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운동은 어디로 가는 걸까
- 2019 노동절에 부쳐
정현철(시흥안산일반분회 분회장)
“조합은 금속 노동자를 비롯한 모든 노동자의 자주적 단결을 추구하고 노동조합 운동의 지속적인 발전과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향상 시키며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지위 향상을 꾀하고 더 나아가 모든 형태의 억압과 차별을 철폐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을 보장하는 자주 민주 통일 사회 실현을 그 목적으로 한다”
금속노조 규약 제7조(목적)의 전문이다. 세계노동절(메이데이)를 앞두고 새삼 노동(조합)운동의 목적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필자가 속해있는 금속노조 규약규정집을 펼쳐본다. 우리는 우리가 약속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모든 노동자의 자주적 단결과 노동자의 노동조건 향상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가. 현재 한국의 노동조합운동에 꼬리표처럼 달려 있는 대기업 정규직 아재들의 노총(노동조합)이라는 비판에 자유로운가. 아프게 자문해본다.
2019년 한국의 노동은 고용불안정, 소득불평등, 장시간노동과 낮은 조직률로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시간을 견디고 있다. 촛불항쟁 이후 들어선 문재인정부의 초기 노동정책에 큰 기대를 했으나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역시 믿을 곳은 노동자 스스로 힘밖에 없음을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노조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문재인정부 보다 노동조합에 대해 더 차갑다.
2017년 한국노동연구원이 실시한 ’노사관계 국민의식조사‘에서도 이런 여론은 여실히 드러난다. 노조의 필요성(85.5%)에는 공감을 하고 노조가 고용안정효과(72.1%), 노동자보호효과(70.3%)가 높다고 생각하지만 ’전체 근로자의 이익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21.8%에 불과했다. 거의 절반(46.1%)에 가까운 국민들은 ’노동조합 간부나 일부 근로자의 이익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향후의 활동은 임금인상 등 근로조건 개선(21.9%)보다 비정규직 등 취약계층 보호에 더 많은 활동을 해야 한다(30.1%)고 지적했다. 사실 위 조사결과를 보면 금속노조의 설립목적이나 국민들이 바라는 바나 방향이 같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금속노조(혹은 민주노총)는 목적을 잃고 헤매게 됐을까. 역사적으로, 내부적으로, 외부적으로 많은 원인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오늘의 주제가 아니다. 원인에 대해서는 이미 정리된 바가 많다.
오늘의 이야기 주제는 노동(조합)운동의 변화가 필요한가. 필요하다면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이다.
금속노조가 가장 비판 받는 부분 중 하나는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노조라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통계는 그렇게 말해주고 있다. 작은 사업장(30인 미만) 조직률은 3.8%에 불과한데 비해 300인 이상은 36.6%로 상당히 높은 편이다. 정규직 대 비정규직의 노조 조직화 비율도 20.0%대 1.8%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결국 금속노조가 귀족노조라는 꼬리표를 떼고 노동계급의 대표조직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면 작은사업장 노동자 조직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작은사업장 노동자는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에 처해 있어서 노조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하다.
필자가 활동하고 있는 반월시화공단의 현실부터 살펴보자. 반월시화공단은 우리나라 최대규모의 국가산업단지라는 이름에 걸맞게 2만여개 사업장에서 30여 만명의 노동자가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업체가 소규모 사업장이어서 업체당 평균 고용인원은 14.7명이다.
대기업에 종속된 최하위 산업군을 이루고 있는 반월시화공단은 30인 미만 사업체 96.7%로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불법파견과 (위장) 사내하도급으로 불안정 고용에 놓여있다. 평균 근속기간은 4년이다. 게다가 전국의 평균 노동자보다 길게 일하고(주당근무시간 45.1시간, 전국평균 42.2시간) 적은 임금을 받는다.(월 평균임금 222.5천원, 전국평균 237.9천원)
산업재해 발생률은 0.8%로 1년에 약 3,360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고통받고 있다. 이는 공식 산재신고된 수치로 공상처리와 같은 형태로 은폐된 노동자의 수는 산정조차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열학한 노동환경을 개선해 줄 노동조합의 조직률은 3%수준에 불과하다.
위에서 나열한 현실도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금속노조(민주노총)가 이러한 문제에 심각성을 느끼고, 계급대표성을 획득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인력과 재정을 반월시화공단 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해 투여할 것인가 여부다.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지 않으면 국민들로 부터 고립된 노동운동의 길을 자초할 수 밖에 없다. 이제부터라도 절대다수 미조직노동자들과 함께하는 실질적인 산별노조운동,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지역공동체 노동운동, 공단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사회연대노동운동을 해야 할 것이다.
산별노조운동을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다시 한번 되물어 본다. 금속노조(민주노총) 밖에 있는 절대다수의 노동자들과 연대하고 그들을 조직하는 것. 미조직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하기 위해 의제를 설정하고 투쟁하는 것. 그리고 기꺼이 재원과 인력을 그것에 투여하는 것. 이것이 진짜 산별운동이 아닐까.
가장 시급한 문제는 노조조직률을 획기적으로 높여내는 것이다. 하지만 금속노조는 미조직사업비로 전체 재정의 겨우 3% 수준을 쓰고 있다. 이 비율을 최소한 두자릿수로 상향시켜야 할 것이다. 이러한 조직문화와 시스템의 변화가 새로운 돌파구를 여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이와 더불어 반월시화공단과 같은 작은 사업장의 노동자들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하는 내용적 고민도 함께 해야 할 것이다. 현재 금속노조에서 미조직사업을 가장 일선에서 담당하고 있는 주체는 ’지역지회‘다. 사업장의 울타리를 넘어 미조직사업을 펼쳐내고 있는 단위인 것이다. 필자는 금속노조가 모든 산업단지(공단)에 ’지역(공단)지회‘를 건설하는 것이 작은사업장 노동자를 조직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사업장 단위 조직화 뿐만 아니라 개별조합원제를 적극 고민하고 모델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작은 사업장일수록 사업장 단위 조직화는 요원하다. 개별조합원을 품고 그들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교섭과 투쟁의 틀거리를 만들어 내야 한다. 개별조합원이 현장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갈 수 있도록 훈련하고 공장을 넘어 지역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도 노동조합이 풀어야 할 몫이다.
일터와 삶터를 하나로 묶어 낼 때 노조조직률은 획기적으로 높아질 것이다. 즉, 사회적 힘이 노조 조직률을 높인다. 촛불항쟁 이후 성장한 시민의식과 권리의식이 현장의 조직화로 이어지는 놀라운 일이 지난 1~2년간 이어지고 있다. 사회적 권리의식이 성장할수록 노조 조직률도 높아진다는 사실을 확인한 셈이다. 일터와 삶터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노동자와 시민이 함께하는 조직화 모델을 설계해야 한다. 안산의 일하는 사람들의 생활공제회 ’좋은 이웃‘과 같은 공간은 일터와 삶터를 하나로 이어주는 매개체다. ‘좋은이웃’은 노동자들의 놀이터이며 플렛폼이다. 많은 노동자들이 거쳐가는 그곳에서 노동조합도 함께 놀아야 한다.
노조 조직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미래지향적인 노동운동을 해야한다. 의제를 선도하고 비젼을 제시하는 노동운동으로 거듭나야 한다. 반대만 하는 노조운동은 매양 자본의 뒷꽁무니만 좆아 다니게 된다. 현실 역량상 자본의 힘을 쉽게 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노동중심의 공단정책 설계에 노조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일하고 싶은 공단, 살 맛나는 공단으로 만들기 위해 노조는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노조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극복하고 노조에 대한 호감을 높여 조직률 상승과 우호세력 증가로 이어질 것이다.
‘강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넓은 세상 보고싶어 바다로 간다’ 우리 아이가 요즘 즐겨 듣는 시냇물이라는 동요 중 일부다. 가사를 흥얼거리다 문득 깨닫게 된다. “바다가 가장 낮은 곳에서 모든 시내를 받아 들이듯, 노조운동도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야 하지 않겠는가”고 말이다.
변화는 중심이 아니라 변방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노동(조합)운동이 진정한 변화를 원한다면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변방인 작은 사업장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보자. (2019.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