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환난으로부터의 감함에 있는 구원
마태복음 24장 22절 /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마태복음 24장 15-21절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악함으로 인하여 받게 될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구원하시는 천국 복음의 능력을 종말적 관점에 의해 말씀해 주시는데, 이어지는 본문 22절에서는 그 구원에서 알게 되는 하나님의 은혜를 전해주십니다.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그에 따라서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에게는 모든 사람에게 화로 미치는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란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는 이 환란이 감하여 둘째 사망의 해(계 20:6, 14)를 당하는 환란이 없습니다.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인데,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습니다. 여기서 ‘인간으로서의 살아 있는 생명체’를 의미하기에 ‘살아 있는 인간’을 말하는데, 일차적으로는 로마 군대의 공격으로 멸망을 앞 둔 유대인이나 종말적으로는 이 세상 마지막 날에 환난을 피해 살아갈 수 없는 모든 인류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감하시리라’는 ‘짧게 줄이다’를 뜻하는 동사로 수동태로 쓰여서 ‘짧게 줄여지다’인데,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에게는 환난의 날들이 짧게 줄여짐에 있게 하신다는 것을 나타내 주시고 있습니다. 인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지 못했으면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란이 없었고 후에도 없을 것’을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이어서 머리끝에서부터 발끝에 이르기까지 다 뒤집어쓰고 꼼짝없이 당하여 영원히 멸망에 처할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택한 백성은 여기에서 구원 얻게 하시므로 그 큰 환란으로부터 감함에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칼빈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지금까지 재앙의 심각성을 여러 표현들을 통해서 해 주신 만큼 이제 위로의 말씀을 몇 마디 덧붙이고 있다. 곧 하나님께서 자신의 선택 밭은 자들을 생각지 않으시거나 그들올 위해 완화 대책을 세우지 않으시면 유대인이라는 이름마저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라” 하는 이사야의 구절(1:9) 과 일치한다. 왜냐하면 바벨론 포로기에 임했던 하나님의 재앙은 바울이 증거하듯이 그리스도의 오심과 더불어 다시 성취되어야 했기 때문이다(롬 9:29). 사악의 깊이가 깊을수록 재앙의 풍랑도 심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만일 제한을 두지 않으셨더라면 유대인들은 완전히 멸망하게 되고 말았을 것이며 단 한 명도 남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거저 베푸신 언약을 생각하시고 자신의 선택자들을 살려주실 것이다” 하는 말씀을 하시고 계신다. 이것은 “너희 백성이 마다의 모래알 같을지라도 오직 남은 자만이 구원올 받올 것이다”하는 이사야의 여l 언 (10:22) 그대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교회가 전멸한 것처럼 보일 때까지 고난올 허용하시지만 그러나 얼마의 후손올 남겨두려는 의미에서 비록 극소수이지만 자신의 선택자들을 파멸에서부터 기적적으로 낚아채심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모든 절망가운데서 사망의 손아귀를 빠져나오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독특한 증거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거짓 선지자들은 교회의 직위와 겉모양만 의지하는 나마지 벌을 받지 않고 그냥 지나칠 것으로 잘못 바라서는 안 된다는 점을 여기서 명심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교회가 사망에 내어줌을 당한다할지라도 기필코 그 교회를 구출하시고야 말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분을 발하시되 그들의 안전을 망각할 정도로 화를 내시지 않을 것이라는 바로 여기에 경건한 자들을 위한 위대한 위로가 있다. 하나님은 유대인을 처벌함에 있어서 무시무시할 정도로까지 불을 내뿜으시지만 그러나 예기치 않은 방법으로 자신의 불길을 억제하시는 가운데 선택자들을 잃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 구원이 유대에서부터 발원해야 한다는 점을 내다보시는 하나님께서 거의 메말라 버린 근원에서부터 단 몇 방울의 물을 모아 강물을 이루게 하시고 그것으로 온 세상에 물길을 대게 하셨다는 거기에 기적의 요소가 담겨 있다. 하나님께서 맹렬한 분노를 억제하신 것은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곧 모두가 멸망 받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이다. 바울은 이를 로마서 11:5에서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특별히 남은 자만이 보존되는 이유를 거저 베푸시는 선택으로 돌리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공로를 제쳐 놓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기뻐하심만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이런저런 구별이 필요 없으며 오직 선택받은 자들은 구원받을 수 밖에 없다는 엄연한 사실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마가는 “자기의 택하신 선택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느리라” 하는 말로서 이 점을 더 명백하고 상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환난으로부터의 감함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위한 것이었으므로 이 혜택은 오직 그들에게만 돌아가는 것이 정당하다.“
그러니 어찌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으며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으며,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인데 어찌 우리 일생을 주께 드리지 않을 수 있겠는지요. (*)
*2023년 9월 17일 주일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