표정과 무감응이 미덕이던 집안에서 늘 그 구속을 벗어나고자 꿈꿨던 아이. 사람 사는 모습을 보면 '이게 아닌데' 했던 아이. 한국전쟁 때 열살. 아이의 눈에 슬픈 전쟁이 비쳤다. 온갖 인간 드라마가 벌어지는 비극을 보면서 슬픈데도 '이게 아닌데' 가슴이 답답했다. 사람 사는 삶, 이게 아닌데…분명 다른 무엇이 있을 터였다. 그것을 찾아봐야 했다. "어느 저기 항구에서 배 속의 화장실에 가서 숨어 있다가 내리면 된다 그런 생각도 해봤어요. 어딘가 떠나야겠다. 여기는 아니고, 이것도 아니고. 어떤 일이 있어도 화도 안나고, 진지하게 화가 나거나 행복하거나 이런 것 없었어요." 뭔가 갈구했으나 보이지 않았다. "그게 무엇일까. 나는 이 미스터리를 찾아야겠다. 모든게 미스터리잖아요." 공부도 그랬고, 진지하게 참여할 수가 없었다. 그 물음을 찾아나섰을 때, 대학 졸업하고서였다. 그때의 당돌한 명제, "나는 앞으로 하고 싶은 것만 하고, 하고 싶은 것이면 무엇이든 한다." # 춤은 내 운명…"대충하면 안보이죠" 1990년대, 나는 그녀의 자전 「자유를 위한 변명」을 읽으며 '참 늦게도 무용을 시작했네' 했었다. "춤은 운명적인건데 찾으니까 보인거죠. 내가 열심히 찾으면 뭐가 보이드라구요. 열심히 다 비우고, 다 놓고 찾으면 보여요. 우리가 그런식으로 안 찾으니까 안보이죠." 그녀에게 춤의 길은 뜨겁게 왔다. 호텔경영학을 공부하던 미국 유학 1년만이었다. 현대 무용의 대가 알윈 니콜라이 무용을 우연히 보던 날. 전율이었다. 온 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 그 장면에 '저것이다' 하는 깨우침. 춤으로 분출하자. 춤을 위해 근육을 찢었다. 팔도 다리도 목과 어깨도 허리도 찢었다. 온갖 고통을 감내하면서 찾은 길. 춤만큼은 가장 솔직했다. "무대에 세워 놓아 봐요. 다 보이는데. 춤은 속일 수 없잖아요. 다른 장르와 달라요. 무용은 나서서 다 보여야 하는데 어떻게 속여요. 발개벗고 서야 되는건데. 뭔가 진실하게 열정이 없으면 안되는 거잖아요. 극한으로까지 몰아가서 나를 시험대 위에 올려놓고, 거기서 나와의 싸움이 시작되는거죠. 살짝 감추고서 대충 하는 건 못견디겠더라구요. 대충 사는 건 싫었어요." 열정적인 그녀, 구도의 길도 그랬다. "내가 한번 살아보자. 완전히 나를 다 시궁창에 넣고 거기서 조금씩 조금씩 살아나고." 한때 영적인 스승으로 라즈니쉬 열풍이 우리나라에도 불었었다. 그가 일으킨 바람이다. "라즈니쉬 못만나면 홍신자라도 만나보자." 그랬다. 한국에서 인도에 가기 전 도 닦았다는 스님들, 도사들 다 찾아보고 미국에서 다 찾아 다녔다. 우연히 테이프로 들었던 라즈니쉬는 그가 남겨둔 마지막에 만날 사람. 인도로 갔다. 일주일 고민 끝에 그의 제자가 됐다. 1976년. 순례자로 이리저리 떠돌며 그냥 맨 땅에 얼굴 부비며 잠을 자본 적도 있었다는 그녀. 어느 곳에서도 깨달음을 경험할 수 없던 때, 갠지스강 옆에서 크게 밤이 새도록 크게 웃고 또 웃었다. '웃는 명상'. "알고 보니까 죽느냐 사느냐 내 몸도 아니고, 다 떠나고 알고보니까 허전한 거였어요. 그러니까 웃음밖에 안나죠. 맨 마지막에 남은 것. 래핑, 웃는 것이었어요. 울음과 웃음은 동전의 양면이죠. 울음이 웃음이 될 수 있고, 웃음이 울음이 될 수 있고 말이죠. 대단한 차이가 있는 것 아니예요." 1981년 그가 창단한 무용단 '웃는 돌'. 그는 이 이름을 그가 한때 살았던 하와이 볼캐노 정글 속 그의 집 앞에도 적어놓았단다. 돌도 웃고 있지 않은가. 사람인들 왜 못 웃으랴. 생명있는 것만이 진정 웃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 설문대할망 테마 무용 준비…4·3 무용도 "내 인생은 10년 주기로 확확 변해야 돼요. 완전히 다시 시작하고. 그렇지 않으면 녹스는 기분이 드는거죠. 그래서 죽산도 떠나려해요. 다음이 제주도예요." 제주도의 자연에 매료돼 1980년대 초부터 드나들었다는 홍신자. 이 무용가는 요즘 제주도의 자연과 신화, 역사에 묻혀있다. 그녀의 제주도로 오는 꿈은 오래된 것. "제주자연이 좋아요. 자연스럽게 올겁니다." 그녀의 춤을 우리는 내년 제주에서 보게된다. 솔로 '고도를 기다리며'와 설문대할망을 테마로 작품. 내년 제주돌문화공원 특별전시관 소극장 개관기념으로 올려질 예정. 설문대할망이란 테마가 그녀와 맞아 떨어진다. 무용가 홍신자. 그녀는 이 땅에 얽힌 역사가 눈에 선해서 더 가슴 아프다. "4·3은 정말 비극적이죠. 여러 고통받는 육신들의 장면이 연상되더라구요. 무용단 외에 주민들도 참여하는 역동적인 장면이 떠오르기도 해요. 이미지가 연상됐어요. 제주에 살면서 만들고 싶어요. 내가 하는 무용은 심플해요. 일반적인 테크닉이 아니기 때문에. 제주도 무용인들하고 작업을 하고 싶어요." 데뷔작 '제례'였던 그녀, 제주에서의 해원도 어떤 제례가 되는 셈이다. 헌데 나이를 잊게하는 저 몸은 어떻게 관리하는 건가. 특별한 비법이 있는걸까. "배고프면 밥먹듯이 몸관리를 좀 해줘야죠. 막 써먹기만 하면 안되죠. 관심있으면 다 보이죠. 당연하죠. 나는 엄청난 스트레칭 이런 것 안해요. 아침에 일어나서 한시간 동안 눈부터 마사지해요. 거기서 혼자 몸에 대해서 다 푸는거죠. 몸이 부드러워지면 일어나고, 또 걷고, 몸에 무리가 있다하면 얼른 풀어요. 마음으로도 풀 수 있고, 호흡으로도 풀 수 있고, 손으로도 풀 수 있고, 마사지로도 풀 수 있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다 삶이예요. 순간 순간 명상이 돼야해요." 그의 구도의 중심은 춤이다. 그는 잘 웃고 잘 운다. 83세 이사도라 덩컨의 수양딸 테레사 덩컨의 무용공연을 보고 그 역시 더 늙어서도 순수하게 춤을 추고 있으리라 예감했다. 그는 뜨거운 용암의 대지에서 춤을 출 것이다. 제주의 파도, 바다의 호흡을 느끼며. 모든 것을 비운 춤, 그의 춤은 마침내 궁극적으로 자유로 가는 몸짓이다. 그녀는 그렇게 죽는 날까지 울고 웃고 춤 출 것이다. 생을 흡입하듯. 글·사진 허영선(시인/전 제민일보 편집부국장) ysun6418@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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