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손이나무
손가락이 여섯인 사람을‘육손이’라고 하듯 여덟 개의 손가락을 가진 나무란 뜻으로‘팔손이’란 이름이 붙었다. 접미어‘-이’는 어근에 붙어 사람·동물·사물을 만드는 말이다. 잎 전체는 손바닥 두 개를 펼친 만큼 크다. 일본에서부터 중국 남부, 타이완을 거쳐 인도까지 주로 아열대지방에서 자란다. 우리나라에서는 거제도-비진도를 잇는 선(線)이 팔손이나무가 자랄 수 있는 북방한계선이다. 흔히 만날 수 있었으나, 무분별한 채취로 인해 많이 없어지고 비진도 바닷가 작은 숲이 천연기념물 63호로 지정되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잎이 팔손이가 된 데는 전설이 있다. 옛날 인도에 공주가 있었고 공주의 생일날 어머니가 예쁜 쌍가락지를 선물로 주었다. 그런데 공주의 시녀가 반지를 보고 너무 탐이 나서 양손 엄지손가락에 각각 한 개씩 끼어 보았다. 그런데 반지가 빠지지 않는 것이었다. 겁이 난 시녀는 반지 위에 헝겊을 감아 감추고 다녔다.‘반지 도난사건’으로 난리가 난 궁궐에서는 왕이 직접 나서서 한 사람씩 조사를 했다. 차례가 된 시녀는 두 엄지를 밑으로 구부린 다음 두 손을 합쳐 여덟 개의 손가락뿐이라고 하면서 왕에게 손등을 내밀었다. 그때 하늘에서 천둥과 번개가 치고 벼락이 떨어져 시녀는 한순간에 팔손이나무로 변해버렸다는 것이다.
사실 엄지를 숨기고 두 손을 맞붙여 보면 팔손이 잎과 닮은 것이 사실이다. 영광의 불갑사 참식나무도 인도 공주와 경운 스님의 사랑 이야기에 등장한다. 유독 인도 공주와 우리 나무와 인연이 전해지는데는 김수로왕의 왕비 허왕옥의 전설과 함께 우리 역사의 어느 부분에 인도와의 인연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팔손이나무는 초겨울이 되면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커다란 원뿔모양의 꽃대에 우윳빛 꽃이 잔뜩 매달린다. 암수가 같은 나무에 꽃이 같이 있다. 처음 수꽃은 수술이 자라서 꽃가루를 만들고 꿀을 분비한다. 수꽃으로서의 기능이 다하면 수술 아래에서 지금까지 작은 흔적처럼 잘 보이지 않던 암술이 자라 꿀을 분비하는데, 당도가 굉장히 높다. 꽃이 피는 시기는 초겨울로 이는 몇 안 되는 곤충을 불러들이기 위한 강력한 유인방책이라고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암꽃과 수꽃이 동시에 피어 남매수정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근친교배로 열성인자를 가진 자손이 생기는 것을 막겠다는 식물의 여러 가지 전략 중 하나다. 다음해 봄에 콩알 굵기만 한 새까만 열매가 열린다. 팔손이나무는 팔각금반(八角金盤)이라 하여 잎과 새싹을 삶은 물은 기침을 멈추게 하고 가래를 제거하는 효과가 있다. 다만 사포톡신(sapotoxin)이란 유독물질이 들어 있으므로 함부로 먹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