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간증의 글은 1942년 3월 1일에 태어나서, 1980년 6월 15일에 거듭난 사람, 전황(全晃)이 직접 작성하는 것입니다.
1979년, 여느 중소기업체의 과장이던 저는 다니던 회사가 부도나는 것을 계기로 큰 갈림길에 서있었습니다. 그래서 생각다 못하여 먹고사는 꾀를 낸 것이 '목사'나 되어볼까 하는 생각에서 본격적으로 성경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구원받지 못하고 목사가 되다니 참 끔찍하기 짝이 없는 짓이었으나 그 때는 장로교 집사로서 이왕 '부름'을 받고 '택함'을 받았으니 '쓰임'까지 받아보겠다는 종교적 열성에 한창 들떠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니던 교회 담임 목사의 로마서 강해는 물론이고, 두 분 부목사가 인도하던 총회통신강좌와 네비게이토 성경연구반에 각각 등록을 하는 한 편, 집에서는 인명지명 사전에다가 성서지도며 영어 성경까지 참고해 가면서 제법 성경공부에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봤자 고작 첫 번째 성경통독에 불과하였고, 또 바울 사도의 전도여행도 겨우 처음으로 지도를 짚어가며 읽은 아주 유치한 단계였습니다만) 오죽했으면 그 때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막내딸은 담임선생이 아버지의 직업을 묻는 질문에 서슴없이 '성경공부'라 했다고 (학교에 따라갔다 온 아내가 웃으며 말) 했을 정도였습니다.
아무튼 직업이 '성경공부'인 백수로 그 해 가을과 겨울을 지낸 이듬 해, 1980년 5월 어느 날 부평 시장 근처에서 '성경은 사실이다'라는 강연회 포스터를 보고 찾아간 곳이 (지금은 없어진) 주안 사거리 옛 인천 시민회관으로, 제 스스로 모임 전도집회에 처음 참석을 하게되었습니다.
그런데 강사 목사님께서 첫밗에, 창세기 1장 1절과 계시록 21장 1절을 연계하여 말씀하시면서 성경은 '오는 새 세상'에 관한이라고 하셨을 때 저는 저으기 깊은 충격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초등학교 4학년 적에 주일학교(교회학교) 암송 요절 가운데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마24:35, 막13:31, 눅 21:33)
는 말씀이 있어 당시 반사 선생님 앞에서 곧잘 외우기는 했었지만 그 어린 생각에도 속으로는 '아무리 천지가 없어질 리가 있을라고....' 하였으며, 그 것이 또한 그 때까지 저의 생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고개를 잘레잘레 흔들던 소년은 38세가 나던 그 해, '계시될 믿음'이 오기까지 갇혀 있었습니다.)
뿐만아니라 평소 지구본이 기울어져 있는 것이 못내 궁금했었는데, 노아의 홍수로 '궁창 위의 물'(창1:7)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렸다거나 그 때 지축이 23.5도 기울어 사계절이 생기고, 무지개도 비로소 나타난 사실(창9: 13) 하며 그 많은 바닷물 또한 남극과 북극에 무더기처럼 쌓아 놓으셨다는 것(시33:7) 등등 가히 처음 들어보는 말씀들은 충격의 연속이었습니다.
기실 캄캄한 지구에 빛이 처음 도달하였던 창세기 1장의 '첫째 날'처럼 제 마음에도 어슴푸레한 빛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당시 광주 소요사태(후에 광주 민주화 운동)로 시국이 몹시 어수선하여 집회가 중도에 중단될지도 모른다는 광고에 은근히 마음을 졸이면서 꼬박 주야간 집회에 열심히 출석은 하였으나 거기서 해결은 되지 못한채 그냥 인천 모임에 출석만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듣자하니 다음 6월 달에도 서울 삼각지에서 다시 전도집회가 있다는 중대한 정보를 듣고 이 번에는 아내도 함께 데리고 참석을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1980년 6월 15일, 그 서울 전도집회 마지막 날 낮 시간까지도 해결을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전 설교를 마치신 목사님께서 폐회 찬송으로 221장을 지정하시며 '이 찬송하는 아무나 부를 수 없는 것'이라고 하셔서, 내심 별 희한한 찬송가도 다 있구나' 하며 의례건 찬송을 따라 부르던 저는 그만 첫 소절도 미처 다 부르지 못하여 서러움이 북받쳐 올랐습니다.
'나 가나안 복지 귀에 성에 들어가려고 내 중한 짐을'까지는 무심코 따라 불렀는데 그 다음의 '벗어 버렸네~' 부분에 와서는 양심상 도저히 따라 부를 수가 없어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나이도 잊은채 울고 또 울었습니다.
(아, 나는 내 중한 죄의 짐을 못 벗어 버렸구나 !)
그 집회에 처음 같이 참석을 하였던 아내가 '그러면 우리가 다니던 교회는 무엇이냐'고 따져 물었을 때, 아직 구원받지 못한 주제였음에도 '가짜'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을 보면 당시 제가 상당히 가깝게 와있었던 것같습니다.
또 지금 생각나는 그 때의 일 중에 하나는 낮 시간에 여기저기 둘러 앉아서 상담을 하시던 분(나중에 알고보니 윤중석 장로님이셨음.)께 '그러면 구원을 얻는 사람은 무척 적은 극소수이겠네요'라고 여쭈니까 잠자코 누가복음 12장 32절을 찾아 내밀어 주셨는데 과연 읽고나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눅13:22 ~ 24도 마찬가지)
좀 저속한 표현을 빌리자면 저는 그 때 말씀에 코가 꿰었다고 할까요, 아무튼 말씀 앞에 처절하게 고꾸라져 있었습니다.
드디어 복음을 푼다는 저녁 마지막 집회 시간이 되어 바짝 긴장을 하고 듣는데 힐금 시계를 보니 9시가 지났는데도 제 마음에는 아무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참 있는데 로마서 5장 8절 말씀 대목에서 '아 ~ ! 그랬었구나' 하면서 좋아하고 있을 때에 저만치 앞 쪽에 앉아있던 아내도 저 있는 쪽을 향하여 돌아보며 연신 웃고 있었습니다. (아내도 같은 날 저녁 히브리서 9장 12절 말씀에서 자유함을 받았음.)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또 다른 기억 중에 하나는 구원받고 처음 돌아온 일요일 집회입니다. (굳이 '주일예배'라고 하지않고 특히 집회라고 말하는 것이 지금도 얼마나 다행스러운지요?) 설교말씀은 빌립보서 1장이었는데, (당시는 강사와 성도가 함께 성경을 읽고나서 말씀을 하셨음.) 읽는 도중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줄을 확신하노라" (빌1:6)
라는 말씀에 이미 감동하여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곧 여름 수양회 준비작업을 할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기에 이명옥 형제(현 진천공장 근무)와 함께 경산공장에 내려가 한 달남짓 철제 구조물 작업을 하면서, 그 때 그 곳 기숙사에 꽂혀있던 요한 번연의 '천로역정'을 처음 읽었는데 그 과정이 얼마나 절절하던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책'이라고 하는지도 십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것이 벌써 27년전이네요....
첫댓글 느디님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연륜이 섞인 간증 너무 멋집니다 건강하세요
눅 13장 22~24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는 말씀을 찾아가면서 읽었네요, 그 감동과 기쁨을 저도같이 느껴 봅니다, 감사히 잘봤읍니다,
27세 동갑내기시군요 ...강연회 포스트 얼마나 반가우셨을까요.... . 많이 붙이고 다니고 싶습니다...
참 신기하죠...순간에 일어나는 영혼의 변화...모르던 성경 말씀이 보이기 시작하고무언지 모르게 글이 보고 싶어지고 같은 생각 일어나는 그들이 그리워지고....^^ 속에 무슨 창조가 일어났길래....
눈에 보이는듯 ...그자리에 참석 한듯.... 생생 합니다... 건강 하십시요.
느디님 간증 잘 읽었습니다. 우리가 한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요 자매들이라는 것이 바로 구원 받은 간증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언제 천로역정에 관한 글 좀 써 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저도 얼른 제가 구원받은 사실도 쓰고싶어지네요 27년전 얘기가 지금 현제의 이야기처럼 생생히 느껴집니다
느디님님 귀하심니다
두번째 대하는 간증인데도 새롭게 읽혀 집니다. 예전의 멜 주소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주님안에서 건강하십시요.
감명깊게 잘 봤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하늘에 뭇별(구원성도)과 바다의 모래(유대인)의 수만큼의 자손을 보여주셨듯이 느디님도 그곳에 뭇별로 함께하는 축복을 받으셨네요..
찬송을 부르다카 울컥/이란 대목에서 내 눈시울도 덩달아 뜨거워지네/
귀하신 간증 제 블로그로 스크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