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로골이야기-차돌광산
차돌광산.doc
아주 어릴때는 몰랐다. 며칠에 한번씩 놀다보면 굉음이 터지고 뒤따라 집 마당이 울리는 듯한 폭발음을 들었
다. 그때마다 몸뚱아리가 순간 출렁 내려안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른들은 남포를 튄다고 했다. 그냥 내 스스로
뭔가를 꽝 터뜨리는 것으로 생각했고 그럴거라고 믿어버렸다. 내 나이가 한살씩 더해지고 키는 나이에
비해 더디게 컸다. 조금씩 내 발길 닿는 곳이 넓어지고 마을의 동과서 그리고 남과북의 지형을 파악하게 되었
다. 그러다 보니 집 주변만 맴돌때보다는 주변의 일들을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청룡산으로 가는 도로를 벗어나 또랑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바닥에 하얗고 단단한 돌이 많았다.
여름이면 불어난 물에 차돌광산에서 씻겨 내려온 것이다. 맨 처음 돌을 보았을 때는 묘한 충동이 일러
가슴을 열뜨게 했다. 지금껏 요천수가에서 보아온 그런 돌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그게 바로 차돌이었다.
차돌광산은 “청룡산”과 “큰골”을 나누는 경계지대에 산 꼭대기까지 제무시(GMC)가 오르내릴 수 있는 찻길을
만들어 어디론가 차돌을 캐내 실어냈다. 차돌로 공장에서 유리를 만든다는 풍문도 우리 또래에게 들었다.
그 무엇이던 나의 궁금증을 채워준 대단한 이야기들은 거의 다 또래 친구들로부터 나왔다.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좀더 자유로운 또래 중 깽본에 사는 영곤이나 갈치 입구 삼거리께에 사는 환춘이가 그런 잡다한 것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나는 동로골에 살면서 차돌광산이 있다는 것도 나중에사 알았으니까. 하지만 그 자체가
흥미를 끌만했고 나에게 새로운 놀꺼리로 충분했다.
흔히들 몸이 단단하고 건강한 사람을 차돌같다고 한다. 우리 동네에도 차돌 같은 사람들이 몇 있었다. 웃골에
종만아재는 골격도 아주 컸고 힘도 좋았다. 또 관수형님 같은 경우도 목덜미가 황소 목덜미처럼 크다고 한 말
을 관수형님의 어머니인 앙골아짐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하지만 그 차돌광산에 일하러 다닌 사람들은 차돌 같은 사람들이 아닌 아랫물이나 깽본쪽 사람들이 다녔던
것 같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친구인 영곤이내 아부지, 다리깐 병권형님, 그리고 한복이네
아부지 노동식씨, 물건너에 오젱이양반 거기다 월남을 갔다 왔다는 월남집 은선양반 들이 차돌광산으로 일을
다녔다.
그런데 한복이네 아부지는 좀 특이한 분이었다. 행동도 거칠고 간혹 술을 불과하게 들고는 동네 망거래에서
객기를 부린다거나 거기다 팔뚝에 새긴 선명한 문신이 있었는데 그것을 볼 때마다 어딘가 다른 부류의
사람처럼 느껴졌고 괜히 무섭다는 생각도 했다. 그렇지만 문신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한적이 있었다. 피를
닦아가며 팔뚝에 새긴 의미와 각오는 무엇이었을까. 청춘을 불사루고 이루고 싶은 사랑이었거나 입신을 향한
불 같은 의지였을까? 아니면 불편한 세상을 향한 자학적 경고였을까? 그분의 인생살이가 힘들었는지 불과한
술기운에 의지한 채 흥분해 큰소리 치는 것도 종종 보았다. 내가 어른이 되고 동네에서 뵈었을 땐 정 넘치는
이웃이 되어 있었다.
기억 너머로 정확치는 않다. 몇 다리를 건너 영곤이 아버지가 차돌광산에서 일하다 몸을 다쳤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단단한 차돌광산 일이 거칠고 벅차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위험천만한 일일 것이다. 사실 영곤이
아버지도 체력이 좋았고 힘깨나 쓰는 축에 꼽을 수 있다. 그리 닮아서 영곤친구가 골격이 큰지는 모르지만,
우리 주변의 산은 온통 땔감이나 하는 산 인줄 알았는데 우유빛 나는 차돌이 마을 근처에서 나온다는 것도
신기했고 멋진 차돌을 한 둘씩 가져다 우물가 장독대 모퉁이에 모으는 재미도 상당했다. 집에서 만지작대며
놀기도 하고 하얗고 뽀얀 것이 맘을 끌게 하는 거기다 묵직하게 전달되는 감촉이 있었다. 속을 알 수 없는
우유빛 도는 차돌의 겉모습을 보며 분명 속까지도 똑같을 거라 여겼다. 차돌도 각양각색이라 물감을 살짝
먹인 것처럼 붉은 기운이 도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그중 하얀 차돌을 더 좋아했다.
자동차가 흔하지 않던 시절 차돌광산이 있는 해발 400m 정도는 족히 될 산 꼭대기 아래까지 골골거리며
제무시가 올라다니는 것도 희한했지만 남포를 튀어 잘게 부셔진 차돌덩어리들을 짐칸 가득 싣고 아슬하게
내려오는 모습은 상상만해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것이다. 짐 싣는 것도 볼거리가 되었고, 산을 내려오는
것을 구경하는 것도 충분한 볼거리가 되고도 남았다.
광산에서 일하던 영곤이는 제 아부지의 광산 일을 주어 듣고는 또 다른 이야기꺼리로 우리들을 즐겁게 했다.
산을 내려오는 제무시가 처박힐뻔했다는 둥 남포 튀는 소리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정도로 엄청난다거나
케이블카 고장에서부터 잡다한 이야기들은 좀더 리얼하게 전달받곤했다.
종래에는 그 광산도 경영난으로 그런지 며칠씩 일을 못한다는 풍문이 들렸고 좀 여유가 생길 때면 다시
일하기를 반복하다 어느 날부터 아예 그 남포소리마저 사라져버렸다. 중학교 때인가 셋째 옥수형하고 나무를
한다고 따라 나섰다가 폐광으로 음산한 기운마저 감돌던 광산을 찾아가본 적이 있었다. 인적이 사라지고 난
차돌광산도 부질없이 허망한 것은 매한가지인 것 같다. 사람은 떠나버리면 그만이지만 아물지 못할 상처로
그 산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제무시 : 트럭 이름으로 GMC를 말함.
2010.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