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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참가자 정진옥의 북한 사찰 순례 및 문화유적 답사기(7)
글| 정진옥
제9일 ( 2016-09-07) – 칠보산( 외칠보, 해칠보, 만물상 )
어제 밤은 어찌된 일인지, 침대가 놓여있는 방들이지만 방바닥을 뜨끈뜨끈하게 덥혀주는 바람에 아주 따뜻하고 쾌적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는데, 오늘 아침에는 식당에서 따끈하게 찐 옥수수와 감자를 별식으로 푸짐하게 내주는 통에 더욱 구수하고 푸근한 아침식사를 느긋하게 즐긴다.
식사를 마치고 산책을 겸하여 여관 밖으로 나간다. 건물은 작고 낡았지만 여관이 자리한 터는 2,000평이 넘어보일 정도로 넓은데 잔디와 나무들로 조경이 잘 되어있다. 몇 그루의 복숭아 나무에는 알이 작은 복숭아들이 열려있다. 빨갛고 하얀 꽃들도 피어있다.
주위경관은 대단한 절경絶景이다. 병풍인양 둘러있는 바위봉들의 형태가 현란絢爛하다. 화산활동으로 빚어진 봉우리답게 기기묘묘한 모습의 바위들이다. 금강산의 암봉岩峰들이 비교적 안정된 화강암이면서 오랜 세월에 거친 절리節理와 풍화風化를 거쳐서 형성되어진 ‘어떤 질서가 있는 다양한 아름다움’이라면, 이 칠보산의 암봉들은 화산과 용암의 폭발적 분출에서 비롯되어진 예측불허 천방지축 돌연변이‘豫測不許 天方地軸 突然變異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런 저런 상상을 불러 일으키는 부정형의 다양함이다. 어찌보면 무서운 귀신같고 어찌보면 아이를 안은 인자한 엄마같다. 토끼의 머리이고 달팽이의 뿔이고 장갑낀 손이다.
10시가 되어서야 일행이 모두 차에 오른다. 외칠보의 옥계폭포와 덕골폭포를 향해 길을 나선다. 어제의 내칠보 탐방은 주로 높은 전망대에 올라서 아래의 전망을 부감俯瞰하는 형식이었는데, 오늘은 직접 아래의 계곡을 걸어들어가는 형식이다.
계곡을 걸으며 양쪽으로 펼쳐지는 바위봉들의 절묘한 아름다움에 경탄敬歎을 연발한다. 계곡에도 맑은 물이 바위와 돌을 휘돌며 흐르고 있다. 주관적인 느낌으로 금강산과 비교를 해 본다. 이 계곡에서 펼쳐지는 암봉들의 비경秘境은 금강산의 외금강이나 내금강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거나 혹은 더 나은 점이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마치 만물상의 입구를 들어갈 때의 경관景觀에 비견比肩된다. 흠이라면 계곡을 흐르는 물과 바위들의 규모나 조화미調和美가 그만은 못하다는 것이다. 하긴 만물상 초입의 계곡도 그랬었다. 계곡미溪谷美는 단연 금강산의 외금강 내금강이 으뜸이다. 그러나 봉우리의 아름다움으로 한정한다면, 물론 아름다움의 특성이 서로 많이 다르기는 하지만, 이 칠보산이 금강산에 그리 밀리지는 않겠는다는 느낌이다. ‘함북금강’이라는 칠보산의 별칭別稱이 수긍首肯된다.
경탄을 거듭하며 계곡을 걷고 있는데 바로 길가의 바위벽에 한마리의 두꺼비가 붙어있다. 얼마만에 보는 두꺼비인가. 아마 50년은 되지 않았나 싶다. 기억 속의 두꺼비에 비해 너무나 하얗고 깨끗하다. 손가락 발가락이 각기 4개로 보이는 팔과 다리로 별로 놀라지도 않고 엉금엉금 기어가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정겹기도 하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이 많지만 어쩌면 같은 점이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략 50분을 걸으니 번듯한 팔각정八角亭이 있는 곳에 다다른다. 정자의 이름이 옥계정이다. 탐방로는 여기서 끝이 난다. 90도 쯤의 각도를 두고 두 개의 계곡, 두 개의 물길이 합류되는 곳이다. 두 개의 폭포가 다 수량이 많고 아름답다. 왼쪽이 덕골폭이고 오른쪽이 옥계폭이란다. 남자가 덕골폭에 몸을 씻으면 무병장수하고, 여자가 옥계폭에 몸을 씻으면 미인이 된단다. 덕골폭은 낙차落差가 11m이고, 옥계폭은 낙차가 8.5m라는데 수량은 옥계폭이 배 이상이나 되어 보인다. 폭포아래의 담소潭沼도 옥계폭이 훨씬 크다. 옥계폭의 좌우 협곡은 기암과 푸른 수목에 감싸인 신비한 분위기이고 뒤로는 그림같은 산봉우리가 저 멀리로 보인다. 선경이란 바로 이런 곳이라는 황홀감이 든다.
예전에도 이 정자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옛 관북關北의 선비들이 이곳의 어디메 쯤에 자리를 펴고 모여앉아 시회詩會를 열었음직한 그런 곳이다. 이곳에서라면 어느 누구도 도도滔滔한 감흥感興이 흘러넘쳐 아름다운 절구絶句를 얻었을 것이다. 강산지조江山之助. 하긴 어디 문장文章만이랴, 그 네들이 즉 옥계칠현玉溪七賢이 되고 칠보신선七寶神仙으로 승화되어졌을 것일지니. 김형근단장은 어느새 웃통을 벗고 맑기만한 옥계소玉溪沼에 들어가 등목을 즐기며 자연과 일체가 되어있고, 닥터윤은 옥계소 가장자리의 너럭바위에 무릎을 꿇어 엎드린채 얼굴을 씻고 계신다. 두 분이 여자라면 미인이 될터이지만, 엄연히 남자일진대, 결과가 어떨런지 예의주시銳意注視 해야겠다.
김선생님, 임선생님 두 분은 덕골폭의 힘찬 물줄기를 바라보며 담소潭沼 위의 바위에 나란히 걸터 앉아 계신다. 정자에서 바라보니 마치 시조時調라도 읊조리시는 그런 선비의 풍류風流가 느껴지는 그런 정경情景이다. 그러나 웬지 쓸쓸한 감상感傷에 젖어 계신 듯도 하다. 제경공齊景公의 우산사양牛山斜陽이 그렇듯 지극한 아름다움 앞에서는 왠지 환희심歡喜心보다는 오히려 탄식성歎息聲을 발하는 것이 우리네 존재의 속성屬性이 아닌가 싶다. 이 덕골폭 물의 효혐效驗이라는 무병장수無病長壽가 이 두 분을 포함한 우리 모두에게 고루 베풀어지기를 발원發願해 본다.
차를 내렸던 곳으로 돌아 나오며, 비석바위, 꽃병바위, 장군대, 유희대 등을 가리키는 이정표里程標들을 보게 되는데, 그냥 지나친다. 우리는 어차피 주마간산走馬看山의 일정이다. 차에 오른다. 이젠 해칠보로 향하나 보다. 중간에 왼쪽으로 ‘노적봉’을 지나친다. 칠보산의 다른 봉우리들과는 달리 수직으로 또 수평으로 빼꼭히 절리현상을 겪은 바위봉이라서 마치 모자이크 기법으로 그린 그림을 연상시킨다. 또 악어의 등껍질 무늬를 닮은 듯도 하다. 독특한 아름다움이다.
잠시 후 푸른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해칠보가 이곳이다. 완만한 곡선의 만灣을 이룬 가운데 길게 이어지는 해안 백사장의 모래가 깨끗하다.
남쪽으로 저만큼 떨어진 곳에 바다를 직접 면한 산봉우리들이 첩첩하다. 아마도 본격적인 해칠보는 그 쪽인가 보다. 그 편의 해안 사장에는 40~50명은 되어보이는 사람들이 나름대로 바다를 즐기고 있는 정황情況이다. 버스도 한 대가 세워져 있는 것으로 보아 단체團體로 관광에 나선 북한주민들인가 보다. 해안의 북쪽으로는 멀리 건물들이 보인다. 아마도 경성읍내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백사장白沙場 인근에 홀로 서있는 하얀 2층 건물 앞에 내린다. 우리 같은 외래 관광객을 위한 시설인가 보다. 배를 타고 인근 연안해역沿岸海域을 돌아본단다. 구명조끼를 꺼내온다. 아주 작은 목선木船 하나가 바닷가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40대 중반 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뱃전에 몸을 기댄 채 우리를 수줍은 미소로 맞는다. 빨간 모자와 긴 장화를 신었고 위 아래로 갈색 작업복을 입었다. 거친 바닷바람에 그슬렸는지 얼굴이 대춧빛이다. 건강하고 순박한 뱃사람이겠다. 승선료는 $3이다. 두툼한 오렌지색 구명조끼를 입고 작은 배에 촘촘히 앉은 우리들의 표정이 무척 환하다.
해칠보의 명소名所를 둘러본다는 의미보다는, 배를 타고 해칠보의 인근바다에서 한 차례 바닷바람을 맞아본다는 그런 성격의 뱃놀이를 마치고 승선乘船했던 곳으로 돌아온다. 선착장船着場 시설이 없는 백사장에서 그대로 배를 타고 내리기 때문에 자칫하면 발이 물에 빠지게 된다. 김조명님이 아예 신발을 벗고 물에 들어가 밀러보살님을 비롯한 몇 분을 직접 등에 업어서 내려드린다. 포근하고 정겨운 정경情景이다.
우리의 점심을 위한 자리가 해변의 송림松林 아래 잔디밭에 준비된다. 두 줄로 방석을 쭈욱 깔아놓고 그 가운데로 길게 천을 펼쳐 놓으니, 기막히게 좋은 자연친화형自然親和型 아니 자연동화형自然同化型 좌석이 되어진다. 바로 곁에서는 3인의 젊은 여성들이 명태나 큰 조개 등의 해물을 손질하고 두세명의 남자들이 돌을 괴어 임시로 만든 화덕에 철판을 얹고 그 위에 조개 등을 구어낸다. 반주飯酒로는 ‘살구술’이 놓인다.
함경북도 경성땅 해변에서 살랑한 솔바람을 맞으며 천인합일, 남북합일天人合一, 南北合一의 경지에서 술잔을 비우고 보니, 스스로의 시흥詩興은 아니더라도, “짚방석 내지마라 낙엽엔들 못 앉으랴, 솔불 켜지마라 어제 진 달 돋아온다, 아희야 탁주 산챌망정 없다말고 내어라”란 한석봉선생의 시조時調가 떠 오른다. 나중에 보니 이 소중한 자리를 가장 잘 즐기고 누리는 분은 김조명님이다. 동행중인 당 간부인 분과 격의없는 대작對酌으로 화기애애和氣靄靄한 대화 삼매경(對話 三昧境)을 누리신다. 우리는 정녕 한 민족 한 핏줄이며, 남북을 불문하고 사람과 사람간에는 결단코 아무런 증오나 갈등이 있지 않다는 확신을 확인한다.
점심자리가 파하고 나서 각자에게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김선생님과 임선생님이 나에게 한의학韓醫學의 개요에 대한 소개를 부탁하신다. 60여년을 서양의학西洋醫學의 의사로서, 그것도 최첨단最尖端 세상인 미국에서 살아오신 분들의 제안이라 너무나 의외이다. 우리의 전통적傳統的인 의학이론이나 그 패러다임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실거라 짐작한다. 반갑고 고마운 말씀이나, 내가 나를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게 만들기에 충분한 그런 과람한 요청이시다. 미국에 이민을 온 뒤에, 취미삼아 한의대漢醫大를 다녀서 한의漢醫 라이센스를 받았지만, 두 분 선생님의 기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말씀을 드릴 실력이 영 부족하다는 자각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어느 산을 오름에 있어, 단지 정상에 오르는 것만을 목표로 하여 다짜 고짜, 주야를 막론하고 가장 편한 길, 가장 짧은 길을 골라가며 정상등록부頂上登錄簿에 이름을 겨우 올릴 수 있었던 나에게, “그 산은 과연 어떠한가?”라는 물음이 던져진 격이라고나 하겠다.
어쨌거나 두 분 선생님의 한의韓醫에 대한 관심이 기뻐서, 외람猥濫된 만용蠻勇을 부리기로 한다. 2층 건물을 중심으로 점심을 먹었던 북쪽 송림松林이 아닌 남쪽 송림 아래 잔디밭에 자리를 잡는다. 이번에는 정말 말 그대로 “짚방석 내지마라 잔디엔들 못 앉으랴” 의 풍류風流를 누리며, 누런 송아지가 소나무에 매어져 있는 해칠보海七寶의 솔밭에서, 겸손하신 두 분 명의名醫를 모시고 엉터리 돌파리 한의韓醫에 의한 ‘한의韓醫 빙자憑藉의 횡설수설橫說竪說’이 행해진다. 체계적인 학습과 이해를 무시한 헛 공부에 대한 후회後悔라니! 두 분께 죄송하다. 평생을 통하여 기억될 기쁨이고 부끄럼이다.
대략 90분 만에 솔밭에서 나온다. 오후 4시이다. 류선생님이 계속 열이 오르고 어지러운 증세가 있다 하여, 이 지역의 의사가 왕진을 나왔다. 젊은 여의사女醫師이다. 류선생님을 긴 의자에 눕히고 혈압을 잰다. 별일이 아니라니 다행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한 병에 걸리면 적절한 조치를 받기가 참으로 쉽지 않겠다는 걱정이 든다.
다시 차를 타고 이동한다. 칠보산 만물상을 간다. 구름위로 하늘을 나는 두 선녀의 형상을 응용하여 만든 만물상 안내도 앞에서 차를 내려, 잘 조성된 탐방로探訪路를 따라 만물상의 중심으로 들어간다. 빗물로 패인 도로를 보수하는 주민들이 있다. 흙일을 하러들 나와서 그런지 차림들은 남루한데 표정들은 순박하게 느껴진다. 숲이 울창하다. 소나무들이 특히 키가 크고 아름답다. 눈에 드는 봉우리들 모두가 기봉奇峯이고 묘봉妙峰이다.
40분이 채 안되어 정각이라고 들은 듯한 전망대의 정자에 올라선다. 안내도에 나와있는 것처럼 만장봉, 궐문봉, 장군봉, 월락봉, 호신암, 오태봉, 사자암, 침상암, 촉혈암, 수탉암, 락선대, 토끼봉, 조약대 등의 이름으로 불릴 외칠보의 명봉명암名峯名岩들이 눈앞에 파노라마로 벌려있다. 이 들을 통털어 만물상이라 부르는 것이겠는데, 일일이 그 이름으로 구분하진 못하겠다. 특히나 발 아래 서쪽으로 아득히 뻗어나가는 계곡과 그 계곡을 따라 첩첩히 겹쳐있는 산줄기의 파도가 초저녁의 푸른 남기嵐氣에 묻혀가는 광경光景은 정녕 그윽하고 유현幽玄하여 나의 넋을 앗는다. 참으로 신비롭고도 귀한 경개景槪이고 시각時刻이다.
전망대에서의 전망을 마치고, 만물상의 입구에서 안내판을 감싸안고 있는 두 비천선녀飛天仙女에게로 되돌아 나온다. 벌써 18시 20분이다. 외칠보여관으로 돌아오는 중간에 그 동안 이곳 안내와 해설을 맡아 수고하셨던 김갑성님과 당 간부께서 작별인사를 하시며 하차하신다. 서로간에 다들 서운한 느낌일 것이다. 차가 출발하는 순간에 손을 흔들고 계신, 손자를 둔 할아버지라는, 김갑성님의 눈에서 이슬을 본 것은 나의 환상이었는지도. 언젠가 돌아와 다시 볼 기약期約이 없는 것은 강산江山이나 사람이나 다 같으련만, 이렇게 떠나는 마당에 솟아나는 아쉬움은 단연 산천경계山川景槪쪽 아닌 사람임을 깨닫는다.
제10일 ( 2016-09-08 ) – 경성 ( 온천 )
간밤에도 역시 따끈한 온돌방 위에 놓인 침대에서 편안히 휴식을 취했다. 몇가지 작은 빨래를 바닥에 널어 놓았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아주 꼬슬꼬슬 잘 말라있다. 상쾌한 기분이다. 룸메이트인 마이클류님이 게속 컨디션이 안좋으셔서 다소 걱정이 되는데, 우리 일행 중에도 의사가 세 분이나 계시니 그 점이 참 다행스럽다. 양각도 호텔에서 비상용으로 구입한 우황청심환牛黃淸心丸을 매일 1~2환을 드시도록 했는데, 많이 도움이 된다며 고마와 하신다.
여관에서 조반을 마치고 경성을 향하여 출발한다. 비가 내리고 있다. 9시 30분이다. 가다가 바닷가의 어느 전망대 정자에 올라 동해의 아름다운 경치를 조망眺望한다. 바다쪽으로 불거져 나간 등성이 위에 지은 4각형 시멘트 정자이다. 줄기가 붉고 키가 훌쩍한 소나무숲도 일품이다. 정자에서 바닷물까지의 고도차는 약 50m쯤이 되어보인다. 왼쪽으로는, 장구長久한 세월에 걸쳐 바다에 살을 야금야금 내어주어 이제는 거친 뼈가 다 드러난 산줄기가 절벽絶壁되어 둘러있다. 끊임없이 덤벼드는 용맹한 파도를 꿈적않고 밀쳐내고 밀쳐내는 기암절벽奇巖絶壁의 기상이 아름답다.
바다 안으로는 두서너 바위섬도 있어 운치가 더 하다. 거친 파도를 견디며 한 척의 작은 배가 지나간다. 내륙의 저 안쪽으로는 잘 단장된 마을의 주택들이 키가 큰 해송海松들 사이 사이로 얼핏 얼핏 그 모습이 드러나고 사라진다. 이곳 정자에서 보자면 마치 다른 세상의 이상향이 아닌가 싶은데, 마을 앞으로 철로가 있어보이니 소심한 나의 괜한 상상이겠다.
경성읍의 한 여관에 차가 멎는다. 오전 10시 30분이다. 방을 배정받는다. 보슬비는 계속 내리고 있다. 여관 앞마당의 한켠에 개집이 놓여있다. 50년전의 옛날 고향집에 있었던 꼭 그런 개집이다. 젖통이 늘어져 있는 누런 털의 엄마개는 목줄을 하고있고, 태어난지 2~3주 밖에 안되어 보이는 강아지들 4마리가 아장 아장 뒤뚱 뒤뚱 엄마주변을 맴돌고 있다. 새끼 1마리만이 검다. 아마 아빠개가 검둥이였나 보다. 오래 전에 내 곁을 훌쩍 지나간 옛시절이 이곳에 그대로 남아있다.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영덕게처럼 다리가 긴 게와 돼지갈비조림이 곁들여진 식단이 푸짐하다. 정성이 들어간 음식들이다. 오늘의 일정은 대체로 여유만만이다. 서두름이 없다. 아마도 평양행 항공편이 오늘은 없어 어차피 내일까지는 그럭저럭 시간을 보내야 하나보다. 좀 한가한 것도 나쁘지 않다. 이곳 경성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온천지역이란다. 예전에는 ‘주을’이라고 불렸다는데, 이는 여진족의 말로‘뜨거운 물’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우리 일행 모두가 경성온천으로 온천욕溫泉浴을 하러 간다. 나도 따라 나선다. 비는 계속 내린다. 경성온천이라는 곳으로 들어간다. 아주 넓은 부지 위에 조성된 시설이다. 숲과 잔디밭이 잘 가꾸어져 있는 길을 따라 들어가니, 왼쪽으로는 200평쯤은 돼 보이는 연못이 있다. 연못 안에는 3개의 작은 인공섬을 조성하여 동화적童話的인 분위기가 나도록 조형물을 설치했다. 왼쪽 섬에는 두 마리의 사슴이 숲속에서 노닐고 있는 정경이고, 오른쪽 섬에는 비천선녀飛天仙女가 두 손으로 호리병을 받쳐들고 나에게로 날아오는 형상이고, 중앙에는 초대형超大型 연꽃 한 송이를 여러 마리의 잉어들이 물위로 받들어 올리는 모습의 조형물이다. 아마도 이 곳에서의 온천욕은 아주 신비로운 치료효과가 있다는 것을 나타내려는 형상인 듯 하다. 어쨌거나 우리 민족의 일반적인 정서情緖에 잘 어울리는 친근한 정경이다.
조금 더 걸어가니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곳에 설치되어있는 길 안내표식물案內標識物이 시선을 끈다. 오른쪽은 의인화擬人化한 3마리의 토끼들이 발랄한 표정으로 ‘2과’로 가는 방향을 가리키고, 왼쪽에는 의인화한 3마리의 곰들이 재미있는 자세로‘광천과’로 가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어 짐짓 미소를 짓게 만든다. 평소에 아주 폐쇄적閉鎖的이고 경직된 북한체제라고 들어왔는데, 이 경성온천에서의 우화적寓話的 설치물들은 그러한 인식에 적지 않은 갈등을 일으킨다.
우리는 ‘광천과’ 방향으로 간다. 작지 않은 2층 건물이 나온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이 경성온천과 이 곳에서의 온천욕의 효과 등을 소개하는 많은 설명판들이 벽에 부착되어 있는데, 중앙의 윗쪽에는 2009년에 북한 최고 지도자들인 김정일 김정은 두 父子가 다녀간 곳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다. 입장료는 $5 이다.
각 개인별로 독립된 욕조가 하나씩 있는 1인용 공간으로 안내된다. 욕조에 몸을 담근다. 뜨겁지 않고 따끈한 물이라 편안한 느낌이다. 그러나 뭔가 별다름을 느끼진 못하겠다. 30여분만에 온천욕을 마치고 나온 시각이 15시 30분이다.
경성여관으로 돌아와서 휴식을 취한다. 오후 5시에 여관의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다. 큰 게, 정어리구이, 오리고기, 추어탕, 미나리무침에 이어 찐 옥수수, 복숭아 등으로 푸짐하다. 식사를 마치고 구내에 있는 기념품매장에 들려 판매물품들을 살펴본다. 수정목걸이와 팔찌, 옻칠 목기木器, 사향뇌심, 안궁우황환安宮牛黃丸 등을 구입한다. 비는 계속 내린다. 여관 앞의 도로에는 우산을 받쳐든 채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따금씩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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