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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m kommenden Tage sagt es der Tag (Gabriel, Uriel, Raphael)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 Franz Joseph Haydn(1732∼1809)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은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 로라우(Rohrau)에서 궁정의 수레바퀴 제조자인 아버지의 12자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어려서는 삼촌에게서 잠시 음악을 배웠고, 1740년부터 10년 동안 빈에 있는 성 슈테판(St. Stephan) 성당의 소년 성가대원으로 있었다. 여기에서 몇 가지 악기를 배우기는 했으나 정식으로 음악교육을 받지는 못했으며 변성이 되어 더 이상 성가대원으로 일할 수 없게 되자 1749년 성가대를 나왔다. 1750년부터 10년 동안은 교회의 관현악단에서 연주를 하였고 건반악기 레슨도 하였다. 이 때에 메타스타지오의 소개로 이탈리아의 작곡가이자 성악 선생이었던 포르포라(Nicola Porpora)를 알게 되었고 그에게서 잠시 작곡이론을 배우기도 하였다. 그러나 하이든은 푹스(J. J. Fux)으 l[Gradus ad parnassum]으로 대위법을 익히는 등 주로 독학으로 공부하였으며 1758년에는 포르포라으 추천으로 모르친(Karl Morzin) 백작의 궁정 음악감독이 되었고, 이곳에서 목관악기를 위한 <디베르티멘토>와 첫 교향곡 D장조를 작곡하였다. 1760년, 알로지아(Maria Anna Alosia)와 결혼하였다. 그러나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1761년에는 헝가리 귀족 파울 안톤 에스테르 하지(Paul Anton Esterhagy) 후작의 궁정 집사 겸 악장으로 들어갔으며 이곳에서 30년 동안 음악에 관련된 전반적인 일을 맡아서 하였다. 이 해에 2개의 첼로 협주곡, 콘체르토 그로소와 유사한 교향곡 6~8번엔 1762년 파울 안톤 에스테르하지가 사망하고 그의 동생 니콜라우스 에스테르하지(Nikolaus Esterhagy)가 그의 자리를 계승하였다. 그는 오페라 극장과 인형 극장이 딸린 호화로운 궁정을 재건축하였다. 하이든은 이 극장들을 위해서 5개 이상의 인형극과 수 십 편의 오페라를 작곡하였고, 니콜라우스 후작이 현악기의 일종인 바리톤(Baryton)을 즐겨 연주함에 따라 그의 요청을 받고 바리톤을 위한 실내악 작품을 200여 곡 이상 작곡하였다. 1766년, 베르너(Werner)악장이 사망하자 하이든이 악장이 되었다. 이 때부터 하이든은 궁정을 위하여 더욱 열심히 일하였고, 따라서 더 많은 음악을 작곡해야 했다. 1770년대부터 하이든의 명성은 전 유럽에 퍼졌다. 1780년 초에는 모차르트와 만났으며 교향곡과 현악 4중주 분야에서 서로가 영향을 받았다. 1790년, 니콜라우스가 죽은 후 그의 아들 안톤(Anton) 제후가 계승하였는데, 안톤 제후는 궁정으 어려운 재정 때문에 오케스트라를 해체하였다. 하이든은 풍족한 연금을 받고 에스테르하지 궁정을 떠나 빈으로 이주하였으며 이 때부터 궁정의 계약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창작 활동을 하게 되었다. 1791년 런던 관현악단을 위하여 교향곡을 위촉받고 잘로몬(Johann Peter Salomon, 1745~1815)의 협조하에 1791~1792년과 1794~1795년 두 차례에 걸쳐 런던을 방문하여 이 곳에서 12개의 교향곡을 작곡하였다. 1791년, 옥스퍼드(Oxfold)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으면서 이 날 행사의 여흥시간을 위하여 교향곡 제92번을 작곡하였는데 이 곡이 <옥스포드 교향곡>이다. 1792년에는 빈에서 베토벤을 만나 그를 지도하였고, 1795년 에스테르하지가(家)를 위해 궁정 악장직을 다시 맡고 니콜라우스 2세와 그의 부인을 위하여 6편의 미사를 작곡하였다. 그밖에도 몇 편의 현악 4중주와 종교음악, 영어로 된 6편의 시편송을 작곡하였고, 1797년에는 '황제의 찬미가'로 알려진 말년에는 주로 현악 4중주와 미사, 오라토리오와 같은 종교음악의 창작에 치중하였다. 1798년에는 하이든은 모차르트와 함께 고전 양식의 대표자로 인정받았지만 그는 이미 전시대의 양식을 경험했고 직접 사용도 하였으므로 그의 작품에는 바로크의 모든 양식과 전고전주의의 갈랑 양식, 엠핀트자멜 양식, 질풍노도 양식의 특징들이 자주 나타난다. 하이든의 작품 수는 정확히 전해지지 않고 있다. 하이든과 그의 제자들이 만든 작품 목록이 있지만 불완전하고 믿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다. 1919년에 호보켄(Anthony van Hoboken, 1887~1983)이 수집한 유명 작곡가들의 작품 5000개 중 1/5 이상이 하이든의 작품이다. 호보켄은 이를 제1주제별로 목록을 정리했으나 후에 다른 음악학자들은 장르별로 목록을 작성했다. 현악 4중주, 교향곡, 건반악기 소나타의 작품 번호는 호보켄의 목록 번호와 일치한다. 성악음악 <미사> 하이든은 어려서부터 소년 성가대에서 노래하였기 때문에 교회 성악곡에 관심이 많았다. 청년기 시절의 작품으로 하이든은 모르친(Morzin) 궁정과 초기 에스테르하지(Esterhagy) 궁정에 있는 동안에는 교회음악을 작곡하지 않았다. 1766년 에스테르하지 궁정의 악장이 되면서부터는 다시 미사와 전례음악을 작곡하였다. 1783~1792년까지 황제의 칙령으로 교회음악에 관현악 반주를 금지하게 되자 이 작품 이후 14년 동안 하이든은 미사를 작곡하지 않았다. 1796~1802년 사이에 하이든은 궁정으 니콜라우스 2세를 위하여 6개으 미사를 썼다. 이 6개의 미사는 4성부 합창, 팀파니, 2개의 트럼펫을 포함한 오케스트라로 구성되었다. 예외적으로 하이든의 미사 중에는 당시 유럽의 시대적 상황과 관련된 작품들이 있다. 팀파니의 사용이 두드러져서 '팀파니 미사'라고도 불리우는 <오라토리오> 하이든은 3개의 오라토리오만을 작곡했다. <천지창조>는 하이든으 교회음악을 대표할 만큰 뛰어난 작품으로 양식과 형식 면에서 교향곡, 미사, 오페라, 오라토리오의 요소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헨델의 <메시아>에서 깊은 감명을 받고 작곡된 이 작품은 오늘날에도 몇 편 안되는 걸작 중의 하나로서 자주 연주되고 있다. 미사와 오라토리오 이외에도 하이든은 세속 칸타타와 무대 작품을 작곡하였으나 대부분이 분실되었고 일부만 남아 있다. <오페라> 하이든의 오페라는 그의 교향곡이나 현악 4중주에 비하여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하이든은 당시의 오페라 작곡가로서도 명성이 높았다. 에스테르하지 궁정은 빈 못지 않게 오페라으 중심지로 유명하였고, 하이든은 이 곳을 찾아드는 많은 방문객들을 위하여 오페라를 작곡했다. 그는 자신의 창작곡 뿐만 아니라 다른 작곡가들의 작품도 편곡하고 지휘하였다. 작품으로는 인형극을 위한 소규모의 독일 오페라와 15편의 이탈리아 오페라가 있다 이들 이탈리아 오페라는 3편의 정가극(opera seria)을 제외하고는 오페라 부파(opera buffa)이거나 드라마 지오코조(drama giocoso)이다. 그밖의 성악작품으로는 영국 민요를 편곡한 450여 곡의 에어(air)와 클라비어 반주가 붙은 50여 곡의 독창곡이 있다. <기악작품> 건반악기 작품 하이든의 건반악기 작품들로는 대략 50여 곡의 소나타와 몇 곡의 협주곡, 몇 편의 주제 변주곡, 그리고 <카프리치오 G장조>, <판타지아 C장조> 등과 같은 성격적인 작품들이 있다. 50여 곡의 소나타 가운데 1750~1767년 상에 작곡된 초기 소나타들은 장조로 되어 있고, 음악 특징 면에서 디베르티멘토와 유사한 작품들이 많다. 현존하는 초기 피아노 소나타 가운데 4악장 구성으로 된 제6번과 8번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3악장으로 되어 있다. 또한 1770~1780년 사이에 작곡된 4곡의 소나타인 제20번(C 단조), 제36번(E 단조), 제36번(C# 단조)등은 당시로서는 흔치 않게 단조로 작곡되었다. 이들 작품들과 제25번 (Eb 장조)의 미뉴에트 악장은 전고전주으 양식, 특히 C. P. E. 바흐의 영향이 뚜렷이 나타난다. 후기에 작곡된 소나타에서는 하이든의 성숙된 고전양식이 발견된다. 소나타 제52번은 고전 소나타 형식으로 된 3악장 구성의 작품으로 하이든으 원숙한 현악 4중주에 비견할 만하다. <실내악> 18세기 후반까지도 실내악이라는 음악 장르는 그 범위가 한정되지 않았다. 궁정에서 연주되었던 작은 합주와 독주곡들은 물론 교향곡이나 기타 관현악 작품들도 흔히 실내악이라 하였고, 19세기에 와서는 각 파트를 한 악기가 연주하는 합주음악을 실내악이라고 하였다. 하이든은 이 두 가지 형태의 음악을 모두 작곡하였다. 그의 실내악으로는 현을 위한 2중주(duo), 3중주(trio), 4중주(quartet), 5중주(quintet), 6중주(sextet), 그리고 바이올린과 건반악기를 위한 소나타, 피아노 3중주, 현과 목관악기의 다양한 혼합으로 된 3, 4, 6, 8, 9중주 음악들이 있다. 이러한 하이든의 실내악 목록은 실내악의 효시적인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이든의 초기 4중주(현악4중주)는 디베르티멘토를 편곡한 형태와 유사하다. 실제로 하이든은 이들 작품의 상당수를 디베르티멘토라고 이름 붙였다. 이밖에도 Op.1의 4중주(No.5, in Bb 장조)는 하이든의 첫 교향곡을 인용하였다. 이러한 4중주들은 2부분 형식이고, 빠름-미뉴에트-느림-미뉴에트-빠름의 5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이든의 4중주에 삽입된 미뉴에트의 위치는 교향곡과는 달리 일정하게 정해져 있지 않다. 1780년대 이전에 쓴 초기 4중주는 고전양식의 현악 4중주로한정지을 수 없는데 이는 '현악 4중주'라는 명칭이 1781년에 작곡한 <6개의 4중주 (op.33)>에 처음으로 붙여졌기 때문이다. 1780년대의 현악 4중주들로는 op.33, op.42, op.50, op.54, op.55, op.60 등이 있다. 이 작품들은 기법과 형식 면에서 1780년대의 후기 교향곡들과 같다. op.33의 4중주는 러시아의 폴 공작을 위하여 작곡했기 때문에 <러시아 4중주>라고도 하고, 미뉴에트 악장 대신에 스케르초 악장을 사용한 유일한 현악 4중주이기도 하지만 여러 면에서 하이든의 새롭고 독특한 기법이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 가운데 제2곡의 1악장에서는 호모포니를 바탕으로 하여 대위법적인 기법을 사용하여 주제를 발전시킨다. Op.33 중에 가장 유명한 4중주인 제3곡은 가볍고 즐거움이 넘치는 작품으로 <새>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Op.42의 D 단조 4중주는 하이든의 초기와 중기의 4중주 기법을 보여주고, Op.50인 <프러시안 (Prussian) 4중주>는 뛰어난 첼로 주자였던 빌헬름 2세에게 헌정된 작품이고 1788~1790년 사이에 쓴 12개의 4중주는 부유한 상인이었던 토스트(Johann Tost)에게 헌정되었다. 토스트는 이 작품들을 Op.54(3개의 4중주, 1788), Op.64(6개의 4중주,1790)로 나누어 출판하였다. 하이든의 말기 현악 4중주들로는 op.71, op.74, op.76, op.77, op.103이 있다. 이들 작품들은 하이든의 최고의 작품들로 완성된 고전 형식의 현악 4중주 기법을 보여준다. op.71과 op.74는 하이든이 런던을 처음 방문했던 1793년에 작곡되었다. 특히 op.74는 확대된 화성구조, 조성의 급격한 변화, 재현부 안에서 발전부와 재현부를 혼합하는 기법이 사용되어 낭만주의의 기법을 느끼게 한다. op.76에는 원숙한 하이든의 양식이 나타나 있다. 제1곡 1악장에는 제1주제를 대담한 푸가로 전개시킨다. 2개의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가 각각 옥타브로 진행되는 2성부 카논의 미뉴에트(Hexen menuetto, 마법의 미뉴에트)를 사용하고 있고, 제2곡 1악장의 제1주제에는 하행하는 5도가 사용되어 '4중주를 위한 5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제3곡 2악장은 찬미가 op.77의 제1곡(G장조)과 제2곡(F장조)은 하이든의 현악 4중주 가운데 기법적으로 그 절정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마지막 현악 4중주 작품은 op.103(1803)은 느린 악장과 미뉴에트 악장만 작곡된 미완성 작품이다. <교향곡> 하이든의 교향곡들이 인기가 높아지자 다른 작곡가들이 작곡한 교향곡들을 하이든의 작품으로 가장하여 출판한 사례가 많았다. 이로 인해서 하이든이 정확하게 몇 곡의 교향곡을 썼는지 아직도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으나 대략 106곡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이든의 교향곡은 대부분이 에스테르하지 궁정을 위해서 작곡되었으나 전체적인 작품 목록으로 볼 때 이들 교향곡들은 세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a) 에스테르하지 궁정에 들어가기 전 잠시 모로친 궁정에 있었을 때 작곡된 5개의 교향곡 (b) 에스테르하지 궁정을 위해 작곡된 제6~81번 교향곡 (c) <파리 교향곡>, <런던 교향곡>을 포함하여 개인적으로 위촉받은 교향곡 초기 교향곡들은 일정하게 표준적인 악장 구조를 유지하지 못하였다. 4악장으로 구성된 곡도 몇 곡 있지만 대부분의 초기 교향곡은 전고전주의 신포니아에서 유래한 빠름-느림-빠름의 3악장 구조로 되어 있다. 제21번(1764)과 22번(1764)은 Andante-Allegro-Minuet-Presto로 되어 있으며 바로크으 교회 소나타 형식과 유사하다. 각 악장은 같은 조로 되어 있고 2부분 형식이다 그러나 제3번(1762)은 Allgro(G장조), Andante moderato(G단조), Allgro(G장조)의 표준적인 고전 교향곡의 악장 구성을 따르고 있고, 각 악장은 장단조가 교체되는 조성 구조로 되어 있다. 1761년, 에스테르하지 궁정에 들어가서 작곡한 제6~8번 교향곡들도 고전형식의 4악장 구조이다. 7번은 2개의 바이올린과 첼로로 된 트리오 소나타의 악기 편성과 동일하고, 콘체르티노(concertino)의 기능을 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작품은 바로크의 쿤체르티노(concertino)와 유사하다. 제6~8번에는 각각 1760년대의 교향곡에는 실험적인 요소들이 많다. 대표적인 예로 제31번(D장조)에는 당시 교향곡에서 일반적으로 2개의 호른을 사용한 것에 비해 4개의 호른을 사용하고 있고, 첫 악장도 독주 호른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Horn signal'이라는 별명이 붙여졌었다. 1760년대 말에 이르면서 하이든은 보다 내면적인 감정을 표현하기 위하여 단조의 조성으로 된 교향곡을 작곡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단조 교향곡은 구양식을 탈피해서 새로운 질풍노도 양식으로 도입하려는 하이든의 의지가 보여지는 작품들이다. 1768~1773년까지 하이든은 전과 달리 많은 단조 교향곡들 (제26, 39, 44, 49, 52번)을 썼다. 1771년부터 작곡된 교향곡 제42~48번, 50~52번, 54~56번, 65번은 초기 교향곡들보다 규모가 크다. 화성은 더욱 풍부해졌고 악상 변화가 빈번하며 느린 악장에서는 현악기에 약음기를 사용할 만큼 감정으 표현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조성의 선택에서도 18세기로서는 예외적이라고 할 수 있는 F#단조(제45번), B장조(제46번), F단조(제49번)등을 사용하였다. 제45번 <고별>교향곡은 제1악장 F#단조, 제2악장 A장조, 제3악장 F#단조로 되어 있는데 이러한 조성 변화도 흔치 않은 예이다. 마지막 끝부분의 Adagio에서 연주자들은 자신의 연주가 끝나면 악기를 정리하고 보면대 위의 촛불을 끄고 퇴장해 버리며 단지 두 명의 연주자만 남아서 작품을 끝맺기 때문에 <고별>교향곡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처럼 악기편성을 축소해 나간 이유는 휴가 중에 있는 에스테르하지 공작에게 연주단원들이 휴가를 받아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간청을 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제45번은 악기 편성 뿐만 아니라 제1악장의 발전부에 새로운 주제를 도입시키고 있다. 이것은 하이든으 교향곡 중에서도 유일하게 발견되는 창작기법이기도 하지만 이 당시의 다른 고전음악에서도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이밖에도 1780년대의 교향곡에서 하이든은 때때로 마지막 악장에 론도 소나타(rondo sonata)형식을 사용하였다. 1782년에 작곡한 제77번의 마지막 악장에 처음으로 론도 소나타 형식을 사용했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7개의 부분으로 된 론도(ABACABA)와 유사하다. 처음의 ABA는 제시부, C는 발전부, 마지막 ABA는 재현부로 취급된다. 론도 소나타 형식은 하이든보다 모차르트의 작품에서 먼저 나타났다. 1785년에서 이듬해까지 파리에서의 연주회를 위해 작곡된 파리 교향곡(제82번~87번)과 1787~1788년 사이에 작곡한 5개 교향곡(제88~92번)은 하이든으 성숙기를 대표하는 교향곡들로 고전 교향곡의 모델로 간주되는 작품들이다. 82번과 85번 등 몇 곡은 작품 속의 악구(phase)에 나타난 특징 때문에 별명을 갖고 있다. 82번은 춤곡같은 마지막 악장에 단조로운 저음반주가 나온다고 해서 'Lours(곰)'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85번은 여왕 마리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가 좋아했던 프랑스 선율의 변주곡이 나온다고 해서 'La Reine(여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교향곡 제88번~92번은 대부분이 위촉작품으로 그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옥스퍼드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을 때 헌정한 제92번 <옥스포드>교향곡이다. 이 기간에 작곡된 교향곡들에는 첫 악장에 느린 도입부가 나타나고, 마지막 악장에는 소나타 형식이나 론도 소나타 형식을 사용하는데 특별히 대위법적인 기법들이 많이 나타난다. 제88번으 마지막 악장의 카논은 이러한 예를 반영하여 준다. 교향곡 제93~98번, 99~104번은 두 차례의 런던 방문 때에 작곡된 곡들이다. 12개에 달하는 이들 교향곡은 런던의 청중들을 위해 작곡되었다고 해서 '런던 교향곡'이라 하기도 하고, 음악 흥행을 주선하는 잘로몬(Salomon)의 협조하에 작곡되었다고 해서 '잘로몬 교향곡'이라고도 한다. 이 작품들은 고전 교향곡의 정수이자 하이든 교향곡으 최고의 작품들이다. 오늘날 하이든을 대표하는 교향곡들은 대부분이 이12개의 교향곡을 가리킨다. 이 교향곡들은 전형적인 고전 소나타 형식으로 작곡되었지만 대부분이 1악장에 프랑스 서곡에서 유래한 느린 도입부를 사용하였다. 도입부의 조성은 교향곡 본래의 조성으로 시작되지는 않는다. 104번은 D장조이지만 도입부는 D단조로 시작한다. 긴 도입부는 코다에서 다시 확대, 발전시키므로 작품의 균형감을 잃지 않게 한다. 하이든은 민속 선율에서 주제를 선택하기도 하였다. 103번의 1, 2악장과 104번의 마지막 악장은 민속 선율에서 주제를 차용한 것이다. 제99, 100, 103, 104번의 제1주제는 선율적 내용이 아니라 조성의 변화에 의해 딸림조로 제2주제에서 다시 나온다. 이와 같은 주제의 설정은 전형적인 고전 소나타 형식에 기초한 것이다. 런던 교향곡들 중에는 2악장의 특징 때문에 별명이 붙여진 교향곡들이 있다. 101번은 2악장에서 시계소리와 같은 규칙적인 리듬 때문에 '시계'라는 별명이 붙었고, 94번은 2악장에서 조용한 주제가 흐르다가 약박에서 갑자기 포르테(f)가 나오기 때문에 '놀람'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런던 교향곡'들의 악기 편성은 이전의 교향곡들보다 크고 다양하다. 2개의 트럼펫과 팀하니는 모든 '런던 교향곡'에 들어 있고, 100번 <군대>교향곡에서는 트라이앵글, 심벌즈, 큰북이 2, 4악장에 삽입된다. 마지막 6개의 '런던 교향곡'에서는 102번만을 제외하고 2개의 클라리넷이 사용된다. 하이든의 교향곡에는 바로크, 전고전주의, 고전주의에 이르는 다양한 음악적 요소가 전부 들어 있다. 하이든은 초기부터 많은 실험적인 교향곡을 발표하다가 12개의 런던 교향곡에 이르러 고전주의의 완숙한 음악형식을 실현한 교향곡을 탄생시켰다. 악기 편성도 크고 다양해졌을 뿐만 아니라 주제의 전개에서 호모포니와 대위법을 음악재료에 따라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음악은 색채감이 넘치고 장대하여졌다. 교향곡에 나타난 하이든의 창작기법과 실험정신은 교향곡을 고전음악의 최고의 위치로 올려놓았고 모차르트, 베토벤을 비롯한 후기의 교향곡 작곡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협주곡> 하이든의 고전 협주곡들은 1770년대 이후의 작품들이다. 다른 음악들도 마찬가지였지만 특히 협주곡에서도 1760년대에 쓴 몇 개의 협주곡들은 바로크의 협주곡들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건반악기를 위한 협주곡 D장조, 바이올린 협주곡 G장조, 첼로 협주곡 C장조와 D장조, 트럼펫 협주곡 Eb장조 등은 고전형식의 협주곡들로 오늘날에도 인기가 있었다. 1784년에 작곡한 하프시코드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D장조는 고전형식의 3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지막 악장에서 헝가리의 민속 선율이 나오는 것이 이 작품의 특징이다. 하이든의 헙주곡은 대부분이 특정한 독주자들을 위하여 작곡되었다. 첼로 협주곡 C장조는 요제프 바이글(Joseph Weigl), D장조는 안톤 크라프(Anton Kraff)를 위하여 작곡되었다. D장조 협주곡은 독주자의 기교가 요구되는 화려한 곡으로 유명하다. 트럽펫 협주곡 하이든은 전통악기만을 협주곡의 독주악기로 사용하지는 않았다. <2개의 리라 오르가니차타(Lira oreganizzata)를 위한 협주곡>에 사용된 '리라 오르가니차타'라는 악기는 1780년대에 대단히 인기가 있었다. 이 악기는 팬파이프(panpipe)처럼 한 세트의 오르간 파이프(organ pipe)가 있는 허디거디(hurdy-gurdy)의 일종으로 악기의 소리가 크지는 않지만 날카롭다. 하이든 교향곡 제94번 G장조 "놀람" 1791년 가을 영국에서 작곡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1792년의 시즌 중 초연은 이 해에 초연된 교향곡 중의 세 번째 곡이다. 이 곡에 붙여진 <놀람(경악 Suprise)>이란 제명은 제2악장에서 팀파니와 아울러 느닷없는 포르테음의 타격에 으해 깜짝 놀란 데연유한다. 그 때문에 독일에선 "팀파니 타격이 있는"으로 불리어 진다. 놀람의 제명은 초연 후에 바로 붙여 졌다. 이 제2악장의 최초의 16마디의 스케치에는 큰북 타격음이 지적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이 타격음은 스케치한 뒤에 생각해 낸 것을 알 수있다. 이 때 하이든은 런던에서 첫해 시즌을 마쳤던 때라 영국에서의 연주 습관의 경험을 지니게 된 것이다. 특히 영국의 사보가가 스코어에 연주용 파트 악보를 만들 때 하이든의 여러 가지 악기호를 잘 알지 못했고, 또 오케스트라도 하이든의 의도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했다. <제94번>의 자필 악보에는 여러 가지 기호나 프레이징이 그 이전에 비하여 훨씬 용의 주도하게 적혀 있다. 이 점에 대해 R.랜던은 다음과같이 말하고 잇다. "이러한 것은 <제94번>의 제1악장의 주요 주제의 제2바이올린에 의한 반주부에 써 있는 세밀한 다이내믹 기호나 전곡을 통해 숱한 프레이징 기호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인 것이다. 전에는 말로 일러 주던 것을 이제는 일일히 악보에 써 넣어 일목 요연하게 한 것이다." (Landon : SYM.p.555) 하이든이 예국의 사보가 때문에 고생한 것은 기보가 정확하지 못한 것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곡이 사보가에 의해 도둑 맞는다는 사건을 1792년이 되어서 또 경험했다는 점이다. 즉 1792년 3월 2일 빈의 마리아네 폰 겐칭거부인에게 지난 해부터 발송을 부탁했던 교향곡 <제91번>의 악보가 알리는 편지 가운데서 하이든은 런던의 사보가에 대한 불만을 적고 있다. "소나타 <제49번>에 대한 불쾌한 뉴스를 듣고 쇼크를 받았습니다. 오, 신이여! 이러한 도둑에 대한 것을 듣느니보다 25두 카텐을 잃어버린 것이 차라리 좋을 것 같습니다. 더구나 이런 도둑질을 할 수 있는 것은 사보가 이외는 없습니다......" <제94번>이 <제93번>과 거의 같은 시기에 작곡된 것은 곡의 전체적 양식에서도 알 만하다. 목관악기의 용법에도 새로운 시도가 많아졌고 특히 주제 선율을 대해 효과적으로 처리하게 되었다. 제4악장의 코다에서는 증 6도 프레이즈에의 연결에 팀파니의 센 타격이 선행하여 여기서도 <놀람>의 효과가 발휘되고 있다. < 제 1 악장 > 서주 아다지오, D장조, 3/4박자 목관악기가 울리면 현악이 호응하는 4마디로 시작된다. 두번째는 관악의 울림이 D장조 그대로 인데 대해 현악의 호흥은 d단조로 되어 4마디째부터는 크로매틱한 진행으로 되어 딸림음의 반종지를 이끌어 낸다. 주부 비바체 아사이 g단조 6/8박자, 소나타 형식 제1주제 속에 이 악장에서 발전되는 모든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제1주보는 두 개의 바이올린에 의해서 제시되는 딸림음상의 3마디 반과 그 뒤로 이어지는 14마디의 포르테 부분과 맨 끝 부분의 4마디의 피아노부로 되어 있다. 특히 최초의 두 개의 동기인 a · b는 전체를 형성시키는 핵으로서 극히 중요하다. 또 포르테부에서 관악기에 의해 조성되는 리듬형은 제1악장 전체의 기본 리듬이 된다. 제1주제의 최초의 4마디가 되풀이되어 경과부가 시작된다. 다음의 포르테부의 처음 2마디의 저음에 뒤에 나오는 전개부에서 쓰여지는 음형이 나타나는데, 이것도 제1주제의 두 개의 동기의 발전형이 합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면 제1주제가 딸림단조로 나타나고 계속되는 포르테부도 딸림단조에 의하고 있다. 이 미노레부는 하이든의 일생을 통해 계속 사용해 온 수법의 하나이다.(재현부에는 이 미 노래 부분이 나오지 않는다.) 다음에는 처음으로 딸림조부로 들어가는데 제2주제 부분의 선율적 성격은 희박하다. 최초의 4마디에 당김음에 의한 리듬형이 제시되며 그 뒤에 달리는 듯한 패시지가 이어진다. 이 뒤에 다시 딸림조의 부분이 이어지고 현악에 의한 대위법적인 악상이 나타난다. 이것은 재현부에서의 쓰이는 형태로 보자면 종결 주제로 생각할 수 있다. 그 뒤에 포르테 프레이즈에 의한 간결한 종결이 계속되는데, 이 부분에는 제2주제와 종결 주제의 동기가 쓰여지고 있다. 전개부는 3개의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제1부분은 C장조의 제1주제 첫머리 동기에는 시작되어 종결 주제 꼬리의 동기를 쓰면서도 f단조에서 F장조에 이른다. 제2부분은 경과부의 음형을 사용하여 전조를 계속하는 포르테부로서 d단조에서 시작해서 Bb장조, g단조 등을 거쳐 b단조의 딸림음에 이른다. 그러면 제3부분은 제2주제의 빠른 악구나 경과부의 음형 등에 의해 b단조에서 G장조로의 복귀부를 구성한다. 재현부에선 제1주제의 완전한 재현을 한 뒤, 경과부는 지극히 단축되어 제2주제의 재현을 유도한다. 이 뒤에 제2경과부가 삽입되고, 제1주제 동기가 화성적으로 부풀어 새로운 전개를 제시한다. 이 수법은 후일 베토벤의 소나타 형식의 제4부분을 예고한 것으로 된 셈이다. 이윽고 호른의 저음을 신호로 코다로 들어가는데, 그 제1부분에서는 다시 한 번 제1주제 의 주요 동기가 취급된다. 다음에 종결 주제 이하를 재현하고는 전체가 끝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