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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노블을 국내에서 산업으로 정착시키는 것이 최종 목표예요. 최소한의 컨텐츠로서 상품성을 인정 받고, 창작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도록 그래픽노블을 중심에 놓을 거예요.” 스낵100의 두 번째 주인공, (주)피오니 대표 박경돈
Q.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3년 전부터 그래픽노블을 한국에 알리고 싶어 회사를 차렸구요. 회사는 ‘주식회사 피오니’입니다. 회사의 대표 겸 <월간 그래픽노블>의 발행인 겸 아직까지는 편집장을 맡고 있는 박경돈이라고 합니다. 2012년 6월에 1인 출판으로 시작했어요. 그리고 법인으로 전환을 하고 난 다음에 사업의 영역을 키워나가고 있고, 3년을 맞이하면서, 올해는 과도기를 겪고 있습니다.
Q. 1인 출판으로 시작했다고 하셨는데요.
2013년 3월 11일에 법인으로 전환했구요. 나름 의미가 있어요. 1인 출판이라는 말 자체도 흔한 말이 아니었어요. 붐처럼 일어났다가 누구 하나 결실을 못 맺고 끝낸 경우도 많고, 주위에도 보면 고생은 고생대로 했는데 힘들어하셨던 분들이 꽤 있거든요. 그런 인식이 있는 상황에서 1인 출판을 확장시켜서 사업을 이끌고 나갈 수 있다는 자체를 알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요 말을 항상 초반에 합니다. (웃음) 자랑은 아니구요.
Q. 피오니의 구성이 궁금합니다.
주식회사 피오니 안에는 브랜드가 두 개 있어요. 하나는 피오니 북스, 하나는 피오니 웍스입니다. 피오니 북스는 출판 브랜드구요. 피오니 웍스는 영상 브랜드예요. 피오니 웍스의 경우 현재는 저의 역량에 의존해서 일을 하고 있는데, 먼저 짧게 말씀드리자면, C.G 슈퍼바이징이나 영화를 했던 제 이력을 가지고 영업도 하고 일감을 따오는 상태예요. 주로 외주일이 많아요.
Q. 피오니 북스에 대해 알려주세요.
그래픽노블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브랜드가 피오니 북스입니다. 그래픽노블을 한국에 알리고, 기획과 제작도 해보자는 목표를 가지고 설립했어요. 그래서 법인을 설립하게 되면 정관을 짜는데, 그래서 설립 첫 번째로 ‘그래픽노블 기획 및 제작’이라는 말을 쓰기도 했습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라면 법무사 분이 그래픽노블이 무엇인지 모르셨다는 거예요. 무작정 해주신 거죠. 그만큼 한국에 그래픽노블이라는 것이 잘 안 알려져 있죠. 그런데 알려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를 하겠다고 이렇게 인격체를 만든 것이기 때문에 상징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월간 그래픽노블>을 발행 중이에요. 다루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피오니 북스에서 첫 번째로 대중들과의 접점을 만들기 위해 구상한 것이 매거진이었어요. 그래서 1년 정도 R&D를 했구요. 작년 6월에 창간호를 낼 수 있었어요. R&D를 했다는 것은 그래픽노블이 전세계적으로 어떤 역사와 기원을 갖고 있는지, 어느 나라가 강세인지 혹은 국내에서는 언제부터 몇 권이나 있었는지 등의 특성을 조사했습니다.
국내를 예로 들자면, 915여 종의 그래픽노블이 출판되어 있고, 그 중 절판된 390권을 제외하면 525종이 판매되고 있습니다. 출판사들별로 많은 곳은 200여 종, 적은 곳은 1종이 있을 정도로 다양하게 있어요. 최초의 국내 그래픽노블은 92년 정도였던 것 같아요. 분류상으로는 그래픽노블이지만 전격적으로 그래픽노블이란 용어를 쓰지는 않았구요. 오히려 ‘그림 소설’ 이런 식으로 출판되었죠. 일단 작게는 그런 것들을 연구해오면서 시작을 했습니다.
월간 그래픽노블
Q. 그렇다면 피오니 웍스에서는 어떤 작업을 하나요?
뮤직비디오 편집과 작은 홍보 영상 제작들이 주를 이루구요. 최근에 했던 작업으로는 ‘사랑하면 춤을 춰라’라는 논버벌 공연이 있어요. 13년 간 하고 있는 장수 공연인데요. 전용관에 들어갈 때 공연과 호환되는 인터랙티브 영상 작업을 진행했어요.
Q. 영화를 하셨던 이력을 바탕으로 영상 작업을 한다고 하셨는데요. 간단하게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그 전에는 영화를 오래 했어요. 아실 만한 건 <웰컴 투 동막골>이라는 작품에서 조연출을 했어요. 그리고 <부두인형 사용 설명서>라는 단편영화를 만들어 제 11회 미쟝센 영화제에서 절대악몽분야 경쟁작으로 초청을 받았는데, 용산 CGV에서 많은 관객들과 교감을 했어요. 그리고 EBS에서 국내 최초로 3D 입체 다큐멘터리를 <신들의 땅 앙코르>라는 이름으로 제작했는데, 그때 VFX 슈퍼바이저로 C.G를 전체 총괄하였구요. 태국과 앙코르와트에서 작업했던 건데 C.G 분량이 50분 정도 됐어요. 요 정도가 저의 영상 작업 이력인데, 이를 이용해서 하는 것이 피오니 웍스의 일들이구요. 중요한 건 아니기 때문에 짧게 말씀드렸습니다.
박경돈 대표의 단편영화 <부두인형 사용 설명서>
Q. 혹시 피오니의 인원은 어떻게 되나요?
들쭉날쭉했는데, 현재는 다섯 명 정도로 돌아가고 있어요. 올해 벌려 놓은 사업이 있어서 좀 충원할 예정입니다. 지난 3년 동안은 토대를 만들었다면, 올해는 그 토대를 바탕으로 전진해야 하는 상황이라서요. 올해는 8명까지 최소 늘릴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Q. ‘그래픽노블’이라는 단어가 생소한데요. 그래픽노블이 무엇인가요?
그래픽노블만큼 말이 쉬운 경우가 없어요. 말 그대로 그래픽(Graphic)이 있고 노블(Novel)이 있는 거죠. 합성어이기 때문에 이해하기는 정말 어렵지 않아요. 만화는 영어로 코믹스(Comics)라고 하잖아요. 코믹스트립(Comic Strip)의 줄임말인데요. ‘코믹'이라는 말 자체에 희화화돼 있는 속성이 담겨 있죠. 또한 만화는 신문 매체에 종속되어 있었다는 특징이 있구요.
일찍이 1964년부터 만화가 좀더 서자적인 내용들, 표현도 좀 더 회화에 가까운 것들을 추구하기 시작하면서 그래픽노블이란 말이 알려지기 시작했구요. 미국 작가 윌 아이스너 아저씨가 1978년에 <신과의 계약(A Contract with God)>이라는 작품에서 처음 그래픽노블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대중화 되었습니다.
노블이 소설을 칭하기도 하지만, 좀 더 근원적인 어원에는 새로움이란 뜻도 있잖아요. 소설이란 말도 처음에는 생소한 단어였을 것 아니에요? 새로운 걸 소설이라고 불렀고, 이 새로운 것이 소설이 된 게 아닐까. 이건 제 짐작이니 위키를 확인해주세요. (웃음)
Q. 그럼 만화와 그래픽노블의 차이는 뭘까요?
크게 보면 둘은 같은 말이기도 합니다만 굳이 비교하자면 만화가 방송 드라마 같은 속성이 있다면, 그래픽노블은 영화 같은 속성이 있다고 해야 할까요. 드라마를 돈 내고 보지 않는 것처럼 우리가 만화를 처음 접할 땐 신문에서 공짜로 보았어요. 요새 미드 같은 건 사서 보기도 하지만요. 또 드라마는 만화와 마찬가지로 항상 마감이 정해져 있죠. 그렇다 보니 공을 들이기가 좀 어려워요. 반대로 ‘다르게 찍고 싶다, 만들고 싶다’ 해서 상대적으로 기간도 많이 확보하고, 공들여서 나온다는 점에서 영화는 그래픽노블과 닮아 있죠. 당연히 돈을 내고 보구요.
윌 아이스너의 <신과의 계약(A Contract with God)>
Q. 만화는 신문 매체에 종속되어 있었다고 하셨는데요. 그래픽노블은 어떻게 달랐나요?
우리가 흔히 아는 만화의 그림풍이 생긴 이유가 바로 원고 마감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에요. 마감을 지키려면 디테일을 가져갈 수 없어요. 그렇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타협점을 찾아야 하는데, 라인 드로잉을 한다든지 스크린톤을 최대한 많이 쓴다든지 하는 게 바로 그래서 나온 것들이죠. 이것의 정점을 찍은 게 ‘망가’라고 볼 수 있어요. 상당히 기능적으로 나오고 있죠. 원고 마감 날짜에 대한 어떤 해결책이라고 생각하구요. 어떻게 보면 작가들에게는 피말리는 작업이기도 하고, 생산적인 모티브이기도 하죠.
그런데 좀 더 장시간을 써야 하는 작품도 있고, 사람도 있지요. 너무 연재에만 초점을 맞추면 톤 앤 매너를 놓칠 수 있거든요. 추구하고 싶은 것들을 놓칠 수도 있구요. 그래픽노블은 앞서 말씀드린 원고 마감과 같은 제약에 구애 받지 않고 작품성을 보존하려 시도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더 스피릿>을 비롯한 초창기 그래픽노블도 연재를 하긴 했어요. 연재라는 말이 사실 민감할 수 있는 부분인 게, 정해진 시간 안에 마감을 지켜야 하는 연재도 있지만, 단행본을 만들어놓고 그것을 나눠서 연재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연재라는 말이 상황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긴 하지요.
저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민감한 부분이지만, 그래픽노블의 최대 수혜자는 마블 코믹스예요. 초창기의 히어로물은 아이들에게 값싸게 팔리는 그런 영웅 이야기였는데, 스파이더맨을 고뇌시키고 헐크를 고뇌시키면서 성인 독자들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죠. 거기다가 그래픽노블이란 말을 붙이니까 기존 코믹스와는 다른 게 되기 시작하구요. 커버를 조금 더 좋고 두꺼운 것을 쓰니 가격도 오르게 됐어요. 출판사 입장에서는 좋죠. 장사 논리에서는요. 최고 수혜자는 이들이 된 거예요.
Q. 그런 흐름을 싫어하는 작가들도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알기로 미국에서는 몇몇 만화가들, 굉장히 의식도 있고 저돌적인 분들은 그래서 그래픽노블이란 말을 싫어해요. 본인 작품이 그래픽노블로 불림에도 말이에요. 앨런 무어 아저씨는, 지금 봐도 도인 같고 그런 느낌인데, 되게 격하게 부딪치고 그러시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화계 안에서 좋은 작용을 하고 있긴 해요.
Graphic Novel l http://snackk.tv/GraphicNovel Q. 대표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게요. 그래픽노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저는 그래픽노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독특해요. 이 부분은 회사 입장에서나 제 입장에서 강조되어도 좋은 것 같아요. 일단 사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 자체는 미술 베이스였구요. 처음 들어갔던 학교가 경원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였어요. 그림을 그리면서 영화 감독이 되고 싶었거든요. 일본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회화 작가 출신인데, 그 분에 대한 동경도 있었구요. 영화를 더 깊게 공부하고 싶어서 졸업 후에는 동국대학교 연영과를 들어갔고, 그 이후로 쭉 영화의 길을 걸었어요. 현장 경험이 많은 건 아니지만 <은행나무침대>, <접속>, <황산벌>, <투가이즈> 등을 하다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웰컴 투 동막골>의 조연출까지 하게 됐죠. <웰컴 투 동막골> 끝나고 나니까 영화의 흥행 덕분에 영화사들로부터 신인감독을 제안하는 연락이 왔어요. 주로 자신들이 기획 중인 시나리오를 보내왔죠. 그 중에는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기획도 있었는데 결말이 제대로 안 난 상태여서 제가 시나리오 뒷 부분을 풀어야만 했죠. 그때부터 저한데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어요. 제 스토리텔링 수준이 아주 거지 같다는 사실이었죠. (웃음) 한동안 시나리오를 잡고 있다가 덜컥 겁이 났어요. ‘이러다가 내가 실력 없다는 게 들통 나겠구나.’ 창피했어요. 못 쓴다는 게 정말 창피했죠. 그래서 차마 못하겠다는 말은 못 하고 다른 핑계를 둘러댔어요. 바보같이 기회가 왔는데 결국 잡지 못한 거죠. 그 영화는 나중에 다른 감독 통해서 영화로 제작되었어요. 이런 일은 그 후에도 몇 번 있었는데 지나고 보니 실력이 하루 아침에 느는 건 아니었으니 어쩔 수 없죠. 아무튼 이 정도는 문제도 아닌 더 큰 일이 저한테 생겼어요. 건강하던 아버지께서 갑자기 혼수 상태에 빠지고 중환자실로 들어가신 거예요. 제 인생에 생긴 일 중에 가장 큰 일이었죠.
박경돈 대표가 조연출을 맡았던 <웰컴 투 동막골>
완전 총체적 난관이었어요. 아버지를 살려야만 했기에 병원비가 가장 큰 문제였어요. 사람이 위험에 닥치면 뭐든 하게 돼 있다는 사실을 그 때 알았어요. 낮에는 장사하고, 밤에는 창고에서 시나리오 쓰고, 조연출 일도 병행하고, 틈나는대로 영화나 영상 아르바이트도 하고 그랬죠. 돈 되는 건 가리지 않고 다 해야만 했어요.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 때는 하는 일마다 다 안 되더라구요. 장사는 아버지께서 하시던 일을 이어받은 건데 포장용기 유통이었고, 다마스 타고 다니면서 식당에 배달하고 물량이 많은 날은 후배 음료수 배달 트럭 빌려서 납품하고 그랬죠. 그때 당시 목에 전화기를 3대나 매고 다녔어요. 제 전화기, 아버지 전화기, 업무용 전화기. 그때 정말 열심히 죽을 듯이 일했는데 결국 아버지는 저 세상으로 가시고 말았어요. 혼수상태로 3개월 중환자실에 계시다가 패혈증과 욕창, 신장 투석 등… 목을 뚫어서 산소호흡기로 연명하고 있던 아버지는 시체나 다름 없었죠. 결국 의료진들의 최종 결정에 따라 제가 아버지의 산소호흡기를 제거했어요. 그리고 30분정도 숨이 멈추는 과정을 지켜봤어요. 차라리 저를 데려가지… 아무 쓸모없는 저를… 눈물이 나고 신한테 욕도 하고 술도 많이 마시고 그랬어요. 그 후에 장사도 1년 만에 망하고, 쓰는 시나리오마다 다 논리도 없고 재미없고. 그때 쓴 시나리오들 내용에는 죄다 세상에 대한 울분이 가득했는데 누가 좋아하겠어요. 조연출 진행하던 영화도 엎어지고, 건강도 많이 상하고, 사람한테 배신도 당하고 모든 게 안 되는 거 투성이었어요. 한번은 시나리오 평가 받고 펑펑 울어버린 적도 있어요. 나는 열심히 하는데 왜 재미 없는지 모르겠더라구요. 크리스마스에도 혼자 PC방에서 밤새 시나리오 쓰고 그랬거든요. 정말 죽도록 썼는데… 왜.
Q. 많이 힘드셨겠네요. 아버지 장례식 때 제가 장남이고 유일한 남자라서 울면 안 된다고 해서 울음을 참았어요. 가족을 떠나보낸 분들은 잘 아실 텐데 화장터에서 마지막으로 관이 불 속으로 들어가면 완전 울음바다가 돼요. 그때 밀려오는 슬픔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이빨이 부서질 정도로 꽉 깨물었죠. 나중에 어금니에 실금이 간 게 너무 많아서 좀 고생했어요. 이제 남은 건 오로지 시나리오로 성공하는 것뿐이었어요. 그 때부터 고시 공부하듯이 시나리오를 써댔어요. 작법서 100권 읽는 건 예사였구요. 700편 정도 영화 분석도 하고 무조건 썼어요. 재미가 있건 없건 하루도 멈추지 않고 썼죠. 나중에서야 알았는데 이것도 능사는 아니었던 거예요. 이제 와서 깨달은 게 있다면 작품을 하나 만든다는 건 그만큼 삶의 경험이 바탕이 되어야 나올 수가 있는 건데, 헬스 하듯이 기능적으로 공식에 맞춰 쓴다고 해결 될 게 아니라는 거죠. 그것도 모르고 술, 담배까지 다 끊고 무조건 아침부터 정오까지는 시나리오 쓰고 그 후에는 아르바이트하면서 매일매일 시간을 보냈어요. 담배는 여전히 안 피고 술은 올 정초에 다시 시작했는데 기간을 보니까 10년 끊었더라구요. 이 얘기 하면 저더러 독하대요. 그럼 저는 그 때마다 한 마디 합니다. 독한 게 아니라 실력이 없으니까 하늘에 정성이라도 보이는 행위라구요.
(주)피오니 대표 박경돈
그렇게 5년 정도 더 고생하다가 서서히 아르바이트 크기가 커지더라구요. 처음에는 악기 메뉴얼 동영상 제작, 전시 영상 제작, 공연 영상 제작, 애니메이션 기획까지 하다가 <손양원>이란 다큐멘터리 연출 할 때는 웬만한 독립 영화 제작 규모로 커지더라구요. 어느새 자연스럽게 감독질을 (웃음) 하고 있는 저의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역시나 역량 미달이어서 제가 스텝들을 힘들게 하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후에 제일 크게 한 일은 EBS에서 제작하는 입체 다큐멘터리 <앙코르>의 전체 C.G 제작 총괄을 맡게 되었습니다. 제작비도 제법 되고 규모도 국내 다큐멘터리 중 가장 컸죠. 게다가 입체였구요. 극장 시사까지. 이 중 어마어마한 C.G분량이 가장 큰 이슈였어요. 결과적으로 아주 잘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어마어마한 일을 해냈다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자랑 좀 하자면 만약 저 아니었으면 그 때 담당 PD들이 그 많은 상을 수상할 수 있었을까요? 아무튼 이러는 사이 시간도 많이 흘렀고 실력으로 보나 나이로 보나 저한테 더 이상의 신인감독 데뷔의 기회가 오지 않을 거란 걸 알았죠. 그리고 스스로 더 이상 제가 루저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용기를 가지게 되었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제는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왕이면 그 일이 되게 가치 있는 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때 외국에 나가는 일이 자주 생겼는데 독일, 미국, 남미를 다니면서 그래픽노블 시장을 나름 조사했죠.
Q. 그럼 그때 그래픽노블을 하겠다고 결심하신 건가요?
네. 외국 창작 사례들도 함께 조사하면서 ‘어쩌면 그래픽노블이 나 같은 반쪽짜리 창작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겠구나’ 하고 본능적인 감이 왔어요. 그림은 굉장히 잘 그리는데 스토리텔링을 못하거나, 글은 잘 쓰는데 상품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반쪽짜리’ 사람들이요. 심지어 그래픽노블은 신이 준 선물 같다는 느낌까지 들었죠. 시나리오는 영화화되기 전까지 컨텐츠라고 말할 수 없어요. 저희가 시나리오를 사서 보지는 않잖아요. 단편소설도 묶어서 내거나 동인지를 내지 않는 이상 상용화하기란 쉽지 않죠. 일러스트레이터나 회화 작가의 그림 역시 고가의 작품이 매매되지 않는 이상 대부분 용역 서비스로 소진돼요. 컨텐츠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는 거죠. 그렇다면 저 같은 반쪽짜리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컨텐츠는 무엇일까. 돈 주고 살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그래픽노블이라는 생각이 그때 처음 머릿속에 종을 울린 거예요.
Q. 그래픽노블의 어떤 면이 그런 생각을 갖게 했나요?
그래픽노블의 요소 안에는 협업이 자연스럽게 자리하고 있어요. 글, 그림이 대부분 따로 있거든요. 그래픽노블 중 유명한 <샌드맨> 같은 경우는 글은 닐 게이먼이, 그림은 여러 명이 맡아서 진행했구요. 저희 매거진 최근 호에서 다루었던 다니구치 지로의 경우도 작품의 8할 이상이 글 작가가 따로 있어요. 심지어는 기출간된 소설을 바탕으로 가기도 합니다. 그림 어시스턴트로 시작해 협업에 익숙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그 경험을 쌓아서 자기 작품을 하게 됐죠. <열네 살>이란 작품은 프랑스에서 시나리오 상을 받을 정도로 엄청난 작품인데요. 어디에도 의지하지 않고 그가 직접 처음부터 다 쓰고 해낸 작품이에요. 아마 그런 작품이 처음부터 나올 수 있었던 건 아닐 거예요.
다니구치 지로의 <열네 살>
다른 나라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는 본인이 해결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요. 예를 들면, 제가 영화 감독을 하고 싶다면 처음부터 시나리오에 대한 압박을 짊어져야 하죠. 만화를 하고 싶은 분들도 그런 압박을 가지고 있구요. 그림을 그리는 분들, 글을 쓰는 분들 마음 속에는 저처럼 창작에 대한 갈망이란 게 있더라구요. 그런데 둘 다 잘 해내지 못한다면 창작으로 생계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죠. 그걸 해결하는 역할을 그래픽노블의 협업이라는 요소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주저하지 않고 곧바로 1인 출판사를 만들었어요. 원고료 받은 걸 밑천 삼아 광화문 근처 2평 소호 사무실에 첫 회사를 만들고 현판을 걸었어요. 그러면서 이 일을 함께할 사람들을 찾아 다녔죠. 운이 좋아서 초반에 기보에서 자금을 좀 융통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법인으로 전환하고 사무실도 삼성동 엔씨소프트 건물 뒤에 있는 아주 허름했지만 저렴한 곳으로 이사를 했죠. 거기서 함께한 사람들과 1년 연구 끝에 <월간 그래픽노블>이 나오게 된 거예요.
Q. 작품이 아닌 매거진을 먼저 시작하신 이유가 궁금해요.
딱 두 가지였어요. 첫 번째로는 현금의 흐름을 만들고 싶었구요. 두 번째로는 연구에 대한 압박을 줄이면서 대중들과의 접점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취재도 다니고, 작품 연구를 하려면 연구 자료가 그냥 소진되는 것보다는 컨텐츠로 쓰이는 게 좋잖아요. 양수, 삼수를 내다본 거죠.
첫 번째, 현금의 흐름은 생각보다 잘 만들어지진 않구요.(웃음) 장기적인 측면에서 해결해 나가야 할 부분이에요.
두 번째, 대중과의 접점은 그래픽노블을 알리는 데 이만한 매체가 없겠다 싶어서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생소했습니다. 여기저기서 약간의 비아냥도 받았어요. 도대체 비주류인 그래픽노블을 가지고, 심지어 월간이라는 텀으로 잡지를 발행하는 게 가능이나 하겠냐구요. 일단은 의지로 뚫고 나가고 있고, 팬들을 많이 확보했어요. 업계에서도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아서 나름 중, 소, 대기업들한테 여러가지 많은 제안들도 받고 있는 상태구요. 역시 한국에선 버티는 게 장땡입니다. 의지를 잃지 않고 가는 게 장땡이더라구요. 그래서 올해는 좋은 러브콜들도 있었어요.
Q. <월간 그래픽노블>을 발행하시면서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첫 번째로는 역시 자금이죠. 어느 사업을 하더라도 그럴 것이에요. 사실 다른 문제들은 대부분 거서부터 파생이 되는데, 자금이 적다보니 시간을 길게 쓸 수밖에 없다는 압박이 있어요. 자금이 많으면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빨리빨리 한 분야를 개척할 수 있겠지만, 그럴 수 없으니 스케줄도 굉장히 느려지고, 증폭시키는 데 있어서도 걸림돌이 돼요.
두 번째로는 아무래도 그래픽노블의 생소함이죠. 그래픽노블은 장르는 아니지만, 보통의 장르 범주에서 이야기하자면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설명하려면 어려움이 있어요. 그래서 최근에는 설명을 많이 안 하려고 합니다. 일단은 보여주려고 하고 있어요.
곁다리로 세는 이야기겠지만, 지난 8월 10일부터 12일에 코엑스에서 열린 일러스트 페어에서 저희가 매체로서 부스 참여를 했어요. 10평 정도 되는 부스를 할애받고, 그래픽노블 라이브러리를 하나 꾸몄습니다. 가구 쇼핑몰 두닷에서 책장 등을 협찬받았고, 국내 그래픽노블을 500권 이상 각 출판사별로 모았어요. 그것들을 책장에다 꽂아놓고 독서를 할 수 있게 하니까 많이들 와서 보고 가더라구요. 어쨌든 그렇게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심지어 그 공간에서는 재즈 아티스트 찰리 헤이든의 음악이 흐르고 있는 상황에서 독서를 했어요. 만화 이상의 가치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 문화를 만들고, 대중들과의 접점을 계속 넓히기 위해 노력할 생각입니다. 아무튼 자금과 생소함, 이 두 가지가 관건이에요.
코엑스 일러스트 페어 중 피오니북스 부스
Q. 그렇다면 피오니의 그래픽노블 작품은 언제쯤 만나볼 수 있을까요? 지금 내부적으로 네 개의 작품을 기획해서 진행하고 있어요. 그 중 하나는 원고 작업 중이에요. 통상 그래픽노블 한 작품을 만드는 데 최하 1년은 걸리는 것 같은데, 이 작품은 2년 정도 가까워지니까 작품의 궤도에 올라올 수 있었구요. 내년 상반기에 만나보실 수 있을 거예요.
<우디세우스>라는 작품입니다. 오디세이 이야기를 재해석했어요.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 보기 편하고, 남다른 스타일도 추구한 작품이라 아직 원고도 마무리 안됐는데 여기저기서 러브콜을 받고 있는 상태예요. 2년 전 인턴으로 들어온 컨셉 아티스트가 결국 작가까지 맡게 된 의미 있는 작품입니다.
Q. 그래픽노블의 생소함과 달리 웹툰은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는데요. 웹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선 현 시점에서 만화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매우 좋은 매체였던 것 같아요. 그런 측면에서 모바일로 발빠르게 대응을 잘 했구요. 많이 알려지는 측면에서는 너무 좋은데, 그냥 이런 거죠. 인류가 진화해서 모바일이 없어지면, 예를 들어 접어서 다니는 플렉서블로 대체가 된다면, 그때도 현재의 웹툰의 형식이 유효할까? 그런 측면에서 보면 조금 한시적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스크롤 방식은 모바일에는 최적화되어 있는데, 출판문화와 바로 호환이 되지 않는다는 번거로움이 있어요. 출판은 아직 인쇄 베이스이고, 페이지네이션(Pagination)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죠. 만화가 갖고 있는 속성 중에 컷과 컷, 장면과 장면이 충돌함으로써 감흥을 일으키는 것이 있어요. 큰 범주에서 보면 몽타주인데요. 웹툰으로 들어오면서는 일단 딱 정해진 사이즈, 밑으로 스크롤하는 포멧에 맞추다 보니까 기존 만화의 문법을 가지고 있던 출판 쪽과의 호환이 떨어지는 것이 있죠.
또 우리나라에서만 웹툰이 대중화되어 있는 상태라서 그것도 지켜볼 사항이에요. 그래픽노블은 독일이나 프랑스에 작품이 굉장히 많지만, 웹툰의 형식을 채용하고 있지는 않거든요. 만화라는 것 자체를 그렇게 하는 나라가 별로 없어요. 그런 상황에서 전세계적으로 볼 때 웹툰이 범용화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있죠. 마블 코믹스가 코믹솔로지(Comixology; 마블 코믹스에서 만든 만화책 뷰어 앱)로 웹툰과 비슷한 것을 했어요. 컷 분할을 해서 보게끔 하는 거죠. 컷별로 알아서 넘어가고, 풀 페이지를 보고 싶으면 왔다 갔다 하게 만들었는데, 만화 자체가 컷으로만 볼 때 조금 이상하긴 하더라구요.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매체 속성이 조금 달라지는 기분이에요.
아무튼 웹툰은 장단점을 다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사소한 단점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화 측면에서 보면 웹툰이 엄청난 역할을 한 것은 부정할 수 없겠죠.
Q. 피오니북스에서 웹툰을 활용할 계획은 없으신 건가요?
저희는 출판 쪽과의 호환성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구요. 물론 결국에는 디지털 쪽으로 매체 대응을 하겠지만, 그래도 아마 둘을 (출판과 디지털을) 나누진 않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풀 페이지를 잘 보여줄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상태이구요. 제 예상으로 출판 시장은 종이로 된 시장이 20에서 30% 현존할 것으로 생각돼요. 종이 시장과의 호환성을 생각해본다면 풀 페이지를 고수할 생각입니다.
Q. 혹시 현재 출판 이외에 진행되고 있는 것이 있나요?
올해 가시화시켰고, 지금 IT 업체와 파트너가 되어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저를 통해서 공표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정도까지밖에 말씀드릴 수 없네요. 올해 그런 진도를 좀 많이 뺄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주)피오니 대표 박경돈
Q. 앞으로 피오니의 비전이 궁금합니다.
그래픽노블을 국내에서 산업으로 정착시키는 것이 최종 목표예요. 그 안에는 그래픽노블의 협업이라는 좋은 가치를 산업화시키겠다는 목표도 함께 내포하고 있습니다. 최소한의 컨텐츠로서 상품성을 인정 받고, 창작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도록 그래픽노블을 중심에 놓을 거예요.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서비스로 확장시킬 계획이구요. 빠르게 서비스를 시작할 거예요. 말을 조금 아끼는 이유는 최근 준비 중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협업은 잘 안 돼요. 외국에서도 <브이 포 벤데타>의 뒷부분을 보면 글/그림 작가가 엄청나게 싸운 이야기가 잘 나와 있구요. 저희 매거진에서 다루었던 <워킹 데드>만 보더라도 나중에 글/그림 작가가 서로 등을 돌렸어요. 자의식이 강한 영역이기 때문에 협업이 쉽진 않은데요. 그렇지만 협업은 분명히 서로에게 좋은 기회이고, ‘실력을 쌓아야지’ 하고 창작을 유예시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실현하는 과정을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에 산업화시키는 게 저의 목적입니다.
혼자 잘하는 분들은 혼자 계속 잘해왔어요. 그 분들을 위한 건 아니고 저처럼 반절만 갖고 있는 분들. 생각해보세요. 지체부자유자이신 어떤 분이 러시아의 자기 방에서 글을 쓰고, 지구 반대편 해변이 좋은 나라에서 어떤 분이 화려한 풍으로 그림을 그리는 거죠. 그 두 사람이 연결돼서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상상만 해도 짜릿한 느낌이 들지 않나요? 협업은 서로의 반절짜리 가치가 연결되는 그런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Q. 말씀하신 것처럼 협업이 이루어진 사례가 있을까요?
영화 쪽에서는 <오블리비언>이 비슷한 역할을 좀 했죠. 시나리오를 들고서 헤매던 감독이 여기저기에서 (제작사들로부터) 까이니까 무작정 영국의 한 아티스트한테 부탁을 했어요. 시나리오를 보낼 테니 그래픽노블로 한번 만들어달라구요. 시각화가 된 거죠. 판매까지는 되지 않았는데 구현이 됐고, 그 다음부터는 기회가 빨리 왔죠. 호응을 받고 바로 영화 제작에 들어가게 됐어요.
저는 그런 순간이 그래픽노블 안에 요소적으로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반절짜리 능력인데 합쳐지는 순간 가치가 증폭되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거죠. 다른 협업툴들이 엄청 많긴 하지만, 그런 식의 접근법이 아닌 말 그대로 전세계에 있는 글을 갈망하는 작가, 그림을 열망하는 작가들이 그래픽노블을 매체로 만나 창작을 하고,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고 싶어요. 그게 제 마지막 목표입니다.
<오블리비언>의 그래픽노블 초안과 영화 포스터
Q. 피오니만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대표가 열정적이다. (웃음) 오지랖이 넓은 거죠. 어쨌든 리더라는 사람이 아직까지도 창작에 대한 갈망이 강한 게 장점인 것 같구요. 그리고 소속된 사람들도 그 갈망을 같이 즐거워하고 나누고 있다는 것 역시 큰 장점이에요. 그게 계속 구심점이 되어주니까요.
제일 어려운 건 회사 롤입니다. 여기는 항상 점수를 잘 못내고 있어요. 예를 들면, 전문경영인 입장에서 전문성을 확보해서 가야 되는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은 점수가 많이 떨어져요. 그게 난항이긴 한데, 그 부분까지 겸비가 되면 좋은 확장성을 가질 수 있을 것 같긴 해요. 아무튼, 장점은 창작 의욕입니다 여전히. 그게 원동력입니다.
Q. 피오니에서 바라는 인재상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해보고 후회하는 사람을 더 선호합니다. 해보지도 않고 후회하는 사람보다는. 가능성은 어디서 올지 모르는데, 우리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어요. 100번의 실패도 결국 소중한 자산인데 애써 처음부터 거세를 하더라구요. 그건 제가 작품을 해오면서도 느끼는 바예요. 심지어 연기하는 배우도 똑같은 게 적용이 되는 것 같구요. 실패란 건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부분이고, 경험이 많아도 속단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 “해보겠다” 내지는 “해보자” 이런 말을 하는 분들이 좋은 것 같아요. 그 외에는 다른 조건은 크게 없어요.
심지어 인턴으로 들어오셨지만 지금은 잘 헤쳐 나가서 내부에서 작가로 데뷔를 한 분도 있어요. <우디세우스>가 딱 그 케이스예요. 아무 경험이 없던, 졸업해서 카페 아르바이트를 한 게 전부였던 사람이, 과정은 지난했지만 독려했고 같이 연구하면서 2년이 흐른 지금 시점에는 저희에게 작가 대우를 받고 있어요. 저희 식구이기도 하지만 이름을 내걸 수 있는 작가가 됐구요. 내년에 작품을 홍보할 때에는 작가 프로필도 저희 매체에 적극적으로 실어서 계속 인정을 해줄 거예요.
그리고 저희는 신인들을 되게 좋아해요. 첫 번째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웃음)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나가지 않아서 좋기도 하구요. 그건 그렇게 크게 중요하진 않아요. 예전에 영화 <불의 전차>를 봤는데, 마라토너가 신인인데 경기에 나가기 전에 굉장히 두려워해요. 그때 스승이 1센트, 10센트 서로 다른 동전들을 한 선상에 다 놓으면서 얘기하는 장면이 나와요. “이게 너고, 이게 누구고, 이게 누구야. 우린 다 똑같은 선상에 놓여 있는 동전에 불과해. 그러니 위축될 필요 없어.” 이런 얘기를 해주거든요.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우주 나이로 치면 다 거기서 거긴데, 우리가 뭘 근거로 그 가능성을 축소시킬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 측면에서 신인, 시도하는 사람 좋아합니다. 나머지는 저희가 어떻게든 채워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Q. 대표님이 꿈꾸시는 미래의 모습이 궁금해요.
상상은 많이 해봤는데요. 제 입으로 말하려니까 참 애매하네요. 우스갯소리로, 저희 회사에 계신 직원분들, 그리고 그 직원 분들의 가족 분들까지 함께 남미 해변에서 바베큐 파티를 한번 하고 싶어요. 그 미래가 2년 후일지 1년 후일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짧은 기간 내에는 있을 것이구요.
두 번째로는 한국에 있으면서 절망했던 창작자분들이 만든 그래픽노블 작품이 외국에도 많이 팔리고, 영화화까지 돼서 깐느에 초청되는 거예요. 우리나라 만화 작가 중 그런 사람은 아직 없잖아요. 제가 어떻게 된다기보단 그런 상황이 만들어지는 게 좋을 것 같고, 그렇게 되어 있을 거란 느낌이 들어요. 저는 그냥 그걸 보면서 흐뭇해하겠죠.
그리고 몇 년 뒤엔 코스닥 상장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엔씨소프트의 절반만한 건물 하나 가지고 거기서 굉장히 많은 창작자들하고 작업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어요.
제일 부러웠던 게 픽사거든요. 픽사가 1년에 한 편씩 나올 수 있었던 게 세 개의 팀을 돌렸기 때문이에요. 한 작품당 3년씩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죠. 그럼 1년에 한 편씩 픽사가 원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거예요. 아쉽게도 픽사 역시 결국에는 리소스 비용 때문에 작품할 때마다 아웃소싱으로 바뀌었죠. 어쩔 수 없는 산업의 논리인 것 같은데, 창작자들의 꿈인 건 분명해요.
창작이라는 과정 자체가 너무 외로운 거니까요. 만나서 같이 의견 나누고 얘기하고 독려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을 항상 꿈꾸는데 여전히 그런 것에 대한 환상이 있죠. 그런 공간 내지는 그런 산업을 만들어서 즐겁게, 원활하게 창작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싶어요. 엔씨소프트 절반만 돼도 돼요 정말. (웃음)
(주)피오니 대표 박경돈
Q. 스낵에서 어떤 채널을 만드셨는지 궁금해요.
<Graphic Novel>이란 채널인데요. 말 그대로 그래픽노블을 통해 소통하기 위해 만든 채널이구요. 전세계 다양한 작품, 작가들, 배경이나 히스토리에 대한 영상들을 이곳에 모으고 싶고, 소통하고 싶습니다.
Q. 스낵의 시청자분들께 추천하고 싶은 영상이 있다면?
포지 시몬즈(Posy Simmonds)의 인터뷰 영상을 추천하고 싶어요. 이 분이 구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 원작의 <마담 보바리>라는 작품을 다시 어댑테이션했어요.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본인이 힘들었던 것도 얘기를 하는데 창작자들이 한번 들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자신이 어떻게 해서 기회를 맞았고, 어떤 배경이었으며, 만들면서 어떤 힘든 일이 있었는지.
시몬즈 같은 경우에는 원래 영국의 유명한 신문사 가디언에서 제일 오래된 카투니스트 내지는 작가였어요. 어느날 원하는 작품이 있으면 한번 연재해보지 않겠냐고 위에서 제안이 내려왔고, 본인이 예전부터 생각해두었던 <마담 보바리>를 다뤄보기로 했죠. 그렇게 연재를 하면서 기회를 맞게 됐는데, 그런 과정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요. 또 자신이 그 작품을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들, 주제의식에 대한 이야기도 하는데요. 나름 좋은 인터뷰라고 생각해서 소개를 합니다.
Graphic Novel l http://snackk.tv/GraphicNovel
Q. <Graphic Novel> 채널을 어떤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창작자들이죠. 꼭 그래픽노블이라고 안해도 되구요. 글과 그림을 통해서 컨텐츠를 만들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영상들을 추천합니다. 그게 일러스트레이터들일 수 있고, 만화 작가일수도 있고, 애니메이터일 수도 있구요.
Q.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해주세요.
그저 모든 게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게 잘 돼서 저희도 잘 되고, 많은 창작자들도 도움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한 마디로 말하면, 이 인터뷰를 통해 산업화가 목적이라는 게 잘 드러났으면 좋겠어요. 창작자들을 잘 매칭해서 협업이란 걸로 산업화를 해보겠다는 게 오늘 제 이야기의 핵심인 것 같고, 저희에겐 도전입니다.
저희는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그리고 창작자분들이 모일 수 있는 기회를 조만간 한번 만들 것 같아요. 컨퍼런스 같은 걸 생각 중인데, 빠르면 겨울 안에 할 수도 있겠구요. 저희가 아마 초청장을 그분들에게 대거 투하할 것 같습니다.
- 스낵100(SNACKK100)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100명의 사람들을 만나 채널을 통해 그들의 취향과 관심사를 들여다보는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스낵의 두 인턴이 패기롭게 시작한 프로젝트, 100명의 인터뷰를 달성하는 그날까지 그들의 무모한(?) 도전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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