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나라는 6.25 이후 최대의 국가적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다수의 국민들에겐 갑자기 불어닥친 이 경제난국이 커다란 사회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고 교회 역시 그 변화를 수용해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 당황하고 있는 상태이다. 물론 오늘의 난국은 결코 갑작스러운 불의의 사고 때문이 아니라 수십년 동안 누적되어온 피로와 만성질병으로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쓰러지게 된 것이다. 군사정권이 그동안 쌓아온 정경유착의 부패가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현실로 드러나면서 백화점,철도,한강다리가 연일 무너져 내렸고 끔찍한 비행기 참사가 일어나더니 결국에는 국제통화기금을 구걸해야만 하는 경제적 난국으로 치닫게 되었다. OECD가입이니, 세계경제 규모 11위이니 하며 허풍으로 치닫던 한국의 거품경제는 이제 바닥으로 내려 앉게 되었고 사회는 극도로 혼란해져서 범죄가 만연하고 교회를 보는 세상사람들의 시각이 곱지 않게 되었다. 따라서 교회의 선교도 국내외적으로 크게 위축되어 국내적으로는 폭발적이던 교회성장이 중단되어졌고 국외적으로는 선교사들의 귀국과 프로젝트 사업 등의 중단이라는 난국에 부닥쳤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그리고 이러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떻게 이 난국을 극복해내야 하겠는가? IMF는 무엇이고, 그들은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왔으며, 우리 한국교회는 그들을 통한 한국 사회 곳곳의 구조조정을 목도하며 무엇을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한국교회는 이 난국에 대해 책임이 없는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
한국교회는 선교초기부터 경건과 절제의 운동을 일으켰고 이 운동은 사회전반에 강하고 좋은 이미지로 오랫동안 자리매김 되어왔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서 IMF의 구제금융을 받아들이고 그들에 의한 구조조정을 경험하며 ‘이 난국을 타개해 나갈 좋은 본보기’로서 우리 기독교회를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늘 한국교회는 부와 사치의 대명사로 불릴 만큼 거대해졌고 화려해졌기에 더 이상 오늘과 같은 상황을 이겨낼 정신적 지주가 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이렇게 잘못된 현실을 반성하는 마음으로 경건과 절제에 대한 역사를 고찰해 보고 IMF와 이를 대하는 목회자의 의식, 그리고 이 시대의 선교전략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II.몸 말
1.경건과 절제에 대한 역사적 고찰
경건과 절제운동은 한국교회의 특징 가운데 중요한 부분이었다. 온 백성이 나라의 가난으로 인하여 주권을 잃고 통분이 여길 때 기독교는 민족에게 희망의 종교로 여겨졌고 개화와 교육의 통로가 되었으며 경건과 절제 운동을 통해 좋은 이미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경건과 절제운동을 역사적으로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05년 을사 보호조약이 체결되어 우리나라가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되었을 때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났고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기독교인들이 벌려 온 금연운동을 하게 되었으며 1910년 한일합방후에는 세금불납운동 등의 항일 운동이 일어나고 금주 금연을 주초세금 불납의 방편으로 삼기도 했고 3.1운동 후 문화정치 아래에서는 물산장려운동으로 연결되어 민족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러던 것이 일제 말 동화정치하에서는 이 운동이 일본의 승전을 위한 도구로 이용되어지는 아픔이 있었고 해방 후에 다시 재개 되었으나 6.25와 그후의 무절제한 물질주의와 쾌락주의가 만연되어 그 영향력이 약해지기 시작하였다. 1978년에는 이 운동이 교계의 유명인사들에 의해 재건되었으나 활기를 띠지 못하고 경제발전 속에서 퇴패와 물질만능주의 사이로 숨겨져 버리게 되었다. 김송용, “한국교회의 절제운동 연구”,(연세대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1990),pp.83-84.
1922년에 설립된 조선물산장려회는 토산애용,자작자급을 목표로 활동하였는데 이 단체가 활동을 시작했을 무렵 전국적으로 물산장려의 붐이 일어났고, 거의 모든 지식인, 청년학생, 부녀자들이 참여하였다. 다음은 이 운동을 살펴 볼 수 있는 그들의 취지문 중 일부이다.
“부자와 빈자를 물론하고 우리가 우리의 손에 산업의 권리 생활의 제일조건을 장악하지 아니하면 우리는 도저히 우리의 생명 인격 사회의 발전을 기대하지 못할지니 우리는 이와 같은 견지에 서서 우리 조선 사람의 물산을 장려하기 위하여 조선 사람은 조선 사람 지은 것을 사 쓰고 둘째 조선 사람은 단결하여 그 쓰는 물건을 스스로 제작하여 공급하기를 목적하노라. 이와 같은 각오와 노력이 없이 어찌 조선 사람이 그 생활을 유지하고 그 사회를 발전할 수가 있으리오.” 권태억 외, 근 현대 한국 탐사,(서울:역사비평사, 1994), p.166.
위의 취지문으로 살펴보건대 조선물산장려회는 국산품애용운동의 시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단순한 국산품애용운동이 절제의 모습이고 국가경제를 살리는 길이라고는 보기 어렵게 되었다. 왜냐하면 사회가 다변화 되고 국제화 되었기에 단지 내 나라 것만을 사용하며 산다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시대를 역행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너도 나도 무분별하게 외제를 선호하여 똑같은 상품에 외제 상표만 붙이면 비싼 가격에도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외제 선호 사상에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과거의 경건과 절제운동을 이어받는 오늘날의 한국 교회는 단순히 국산품 애용이니, 외제 배격이니 하는 1차원적 절제운동으로만 치달아서는 안될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경건절제 노력은 뒤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2. 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에 대한 이해
여기서도 IMF, 저기서도 IMF, 곳곳에서 IMF를 들먹이는 요즘, IMF에 대해서 이야기 하라면 제대로 설명할수 있는 사람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IMF는 무엇인가? 그들은 우리의 경제를 침탈해 가려는 양놈들의 집단이고 우리는 그들에 대항하여 적극적으로 싸워야만 하는것인가? 오늘의 경제파탄을 몰고온 장본인이 바로 그들이고 우리는 더 이상 그들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 국산품만을 애용하고 외제 자가용을 보면 흠집을 내어 우리의 애국심을 보여주어야 하는가? 도대채 그들은 누구이길래 우리나라의 경제문제를 놓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가?
만일 우리가 IMF를 바로 이해하지 못한채 이 경제적 난국을 대처해 나가려고 한다면 적과 아군을 오해하여 엉뚱한 곳에 총질해대는 잘못을 범할 수도 있다. 따라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고 결정하기 이전에 현실을 직시하고 우리가 그렇게도 많이 이야기하는 IMF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IMF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2차 세계대전의 시기부터 살표볼 필요가 있다. 2차 세계 대전 중 연합국 사이에는 전후의 새로운 국제 통화 질서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었는데, 그 결과 나타난 것이 1944년에 형성된 브레턴우즈 국제 통화 체제이다. 이 체제의 입안자들 사이에는 다음과 같이 공유된 생각이 있었다. 첫째, 1930년대 국제통화체제가 붕괴된 것은 국가간의 경제전쟁에 기인한 것이며, 둘째, 기본적으로 시장 기구에 의존하였던 전전의 통화 체제가 부적절한 것이었다. 이러한 인식들을 바탕으로하여 국제 통화 체제를 위한 중앙은행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할 기관으로서 IMF가 창설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IMF는 새로운 통화체제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었다. IMF의 주기능은 환율을 관리하는 것과 국제수지 난관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 권고와 자금을 공여하는 것이었다. 김왕식, “국제통화기금과 국제경제질서”, pp.281-284.
IMF의 협정문에 나타난 국제통화기금의 목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국제통화문제에 관한 협의와 협력의 장을 제공하는 상설기관을 통하여 국제통화협력을 촉진한다. 둘째, 국제무역의 확대와 균형적 성장을 촉진시키며, 이로써 모든 가맹국 경제 정책의 주된 목적인 고수준의 고용과 실질 소득의 증대 및 유지와 생산 지원의 개발에 기여한다. 셋째, 외환의 안정과 질서 있는 외환 조정을 촉진하고, 경쟁적인 평가 절하는 피하도록 한다. 넷째, 가맹국 간의 경상 거래에 관한 다각적인 경제제도를 확립하고 세계 무역의 성장을 저해하는 외국환에 관한 모든 제한의 제거에 노력한다. 다섯째, 적정한 보장 조건하에서 가맹국으로 하여금 국제통화기금의 일반 재원을 잠정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하고 이로써 신뢰감을 준다. 여섯째, 이상과 같은 조치로 가맹국의 국제수지 불균형의 지속 기간을 감축시키고 그 정도를 경감시킨다. Ibid., pp.290-291.
이로 보건대 IMF는 우리가 우리나라의 경제적 난관을 해결하는 것을 돕기 위해 온 친구임이 확실시 된다. 물론 그들의 도움이 오히려 우리에게 상처를 입힐수도 있고 우리 경제가 그들의 손안에 들어갈 위험도 있겠지만 실상 그들은 친구로서 우리나라를 돕고있다는 사실만큼은 인식하고 있어야 하겠다.
3. IMF시대 목회자의 의식변화
이제 우리 한국교회는 기독교 신앙과 경제문제에 대하여 일단 생각을 가다듬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에 이르렀다. 이는 국내외적으로 경제적 위기의 시대를 맞아 하나님의 축복을 남발하는 만용을 더 이상 부려서는 안 될 것이고 교회의 양적 성장과 팽창에 대하여도 더 이상 낙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교회는 가장 영적이며 순수한 기관으로 자쳐하면서 한쪽에서는 탐욕의 문화를 숭배해왔다.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구원하려는 본래적 관심은 점점 탈색되어서 제도로서의 교회를 운영해나갈 수 있는 경제력 확보를 위한 성장제일주의을 암암리에 표방해왔던 것이다. 일부 도시교회들은 비대해졌고, 목회자들의 삶은 사치스러워졌으며, 마치 이것이 축복받은 이들의 당연한 권리로 여겨졌다. 그러던 중 오늘과 같은 경제적 위기가 도래한 것이다. 교회를 비롯한 한국사회의 모든 구조는 물질에 의한 시험에 모두 걸려 넘어지게 되었다.
지금은 어린자식의 분유값이 없어서 남의 물건을 훔쳐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지난 해 연말부터 경제난으로 인한 중소기업인들과 실직자들의 자살 소식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다. 이러한 극단에 몰리지 않은, 이른바 중산층에 속하는 이들과 목회자들은 금번 국가적인 경제위기가 우리들의 삶 속에서 거품을 걷어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주일 강단에서 외쳐지는 이러한 말씀들을 듣고 자살위기에 놓여있는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할 것인가? 박충구, “IMF 위기에 직면한 교회의 사회윤리적 과제”,(월간기독교사상, 98.3),p.10
거품을 걷어내야 한다고 외치지만 실상 걷어낼 거품조차 없는 삶을 살아온 농어촌, 도시빈민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 경제위기는 결코 좋은 기회가 될 수 없을뿐더러, 그들의 빈곤을 더욱 가중시키고 그들의 가족을 해체시키고 인간다운 삶의 조건을 파괴하는 주범이 될 것이다.
이러한 시기에 과거 성장제일주의 정신으로 교회의 강단을 정치 경제적 현실과 동 떨어진 메시지로 가득 채우고 한국 기독교인들의 의식을 무비판적 순종과 묵종으로 길들인 목회자들이 가장 먼저 회개해야 할 것이다. 목회자들은 앞다투어 경제적 부를 얻기 위하여 스스로 강단을 비인간화시켜 왔으며, 성장과 부흥의 기치 아래 인격을 숫자로 계산해 왔던 것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기업인들이 기업을 사유화하고 전횡하듯이, 교회의 지도자들은 교회를 준사유화하고 심지어는 친인척에게 그 교회를 물려주는 경우도 있다. 강단에서 예언자적 양심과 진실을 가지고 사회를 향해 오치는 소리보다, 사회가 교회를 향해 지탄하는 소리가 더 높은 형국이 되고 있다. 불의하고 병든 사회를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함으로써 사회 속에서 진실을 지키지 못하는 교회의 도덕적 무능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Ibid., p.13.
그동한 교회들은 앞다투어 한국경제 구조 속에서 특권층이 되려고 부단히 노력해왔다. 교회를 유지하고 사업을 하기 위하여 엄청난 헌금을 거두어들였으며, 거두어들인 헌금은 교회의 것이 되었다. 감신대의 박충구교수는 여기에서 한국교회의 3대 병패가 자리 잡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 첫째가 황금만능주의의 수용이며, 둘째는 교권의 비합리적 구조요, 셋째는 개혁성의 결여이다. 오늘의 교회가 약속하는 하나님의 축복은 하나님을 정의와 불의를 구별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하나님으로 여기게 하고 있다. Ibid., p.14.
오늘과 같은 경제적 난국을 설명할 때 많은 사람들이 금융계와 재벌, 그리고 정부에게 그 책임을 돌리고 있지만 우리는 사실상 이는 우리 목회자들이 제 구실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선지자 요나가 탄 배가 풍랑에 휘말렸을 때에도 그 풍랑의 원인은 선장이나 선원들이나 그 배를 만든 사람에게 있지 않았다. 원인은 바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에게 있었던 것이다. 목회자가, 기독교인들이 바로 서있지 못하면 온 나라가 풍랑을 만나는 것이다. 가장 청빈해야 할 목사안수도 돈 없이는 받을 수 없고, 심방에도 돈, 축복을 위해서도 돈, 선생님들에게도 돈, 어디서나 돈봉투가 난무하다 보니 돈봉투 없는 곳에는 인적이 드물다. 돈이 나오는 곳에는 수많은 교회들이 경쟁적으로 세워지지만 돈이 나오지 않는 빈민지역과 농어촌에는 새로 세워지는 교회가 거의 없다. 경쟁과 성장과 탐욕이 목회자들의 의식을 오염시킨 이 시점에서 우리는 선지자 요나가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고 했던 것처럼 하나님과 백성들 앞에서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를 깊이 병들게 해온 부정과 부패를 조장하는 줄서기, 편짜기, 서열매기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교회의 지도자들이 먼저 그 혜택을 거절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하며, 그러한 삶의 태도를 가지고 교회 안에 만연되어 있는 기복주의 신앙과 물질만능주의 신앙을 뿌리뽑아야 할 것이다.
4. 한국교회 국내외 선교전략
한국사회의 모든 구조가 물질에 의한 시험에 넘어지고 있는 지금, 그동안 물질에만 의존하던 한국교회의 선교도 무너질 위기에 처해 있다. 우리 모두가 피부로 느낄 만큼 경제 사정이 어렵다. 그래서 교회의 헌금도 눈에 띄게 줄어 들었고 거기에다 달러 값이 급등하여 해외에 있는 선교사들에게 선교비를 보내는 것이 쉽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갑자기 줄어 든 선교비로 인해 현지에 있는 선교사들은 큰 환란을 만나게 되었다.
1979년도에 Marlin L. Nelson 선교사가 한국 선교사 수를 조사한 바에 의하면 당시 세계 도처에서 사역하고 있는 한국 선교사는 93명이었다. 그 때부터 17년 후인 1996년 6월 말에는 4,402명의 선교사가 세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려 47.4배가 증가된 숫자이다. 그러나 이것은 통계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1만여명의 선교사가 해외에서 활약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현상, “IMF시대와 세계선교”, (월간고신, 98.3), p.30.
선교 113년이라는 짧은 역사를 가진 한국교회가 이제는 피선교국의 위치에서 벗어나 복음을 역수출하는 선교대국으로 성장하였다고 온 세계가 한국교회를 칭찬하였는데,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칭찬을 듣고있을 수 없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경제의 침체와 함게 위축되기 시작한 한국교회의 선교사역은 이제까지 그 선교의 기초가 바로 물질이었다는 증거가 되어 씁쓰름하기까지 하다. 모든 것을 다시 되돌아보아야 할 이 시점에서 한국교회는 그동안의 국내외 선교전략의 문제점들을 살펴보고 이를 시정하여 다시금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수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동안 한국교회가 선교에 있어서 실패한 내용을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그동안 한국교회의 선교는 선교의식이 없거나 부족한 선교단체와 선교행정가들에 의해 많은 부분 주도되었다.
둘째, 선교단체와 선교사의 협력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셋째, 무자격자나 부적격자를 별다른 심사 없이 선교지로 파송하였다. ibid., p.32.
넷째, 선교를 단지 교회의 악세사리로 생각하여 선전용으로 행하는 교회들이 많이 있다.
다섯째, 국내에 들락거리여 선교비만을 모금해 가는 선교사기꾼을 분별해내지 않았다.
교세와 헌금이 줄어들고 건축이 중단되고 교역자의 생활비를 제 때 주지 못하는 교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 교회들에게 선교비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해외에 파송되어 있던 선교사들이 속속 귀국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래서는 안된다. 이런 때일수록 한국교회는 선교에 힘써야 한다. 이제까지 잘못된 선교행정을 바로잡고 과감하게 구조를 조정하여 효과적인 선교를 수행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선교단체의 기구와 조직을 재정비하여 단지 선교비를 모금하는 형식의 선교회는 해체시켜야 하고 선교사 선정과 파송에 신중히하여 과거처럼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맨몸으로 선교지에 나갔던 선배 선교사들의 헝그리정신을 되살려야 한다
이제 국내적으로는 소외된 지역과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동안 우리 한국교회가 소홀하게 되었던 갈릴리 사람들이 바로 주님이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구원하기 원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우리 한국교회가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제까지 중산층의 교회가 되어 중산층과 자신을 일치시키려고 노력해오던 잘못을 회개하고 선한사마리아인의 모습으로 가난한 자와 상처받은 이의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계신 주님을 찾아가야 한다.
III.나가는 말
지금 우리는 국가부도의 위기 가운데 서 있다.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 하고 있다. 어떤 이는 자살을 생각하며 교회당 십자가를 흘낏 뒤돌아 보고 있다. 아무 희망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그래도 어디엔가 희망이 있겠지?’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교회당 문을 두드린다. 그리고 또 더 많은 사람들이 부유한 교회에 남아 있기 어려워서 교회를 떠나가고 있다. 과거 경건과 절제의 본이 되었던 한국교회가 이제 다시금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방황하는 사람들이 기댈수 있는 도덕성을 회복해야 한다. 삐뚤어진 정치계와 경제계에 비판의 소리를 발할 수 있을 만큼 가난해져야 한다. 모든 목회자들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자신의 잘못된 의식들을 개혁하고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인 선교에 순수하게 헌신해야 한다. 위기(危機)는 말 그대로 위험(危險)과 기회(機會)이다. 이것을 기회로 이용하여 다시금 순수하게 거듭날 수 있다면 한국교회와 한국은 희망이 있다. 이전보다 더욱 비약할수 있는 희망이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 모두 다른 사람들 보다도 나 자신이 먼저 회개하여 한국교회의 훌륭한 유산인 경건과 절제의 정신을 실천하고 가난하고 약한 이들을 찾아가야겠다고 결심해야 할 때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주시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