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 전부터 이곳에서 알게된 언니로부터 급 전화가 왔습니다. 막내 아들이 멀리 수련회 가는 바람에 갑자기 프리한 시간이 생겼다면서 느닷없이 가평 바람쐬러 가잡니다. 이름하여 가을 나들이. 이수역에서 아침 10시 반에 만나기로 하고 약속을 잡고 드뎌 오늘 집을 나섰는데 워낙 길치인지라 일찌감치 도착하여 근처 던킨도너츠 가게에서 냄새 좋은 아메리카노 한잔에 버터 바른 어니언 베이글로 아침을 대신하며 주동자 외에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들을 기다렸습니다.
심심하여 한컷.
넓은 이수역 6번출구는 보도가 하도 넓어서 6차선 같았습니다. 러쉬 아워를 지난 시간인데도 오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가운데에 차량 출입 통제용으로 세워 둔 동그란 의자 모양의 대리석 블록에 걸터 앉아 사람 구경하고 있으니 눈 앞에서 희멀근 차가 급정거하더니 얼굴에 반쯤 되는 선글라스를 끼고 검은 바바리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조안언니가 차에서 내렸습니다. 내 배낭을 실을려고 차 트렁크를 여니 그 안은 집에서 냉장고를 털었는지 수퍼를 털었는지 소풍 용 등나무 바구니에 먹을거리가 가득 들었습니다. 이대로 세 여자가 유럽횡단 열차를 탄다고 해도 굶어 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고~고~ 춘천 가도로 방향을 잡고 서울을 빠져 나갔습니다. 오른쪽으로 한강이 보이고 멀리 뿌연 도시 스모그 넘어로 하남시 마천루같은 아파트 단지들도 보입니다. 터푸한 조안의 곡예 같은 운전으로 간이 붙었다 떨어졌다 하기를 여러번 춘천 가도로 들어가니 들녘은 가을입니다. 길 옆에 막 뽑아 올린 당근이 쌓여 있길래 차를 세웠습니다. 한 꾸러미 만원인 것을 오천원치만 달랬더니 마트에서 이만원치도 넘는 양을 줍니다. 고구마 밭엔 고구마 순이 너부러져 있습니다. 고구마를 켜 낸듯 한 고랑에 흙이 파헤쳐져 있길래 후다닥 그 밭으로 들어가 가을 걷이가 끝난 고구마 밭에서 떨궈진 잔챙이 고구마들을 주워 모았습니다. 금새 한보따리입니다. 고구마 순도 한 보자기 따다가 달리는 차 안에서 펜션에 도착하여 저녘 반찬으로 끓여 먹기로 한 된장국을 상상하면서 열심히 고구마 줄기 껍질을 벗겼습니다.
운전하는 언니가 갑자기 운전대를 오른쪽으로 휙 꺽었습니다. 청평호랍니다.
차야 운전사 맘대로 가겠지만 영문 모르는 내가 왜 그냐고 물었더니 구경할 좋은 곳이 생각났답니다.
잘 꾸며놓은, 커피 볶아 만들어 주는 카페가 청평호 가에 이었습니다. 커피향기가 코를 살랑살랑 간지럽혔습니다. 뜰엔 고기 구워 먹기 좋게 토굴도 만들어 놓고 흙담으로 구별도 해 놓고 돌 담도 군데군데 만들어 놓았습니다. 여럿이 와서 함께 놀다가기 좋은 곳 같았습니다만 난 가난한 무수리라 ......음.........
두 여자는 가는 길을 잊은 듯합니다.
유유자적 놀고 있습니다.
과꽃이 싱그럽게 만발을 했습니다.
길을 쫌(?) 헤메다가 민주언니의 저돌적(?)인 드라이버 솜씨로 그리 많은 시간 낭비 않고 드디어 버들치 펜션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우리는 예약된 대로 쥬얼리로 들어갔습니다.
후후~
그곳은 복층으로 되어있었고 전망 좋은 개울가 언덕베기였습니다. 각 방 이름도 쥬얼리라는 펜션이름 답게 에메랄드, 진주, 사파이어 ... 등등 보석이름을 따서 메인 문 위에 걸어 놓았습니다. 내부 인테리어 역시 보석이 가지고 있는 각각의 색깔과 깔 맞춤해 놓은 듯합니다. 우리 방은 사파이어 였든가 루비 였든가 암튼 실내가 온통 붉은 색이었습니다. 쫌 음산 섹시 뭐 이런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두 여인은 빨간색에 적응안된다면서 보라색 방으로 옮기자고 서너번을 이방 저방 탐색을 하는데.... 난 말을 안했지만 보라색을 띄는 보석이 없지 않나 싶어 가만히 있었습니다.
위 사진은 위층 침실입니다. 아래층은 와인 바에 온듯한 식탁과 의자가 놓여 있고 욕실은 스파시스템이 들어 있었습니다.
가져간 짐을 싸그리 차에서 빼내어 거실로 옮겨 놓고 편안한 옷차림으로 산책 길에 나섰습니다. 가을 걷이가 한창인 산천은 먹을 거리로 풍성합니다. 주인따라 가버렸는지 호박하나 달려있지 않은 넝쿨에서 마지막 남은 잎을 땄습니다. 우리는 호박잎을 따면서도 연신 저녘 반찬 이야기를 하며 계란 한판 머리에 이고 가는 사람처럼 공상망상에 젖었습니다. 된장국에도 넣고 호박 쌈도 하고 ^^*
주인없는 야생 밤나무 아래서 그야말로 알밤 같은 토실한 밤을 주었습니다. 밤알 따라 계속 돌아 다니다 보니 손이 가시에 찔리는지 옷이 긁혔는지도 모르고 시간 가는지도 모르고 각자 주머니란 주머니에 한 가득 채워 넣었습니다.
이일 저일, 이꼴 저꼴 다 내려 놓고 이왕 나선 길 세여인은 조용조용 길을 걸었습니다. 자연이 아름답습니다. 큰 도로에서 한참을 들어간 곳이라 그런지 시냇물 소리외에는 주변이 조용합니다. 들판도 부잡스럽지 않습니다.
코스모스 꽃을 꺾어 가위바위보로 꽃잎 따기하여 저녘 당번을 정했습니다. 난 제일 먼저 꽃잎을 없앤 덕으로 저녘 당번에서 열외가 되었었는데 펜션에 돌아와서는 결국 제가 저녘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두 여인은 두어시간 산책 후 펜션에 돌아 오더니 소파위에 그만 퍼져버렸다는 것.
고딕스럽게 생긴 커다란 밤나무 아래서 동심으로 돌아가 잠깐 모델도 되어 보고
누우런 황금 들판을 가로 질러 걸으며 메뚜기도 잡고
탐스럽게 꾸며 놓은 이웃 펜션도 구경했습니다.
어디서 날라와 뿌리를 내리고 자랐는지 모를 콩이 주렁주렁 달린 콩대도 꺾었습니다. 돌아 다니다 득템한 것들은 길 옆 풀 숲 군데군데에 살째기 숨겨 두고 가던 길을 계속 걸었습니다. 산그늘이 지기 시작할 때 쯤 어느 마을에 들어 갔습니다. 들에 갔다 돌아 오시는 허리 꾸부정한 할머니를 만나 배꼽 인사도 드리고 학교 갔다 돌아오는 꼬맹이랑 놀기도 하고 엄마 손 잡고 형아 마중 나온 두돌배기 아가랑 메뚜기도 잡았습니다. 에고~ 그런데 그 귀연 놈이 메뚜기 한마리를 발 밑에 놓더니 바싹 밟아 버렸습니다. 내가 말릴 틈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입니다. 창자가 낭자. 마지막 꼬물탕 거리는 그 메뚜기를 좋다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내 얼굴 한번 메뚜기 몰골 한번 번갈아 보면서 헤벌쩍 웃습니다.
낮선 사람들을 경계하는지 우리 소리를 듣고 집집마다 개들이 난리부루스를 칩니다.
왈왈~ 웩웩~ 멍멍~ 켁켁~ 츠암네~ 치사빤스왕빤스다~! 더러버서 간다 가~~~~~~
턴을 하여 길 옆에 숨겨 둔 밤이며 호박잎이며 콩들을 하나씩 거두면서 펜션으로 돌아 왔습니다.
저녘을 해 먹고 세 여자가 각자 쪼대로(?) 걸터 앉아 밤이 저물도록 도란도란 인생만사 돌아가는 이바구를 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눈 뜨니 아침입니다.
지난 밤 스파를 하며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궈서 그런지 달콤한 잠을 잤습니다. 개운합니다. 두 여인은 2층 침대에서 아직 기침 전입니다. 테라스 문을 열고 밖으로 성큼 나가니 차가운 공기가 영혼을 깨웁니다. 쭈욱 기지개를 켜다가 문득 어제와 달라진 먼산이 눈에 들어 옵니다. 밤새 하느님이 열심히 일을 하셨나 봅니다. 분명 어제 저녘 때는 단풍이 들락말락했던 것 같았는데 눈 앞에 펼쳐진 아침 산은 울긋불긋 금방이라도 망울을 터뜨릴 것 같은 기색입니다. 비도 옵니다. 산 안개도 살짝 깔려있습니다. 테라스 통나무 의자에 앉아 어제, 혹시나 싶어 주인 아저씨로부터 꼬불쳐 놓은 담배를 하나 꺼내어 불을 붙였습니다. 깊게 한 모금 들이마시고 길게 내 뿜었습니다. 후유~~~~~~~~ 아~ 그냥 낮은 신음이 나옵니다.
밥솥을 열어 보니 어제 먹다 남은 현미 밥이 아침으로 먹고도 남을 만큼 많이 남아있습니다. 싸온 김치를 유일한 냄비에 통째로 털어 넣고 양념으로 넣을 수 있는 것들 재다 썰어 넣어 전기 스토버에 올렸습니다. 부시럭부시럭 2층에서도 인기척이 들립니다. 내가 너무 부산스러웠나.... ㅎㅎㅎ
아침을 먹고 나니 비는 조금 더 굵어 졌습니다. 그래도 서울 내려 가는 길에 아침 고요 수목원 들릴 욕심에 열시 쯤 짐을 쌌습니다. 돌아 오는 길은 더 싱그럽습니다. 수다도 늘었습니다. 아침고요수목원 갔냐구요? 차 안에서 수다떠느라 지나쳐버렸습니다 흑~.
길 옆에 커피와된장(?)이라는 카페가 있었습니다. 이름이 참 거시기 하여 들어가 보았더니 실내 분위기가 이름 그대로 입니다. 자리는 명당인데 ...... ^^*. 위 사진은? 뭘로 먹을까 메뉴 선택중에 서로 한턱 쏘겠다고 세 여자가 카운터 앞에 섰습니다.
결국 이렇게 커피와 과자(맛있었습니다)를.
옆에 된장 고추장 강된장을 놓고 ㅎㅎㅎ.
이곳에서 우리는 전문 사진 동호회 활동하는 분들을 만나 잠깐 모델이 되어 주었씁니다. 순전히 억지로 우리 고집으로 한 모델이었지만 모델료 대신 사진을 보내 주기로 하였는데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두물머리도 들렀습니다. 바로 옆에 수밀원이라는 카페가 있습니다. 언니는 이곳도 빠삭(ㅋㅋ)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수밀원 안은 카페는 명분이고 그림 전시장입니다. 주로 유화 작품인데 딱 내 스딸.
벽난로를 켜 놓아 따뜻했습니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두물머리 선착장.
저 나룻배는 연출인지 실제 탈 수 있는지 엄청 궁금.
두물머리 옆 연 밭 위 노천 카페에서 케이블 방송 어린이 프로 촬영이 환창이었습니다.
꼬맹이들이 얼마나 이쁘든지.
벌써 오후 두어시가 되었습니다. 저녘 나절 각자 약속들이 있어 돌아 오는 길을 서둘렀는데 또 옆으로 샜습니다. 오다보니 길 옆 이정표에 유기농 마을이라 씌여 있는 글자가 보였습니다. 그 유기농이라는 말에 먹거리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언니가 유혹을 당한 것입니다. 막내는 차 안에 남겠다하여 나랑 언니 둘만 마을 길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하우스도 있고 집들도 예쁘게 잘 지어져 있는 마을입니다. 유기농과 관계있을 것 같은 건물이나 표시는 보이지 않고 마을 한 가운데 집 대문 밖에 병색이 완연히 보이는 노인이 양손으로 잡은 지팡이에 의지하고 서서 멀근히 먼산을 보고 계시길래 가벼운 눈인사를 건네고 지나 갔습니다. 마침 빈 유머차를 앞 세워 밀고 가시는 할머니를 만나 유기농 농장이 어디있느냐고 물었더니 길 건너 있답니다 에고~. 그리고 저 사람 서 있는 집이 김희선 집이고 저 사람이 김희선 아버지라며 뭍지도 않았는데 친절히도 설명해 줍니다ㅎㅎ.
하우스 작업이 한창인 곳이 있어 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들깨를 베어 내고 있길래 사 갈까 하여 물었더니 버리는 거랍니다. 잉?
그람 우리가 따가도 되요? 그라소 ~ 진짜로요? 진짜 아니면 말든지~ 그러면서 꼬깃꼬깃 접어둔 크다란 검은 봉지 두개를 가지고 와서는 그기에 따 넣어라며 건네 줍니다. 말투는 시니클한 농부인데 가슴이 따뜻한 분 같았습니다. 나 보고 꼴통같은 자기 누나를 많이 닮았답니다 ㅋㅋ. 저처럼 생긴 사람들이 성질이 더러버서..........
(중략) - 글이 너무 길어져서 일단 생략하고 나중에 -
마음씨 좋은 아저씨 덕택에 우리 각자 양손에 상치며 생채 칙거리 들깨잎이 가득 든 봉지를 들고 금의환향했습니다.
서방 아닌 서방님 호출입니다 푸하하하~
나중에 다시 덧붙이겠습니다. 아니면 말고................
감수성이 문학소녀인 조안
고민이 많은 혜아
다들 만나서 감사하고 즐거웠습니다.
첫댓글 에고~ 조금씩 정리해야겠다.
지금 빨리 처리해야 될 일이 있어서리......
두물머리에서 저번에 두물머리 농부들 살리기 콘서트 있어서 가봤는데 좋더라!!!
시험 끝나셨나 보다.
여기에 와서 노는 것 보니 ㅎㅎ
난 내일 오전 서울 간다.
투표하러~!
긍께 너도 투표 꼭해라. 그렇다고 이상한 여자 찍지 말고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