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산도와 자산어보
방송일시 : 2014년 3월 24일 (월) ~ 3월 28일 (금)
기 획 : 김 민
촬 영 : 박 주 용
구 성 : 이 상 희
연 출 : 정 완 훈
( (주) 박앤박 미디어)
자산은 흑산이다.
나는 흑산에 유배되어 있었다.
흑산이라는 이름은 어둡고 처량하여 매우 두려운 느낌을 주었으므로
집안사람들은 편지를 쓸 때 항상 흑산을 자산이라 쓰곤 했다.
자(玆)는 흑(黑)과 같은 뜻이다.
- 자산어보 서문 중.
많은 이들의 유배지였던 섬, 흑산.
산과 바다가 푸르다 못해 검게 보인다 하여 흑산도라 불렸다.
흑산도에 유배되었던 사람들 중,
이곳 주민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수산동식물을 연구했던 이가 있었다.
손암 정약전 선생.
자산어보는 그가 귀양살이를 하는 동안
수 백 종의 바다생물을 세밀하게 분류해 놓은 서해 남부 최초의 어류학서이다.
200여 년 전, 정약전이 바라봤던 바다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 바다로 떠나본다.
1부. 푸른 바다, 흑산
흑산도에 있는 사리마을은 모래가 많다고 하여
모래미 마을, 옛 이름은 사촌이었다.
조선시대 신유박해로 이곳으로 유배 온 정약전 선생은
암울했을 시간 임에도 불구하고 서당을 지어 마을 아이들을 가르쳤다.
사촌서당은 곧 자산어보의 탄생지로
선생에게 새로운 삶을 열어준 공간이었다.
200여 년이 흐른 후에도 주민들은 바다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사리마을 아주머니들은 파도가 잠잠해지면 뗏목을 타고
가까운 바다로 나간다.
굴뚝 모양으로 생겼다하여 통호(桶蠔)라고 불린 ‘굴통’부터
다섯 봉우리가 솟은 모양이라 하여 오봉호(五峯蠔)라 불린 ‘거북손’까지.
아주머니들의 바구니가 쌓일수록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바다 냄새가 짙어진다.
정약전이 흑산도에 유배되기 전 거쳐 갔던 섬, 우이도.
우이도(牛耳島)는 소의 귀 모양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그 당시에는 소흑산도라고 불렸다.
이 섬에는 닻자망 조업으로 각종 물고기가 나온다.
그물에는 물메기, 삼세기, 복어, 그리고 아귀까지 걸려든다.
특히 아귀는 조사어(釣絲魚)라 불렸는데,
입술 끝에 솟아난 낚시대 모양에 밥알 같이 생긴 미끼가 있어
그것으로 다른 물고기들을 잡아먹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조광현 화가는 정약전을 롤모델로 삼고,
바다로 직접 들어가 관찰해 물고기를 그리고 있어
물고기 화가로 불리기도 한다.
그와 함께 정약전이 바라봤던 푸른 바다로 떠나본다.
2부. 연잎을 닮은 물고기
흑산 바다에는 요즘 홍어 철을 맞아 주낙 작업이 한창이다.
홍어는 11월부터 4월 말까지 잡히는 것으로 먹어야
살이 연하고 맛이 좋다고 한다.
정약전은 홍어의 움직이는 모양이
흡사 바람에 너울대는 연잎을 닮았다해서 ‘하어(荷魚)’라고 불렀다.
흑산도 앞 바다에서 잡히는 홍어를 으뜸으로 치는데,
이 바다가 펄이 발달해 홍어 서식과 산란지로 최적지이기 때문이다.
이 홍어를 잡는 배들 중 유일하게 홍도에서 출발하는 배가 있다.
이상수 선장의 배는 홍도 2구에서 출발하는데
보통 이틀 밤을 꼬박 새워 홍어를 잡는다.
홍어는 바다 밑으로 던진 주낙 바늘에 걸려 올라오는데,
신기한 것은 암놈이 바늘에 걸려오면 꼭 수놈이 뒤 따라 걸려온다는 것이다.
암놈이 바늘을 물고 있는 틈에 수놈은 교미를 하기 위해 암놈에게 달라붙는다.
이를 두고 정약전은 홍어 수놈을 음탕하다고 표현했다.
이상수 선장의 배는 만선의 꿈을 안고 떠났지만 홍어가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
바늘에 걸려 올라오던 홍어가 배에 닿기도 전에 떨어져 버리고,
줄을 끌어올리면서 줄이 끊어지는 사태가 발생하는데․․․․․․.
홍어가 올라오는지 지켜보는 선장, 홍어가 올라오면 재빨리 낚아 올리는 선원,
주낙 줄이 올라오는 내내 줄을 정리해 담는 선원, 그리고 갓 들어온 신참 선원까지.
그들 각자가 맡은 임무로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이뤄진다.
이상수 선장의 배가 홍도 2구로 돌아오면 주민들은 바빠진다.
다음 조업 때 쓰일 주낙을 손질하며 용돈 벌이도 하고,
홍어 조업이 잘 되었을 때는 귀한 홍어 맛보는 잔치도 열린다.
이 때문에 마을에서 홍어는 사랑받는 존재이다.
3부. 봄 밥상 위에 자산어보
봄 향기 물씬 풍기는 3월.
바다를 품에 안은 사람들은 이맘 철 밥상 위로 향긋한 봄을 불러들인다.
우이도의 밥상은 특별하다.
이 마을에서 새생이라 불리는 전호 나물,
기관지에 좋은 맥문동,
그리고 정월에 세 번만 먹으면 늙을 때까지 아프지 않는다는
우이도에서만 볼 수 있는 맨달초까지.
아주머니들은 몸에 좋다는 봄 약초들을 캐느라 신바람이 났다.
이 봄나물과 어울리는 음식은 따로 있다.
겨우내 잡은 우럭을 꼬들꼬들하게 말려 개운하게 끓여내는 우럭젓국.
이는 정약전도 즐겨 먹은 음식이라고 한다.
밤 늦은 시각. 목포항 사람들이 분주하다.
봄조기 때문이다.
9월부터 4월 말까지 잡히는 조기.
특히 이 맘 때 상해 동쪽의 난해(暖海)에서 월동한 뒤 북상하여
홍도, 제주도 근해에 이르는 것을 잡아 목포항에 집결한다.
조기는 크기별로 선별이 이뤄진다.
6석, 7석, 8석 순으로 나눠지는데,
가장 큰 크기인 6석을 백미, 7석을 135미, 8석을 뺑도리,
제일 작은 크기를 깡깡치라고 부른다.
영광의 칠산 바다는 한때 조기 파시로 명성이 자자했던 곳.
자산어보에서는 홍양(지금의 전남 고흥) 바깥 섬에서는 춘분(春分) 뒤에 그물로 잡고
칠산 바다에서는 한식(寒食) 뒤에 그물로 잡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영광에서는 칠산 바다의 명성 그대로 여전히 굴비를 말리고 있다.
영광 굴비는 봄에 잡히는 조기를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봄조기는 요리를 해먹으면 맛이 일품이다.
파 송송 썰어 넣어 얼큰하게 만든 조기 찌개와
따로 양념을 하지 않아도 담백한 맛이 난다는 조기찜을
맛보러 떠나보자.
4부. 다이아몬드 섬의 봄 잔치
서해의 섬들은 예부터 유난히 유배지로 여겨졌던 곳이 많았다.
하지만 오늘날 그 섬들은 어염시수(魚鹽柴水)가 풍성하고,
땅이 비옥해 농사가 잘 되는 덕에 귀어를 꿈꾸는 이들의 낙원이 되었다.
그 중 자은, 암태, 팔금, 안좌는 섬과 섬 사이가 다리로 연결되어있고
모양이 다이아몬드와 닮았다 하여 다이아몬드 제도로 불린다.
그 곳 갯벌에 풍성한 봄 잔치가 열렸다.
실뱀장어 잡이가 한창인 암태도.
실뱀장어는 뱀장어의 치어로,
이 맘 때 서해를 거쳐 중국 강 하구로 흘러들어간다.
하루에 두 번 만조 때에 맞춰 실뱀장어를 잡는 김길웅, 강옥란 부부.
5cm 정도의 실뱀장어는 한 마리에 700원이나 하는 귀하신 몸.
다치지 않을까 붓으로 조심조심 담아낸다.
자산어보에서 말라빠진 소가 먹으면 금방 힘을 얻는다는 낙지.
봄이 되면 안좌도 사람들은 낙지의 힘찬 기운 덕분에 활기가 넘친다.
낙지 잡는 고수와 그 옆에서 도통 감을 잡지 못하는 초보.
하지만 초보 낙지 꾼도 여러 번의 실패 끝에 잡은 낙지 한 마리에 신이 난다.
낙지와 소고기를 참기름에 버무려 먹는 소낙탕탕이, 명품 낙지라면.
낙지 덕에 유쾌한 봄 잔칫날이다.
자산어보에서 숭어는 의심이 많고 화(禍)를 피하는 데에 민첩해
낚시를 해도 잘 잡히지 않는 물고기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런 숭어도 이 맘 때에는 그물에 너무 쉽게 걸려든다.
봄이 되면 숭어의 눈이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게 되어 앞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중심 그물의 양쪽으로 세 개의 함정 그물을 놓아 숭어를 잡는 삼강망 잡이.
갯벌에서 잡은 숭어, 농어, 새우를 넣어 매콤하게 끓여낸 매운탕은
자은도의 후덕한 인심만큼 풍성한 맛을 자랑한다.
5부. 검은 섬과 붉은 섬
봄 낭만을 안고 떠나고 싶은 섬, 흑산도와 홍도.
에메랄드빛 바다에 기기묘묘한 바위들.
두 섬을 둘러싼 풍광은 한 폭의 예술작품을 옮겨다놓은 듯 아름답다.
흑산도는 산과 바다가 푸르다 못해 검게 보인다 하여 흑산도(黑山島),
홍도는 바위가 유난히 붉은 섬이라 하여 홍도(紅島)라고 불린다.
1년 전 정약전 선생의 흔적을 연구하기 위해 흑산도에 들어온 임송 선교사.
구불구불한 12굽이길, 흑산도가 포근하게 감싸 안은 인근 섬들,
그리고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
그와 함께 정약전 선생도 반했을 그림 같은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전복은 미역과 다시마를 먹고 자란다.
4년 째 전복양식을 하고 있는 박석웅씨.
흑산도 앞바다는 수심이 깊고 파도가 세서 자연산 전복처럼 살이 알차 맛이 좋다.
전복 양식장에는 특별한 경비 요원이 있다. 바로 고양이.
호시탐탐 전복을 노리는 쥐가 고양이 덕에 부쩍 줄었다.
자산어보에서는 들쥐가 전복을 엿보아 엎드려 있다가
전복의 꼬리에서부터 등으로 오르는데
이때 전복은 쥐를 등에 업고 도주한다고 기록했다.
홍도는 섬 전체가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으로 속해 있다.
홍도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매일 노래미를 잡는 부부가 있으니,
황삼준, 채태순 부부.
20여 년 내내 늘 붙어 다닌 환상의 짝꿍이다.
이 맘 철에는 놀래미, 우럭 등 다양한 물고기가 올라오는데,
잡아 올린 싱싱한 물고기는 이곳만의 특별한 판매장으로 향한다고 한다.
검은 섬 흑산도와 붉은 섬 홍도 사이의 바다는
노력하며 살아가는 이 들에게 늘 풍요로움 내어준다.
정약전이 바라본 바다는 이런 모습이었을까.
바다의 수려한 자연경관만큼이나 아름다운 이 삶들을 만나러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