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이 곳에 왜 왔을까요?
사실 우리는 깨달음을 위해서 왔습니다
여기서 깨달음이란
위대한 그런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저 삶을 통해 얻어지는
부산물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체험의 강도가 셀수록
더욱 더 강하게 깨달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깨달음이란 얻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물질적인 얻음이란 손가락 사이로
흩어져 버리는 바람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곳은
영적 성장을 위해 존재하는 곳입니다
영적 성장의 기본은
자신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이 것이 깨닫는 가장 빠른 방법입니다
이 세상은 셀 수가 없을 만큼
많은 스승들이 존재합니다
부모라는 거울, 자식이라는 거울,
형제라는 거울, 친구라는 거울,
지인이라는 거울등 많은 거울이 있습니다
이 거울이 존재하는 것은 모두 당신을
위해서 입니다
이 거울 속에서 내 모습을
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계속 보다 보면
본질이 느껴지는 날이 옵니다
이 세상은 이렇게 스승들이 많아서
이 곳에 살고 있는 것부터가
특혜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특혜는 결국 빚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 다시
빚을 갚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하나?”하면서
제 자동차 안에서 펑펑 울었던 적이
있습니다
밉고 원망스런 사람들이
어느 한 순간 고마운 생각이 든다면
그는 슬슬 깨닫는 순간이 가까워진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이 나를 아프게 하고 미워지도록
이 삶은 그렇게 계획되어 있습니다
우린 하나를 가지면 더 가지고 싶어져서
서로에게 고통을 주게 되어 있습니다
이 삶 속에서 고통이 극도로 심한 사람은
그 만큼 깨닫고 싶은 욕망도 많은
사람입니다
욕심이 많은 사람이
아픈 삶을 선택한 것입니다
뭔가 이루려고 엄청난 선택을 한 것이지요
낮은 차원의 사람들은 원해도 볼 수가
없습니다
집착에서 벗어나야 차원이 올라갑니다
우린 그냥 평등하게 사는 것 처럼 보이지만
영적으로는 차원에 따른 등급이 있습니다
차원이 낮으면 높은 차원이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차원이 높으면 낮은 차원은
쉽게 이해가 됩니다
자기 수준만큼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느껴지는 것도 없이 맹하다면
그 자는 혀 깨물고
뒈지는 것이 차라리 낫습니다
이런 자는 그냥 개,
돼지와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자도 어떤 계기가 되면
한 방에 깨지는 일도 있기는 합니다
이렇게 깨달음도 등급이 있어서
자기 차원만큼 자리가 정해져 버립니다
낮은 차원의 사람들은
원해도 볼 수가 없습니다
집착에서 벗어나야 차원이 올라갑니다
몸과 마음이 가벼워야 상승하기 때문입니다
나와 우리라는 것은 항상 애매합니다
내 것이라고 악을 쓰고 만들었는데
어느 순간에 보면
우리 것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내가 보기엔 몽땅 우리 것인데
각각은 다 자기 것이라고 우깁니다
모든 것은 우주의 것이어서
내 것이라는 것도 함정입니다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내 거라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물질은 존재할 정도만 있으면 되는데
많이 버는 사람은 힘든 사람들에게
많이 베푸라고 그런 삶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많이 가진 사람들은
어두운 곳에 나누면서 많이 써야 하는데
자신을 위해서 축적하려고
더 부족한 사람들을 더 힘들게 합니다
그 길이 맞으면 그 길을 가면 됩니다
하지만 그 길도 함정입니다
존재감을 키우고 싶지만
이 또한 함정입니다
이렇게 온 세상이 함정으로 뒤덥혀 있습니다
지혜의 눈 만이 함정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우린 다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도 나의 일부입니다
그래서 내 것을 나눠주면 마음이 그리 갑니다
그렇게 흐르다 보면 그 사람들에게도
같이 느껴지는 것이 생깁니다
그 것이 사랑이고 깨달음입니다
고통도 자기가 겪어야 할 분량이 있습니다
충분하다고 생각이 들면
숙제를 충분히 한 것이고
아직도 부족하는 생각이 들면
숙제를 덜 한 것입니다
연극에도 대본이 있듯이 그 대본의
길이만큼 분량이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각각의 수준에 맞는
대본(臺本)과 함정(陷穽)
그리고 그 것에 맞는 차원에
당신은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