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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나뭇잎이 짙어지는 달
1)오늘을 살아가는 기쁨 2025.6.3.(수)
오후 8시. 시도, 연령, 성별, 출구조사 종합 이재명 51.7%, 김문수 39.3% 이준석 7.7%. 내가 예상한 그대로 결과이다. 후련하다. 타락하고 무능한 가짜(?) 보수의 성적표이다. 새 정부를 이끌 사람이 어떤 정치를 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개인적인 비리와 약점도 많지만, 최소한 이전의 무능하고 독단에 빠져 상식을 모르는 사람보다 낫기를 바랄 뿐이다.
대통령 보궐선거 날이다. 작년 12월 3일 청천벽력 같은 비상계엄으로 시작된 지 6개월 만에 새 대통령을 뽑게 되었다. 참 어지러운 시대를 살고 있다. 아침 7시에 매호초등 투표소에 가서 투표했다. 어느 후보도 썩 마음에 드는 인물이 없다. 현실에서 제일 나은 선택을 할 뿐이다. 누구든지 잘하면 응원하고, 잘못하면 그 대가를 받아야 한다. 무턱대고 한쪽만 지지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알 수가 없다.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상대방 인신 흠집 내기 공격만 하는 정치판이 너무 한심하다. 지난번 대선 때 둘 다 마음에 들지 않아 차악을 선택한 결과가 허무하다. ‘열 길 물속은 건너봐야 알고, 한 길 사람 속은 겪어봐야 안다.’라는 조상들의 옛말이 떠오른다. 제발 다음 세대 젊은이들이 잘 살 수 있는 사람이 뽑혀야 할 텐데…….
월드피아 목욕하러 가는 아내를 태워주고, 나오는 미팅 시간을 약속하고 욱수골로 향했다. 마치는 시간까지 1시간 20분 정도 여유가 있다. 6월의 신록이 눈부시다. 오늘은 컨디션이 좋다. 유건산 전망대 쪽으로 갈까 하다가, 치고 오르는 가파른 길이라 다음으로 미루고 ‘체력 단련장’까지 가기로 했다. 임시공휴일이라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혼자, 부부, 지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줄지어 올라온다. 저마다 복장도 각양각색이다. 아이들을 앞세우고 가족이 함께 걷는 모습이 평화롭다. 올라가면서 만나는 사람 관찰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푸른 숲 그늘이 하늘을 가리고, 바닥은 폭신폭신한 야자 매트가 깔렸기에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 25분 정도 지나 ‘체력 단련장’에 도착했다. 정자 있는 곳까지 가려면 한참 더 가야 하기에 시간 계산이 맞지 않는다. 뻐꾸기 소리와 온갖 작은 새들의 지저귀는 노래가 귀를 즐겁게 한다.
내려오는 시간은 늘 습관처럼 판소리 공부를 복습한다. 여유 있는 걸음에 ‘사랑가’를 앞세우고, ‘사철가’와 ‘심청가’ 한 대목을 읊조리면 세상 부러운 것이 없다. 나는 혼자 등산을 좋아한다. 같이 가는 경우도 좋지만, 약속하고 시간 맞추는 일이 번거롭기에 거의 혼자 잘 다닌다. 습관에 젖어있다. 20년 전에 짧게 배운 판소리나 경기민요를 흥얼거리며 내려오면 세상 부러운 것이 없다. 나 자신의 힐링 시간이 된다. 특히 ‘한오백년’이나 ‘심청가’의 ‘심봉사 눈뜨는 대목’은 언제 흥얼거려도 맛과 멋이 있다. 순전히 자아도취 현상이지만. 그래도 좋다.
12.10분. 청춘탁구클럽 오후반 점심 모임이다. 지난번 두어 번 복식 시합에서 모은 돈으로 ‘알파시티’의 ‘참한차림 한식부페’로 가기로 했다. 작년까지는 정규 모임에서 시합하고 자주 갔지만, 올해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모임이 없어졌다. 오후반 전원 출석하는 날에는 복식 조를 짜서 시합하기로 했다. 작년까지는 자주 갔지만 올해는 거의 안 갔다. 이곳보다는 복지관에서 점심 먹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다. 오늘은 **탁구클럽 새 회원 J님도 멀리 가창에서 날아와 참석했다. 점심 먹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탁구를 배우지 않았으면 내가 언제 이런 모임을 가질 수 있겠는가. 한 분 빼고는 나이도 거의 열 살 정도 아래다. 이렇게 젊은 사람들과 운동하고 밥 먹고 차 마시는 행복을 어디서 누릴 수 있을까? 고맙고 행복한 모임이다.
혼자 사는 것도 좋지만, 사람은 어울려 살아야 진정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교류하는 모임이 많으면 더 좋다. 고독도 좋지만, 교류가 있고, 그리고 나만의 사색이 들어간 시간이 필요하다. 고립에는 연결이 있어야 물 흐르듯 살 수 있다. ‘월든’의 작가 ‘헨리 소로우’도 월든 호숫가 오두막에서 단순한 생활, 노동, 사색하며 지냈지만, 사실은 30분 거리에 마을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가끔 마을로 나가서 사람들도 만났다고 한다. 친한 친구나 가족들의 방문도 있었기에 진정한 고독에서 사람들과 교류하며 사색과 사유를 했다고 알려진다.
오늘도 복식 게임을 했다. 4개의 팀으로 나누었다. 한번 지면 2,000원씩 낸다. 나는 관장님과 한 조가 되어 오늘도 2승1패로 좋은 성적을 냈다. 오늘은 다행히 오래 운동하였으나 다리가 아프지 않아 기분이 좋다. 20,000보 정도는 걸었다. 고맙고 행복한 하루였다. 감사한 마음으로 오늘을 정리한다. 고맙습니다.
다음 날 새벽, 21대 대통령 선거의 개표 완료 결과는 이재명 49.42%, 김문수 41.15%, 이준석 8.34%로 집계되었다. 8.27% 차이로 이재명이 당선되었다. 기대대로 능력을 발휘하여 좀 더 복 많은 나라로 이끌어주길 소망한다.
2) 미술관 탐방과 홀로서기의 무게 2025.6.7.(토)
연일 날씨가 한여름 같다. 그냥 집에 있을까? 이런 날은 매너리즘에 빠진 나에게 자극이 필요하다. 노년이 되면 온갖 근육이 다 빠진다. 육체 근육뿐 아니라 정신 근육도 바닥이 드러난다. 특히 감성 근육과 상상력 근육이 강해야, 뇌가 활발히 움직인다고 한다. 타성에 젖지 말고, 호기심 가지고 새것 많이 보고, 낯선 곳 즐겨 찾아다니고, 좋은 음악을 즐겨야 뇌세포가 춤을 추고 활성화된다.
가까운 대구 간송미술관에서 ‘화조미감(花鳥美感)’이란 주제로 열리는 기획전을 찾아갔다. 주말이라 사람들이 붐빈다. 처음에는 ‘꽃과 새’ 그림이 많은 전시회인 줄 알았다. 짐작과는 달랐다. 전형적인 회화와 서예, 백자, 청자가 나를 맞이한다. 회화는 겸재 정선이 부채에 그린 ‘금강내산’, 현재 심사정의 ‘주유관폭’(배 타고 폭포 구경하다), 호생관 최북의 ‘송정야흥’(소나무 정자의 밤 흥취) 작품이 내 눈을 부시게 한다. 서예는 석봉 한호, 안평대군, 추사 김정희, 석파 이하응의 글씨가 선을 보인다. 석봉이 쓴 당나라 왕발의 ‘등왕각서’ 일부는 힘찬 해서체로 반듯하고 깔끔하다. 유려하고 날아가는 듯한 멋진 행서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단정하고 곧은 기품이 풍긴다.
2전시실에서 열리는 우봉 조희룡의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가 오늘 전시의 백미다. 이 그림은 깊은 산속에 매화가 눈꽃처럼 흐드러지게 핀 풍경 속에 아래에는 집안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있는 선비를 표현한 작품이다. 매화가 눈송이처럼 핀 모습은, ‘사람으로 하여금 향기로운 눈 바다에 들어간 듯하게 한다(令人如入香雪海中)’라고 설명하고 있다. 문득 당시의 매화가 만발한 또 다른 그림이 생각난다. 고람 전기의 ‘매화초옥도(梅花草屋圖)’이다. 점으로 찍은 듯 하얀 눈송이가 온 산천을 덮은 듯 보이나, 자세히 보면 매화 꽃송이다. L 선생님과 ‘그림사랑회’ 모임에서 슬라이드로 보고 강의들은 이야기가 살아난다. 뽀얀 매화가 흐드러지게 춤을 추는 날, 붉은 옷을 차려입은 친구가 거문고를 매고, 초옥에서 낭랑하게 글을 읽는 벗을 찾아가는 모습……. 우봉의 꽃보다 더 화려하고 눈에 잘 들어온다. 피지도 못한, 서른을 미처 못 넘기고 요절한 천재 화가 고람 전기는 ‘이초당’이라는 약재상을 하며 그림을 그렸다. 조희룡은 자기보다 서른여섯 살이나 아래인 이 고람 전기와 그림으로 진정한 벗이 되었다고 한다. 전시를 올 때마다 아쉬운 점은 조명이 너무 어둡다. 작품 보호를 위해 그렇게 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나는 눈이 아파 자세히 보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다. 노화 탓인가? 슬프다. 주로 사진으로 찍어 집에서 다시 천천히 감상한다. 젊은 연인들과 가족들이 함께 와 속삭이며 감상하는 모습이 부럽고 아름답다. 내 젊음의 그날은 어디로 갔는가?
오늘은 아침부터 우울한 날이었다. 요즘 지인들의 좋지 않은 소식이 자주 전해오기 때문이다. 갑자기 암으로 입원했다거나, 먼저 하늘의 별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어제저녁에 들은 J님의 사연은 너무 가슴 아프고 충격적이다. 훤칠한 키에 글도 잘 쓰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누구보다 멋지고 활동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수** 37기로 재작년 내 강의를 들었다. 이런저런 얘기 중 나와는 특별한 인연이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의성 금성고등학교에 잠시 근무할 때 학생이었고, 샛별 34기라고 고등학교도 후배였다. 개인적으로 미팅을 기약했건만 그냥 세월 속에 사라졌다. ‘홀로서기’란 그의 수필에서 어렴풋이 사정을 알게 되었다. 세 아들과 아내, 노모와 함께 살던 그가, 치매에 걸린 어머님 간호를 위해 어머니와 단둘이 따로 살았다. 몇 년이 흘렀다. 그동안 얼마나 많이 고민하고 노력했을까? 당사자가 아니면 아무도 모르리라. 결국 지치고 지쳐 우울증을 이겨내지 못했다고 한다. 이제 겨우 환갑을 앞둔 청청한 나이인데……. 안타깝고 슬프다.
그의 수필 한 대목이 가슴을 찢어지게 한다. - (전략) 얼마 전에 들런, 아내의 방에서 만난 책이 ‘사라 밴 브레스낙’의 『혼자 사는 즐거움』이란 책이었다. “모든 인생은 혼자 떠나는 여행이다. 혼자 떠날 수 있어야만 외로움과 쓸쓸함을 당당하게 견뎌 나갈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며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중략) 글의 마지막에 아내와 어머니의 소중함을 얘기하며 독백한다. 우리 가족 중 지금 제일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사람은 아내일까, 나일까? 아무래도 홀로서기를 제일 열심히 연습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나’인 것 같다. 나도 ‘사라 밴 브레스낙’처럼 혼자 사는 즐거움에 빠질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 이 년 전에 쓴 ‘홀로서기’란 글에서 그가 운명을 예견한 것일까?
노년의 치매란 정말 무섭다. 간병인 가족에게 도미노처럼 찾아오는 우울증은 더 힘들고 무섭다. 갑자기 범물동에 계시는 어머님이 생각난다. 혼자 마음대로 거동을 못 하시지만, 누구보다 정신은 깨끗하다. 새벽마다 일어나서 금강경을 암송한다는 당신의 맑은 정신이 고마울 뿐이다. 늘 어머님의 기도와 정성 때문에 우리 가족이 탈 없이 살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감사한 마음에 절로 두 손을 모은다. 만약 어머님이 치매에 걸리면 나는 어떻게 할까? 내가 홀로 모시고 살 수 있을까? 아득하고 답이 나오지 않는다.
3) 목월의 고향과 천년 왕릉을 찾아서 2025.6.12.(목)
사계절 팀 여행 날이다. 날씨가 쾌청이다. 내일부터 장마가 온다고 하니 길일이다. 임당역 5번 출구에서 모였다. 의논 끝에 경주 감포 방향으로 여행지를 잡았다. 갑자기 K박사님이 경주의 목월 생가를 추천했다. 안 가본 곳이라 건천 모량리로 차를 몰았다. 토함산 입구의 ‘동리목월문학관’은 몇 번 갔지만 목월 생가는 처음이다. 건천 IC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나올 때 보니 경주대와도 가깝다. 야트막한 산 옆에 잘 가꾸어져 있었다. 이곳은 목월이 유년 시절을 보낸 곳으로 선생의 대표 작품 중 하나인 ‘윤사월’의 배경이 된 곳이라고 한다. 월, 화는 휴무일이다. 다행이다. 잘 가꾸어진 잔디와 이름 모를 분홍 꽃과 노란 금계국이 맑은 하늘과 아름답게 어울린다. 입구에 들어서니 약력을 새긴 비석과 함께 선생의 동상이 정겹게 맞아준다. 오른손에는 만년필을, 왼손에는 둥글게 말은 메모지, 팔짱을 끼고 건너편 산 능선을 보며 시상을 가다듬는 모습이다. ‘나그네’ ‘얼룩송아지’ ‘청노루’ ‘산이 날 에워싸고’등 선생의 대표작이 나무판에 새겨져 우리를 반긴다. 집 옆 개울가엔 그 당시 사용하던 우물이 있어 내려다보니 지금도 맑은 물이 찰랑거린다. 안채, 사랑채, 디딜방앗간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입구(口)’자 형태의 가옥이다. ‘동리목월문학관’에 많은 자료가 있고 여기는 그냥 유년시절 자란 곳 이외는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목월은 “북에는 소월, 남에는 목월”이라는 정지용의 찬사를 받고 문단의 샛별로 주목을 받고 작품활동을 하였다. 자연시와 인생시를 주로 쓴 목월이지만 다음과 같은 사랑의 일화가 사람들에게 회자한다. 1952년 한국전쟁이 끝나갈 무렵, 목월은 제자인 여대생과 깊은 사랑에 빠져 모든 것을 버리고 갑자기 종적을 감추었다. 빈손으로 홀연히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사라진 것이다. 백방으로 찾던 아내는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그가 제주도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남편을 찾아 나섰다. 어렵게 제주도에서 남편과 살고 있는 모습을 본 부인은, 화를 내기보다 도리어 경제적으로 힘이 들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그리고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지내라며 두 사람에게 겨울옷과 얼마간의 돈봉투를 내밀고 서울로 올라왔다고 한다. 목월과 그 여인은 부인의 깊은 마음에 감동하고 가슴이 아파, 불같은 사랑을 끝내고 헤어지기로 했다. 그때 목월은 서울로 떠나기 전날 밤 그간 사랑한 여인에게 이별의 선물로 쓴 시가 김성태 작곡가가 곡을 붙인 그 유명한 가곡 ‘이별의 노래’다.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한낮이 끝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아-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모처럼 천마총이 있는 대릉원을 찾았다. 입구부터 쭉쭉 뻗은 송림 숲이 아늑하고 평화로움을 준다. 녹음 속에 깔끔하게 단장된 산책로를 걸으니, 마음이 맑아지고 차분해진다. 도심 속의 산소 창고 같다. 천마총에 들어갔다. 여러 번 왔지만, 황금으로 된 왕관과 신, 그리고 말 장식품들이 늘 눈을 부시게 한다. 왕관이나 신의 크기는 실제 착용하기에는 잘 맞지 않는 느낌이 든다. 당시의 상징물이 아닐까도 생각된다.
다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왕릉인 ‘원성왕릉(괘릉)’으로 달렸다. 불국사에서 울산 쪽으로 살짝 가다 보면 오른쪽에 ‘영지’ 가는 길이 있고 조금 더 가서 왼쪽으로 돌아가면 ‘원성왕릉’이 나타난다. 보름 전에도 왔었지만 정말 멋진 곳에 자리 잡은 빛나는 왕릉이다. 앞으로는 넓은 들판을 바라보며, 입구에는 서역인 형상의 문무관 석이 눈을 부라리고 호위하며, 그 위쪽엔 네 마리의 석사자상이 각각 동서남북을 바라보며 지키고 있는 모습이 대단하다. 능 둘레에는 십이지신상이 돌로 조각한 양각으로 되어 있다. 자, 축, 인, 묘,……. 차례로 멋을 부리며 능을 지키는 동물 모습을 알아볼 수 있다. 무엇보다 왕릉 전체를 호위하며 천년 세월을 지켜온 아름드리 소나무 숲의 위력이 아름다움보다 경건함과 숭고함마저 느끼게 한다. 이 부근에는 다른 왕릉이 없다. 넓은 곳에 홀로 우뚝 자리 잡고 있다. 천천히 한 바퀴 돌다 보니, 곳곳에 긴 뱀 허물이 보인다. 신성한 곳이라 뱀도 왕릉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니 더 의미가 있다.
감포 바닷가로 가려다가, 많이 간 바다보다는 경주 현곡 용담리에 있는 수운 최제우 생가를 가기로 했다. 대한제국말 ‘인내천’ 사상으로 민중을 선도한 동학 천도교 창시자이다. 오래전에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동학의 문화유적을 되살리고자 최근에 경주시에서 복원을 한 곳이다. 아담한 뒷산에는 소나무보다 활엽수가 많은 곳이다. 개인적 생각으로 천도교가 어느 다른 종교보다 더 민족정신이 잘 반영된 좋은 종교로 생각된다. 많은 자료와 교육관이 있는 ‘용담정사’까지 가기로 했으나, 올라가는 비탈길이 더위에 힘들지 싶어 다음으로 미뤘다.
돌아오는 길에 오늘을 복기했다. 유적지 관람보다 역사 탐구의 시간이었다. 목월 생가와 최제우 생가는 초행길이었다. 새로운 곳을 찾아보니 느낌이 새롭다. 근데 아주 피곤하다. 나이 탓인가? 체력이 약해진 느낌에 우울하다. 마음을 잘 다스리고 방전된 체력도 관리해야겠다. 고맙고 행복한 하루가 지나갔다. 작은 사건이 모여 내 개인의 역사가 된다. K박사님의 운전에 고마움을 보낸다. 오늘이 멋지게 지나간 사실에 감사함을 느낄 뿐이다.
4) 슬렁슬렁 살아가는 연습 2025.6.22.(일)
별일 없이 시간은 잘 지나간다. 어제 탁구장에서 휴식을 할 때 Y 선생님이 새로운 제안을 했다. 최근에는 지난해까지 해온 방식의 월례대회를 하지 않는다. 그동안 주관하던 분이 사정이 있어 총무직을 사임했다. 새로 주선할 사람이 없기에 부정기적으로 성원이 되면 팀을 나누어 복식 경기를 한다. 한 게임당 지는 팀이 이천 원씩 내기로 하고 경기를 한다. 일정 금액이 모이면 그 돈으로 뒤풀이 회식 비용으로 지출한다. 몇 달 동안 별말이 없이 잘 넘어갔다. 근데 Y 선생님이 제동을 걸었다. 이런 방식으로 경기하고 순위를 정하는 방법은 본인 스트레스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자기가 경기중 실수하면 동료에게 미안한 마음이 너무 들어서 감당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앞으로는 게임마다 돈을 내지 말고, 돌아가면서 한 사람씩 뒤풀이 경비를 내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느냐 의견을 낸다. 구장에서 제일 어른인 Y 선생님의 생각이 아닌가? 한편으론 선생님이 너무 예민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
나는 승패에 크게 마음을 두지 않는다. 물론 누구든지 경기하면 이기고 싶다. 컨디션이 좋을 때는 승률이 높지만 반대일 때는 성적이 좋지 않다. 최선을 다해도 질 수 있다. 하지만 마음과 실제는 다르다. 그날 추첨으로 정한 파트너와의 호흡도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승리든 패배든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이런 복식 경기는 단식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서로 호흡을 맞춰가며 즐겁게 운동하자는 취지로 보면 더 좋을 듯하다. 단톡방에 의견을 올렸기에 어떻게 결론이 날지 알 수 없다. 즐겁게 운동하려는 모임이 한 사람이라도 스트레스를 주면 곤란하기도 하다.
오전 일찍 손자들이 들이닥쳤다. 대전에 살고 있는 둘째 아들 **가 금요일 저녁에 왔다. 어제 올라가려고 했으나, 손자들이 자기 삼촌을 꼭 보고 싶다고 해서 어제 가지 않았다. 어제는 손자들이 포항 외가에 갔기 때문이다. 첫째 **는 어제 삼촌을 봐야 한다고, 외가도 안 간다고 고집을 부렸다. 할 수 없이 삼촌과 통화해 오늘 보기로 했다. 들어오자마자 얼싸안고 삼촌과 포켓몬 게임 이야기로 정신이 없다. 폰으로 게임을 열어 놓고 서로 신난다. 나는 아이들 게임을 잘 모른다. 포켓몬 카드 종류도 모르니 어울릴 수가 없다. ‘리자몽’ 카드나 ‘피카츄’ 일러스트레이터 등 카드 이름도 알 수 없다. 그저 가치 높은 강한 카드도 있고 낮은 카드로 있다는 정도만 알 뿐이다.
둘째 **이는 삼촌을 자주 안 보았기에 그렇게 친하지 않았다. 근데 오늘 첫째 **가 삼촌과 잘 어울리는 것을 보고, 자기도 딱 들어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그만큼 둘째 아들 **는 조카들에게 정말 잘해준다. 아직 미혼이고 다정하고 싹싹한 성격이라 아이들 편에 서서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맞춰 주기 때문이다. 옆에서 보고 있으니 흐뭇하고 기분이 좋다. 손자 아빠인 첫째 아들 **는 한쪽에 누워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한다. 두 아들이 알콩달콩 우애가 좋은 것도 정말 마음에 든다. 어찌 보면 둘째 **가 아이 아버지 같다. 점심을 먹고 땅땅치킨 통닭 두 마리를 시켜 한 마리는 아이들과 여기서 먹고, 한 마리는 포장해서 직장이 있는 대전으로 떠났다. 땅땅은 대전에는 없는 통닭 메뉴란다. 조카들 덕에 일박이일 일정이 이박삼일로 지내고 갔다.
오늘 탁구장 경기 성적은 좋지 않다. 일요일이라 오후반 팀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저녁반 팀이 많이 왔다. 지난번에 자주 이겼던 사람에게도 패배했다. 상대방의 컨디션이 좋은 탓도 있지만 방심한 결과이다. 늘 경기 하면서도 생각이 많다. 꼭 이겨야 할까? 너무 적극적으로 하고 싶지가 않다. 사실 정답이 없다. 신경을 쓰고 열심히 하면 승률이 높겠지만 몸이 힘이 든다. 고희를 넘은 나이가 아닌가. 마음만 앞서고 몸은 뒤처진다. 무리하지 말자. 내 능력의 70%만 쓰고 나머지는 비축해야 즐겁게 오래 운동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우고 살아야 한다. 슬렁슬렁 살아가자. 마음과 행동이 늘 엇박자이다. 어렵다. 건강도 챙기고 재미도 누리고 즐거움도 얻으려면 적절한 에너지 배분이 중요하다. 이젠 내 한계를 알고 능력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 그 기준을 지키는 것이 힘이 든다. 새로 더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상태 정도 유지하는 것이 행복이다. 복기하고 반성할 수 있는 시간이 좋다. 큰 탈 없이 지낸 하루가 늘 감사할 따름이다. 행복은 거창하고 큰 것이 아니라 자잘하지만 편하게 느끼는 빈도와 정비례한다.
5부. 열매가 빛을 저장하는 달
1) 척추협착증과 오래된 인연 2025.7.2.(수)
연일 수은주가 36도를 넘는 열대야로 푹푹 처지게 한다. 어제는 척추협착증이 심해 신매역 1번 출구에 있는 Y 한의원을 찾았다. 집사람이 추천한 곳으로 신매광장 산책 도중 만난 사람에게 진료 잘 한다고 소개받은 곳이다. 사실 별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아프니 언젠가 한 번쯤 가볼까 하던 곳이다.
3층에 들어서니 깔끔한 인상의 한의원이다. 아픈 부위를 자세히 설명하고 침이나 한번 맞고 싶어서 왔다고 설명했다. 초진이라고 다른 곳에서는 안 하는 몇 가지 검사도 한다. 진료 전 측정한 혈압도 120/80, 혈당도 114. 정상이다. 진료는 내 기대와는 달랐다. 여기저기 만져보더니 근육이 많이 굳어있다고 한다. ‘아니 이 나이에 정상인 사람이 얼마나 있나?’ 머릿속의 생각이 춤을 춘다. 진료 침대에 눕혀놓고 이리저리 스트레칭을 시킨다. 손으로 몸 구석구석을 강하게 누르면서 아프냐고 묻는다. ‘이렇게 세게 누르는데 안 아플 수가 있나?’ 물리치료실로 옮겨 침을 맞고 온몸에 부항을 떴다. 부분적으로 부항 뜬 날도 있었지만, 전신에 이렇게 한 것은 처음이다. 엎드려 누워 있으니, 온몸에 무거운 추를 달아놓은 듯 힘이 든다. 병원에 오면 환자는 을, 의사는 갑이다. 갑을이 바뀐 것이 아닌가. 어쩔 수 없다. 의사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진료비를 내려니 초진이고, 추나요법과 약침으로 치료했다고 14,000원을 청구한다. 나는 보통 침이나 한번 맞으려고 왔는데, 마음대로 과잉 치료를 한 청구서다. 별말은 하지 않고 나왔지만 씁쓸하다. 아픈 곳이 좋아진 느낌도 크게 없다.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 것일까?
오전에 하빈 큰집 강의를 마치고 오니 너무 피곤하다. 간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푹 쉬었다. 자투리 시간에 탁구장에 가려고 했으나, 몸을 너무 혹사하지 싶어 포기했다. 저녁에 꽃집 J님과 A님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내가 운전해 가려고 했지만, J님 차로 바로 가기로 했다. 꽃집 영업을 일찍 마감한 J님과 5시쯤 성삼병원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경산 삼성현로 ‘쭈나라꾸미’로 갔다. 근처에 사는 A님이 미리 와 있었다. **대 11기 중 유일하게 계속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분들이다. 벌써 18년 세월이 지났다. 언제 만나도 마음이 푸근한 만남이다. 지천명 중반에 ****대학 학생으로 첫 만남이 이렇게 오래 이어질 줄을 몰랐다. ‘글쓰기 공부’라는 공통 분모가 있었기에 끈끈한 인연이 지속되었다. 실제로는 글보다, 서로 살아가는 자잘한 인생을 이야기하고 친분을 쌓아왔기에 좋은 모임이 되었다. 산다는 것은 서로 관계를 맺는 일이다. 진실함으로 내가 마음을 열면, 상대도 마음을 열고 편하게 서로의 삶을 알아간다. 성별이나 나이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세트A’로 푸짐한 저녁을 먹었다. 불맛이라 좀 매웠지만 묵채와 함께 맛나게 먹었다.
가까운 ‘산57’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성암산 입구의 멋진 카페 중 하나다. 낮에는 손님들이 언제나 북적이는 곳이다. 시간이 초저녁이라 대여섯 명 밖에 없고 조용하고 아늑하다. 유럽식 그림과 고풍스러운 빈티지 가구가 장식용으로 있고, 산기슭 높은 곳이라 창밖 풍경도 평화롭고 아름답다. 건너편 아파트 위쪽으로 서양화처럼 흰 구름과 파란 하늘이 엉켜 있는 풍경도 황홀하다.
두 사람 다 치열하게 살아온 분이다. A님은 정말 스토리텔링의 슈퍼우먼이다. 드라마 같은 삶을 살았지만, 걸맞은 탁월한 기억력과 입담이 늘 나를 감탄하게 한다. 일어난 상황 하나하나를 그림 그리듯이 표현하는 능력이 늘 부럽다.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그녀는 요즘 **대 강의와 심화반 수업을 맡고 있다. 재작년에 내가 강의를 그만두면서 후임 강사로 적극 추천한 결과이다. 나보다 더 열성적이고 강의를 잘 한다. 몇 년 전 경희대 문예창작과도 졸업한 의지의 만학도이다. 같은 동기로서 고맙고 좋다. 그녀의 아들, 딸 가족은 다 미국에 살고 있다. 작년 봄에 마지막으로 미국에 다녀왔었다. 이제는 가고 싶어도 시차 적응과 비행기 타는 고통이 심해 갈 여건이 되지 않는단다.
글쓰기 단체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적나라하게 얘기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항상 웃음꽃이 핀다. 유명한 수필가 P님과 관련이 있는 일화는 재미보다 안쓰러운 느낌이 든다. ‘**문학’ 작품상 심사 후 벌어진 ‘개**와 넥**’라는 에피소드가 압권이다. 또 다른 수필가 P님과, S님의 이야기도 하면서 사람의 이중적인 면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글은 곧 그 사람이다.’라는 옛말이 있지만, 내가 겪은 현실은 글과 사람은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훨씬 많다. 가면 속에 숨은 욕망의 굴레가 더 크고 강하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를 돌아본다. 나는 어떻게 쓰고 살아왔는가? 내 글은 삶과 일치하는지? 자신이 없다. 평론가들이 말하는 좋은 글은 쓰지 못한다. 그래서 시작한 작업이 일기다. 좀 더 솔직한 고백이 된다. 글을 쓰면서 항상 몇 가지 원칙만 지키려고 한다. 우선 진솔한 마음으로 거짓이 없게 쓰자. 다음에 쉽게, 명료하게, 그리고 그림처럼 쓰자. 혹시 이 글이 발표된다면 독자들이 잘 읽고, 이해하고, 기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문학 장치는 좀 잊어버리자. 모든 글을 너무 문학의 틀에 가두어 얽매고 해석하려는 방법은 옳지 않다고 생각된다. 이런 넋두리를 할 수 있는 하루가 좋다.
2) 동해선 기차 타고 바다로 간 날 2025.7.8.(화)
동해선이 올해부터 개통했다. 기차 타고 동해 해수욕장을 가고 싶은 내 소망이 이루어진다. 동대구에서 서경주를 거쳐 포항 울진 삼척을 지나 강릉까지 연결된 옛날 완행열차이다. 코레일 검색을 하니 누리호로 하루에 세 번 운행한다. 동대구 12:15분 출발, 13:51분 장사 역 도착, 17:05분 장사 출발 18:41분 동대구 도착 열차를 예매했다. 장사역에서 해수욕장까지는 도보로 15분 거리. 카카오맵으로 검색을 하니 역에서 해수욕장까지 가장 가까운 곳이다. 바다를 보며 3시간 남짓 즐길 수 있는 코스이다. 장사해수욕장은 지난해 울진 동생 집 가는 길에 잠시 머문 곳이다. 활처럼 길게 펼쳐진 넓은 백사장과 울창한 송림이 있어 다음 여름에 꼭 오고 싶었다.
모처럼 집사람과 함께 가는 기차여행이다. 학창 시절 수학여행 가는 들뜬 마음으로 각자 배낭에 음식과 과일 등 장비를 챙겼다. 공휴일이나 성수기가 아니라, 현지에서 먹거리 구하기는 적당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11:42분. 경산역에서 대경선을 탔다. 동대구역까지 10분 거리라 버스보다 훨씬 편하다. 누리호는 4칸으로 정각 12:15분에 강릉으로 출발했다. 완행열차는 정말 오랜만에 탄다. 둘러보니 평일이라 승객도 많지 않다. 1시간 40분쯤 타기에 승차 시간도 적당하다. KTX보다는 환경이 열악하지만, 깨끗하다. 창밖에 펼쳐진 논은 모내기를 끝낸 벼가 파릇파릇하다. 시골 향기와 자연풍경이 물씬 가슴에 들어온다. 멍하니 바라보기만 해도 아늑하고 평화롭다. 다른 생각이 들어올 틈이 없다. 간이역마다 정차하기에 하양이나 포항의 젊은 학생들이 많이 탄다. 서경주역을 지나니 터널이 많다. 들어갈 때마다 귀가 먹먹하다. 나이 탓인가? 마음은 푸르나 몸은 잿빛으로 익어가는 중이다. 자연스러운 노화현상이지만 안타깝고 씁쓸하다. 장사 역은 무인 역이다. 내리는 승객은 아내와 나 달랑 둘 뿐이다. 플랫폼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해수욕장으로 걸었다. 호젓한 길이 남정중학교 담을 끼고 이어진다. 길가 주택의 능소화가 환하게 웃으며 우릴 반긴다.
우와! 짙푸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우린 입구의 빈 원두막 같은 평상에 배낭을 풀었다. 바다를 보며 앉아 관조하거나 명상하기에 멋진 장소다. 열 개 넘는 평상에 이용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백사장에 자리를 깔거나, 파라솔을 친 사람이 몇 있고 해변은 정중동이다. 해수욕을 하는 사람도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다. 성수기가 아니라 그런가? 오른쪽 멀리 해변에는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인 군함이 바다를 지키고 있다. 배 측면에는 ‘작전명 174호. 잊혀진 영웅들!’이라는 문구가 흰 페인트로 쓰여 눈에 들어온다. 어제까지는 36도를 넘나드는 찌는듯한 날씨였건만 오늘 바다는 경쾌한 미뉴에트 음악같다. 살짝 찌푸린 하늘에 햇빛도 적고 세찬 동풍이 거침없이 불어와 시원하다. 준비해 온 과일과 간식을 먹으며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사실 오늘 계획은 모처럼 물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반바지 차림으로 해안선과 일직선으로 잘 하는 개구리헤엄을 즐기고 싶었다. 불혹의 나이 때 수영장에서 10년 이상 수영을 배우지 않았던가? 젊은 시절에는 감포 문무대왕 앞바다에서 머리를 들고 평영 바다 수영을 즐기기도 했다. 오늘은 수영에 자신이 없다. 그냥 맨발로 파도가 흐느끼는 해변을 걸었다. 이따금 세차게 밀려오는 바닷물을 피하다가 무릎까지 젖기도 했지만, 발바닥에 느끼는 촉촉한 감촉, 발가락 사이로 끼어드는 모래의 간지럼이 온몸을 짜릿하게 만든다. 복어 배처럼 굽은 백사장을 천천히 음미하는 황홀한 시간을 보냈다.
원두막 평상에 돌아오니 해수욕장 관리인이 찾아왔다. 언제 왔느냐고? 여기는 임대공간이란다. 얼마냐고 물으니, 하루에 5만 원이라 한다. 해수욕장 마을 번영회에서 운영한다고 적혀있다. 근데 너무 비싸다. 우린 조금 전에 왔다고 하면서 바로 짐을 꾸려 솔숲으로 옮겼다. 아하! 이렇게 임대료를 받으니, 평상을 사용하는 사람이 없었구나. 한두 시간 머무르면서 5만 원 내기는 사실 아깝다. 조금 적게 받으면 서로가 즐겁게 이용하고 누릴 수 있는 시설인데……. 지자체에서도 이런 운영 방식은 원하지 않을 텐데 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누가 비싼 돈을 주고 사용하겠는가? 다 아끼고 절약하면서 피서를 즐기려고 한다. 처음 왔을 때 백사장에 있던 사람을 보고 왜 저기에 있을까 생각했었다. 그래서 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부부들이 백사장에 자리만 깔고 있었구나, 이해가 되었다. 솔숲에도 텐트나 그늘막을 치면 사용료를 1만 원부터 받는다고 한다. 여긴 나라 땅인데 임대료를 받는다니? 멀리 안쪽에 들어가 자리를 깔고 누웠다. 평일이고 아직 본격적인 휴가철이 아니기에 여행객은 드물다. 시원하고 평화롭다. 2시간 반이 훌쩍 지났다. 아득하게 펼쳐진 바다와 흰 파도가 찰싹이는 해변의 시간이 꿈꾸는 듯 황홀했다. 송림에 누워 느긋한 하늘바라기도 좋았고, 해변을 걸으며 발가락과 발바닥에 간질이는 파도의 감촉은 아득한 행성의 공간을 헤엄치는 즐거움에 빠졌다.
장사 역에 도착하니 17시 가까이 되었다. 장사역 입구 오른쪽에 부경리 ‘거북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삼국유사에 나오는 ‘헌화가’의 탄생지라고 되어 있다. 신라 성덕왕 때 순정공이 강릉태수로 부임할 때 이야기이다.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을 때였다. 높은 절벽 바위 위에 예쁜 철쭉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수로부인이 “누가 저 꽃을 꺾어다 주겠소?” 했으나 모두 위험해서 어렵다고 했다. 그때 암소를 끌고 가던 한 노인이 부인의 말을 듣고 그 꽃을 꺾어 와서는 ‘헌화가’를 지어 바쳤다는 설화이다. ‘헌화가’는 “검붉은 빛 바위 위에 / 잡고 있는 암소 놀게 하시니 /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라는 내용이다. 이곳이 정말 맞는 곳인가는 잘 모르겠다. 자기 고장을 선전하기 위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생각도 해 본다. 장사 무인 역에서 우리 부부와 친구 집에 놀러 왔다가 귀가하는, 하양에 살고 있는 아줌마만 승차했다. 오후 17:05분. 열차는 동대구를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저녁 19:30분. 매호동에 도착했다. 모처럼 계획한 하루가 꿈같이 흘렀다. 오늘도 척추협착증이 심해 걷기에 힘들었다. 예전보다 조금씩 더 나빠지는 느낌이라 우울하다. 하지만 마음 먹은대로 즐겁게 여행을 마치니 기분이 좋다. 고맙고 행복하다. 매 순간이 내 삶의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자 화양연화의 시간이다. 건강하게 집사람과 함께 즐긴 설레고 아찔한 하루에 감사한다. 또 다음 여행을 계획해 본다.
3) 몸은 늙어가고 마음은 달려가고 2025.7.15.(화)
요즘 척추협착증이 심해져 연속해서 10분 이상을 걷기가 어렵다. 예전에는 두세 시간도 쉽게 걸었는데……. 답답한 마음에 어제 친구의 K 한의원을 찾았다. 침이라도 맞으면 좋아지지 않을까? 초등 동기인 친구는 본인 자신도 환자다. 3년 전에 직장암 수술도 했고 당뇨로 치료 중이다. 20여 년 전, 사고로 같은 한의사인 아내를 먼저 보내고, 두 아들을 힘들게 키워 다 결혼시켰다. 미대 교수로 있는 둘째 아들의 손자 돌잔치에 다녀온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교수로 퇴직한 친구 사돈의 경제는 좀 좋지만, 살아가는 삶은 엇비슷하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나무는 없다. 나무의 흔들림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삶의 질과 방향을 좌우한다. 동기 중 제일 친하게 지내는 친구 중, 한 명이다. 침과 부항으로 치료 후 집에 왔지만, 여전히 다리가 아팠다.
새벽 2시에 눈을 떴다.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뒤척이다가 문득 부산에 사는 K가 생각났다. 외과 전문의인 그도 10여 년 전에 척추협착증으로 오래 고생했다. 얼마 전에 전화로 안부를 묻고 내 사정도 얘기했다. 두 번의 시술로 지금은 좋아졌다고 한다. 운동을 좋아하고 건강을 위해 하루에 만 보 이상은 꼭 걷는다고 한다. 허리와 종아리 근육을 단련시켜야 낫는다고 했다. 직접 만나서 조언을 듣고 싶었다. 오늘 기차로 부산에 다녀올까? 카카오맵으로 을숙도 부근의 M 병원을 검색하니, 2시간 20분 거리가 나온다. 코레일에 들어가니 경산서 9.24분에 기차를 타면 적당하겠다고 생각했다.
연락도 없이 갑자기 방문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오전 7.30분에 카톡을 보냈다. “K야, 잘 있지? 아침 일찍 카톡해서 미안하네. 척추 협착이 심해져서 다리가 매우 아프네. 혹시 낮에 자네 병원 방문해서 상담 좀 해도 될까? 몇 시쯤 가면 좋겠냐?” 답이 곧 왔다. “부산까지 일부러 올 필요는 없고 대구의 동기들 소개해 줄까?” 잠시 전화로 통화를 하고 나니 카톡이 왔다. “성주경 신경외과. 수성구 달구벌대로 3083번지. 만약 진료 가게 되면 내게 연락해라. 내가 전화해 줄게.” 병원 위치가 우리 동네라 반갑다. 성원장은 경북대병원에서 오래 근무했기에 꼼꼼하게 진료한다고 친구가 말한다.
오전 10시쯤 전화하고 신경외과에 갔다. 새로 찍은 X레이를 한참 살펴보고 침대에 눕게 해서 잠시 진단하더니, 소견은 척추 5번 신경 쪽이라 한다. 일단 약물치료와 물리치료를 권한다. 척추가 많이 어긋나도 별로 안 아픈 사람이 있고, 조금 튀어나와도 크게 힘든 사람도 있다고 설명한다. 본인이 너무 아파서 견디기 힘들면 그때 시술이나 수술을 권한다. 모든 판단은 환자 선택에 맡긴다. 약간의 믿음이 생겼다. 진료 후 3층 물리치료실로 갔다. 물리치료는 다른 정형외과에서도 몇 번 받았지만, 여기는 치료 방법이 다르다. 우선 다양한 기구가 많다. 차례대로 40분 정도 치료했다. 보름치 약 처방도 받았다.
집에 와서 곰곰 생각하니 노화도 있지만, 하루 운동량이 많은 탓이 아닌지 짐작된다. 운동 중독을 고쳐야 한다. 습관적으로 아픈 다리를 달래가며 늦게 탁구장에 갔다. 마음속으로는 과유불급을 외치면서 실천은 못 한다. 과욕이다. 욕심이 나 자신을 망치고 있다. ‘5전 3승제’ 경기를 ‘3전 2승제’로 줄였지만 그래도 힘이 든다. 저녁 늦게 걸음 수를 확인하니 19,000보를 넘겼다. 에고, 또 무리를 했다. 10,000보 정도가 적당한 걸음인데…….
나날이 낡아가는 몸을 잊고 푸른 젊은 날 기분으로 활동한다. 석양에 접어든 나이가 아닌가? 오늘을 돌아보고 반성해 본다. 내일부터는 과유불급 정신을 꼭 지켜야지. 오전 운동은 줄이고 오후에 탁구만 적당히 즐겨야겠다. 지금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다. 하루를 복기하면 언제나 많은 것을 느끼지만, 실천이 안 된다. 매사에 겸손과 감사하는 마음도 부족하다. 늘 반성하고 후회하는 되풀이가 우리 삶이 아닌가.
4) 삶과 죽음 사이, 오늘의 소중함 2025.7.30.(수)
올 7월은 너무 힘들게 지나간다. 계속되는 폭염으로 사람을 지치게 하더니 안타까운 소식이 줄을 이어 일어났다. 대학 동기 L이 홀연 떠나갔고, **대 H님도 하늘의 별이 되었다. 친하지는 않지만 잘 아는 다른 사람들의 부음도 서너 명 들려왔고…. 가까운 지인의 가슴 아픈 소식은 내내 우울함에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일주일 내내 정신이 멍했다. L은 불과 석 달 전 만남에서도 환하게 웃고 얘기하던 친구가 아니었던가? 짧은 시간에 사라지니, 덩달아 아파지는 마음은 추스르기가 힘들다. 마음이 많이 약해졌다. 이번 일로 새삼 삶과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고희를 겨우 넘긴 나이지만, 예전과 달리 현재는 평균 수명이 길어졌다. 이전에는 죽음에 대해 큰 관심과 충격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친한 친구의 슬픈 소식은 한겨울에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폭발적이다. 언제 그들의 대열에 합류할지 알 수가 없는 때가 온 모양이다. 평상심을 지니기 힘들고 마음이 혼란하다. 내성적이고 감성이 강한 성격이기에 전해오는 영향이 더 크다. 자연의 섭리이고 당연한 이치이지만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저 ‘이 또한 지나가리다’라는 말만 곱씹는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해결되겠지만 긴 시간 모든 것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삶과 죽음의 법칙’은 무엇일까? 예전에 읽은 칼럼을 되새기며 마음을 다독인다. 누구든 죽음을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다. 언제 어떻게 올지 아무도 모른다. 대자연에 비하면 정말 하루살이 같은 미물이 아닌가. 그래도 죽음을 생각하면 두려움과 안타까움이 나를 지배한다. 가천대 길병원 박광우 교수는 “죽음을 더 자주 상상할수록 삶이 선명해진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마지막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면, 오히려 현재의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절실히 느낀다고 설명한다. 그렇다. 누구에게나 삶의 마지막은 똑같이 다가온다. 결국 잘 죽는 것이 잘 사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는 자신을 ‘시간 여행자처럼 살아간다’라고 한다. 소설가 잭 런던은 ‘자연이 생에 부여한 단 하나의 법칙이 죽음’이라고 했다. 자연사이건 불치의 병이건, 예상할 수 있는 죽음이건, 자기도 모르게 오는 죽음이건 누구나 죽음은 찾아온다. 영국의 수필가 윌리엄 헤이즐릿의 명언을 되새겨본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에 대한 최고의 치료법은 ‘삶의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는 것’을 떠올려 보는 것이다. 삶과 죽음의 사이에는 오늘이 있다. 오늘 지금 열심히 살아야 한다. 건강한 아침을 맞이하고, 따뜻한 저녁을 보내야겠다. 잘 보낸 하루가 내 삶의 전부이다. 현재 여기의 삶이 중요하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시작해야겠다.
6부. 다른 모든 것을 잊게 하는 달
1) 멈춤이 필요한 시간 2025.8.7.(목)
요즘 많이 헤맨다. 몸과 마음이 평상심을 지키기 어렵다. 머릿속으론 슬렁슬렁 빈둥빈둥 비우는 자세로 살기를 외치지만, 행동은 따라가지 못한다. 너무 규칙적으로 살아가려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일까? 몸 곳곳에서 반기를 든다. 척추협착증으로 다리가 저리고, 허리가 아프고, 구장에서는 이따금 어지러운 증세도 나타난다. 비우고 단순하게 살고 싶지만 힘든다. 도인의 경지라서 늘 거북걸음이다. 속인이라도 지금 나이에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천천히 누리는 자세를 가져야 하지만 생각과 행동은 늘 엇박자다. 어쩌다 곰곰 생각하면 내가 지금 시간의 러닝머신 위에 서 있지 않을까 생각도 든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계속 달려야 하는 현실? 벗어날 수 없을까? 의외로 정답은 간단하다. 잠시 전원을 끄고 내려오면 되지만 쉽지는 않다. 명상도 필요하다. 결국 한 순간의 정점에서 벗어나야겠지만 잘되지 않는다. 알지만 행동으로 지키지 못한다. 욕심 때문일까? 어찌 보면 자기 착취 현상이 심하다. 자기 착취가 오래 지속되면 자기학대로 발전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규칙적인 삶이 아니라 한 박자 쉼이지 싶다. 자기 보호나 자기돌봄이 절실하다. 진정한 나를 생각하는 것이다. 슬렁슬렁 살아가자. 하루 움직임을 반 이상 줄이고 휴대전화를 멀리해야 하지 않을까?
어제 하빈 한글 강의 시간이다. 기본 수준이 달라 세 팀으로 나누어 과외 공부하듯 수업한다. 상급 과정인 장기수 M님과 잠시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의 수업은 재소자 방안에서 일어난 일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적으면서, 글의 맞춤법을 정리하고 공부하는 방법이다. 그는 “형수님, 차 좀 빼 주세요.”라는 말로 시작한 사건에 연루되어, 17년 징역 선고로 지금 9년째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됩니까?” 물으니, “잘 몰라요.” 답하며 그는 나이나 시간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감사 일기 형식의 글이지만 글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생생히 그려 볼 수 있다. 그가 여기서 철칙으로 삼고 있는 세 가지를 담담하게 말한다. 첫째, 말을 하지 않는다.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절대 하지 않는다고 한다. 말로써 꼬투리를 잡고 시비가 시작된다. 둘째, 쳐다보지 않는다. 그냥 무심히 보는 것도 트집을 잡아 싸움으로 번진다. 셋째, 적을 두지 않는다. 재소자 간에는 너무 멀리해도 안 되고, 가까이해도 안 된다. 여기서는 아무것도 아닌 조그만 일에서 큰 다툼이 자주 일어난다. 주로 먹는 것 문제로 다툼이 제일 많다고 한다. 글 내용을 읽고 공부하면 같은 방에 있는 수인들은 각양각색이다. 성격도 죄명도 하는 짓도 천차만별이다. 자기 관물함에 사탕과 먹을 것을 많이 두고도, 다른 사람의 사탕을 계속 요구하는 사람, 주인은 사탕 한 개 먹는 데, 자기는 두 개를 뺏어 먹는 사람도 있다. 청결 관념이 없어 더럽게 생활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적은 글을 보면 정말 힘들게 생활하고 있구나! 생각되어 안타깝다.
M님의 처신은 달관의 경지이다. 강한 정신력과 담담한 모습에서 도리어 내가 많은 것을 배운다. 나약하고 감성적인 내가 진정 본받을 점이다. 강의를 마치고 귀가하는 시간은 언제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버스 차창으로 펼쳐진 자연이 한층 아름답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멋지고 행복한 일인가? 맑은 햇빛과 더불어 정겹게 살아가는 사람들……. 큰 아픔 없이 자유롭게 움직이고 말하며 지내는 여유로움이 좋다. 오늘 하루 그냥 그냥 지낸 평안한 일상이 고맙고 반짝인다.
2) 큰 쉼표를 찍어야 할 때 2025.8.11.(월)
오늘은 일주일 전 대학 동기 L교장이 추천해 준 한의원을 찾았다. 요즘 갑자기 척추 협착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발바닥 상태가 정상이 아니다. 며칠 전부터 저리고 아프더니 오늘은 더 심하다. 소개받은 중앙고등학교 앞의 ‘J 한의원’을 찾았다. 수년 전 친구의 허리가 많이 아팠을 때, 마지막으로 찾아 쾌차한 곳이라고 소개받았다. 잠시 침대에 눕게 해서 몸을 누르고 살피더니 많이 굳었다고 하며, 정확한 진단을 위해 먼저 영상의학과에 가서 허리 CT를 찍어 오란다. 범어동 ‘대경 영상의학과’에 가서 찍어 온 CT와 소견서를 살펴보더니 척추 협착과 돌출이 심하다고 진단한다. 치료 기간은 석 달가량 걸린다고 설명한다. 일주일에 침 치료는 두세 번, 약도 같이 먹는 것이 좋다. 침과 부항 추나요법으로 치료했다. 치료하고 나서도 계속 아프다. 오비이락인가? 이젠 멀쩡하던 왼쪽 허벅지와 종아리가 너무 아파서 걷기도 힘들다. 어제까지만 해도 왼쪽은 아무 일도 없었는데……. 전에는 오른쪽 종아리만 가끔 아파서, 걷다가 앉아 안마를 해 주면 좋아져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근데 지금은 왼쪽이 무척 아파 100m를 걷기가 힘이 든다. 큰일이다. 아프니까 진땀이 나고 정신도 혼미하다. 이렇게 고통이 온 적은 예전에 없었다. 어제 일요일 오후에도 탁구장에서 게임을 즐겼는데……. 눈물이 난다. 사람의 몸은 알 수가 없다.
집에 와서 곰곰 생각해도 다른 답이 없다. 무조건 의사 처방대로 할 수 밖에. 그동안 내가 너무 무리했나?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치료 기간이 석 달이라? 내 삶에서 큰 쉼표를 찍고 가라는 신호가 아닐까. 말로는 느리게 슬렁슬렁 외치면서 행동은 뒤따르지 못한 결과이다. 근데 석 달 지나면 정말 쾌차할 수 있을까? 오늘 저녁 멀쩡해도 내일 아침은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삶이란 수없이 많은 불특정의 사건이 툭툭 일어나 우리를 맞이한다. 기쁜 일도 있고, 슬픈 일도 생긴다. 누구든 선택의 자유도 배척의 자유도 없다. 이유도 원인도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닥쳐진 현실에 적응할 뿐. 자칫 잘못되어 회복되지 못하거나 오래가면 어쩌나? 그래도 천천히 다시 생각하니 불행 중 다행이다. 이 병은 치명적인 심장이나 머릿속의 문제가 아니다. 치료가 힘든 암도 아니다. 그냥 생활하는데 불편이 심할 뿐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병이다. 삶에는 이보다 훨씬 좋지 않은 경우도 얼마나 많은가? 교통사고가 나서 차가 망가져도 사람이 무사하니 다행인 경우와 같다. 마음을 정리하니 안정이 된다. 인간은 끊임없이 비교하며 산다. 남의 큰 아픔과 비교해 나를 위로하는 간사한 생각에 평온해졌다. 이게 사람의 본마음인가 보다. 그렇다. 걱정은 멀리 보내자. 먹구름 속에서 벗어나자. 오늘 지금 여기에 살아있는 현실에 감사하자. 아늑한 저녁 뒤엔 다시 건강한 아침이 온다.
3) 새벽 연꽃과 물가에서 찾은 평온 2025.8.21.(목)
한의원 치료를 한 지 열흘이 지났다. 일주일 지나니 차도가 조금 있었다. 의사의 처방대로 움직였다. 그동안 종아리와 허벅지가 탱탱하게 아파서 걷기에 힘이 들었지만, 느리게 매일 30분 이상을 꾸준히 걸었다. 발바닥이 아프고 염증이 생긴 것도 발목의 신경을 압박해서 생긴 증상이란다. 지난밤에 또 잠을 설쳤다. 눈을 뜨니 새벽 5시다. 정신이 멍하다. 지금 매호지 산책이나 갈까? 연꽃이 아직 피어 있을까? 걸을 때 종아리가 알밴 것처럼 아프지만 이 정도면 견뎌야지 생각하며 문을 나섰다. 힘들게 나선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최근 한 달쯤 매호지에 오지 않았는데 오늘도 연꽃이 만개했다. 해뜨기 전이라 수줍게 꽃잎을 접고 있다. 못 주위 텃밭 담장엔 노란 호박꽃과, 푸르고 붉은 나팔꽃이 마음을 밝게 한다. 잠시 뒤 동녘을 붉게 물들이며 이글거리며 떠오르는 태양. 못 둑에서 바라본 일출이 황홀하고 신비하다. 재작년 둑 가장자리에 조성된 무궁화 꽃길을 지난다. 무궁이란 이름대로 붉고 흰 무궁화가 매일 피고 지고 하면서 새벽을 불러온다. 백색 단심 무궁화는 정말 산뜻하고 깨끗한 꽃이다. 좋아하는 꽃 중 하나다. 자세히 보았다. 한참 보고 있으니 꽃잎 속으로 내 혼이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건너편에서 이따금 지나가는 경부선 열차도 아침을 힘차게 열고 있다. 곳곳 텃밭을 가꾸는 부지런한 사람들의 발걸음이 그림같다.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반갑다. 시방 눈에 보이는 모든 자연이 가슴에 안긴다. 마음이 뭉클해진다. 기쁘다. 알 수 없는 눈물 한 방울 또르르 구른다. 이런 섬세한 감성이 살아가는 에너지이다.
오후 시간은 탁구장에서 살았는데, 요양하느라 구장에 가지 않으니 좀 답답하다. 며칠 전부터 하오 3시쯤 신매광장에 갔다. 이곳은 여름에 폭염이 오면, 계류분수와 바닥분수를 운영한다. 아이들은 바닥분수를 주로 즐기고, 나무 그늘이 우거진 건물 중간에 설치된 계류분수장은 맑은 물을 계속 흐르게 한다. 50m 길이의 나선형 물길 중간중간에 목욕탕처럼 된 공간도 네 곳이나 있어서 발을 담그고 피서를 하기는 최고의 장소이다. 물놀이 아이들이 많아지면 물이 튀어 조심하지만 마치 시골의 계곡에 간 분위기이다. 가장자리 한쪽에서 한 시간 정도 물맛을 즐긴다. 이어폰으로 좋아하는 칼럼을 들으면서,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시지에서 가장 번화가이기에 늘 왕래하는 사람들로 바글거린다. 양쪽으로 핸드폰 가게, 햄버거점, 커피점, 안경원, GS편의점, 중국차, 병원, 약국이 있어 조금도 심심하지 않다. 반백 년 전 학창시절 동성로를 거닐던 추억까지 불러온다. 어떤 날은 책 한 권 가져가 발을 물에 담그고 읽고 있노라면, 여기가 바로 천국이구나 싶다. 나는 물에 발을 담그는 것을 즐기는데, 다른 어른들은 잘 들어오지 않는다. 남들은 그냥 벤치에 앉아서 구경만 한다. 표정을 보면 들어오고 싶기는 한데 선뜻 실천을 못하는 느낌이다.
저녁 시간은 주로 넷플릭스 드라마에 빠진다. 권선징악 주제가 명확한 서부극이나 무협 드라마를 즐긴다. 중국 무협 드라마 ‘범인수선전(30부작)’ 김용의 ‘사조영웅전’을 재해석한 ‘화산논검 동사서독’(8부작) ‘화산논검 구음진경’(8부작) ‘화산논검 남제북개’(8부작)나, 변호사 드라마인 ‘서초동’(12부작) ‘에스콰이어’(12부)등을 몰아보는 재미도 좋다. 예전에 미드 ‘프리즌 브레이크’나 중드 ‘겨우 서른’에 빠져 즐긴 추억이 떠오른다. 이 모든 일은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 일기라, 시시콜콜하게 이야기를 풀어내고 즐긴다. 좀 바보 같지만, 그냥 그냥 살아가는 얘기다. 어찌 보면 가장 단순하고 진솔한 이야기도 되지 싶다. 그저 평온하게 지낸 하루에 늘 감사할 뿐이다. 감사는 교양 있는 사람이 오랜 시간 수행해야 얻을 수 있는 미덕이라고 한다. 가슴에서 우러나는 충심인지 알 수 없지만, 입으로 자주 감사하다고 말하다 보면 나도 감사에 진정으로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 하루도 감사합니다.
4) 추억 속의 인연과 다시 이어진 목소리 2025.8.30.(토)
“안녕하세요? H님. 갑자기 전화해서 놀라셨지요?” “아이구, 웬일이세요? 잘 계시지요?” 엊그제 신매광장에서 저녁 산책 중이었다. 척추협착증으로 많이 걷지는 못하고 벤치에 앉아 멍하니 오가는 사람만 보다가, 홀연 한 사람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의 목소리가 그리웠다. 닉네임이 ‘**의 강’이라는 전북 익산에 사는 H님이다. H님은 2001년 ‘****낭만과 사랑’이란 사이버카페에서 처음 만났다. 나이가 비슷한 또래였다. 1년에 한두 번 만나다가, 2008년 팔공산에서 1박 2일 정기 모임 후 얼굴은 보지 못했다. 온화하고 깔끔한 모습과 다정다감한 낮은 톤의 목소리를 가진 그와는 그날 밤늦도록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1960년대 ‘학원’이란 학생 교양 잡지의 정서를 공유했고 감성의 결이 비슷했기에 더욱 친근감이 갔다. 휴대전화를 통해 전해오는 따뜻한 음성은 아득히 정겨웠던 시간으로 안내한다. 십여 년 전 자기도 허리가 아파 고생했기에 치료받은 경험을 주고받으며 위로를 받았다. 같은 직종에 근무했기에 지금도 카스로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으며 인연의 끈을 이어가고 있다.
사 반세기 전의 일이다. 21세기가 시작되기 전, 컴퓨터가 빠르게 보급될 때 사이버상 윤리 문제로 세상이 시끄러울 때다. 당시 사이버카페가 우후죽순으로 생겼다. 어쩌다가 지인의 소개로 ‘40대, 50대여***’이라는 다음카페에 가입했다. 온라인상에선 닉네임으로 활동하기에 오프라인 모임을 하기 전에는 누구도 실체를 알 수 없었다. 그 카페는 이후 십여 년 동안 다음카페에서 우수 카페로 선정된 카페다. 설립자가 대구 사람이라 대구가 본부지만 전국 각 지역에 지부를 두었다. 온라인에서 활동하려면 채팅이 기본이다. 당연히 타자 실력이 능숙해야 좋다. 개인 채팅도 했지만 주로 단체방에서 채팅으로 대화했다. 1999년 가을 첫 오프라인 전국 모임이 범어동 횟집에서 열렸다. 내성적이고 교사 신분이라, 처음에는 참석 여부를 한참 망설였다. 하지만 소통하고 지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했다. 사이버상에서 아름다운 시와 음악을 올려주고 채팅만 했기에 훨씬 마음이 두근거렸다. 아무런 연고도 없고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만남이라 더 긴장되었고 닉네임 주인공들의 본모습을 알고 싶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닉네임들을 불러보며 얼굴을 떠올린다. 여명, 파도, 물망초, 주왕, 산과들, 밤안개, 망각의 강, 토토, 배추, 구신, 연산송, 그린힐, 풀꽃향, 강바람, 첼로, 예우, 들길, 단비, 아자, 두리, 방랑자, 일송정, 바다별, 구룡 등…….
매달 지역에서 모이는 지역 모임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점차 다른 지역의 모임에도 기웃거렸다. 연말에는 전국 모임을 서울에서 열었다. 한 5년 정도 열심히 활동했다. 서울, 대전, 지리산 등에서 평생 한 번 인연으로 끝나는 사람들과 짧은 만남의 시간도 보냈다. 마냥 재미있고 즐거웠다. 나이 성별 직업이 다른 좋은 사람도 많이 사귀었다. 한 시대의 시절 인연이라 여겼다. 지금도 그 사람들의 닉네임과 얼굴이 겹쳐진다. 그사이 다른 다음카페도 많이 생겨 다섯 개 정도의 카페에 가입했다. 방장과 지역장을 맡기도 했다. 자연히 큰 카페에서 마음이 통하는 사람끼리 새로 카페를 만들어 독립하는 곳이 많았다. 꿈결같이 세월이 흘렀다. 화무십일홍인가? 차츰 시들해졌다. 자연히 좋아하는 카페 한두 곳을 빼고는 다 탈퇴하였다. 사이버 인연에도 생사가 있는 모양이다. 클릭 한 번으로 모든 것이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이 온라인 세상이다. 가장 정을 많이 두고 활동한 ‘**** 낭만과 사랑’이란 카페 몇몇 회원은 지금도 종종 연락을 주고받는다.
며칠 전 외출에서 돌아오니 우편함에 쪽지가 하나 붙어있다. 등기인데 수취인이 부재중이라 내일 다시 방문한다고 되어 있다. 어디서 왔는지 알고 싶어 쪽지를 자세히 보니 발신인이 ‘수성구 교통계’가 아닌가? 아뿔싸! 이건 범칙금 고지서가 틀림없다고 짐작되었다. 작년부터 당근 거래로 밤낮으로 많이 다녔다. 매번 조심하면서 운전하지만 언제 어디서 위반했는지를 알 수가 없다. 아픈 기억이 있다. 작년 가을 손자 훌라후프 두 개를 나눔으로 받아왔는데, 얼마 뒤 어린이 보호구역 신호위반 13만 원 딱지를 받았다. 내비를 살펴보니 잠시 방심한 결과이다. 또 어디서 찍혔구나? 생각되니 내내 우울했다. 잠시 뒤, 에이! 그냥 나오면 내야지 다른 방법이 있나 내 실수인데……. 등기로 온 것을 보니 이번에도 13만 원 범칙금 고지서가 아닐지 추측되었다. 당근 나눔에서 배보다 배꼽이 큰 상황이다. 다행히 다음날 고지서를 받으니 다른 일이었다. 한 달 전 만기 후 차량 보험을 3일 넣지 않았다고 나온 과태료 1만 2천 원이었다. 먼저 반가웠다. 예상보다 액수가 적다. 범칙금 고지서를 받고도 기분이 좋다. 단순하고 바보같은 일이지만 사람 심리는 같지 않을까? 그 차는 이미 수출용으로 판매해서 말소까지 했건만 전 주인인 내게 범칙금 통지서가 온 것이다. 당근 거래로 인한 범칙금이 아니어서 마음이 좀 편해졌다.
나름 규칙적으로 잘 지내려고 했지만 돌아보면 아직도 많은 엇박자로 뒤뚱거린다. 버리고 비운 마음으로 살아가란다. 세상의 고마움이 부족하다. 내가 뭘 잘못 했을까? 욕심이 과한가? 욕심 없는 사람이 있을까? 삶의 경고로 척추 협착이 오고, 이젠 한 박자 쉬면서 가란다. 몸과 마음이 느리고 부드럽게 일을 대하라고 한다.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부족하다. 자신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돌아보라는 뜻이 아닐까? 고맙습니다.
7부. 검지 손가락 달(月), 춤추는 달
1) 오십 년 우정, 하루의 선물 2025.9.15.(월)
늘 마음만 먹고 있던 일을 오늘 실행했다. 대학 동아리 동기인 물리과 L 교장이 사는 안동 방문하는 일이다. 그와는 막역한 사이다. 5년 전 대구에서 만나고 전화로만 교류하고 있다. 나는 늘 대학을 두 군데 다녔다고 이야기한다. 하나는 사범대 국어교육과이고, 다른 하나는 KUSA(한국유네스코학생회)라는 동아리 대학(?)이다. 그만큼 대학 시절 동아리 활동에 빠져 있었다. L은 같은 KUSA 동아리 회원이다. 동기 중 남자 사대생은 그와 나, 둘이다. 신학기가 되면 학생회관에서 신입생 환영회로 시작하여, 4월에 MT 1박 2일, (1970년대초 이런 행사 하는 곳은 드물었다) 5월에 신입생 환영 등반 1박 2일, 여름방학이 되면 봉사활동 겸 ‘산간학교’를 5박 6일로 했고, 가을엔 창립기념일, 겨울에는 졸업생 환송회 등 행사가 잦았다. 매달 마지막 화요일 정기집회로 만났고, 수시로 작은 소그룹 모임도 많았다. 행사는 언제나 준비가 최우선이다. 강의가 없는 시간이나 방과후에는 사범대 구관 계단 옆에 있는 동아리방에서 살았다.
1974년 3학년 때이다. 그가 회장, 내가 총무를 맡아 일을 주관했기에 참 많이 붙어 다녔다. 자연히 전공학과 친구들보다 더 끈끈한 우정이 생겼다. 회장단을 맡을 1974년 여름, 전국적인 큰 행사가 또 있었다. ‘제1회 조국순례대행진’이다. 전국의 KUSA 회원 1,000여 명이 우리 국토를 걸으면서 조국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느끼고 사랑하자는 취지다. 소속 지역에 따라 서울팀, 영남팀, 호남팀, 충청팀으로 나누어, 8월 5일부터 10박 11일 동안 걸어서 국토 순례하는 행사다. 서울팀은 서강대, 영남팀은 합천 해인사, 전라팀은 남원 광한루, 충청팀은 보은 법주사에서 각각 발대식을 했다. 3일째 되는 날 8일, 무주 잠두 백사장에서 지방팀이 합류하고, 6일째 되는 날 11일, 서울팀과 대전 체육관에서 합류했다. 다시 한창 발굴 중인 공주 무령왕릉도 견학하고 부여 백마강까지 함께 걷는 과정이다. 낮에는 걷고 밥해 먹고 걷고, 잠은 남학생들은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주로 야영, 여학생들은 교실을 사용했다. 대미의 마지막 날, 8,15일 오전 백마강 백사장에서 광복절날 기념식을 하고 해단했다. 기념식을 하는 도중 갑자기 행사가 급히 마무리되었다. 서울에서 육영수여사 저격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참 안타까웠다. 어제 오후 마지막 순례 중 육여사의 선물이라고 전 회원이 ‘부라보콘 아이스크림’을 받아먹으며 더위를 식히지 않았던가? 전야제 날 백사장의 가설무대에서 열린 축하 공연이 절정이었다. 그때 송창식이 와서 부른 ‘한번쯤’이란 노래에 열광한 추억도 감미롭다. 함께 고생했던 다른 지역 회원들과 대화도 즐거웠고, 헤어질 때 일일이 손을 잡고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영남팀(경북대, 영남대, 계명대, 동아대, 성균관대 일부)의 리드로 우리가 활동했기에 더욱 뜻이 깊었다.
순례 중 재미있는 일도 많았다. 간직한 사진첩을 보면 그날이 아스라하다. 행사 끝난 지 보름쯤 되는 날 낯선 엽서를 한 장 받았다. 한양대 KUSA 회원이다. 엽서를 천천히 읽어보았다.
“안녕? 놀래셨죠? 갑자기 저한테 이렇게 안부 소식을 듣게 되어서. 경북대도 개강한 걸로 아는데……. 저희 학교는 26일부터 개강입니다. 2학기 등록금이 어머어마해서요. 국립대학 다니는 학생들이 너무너무 부럽네요. 아마 대한민국 대학 중 가장 등록금이 많다고 해요. -중략- 논산에서 모두 다 작별을 고할 때, 며칠 동안 같이 고생했던 친구들이라 그런지 하나하나 붙잡고 잘 가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내년에 또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자는 말도 하고 싶었죠. 플랫폼을 나가는 KUSA 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자니 눈물이 나와서요. 모두들 다 잘 있으리라 믿습니다. 참 경대사대 2학년 언니 말이에요. (키가 작고 머리 커트. 청바지 입고 밤늦게 공주 도착하던 날 유성여고에서 이장희 노래 부른…….) 그 언니 노래 다시 듣고 싶은데. 요새 저두 집에서 키타 치면서 그 노래만 부르곤 해요. 날씨가 덥죠. 겨울이 그리워서요. 눈사람 그려봤죠. 시원해요? 경북대 KUSA 의 발전. 그리고 형호씨 개인의 행운도 아울러 빌겠어요. 이 편지가 제대로 들어갈지가 의문이네요. 만약 받으신다면 소식 give me! 제1회조국순례대행진. 영원한 추억……. 아듀. 한양대 상미과 1년. **란. ” 1974.8.24
L 교장은 영주에 가족과 함께 생활하지만, 낮에는 고향인 안동 풍산의 옛집에서 부모님이 남긴 밭을 가꾸며 지낸다. 전화로 오늘 방문해도 좋겠냐고 물으니 흔쾌히 승낙한다. Am 8:55분 안동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1시간 30분 거리이다. 기차도 있지만 적당한 시간이 맞지 않았다. 안동은 몇 달 전에도 사계절 팀에서 다녀왔다. 안동댐의 월영교와 민속촌, 영호루와 몇 군데를 두루 답사했었다. 오늘 방문은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식사와 차를 즐기며 지난 추억을 돌아보고 싶어서였다. 10:30분. 고속버스가 천천히 안동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손을 흔들며 환하게 웃으며 마중 나와 있었다. 정말 반가웠다. “어디로 갈까?”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얘기하란다. 나는 크게 가고 싶은 곳도 없고, 모처럼 학창시절 친구 만나서 옛날 추억이나 복기하며 즐기면 좋겠다고 했다.
한참 생각하더니 그럼, 먼저 부용대나 가보자 했다. 하회마을은 몇 번 갔지만, 강 건너 절벽 위 부용대는 가보지 않았다. 화천서원 옆길을 돌아서 ‘연꽃을 바라보는 전망대’라는 부용대에 올랐다. 건너편 탁 트인 하늘 아래 오밀조밀 하회마을 초가들이 연꽃처럼 펼쳐진다. 발밑에는 짙푸른 낙동강이 U자 모양으로 마을을 감싸 흐르고 있다. 모든 근심이 스러지고 눈이 환해진다. 편안하게 펼쳐진 산과 들 그림 속에 들어온 듯 아찔하고 아름답다. 옛 선비들도 텅 빈 마음으로 바라보며 자연의 일부가 되어 수양했으리라. 다시 입구의 화천서원(花川書院)으로 내려왔다. 이곳은 서애 류성룡의 형님인 류운룡선생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평일 오전이라 관람객이 없어 조용하다. 낙동강을 바라볼 수 있는 지산루(地山樓)에 올랐다. 눈앞에 넓게 펼쳐진 풀밭과 강물, 그 뒤로 허연 모래밭이 이어지고 하회마을과 푸른 산, 흰 구름 둥둥 떠다니는 파란 하늘이 잠시 고요의 나라로 안내한다. 중앙에 놓인 탁자 앞에 옛 선비가 되어 정좌해 보았다. 건너편 산을 보며, 심호흡을 해 본다. 아무 생각도 느낌도 없는 텅 빈 무심의 시간이다. 누각 위 둥근 정자 기둥 옆에 근심 없는 고양이 한 마리가 나그네를 지그시 관찰하고 있다.
서원 옆을 돌아나가니 서애 류성룡선생이 ‘징비록’을 집필한 장소인 ‘옥연정사’가 나온다. ‘입춘대길’이란 입춘방 붙은 대문이 굳게 닫혀있다. 들어갈 수 없는가? 아래쪽에 작은 안내쪽지가 붙어있다. 자세히 읽어보니 주민이 살고 있으니, 관람객은 오후 4시부터 오전 11시까지는 출입금지란다. 지금 시각 Am 11:45분. 다행이다. 들어가도 괜찮겠다 싶어서 대문을 살짝 밀어보니, ‘삐이익’ 경쾌한 소리를 내며 열린다. 완심제(琓心齊) 원락제(遠樂齊) 옥연서당(玉淵書堂)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강과 마주보는 정원엔 수령 450년 보호수인 멋진 소나무가 고고한 자태로 용트림하는듯하다. 기와를 얹은 황토담과 청청한 솔잎, 그리고 흰구름, 이 자체가 아름다운 산수화가 아닌가? 이 옥연정사에는 최근에 현대시설을 갖추고 고택 체험을 운영한다. 하회마을을 방문하는 서양인들이 많이 묵는다고 한다.
점심은 안동한우로 대접하겠단다. 거듭 사양하는 내 뜻과는 달리 승용차는 안동한우 전문식당인 ‘안동황소곳간’ 주차장에 얌전히 멈춘다. 모처럼 갈빗살과 치마살 한우를 구워 포식했다. ‘정말 내가 이런 대접을 받아도 되나?’ 돌아보니 나도 크게 못 살아온 인생은 아닌가보다. 아니아니 멋진 친구 덕분이겠지. 커피는 풍산 옛집에서 마시기로 했다. 여기서 가까운 거리고 집에 커피추출기도 갖춰있다고 한다. 정원의 잔디가 깔끔하게 정리된 양식 주택이다. 이 집은 친구가 2005년 옛집을 없애고 새로 지었다. 평생 구식 집에서 고생하신 부모님을 위해 정성껏 지은 집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부모님은 새집에서 몇 해 못 사시고 하늘의 별이 되셨단다. ‘풍수지탄’의 옛말이 절절히 가슴에 다가온다. 문득 나를 돌아봤다. 지금 나는 살아계신 어머님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을까? 부끄럽다. 마음만 앞서고 몸이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오후에는 그냥 돌아다니지 말고 쉬다가 가려는 나와, 온 김에 여러 곳을 보여주려는 친구의 고운 마음이 계속 충돌했다. 결국 멀지 않은 곳의 의성 김씨 학봉 종택과 기념관을 찾았다. 이곳은 조선 중기 퇴계 이황 선생의 수제자인 학봉 김성일과 그 종손이 살던 집이다. 안채는 수리중이라 어수선하다. 사당과 별채인 ‘풍뢰헌’과 ‘학봉기념관’만 돌아보았다. 사실 어제와 그저께는 아들과 벌초를 했다고 한다. 지친 몸이라 피곤할 텐데도 말없이 따뜻하게 맞아준 친구의 마음이 정말 고맙다. 가슴이 찡하다. 나도 언제 이렇게 진심으로 친구를 대접할 수 있을까?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내 생각에 잠겼다. 시절 인연의 고마움을 새삼 간직한다. 지금 순간을 아름답게 살아야겠다. 매사에 감사해야겠다. 하루하루를 기적의 시간으로 생각하자. 고맙습니다.
2) 50년 우정으로 쓴 문학 친구의 인물론 2025.9.22.(월)
오늘은 과동기 L 교장과 ‘예전’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번잡한 시간을 피해 오후 1시쯤에 만나니 조용하고 좋았다. 지난 봄날이다. 올해 ‘대건의 문학’ 문예지에 자신의(L 교장) 특집을 싣기로 했으니, 혹시 가능하면 ‘인물론’ 원고를 쓸 수 있겠냐고 부탁한다. 잠시 생각하다가 잘 쓸 자신은 없었지만, 흔쾌히 승낙했다. 돌아보면 그와는 50년 이상 우정을 쌓아온 사이가 아닌가? 우리는 1972년 3월 경북대 사범대 국어교육과에 같이 입학하고, 서로가 문학에 관심이 있었기에 다른 친구보다 친분이 깊었다. 무엇보다 순수하고 생각의 결이 비슷했기에 더 돈독하게 사귀었다. 그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이 다른 사람보다 생생했기에 능력껏 써 보기로 했다. 그 원고가 실린 ‘대건의 문학’이 얼마 전 발간되었다고 점심을 같이 하자고 했다.
L 교장은 ‘청옥고등공민학교’를 운영하는 ‘청옥회’ 회원으로 졸업 때까지 함께 국어 수업을 맡으며 더 가깝게 지냈다. 먼저 가입한 그의 권유로 나도 회원이 되었다. 주로 경북대 사범대생이 주축이었지만 영남대, 계명대 학생도 참여했다. ‘청옥고등공민학교’는 시내 삼덕동 경북대 의대 부근의 동덕초등학교 가설교사를 빌려 수업했다. 정식 중학교에 다니지 못한 학생들을 위한 야간중학교다. 당시 대구의 야간중학교는 ‘청옥고등공민학교’와 상동에 있는 ‘복음고등공민학교’가 두 큰 축이었다. 또 경북대 사범대 ‘델타’ 동아리 회원이 운영한 ‘양친회부설야간학교’도 있었다. 가르치며 배우던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참 많은 추억이 있었다. 일반 학교와 같이 소풍도 갔고, 능인고등학교 운동장을 빌려 복음고등공민학교와 펼친 ‘청복전’ 체육대회도 즐거웠다. 1974년 말경에 동덕초등의 가설교사가 헐리었기에, 우여곡절 끝에 비산동에 있는 달서교회 지하로 이사했다. 다시 다음 해 비산네거리 부근의 경희실업학교 가건물로 이사를 해 명맥을 이어 나갔다. 이사 할 때 ‘청옥대이동’이란 이름으로 학생들과 책걸상을 하나씩 들고 이사한 추억도 잊을 수 없는 역사의 순간이다.
이제 내가 쓴 ‘대건의 문학’ 7호(2025년)에 실린 ‘특집1’ L 교장의 인물론을 읽어본다.
<반백 년 이어온 문학 친구>
대구의 중견 소설가인 이연주 선생은 한마디로 작은 거인이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 때다. 청운의 꿈을 품고 입시지옥의 큰 난관을 벗어난 우리는 10월 유신이 일어나던 해, 사범대 국어교육과에 입학했다. 그 당시 환영회 단골 장소인 향촌동 ‘고구마집’ 2층에서 찌그러진 주전자에 막걸릿잔을 앞에 놓고 인사할 때가 첫 만남이다. 당시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첫인상은 또렷이 떠오른다. 아담한 키에 차분하고 조심스러운 말투, 웃을 때마다 하얀 이가 유난히 밝게 보이고, 검고 큰 눈동자가 눈에 확 들어오는 전형적인 시골 출신의 투박한 학생이었다.
내 기억으론 그는 학창 시절 내내 시내에 있는 누나 집에서 학교에 다녔다. 고향이 고령 시골이라 고교 때부터 누나 집에서 유학하지 않았나 짐작된다. 당시 우리 과 친구들은 시골 출신이 반을 훌쩍 넘었고 대부분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다. 그래서 수업을 마치고 학비와 용돈을 마련하기 위해 저녁에는 과외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었다. 연주도 그렇게 살아온 친구 중의 한 명이다. 사범대 국어과 강의는 신관 201호와 구관 107호의 두 교실에서 있었다. 수업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비는 시간이 많았다. 도서관에 가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나머지는 구관 앞 솔숲이나 잔디밭에서 담소를 나누며 대학 시절을 보냈다.
국어과에 입학한 친구들은, 고등학교 때 문예 활동을 했거나 문학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와는 출신 고교가 다르지만, 나도 중고교 시절 문예반 출신이었다. 나는 당시 시에 관심이 있었는데, 연주는 소설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 1학년 말기이다. 경북대 학보사가 주관한 소설 응모에 ‘송아지’라는 그의 작품이 가작으로 당선되었다. 일찍 드러난 그의 뛰어난 문학 재능을 친구들도 부러워했다. 나도 이따금 매일신문 ‘학생’이란 ‘독자란’에 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는 소설 문학동인을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다. 언젠가 들은 기억으로는, 소설 동인 이름을 친구들과 밤을 새워 궁리한 끝에 얻은 멋진 이름이, 나중에 알고 보니 이미 사용된 이름이라 큰 실망을 했다는 일화도 들었다.
대학 2학년 때 ‘문맥(文脈)’이란 국어과 문예지가 창간되었다. 편집위원으로 졸업할 때까지 봉사한 그는, 3학년 때는 ‘2집 편집장’으로 무거운 책임을 지고 궂은일을 도맡아 하기도 했다. 4학년이 되었다. 사대 교지인 ‘사탑(師塔)’은 내가 편집장을 맡게 되었고, 경대 전체 교지인 ‘복현문화(伏賢文化)’ 편집은 연주가 실질적인 편집장을 맡게 되었다. ‘문맥’지를 읽어보면 그의 대학생 때 작품인 단편소설 ‘석심(石心)’과 ‘하관(下棺)’을 감상할 수 있었다.
‘진실한 내적 욕구에 의해 쓰인, 생생한 가슴을 뒤척인 흔적들이 반짝이는 언어마다 오뉴월의 신선하고 선명한 아침 햇살과도 같이 번득였으면 좋겠고, 한 두어 편 정도는 아직 기성 세계에 도전한다면 어폐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에 접근할 수 있는 많은 문제성이 내포된 모험이 담겨 있었으면 좋겠다.’
‘문맥’ 2집 편집장으로서 그가 쓴 발간사의 일부분이다. 이 글에서 우리는 글에 대한 그의 따뜻한 마음과 소망, 순수하면서도 투철한 열정을 엿볼 수 있다. 형식이나 허세에 얽매이지 않고, 맑고 신선한 실험정신으로 똘똘 뭉친 싱싱한 젊은 문학인 태도를 그때부터 잘 보여준다.
대학 졸업 후에는 동기들이 뿔뿔이 흩어져 경북 시골의 공립학교를 돌아다니다가, 그는 대구의 정화여중에 터를 잡았다. 나도 대구의 한 사립학교에 뿌리를 내렸다. 다들 바쁘고 정직하게 살아왔다. 사범대 출신이라는 자부심으로 주어진 본분에 어긋나지 않게 교직 생활을 이어왔다. 재능과 성실성이 인정된 그는 교장으로 승진해 중책을 잘 수행하고 퇴직했다. 그와는 일 년에 한두 번 대학 동기 모임에서 만나면서 우정을 이어왔다.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었을 때 친구들은 아낌없는 축하의 응원을 보내기도 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정년퇴직을 하고 10여 년이 훌쩍 지났다. 그동안 그와 나는 ‘대구문인협회’주최 행사에서 이따금 만났다. 수필을 쓰는 나와 분야는 다르지만, ‘문협행사장’에서 종종 만나 안부를 묻곤 했다. 몇 년 전 2021년, 제34회 ‘금복문화상’ 문학부문에서 그가 영예로운 수상을 하게 되었다. 그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마치 내 일처럼 기뻤다. 고교 후배인 오철환 소설가 협회장과 함께 축하해 주러 갔던 기억이 어제처럼 새록새록 살아난다. 진정 정말 멋지게 살아가는 친구가 아닌가. 문학의 한 분야에서, 특히 어렵고 힘든 소설이라는 바다에서 묵묵히 작업을 해 나가는 그가 정말 자랑스럽다.
2023년 모임에서였다. 코로나 시국에 뭘 하고 지냈는지 서로 안부를 물었다. 그때 그가 준비해 온 장편소설 한 권을 받았다. ‘염원의 밤’이란 학교폭력을 주제로 한 소설이었다. 3년 코로나 시국에 잠잘 때를 제외하고 이 작품에 몰입해 집필하고 수정하는 하루를 보냈다고 한다. 나는 그때 갑자기 뉴턴이 생각났다. 페스트 유행에 따른 케임브리지 대학의 휴교령으로 고향에 돌아간 뉴턴은, 그 시기에 만유인력의 법칙을 구상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대학 동기들이 분기별로 모임을 한다. 고희를 훌쩍 지난 세월이지만 그와 만남은 언제나 즐겁다. 무엇보다도 세파에 영합하지 않고 맑은 정신으로 담소할 수 있는 친구이기 때문이다. 현실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바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만나고 나면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그가 자랑스럽다. 치열한 작가 의식과 늘 공부하는 자세로 살아가는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비록 내 친구이지만, 나는 그를 진정한 작은 거인이라 불러주고 싶다.
3) 가을바람 따라 떠난 경주·감포 여행 2025.9.23.(화)
짙푸른 하늘 군데군데 뭉게구름이 둥둥, 서늘한 바람 뺨을 스치는 전형적인 가을이다. 지금 이렇게 맑은 데 내일은 비가 온다나? 사계절 팀 여행 날, 오늘 날씨는 로또 당첨이다. 경주와 감포로 방향을 잡았다. 자주 가던 곳이라 느긋하다. 핸들을 잡은 K 박사님은 싱글벙글한다. 좋은 날,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은 시작부터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뭐, 그리 급하게 갈 필요 있겠나? 쉬엄쉬엄 오감으로 즐기면서 다니는 것이 최고다. 평사휴게소에 들어갔다. 커피 한 잔을 들고 벤치에 앉아 천천히 먼 산을 바라본다. 평일이라 조용하다. 잠시 뒤에 대형 버스 4대가 줄지어 들어온다. 한 무리의 노인들이 우르르 내린다. ‘달서복지관’ 명찰을 달고 있다. 단체 가을 소풍인 모양이다. 긴 세월의 연륜이 뚝뚝 떨어지는 무르익은 얼굴이다. 몸은 조금 불편한 듯 보이지만, 환한 얼굴이 나들이가 즐거우신 모양이다. 나도 지금 저들의 대열 꽁무니에 서 있는 나이가 아닌가? 아직 이렇게 벗들과 다닐 수 있으니 참 행복하다. 잠시 뒤 또 한 무리의 사람이 다가온다. 훤칠한 키와 눈이 유난히 큰 오뚝한 이목구비를 지닌 예닐곱 명 젊은 외국 여자들이다. 20대 나이로 보인다. 하얀 피부는 아니지만 서양인과 비슷하고 참 미인이다. 어느 나라 사람일까? 옆 벤치에 앉아서 즐겁게 중얼거린다. 한국인 가이드가 있기에 국적을 물어보았다. 내가 짐작한 대로 인도 사람이다. 경주 여행 간다고 한다. 카스트 제도가 없어졌다고 하지만 상류계층이리라. 젊음은 어디서나 아름답고 빛이 난다.
사천왕사지 삼거리에서 오른쪽 통일전 방향으로 들어섰다. M 님이 추천한 ‘경북천년숲정원’ 가는 길이다. 평일은 모든 것이 원만하다. 주말에는 주차가 어려워 통일전에서 20여 분 걸어와야 한단다. 정원 안에 신라 ‘천년의 녹(綠)과 향(香)을 담은 곳’. 한 공간 한 공간, 겹겹이 쌓인 역사와 멋으로 묶인 공간, 보이는 공간과 보이지 않는 공간이 서로 어우러져 즐거운 상상을 가져다주는 곳으로 소개된다. 몇 번 와본 곳이지만 사계절 팀과는 처음이다. 입구에 들어서자 마주친 풍경에 입이 딱 벌어진다. 수로가 있는 목교 건너 길 좌우로 하늘을 찌를 듯이 뻗은 칠엽수(마로니에)와 메타스콰이어 가로수가 100m 이상 쭉 팔을 들고 서 있다. 저 멀리 있는 사람이 작은 벌레 같다. 목교 아래 수로 쪽으로 내려갔다. 멋진 외나무다리가 있어서 인증 사진을 많이 찍는 곳이다. 갑자기 풀숲에서 가느다란 실뱀이 ‘왜 내 영역에 침범하느냐?’ 항변하는 듯 스르르 지나간다. 참 입구에 ‘뱀과 벌이 있으니 조심하세요.’라는 팻말이 있었지. 다리 위에서는 누구나 멋진 모델이 된다. 지난번에는 목교 반대편 외나무다리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이쪽이 더 아름다운 곳이다.
‘왕의 정원’ 입구 정자에 앉았다. 아담한 연못을 앞에 두고 코스모스가 한창이다. 근데 오늘은 연못의 인공폭포가 돌아가지 않으니 좀 아쉽다. 느긋한 걸음으로 가을을 밟는다. 갖가지 꽃으로 가꾼 다양한 이름의 정원이 무한한 상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천년의 미소원, 철쭉원, 초화원, 거울숲, 배롱숲, 숲그늘 정원, 버들못 정원 등 테마정원이 13곳이나 된다. 버들못 정원에서 바라본 하늘은 흰 구름과 쪽빛 하늘이 그림그리기를 한다. 담 너머 들판엔 누런 황금물결이 출렁거려, 어린 시절 시골 외가 논둑에 선 느낌이다. 가을이 깊어 낙엽이 쌓이고, 단풍이 천지를 정복하는 시간이 되면 진정 환상의 세계가 펼쳐지지 않을까.
‘맷돌 순두부집’에서 대기 번호표 28번. 언제나 손님들이 넘친다. 기다려도 맛이 한결같기에 실망은 하지 않았다. 점을 찍었으니, 이제 어디로 갈까? K 박사님이 ‘송대말등대’를 추천한다. 처음 듣는 이름이다. 감포엔 수없이 왔건만 왜 여기는 몰랐을까? 내비로 검색하니, 감포읍 오류리에 있어 감포항 끝부분과 가깝다. 바로 옆에 ‘송대말등대 빛체험전시관’도 있다. 얼마 전에도 가까운 감포 어시장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이곳은 몰랐다. 자주 가던 대본이나 봉길리 대왕암 쪽만 생각했기에 그런 것 같다. 여긴 주차장이 따로 없다. 주말이 아니라, 몇 대 주차는 가능하다. 언덕 한쪽에 주차하고 잠시 걸으니 짙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우뚝 선 하얀 등대를 만난다. 입구에 시퍼렇게 날이 선 소나무가 푸른 하늘과 춤추는 듯 황홀하다. 오늘은 유난히 바다 색깔이 강렬하고 아찔하다.
‘송대말등대 빛체험전시관’에 들어갔다. 월요일은 휴관이다. 오늘은 화요일이라 다행이다. 아이들과 함께 오면 좋겠다. 빛과 미디어아트의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 곳이다. 거울을 통해 비친 색채 예술의 정수를 맛보는 곳이다. 등대 앞 바다는 ‘문화체육관광부 한국관광공사 지정 사진찍기 좋은 녹색 명소’로 되어 있다. 등대 아래 바다로 내려갔다. 좁은 해변이 모래가 아니고 울퉁불퉁한 돌이라 조심조심 걷는다. 납작한 바위에 앉았다. 눈앞에 높고 낮은 작은 바위섬들이 질서 없이 수십 개 놓여 있다. 이 섬들도 주상절리 한 부분이 아닐지 짐작된다. 바닷바람이 서늘하게 귀를 간질인다. 짙푸른 바다색이 아름다움을 넘어 시퍼렇게 타는듯하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저 말없이 바라보기만 해도 눈이 시리다. 모든 것을 잊고 멍하니 수평선만 응시한다. 뒤쪽 축대 아래에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보인다. 언제 왔는지 그가 우리를 관찰하고 있다. 목덜미와 눈, 배만 하얗고 나머지는 검은색이다. 그도 진한 바다를 보며 자신의 삶을 관조하는 것일까?
감포 솔밭을 지나 봉길리 대왕암 앞에 섰다. 오늘은 그 많던 갈매기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갔을까? 봄이면 해변을 점령하던 굿판이나 기도하는 사람도 없다. 해변이 좀 수척하게 보이지만, 예전에 비해 훨씬 싱싱하고 깔끔하다. 허옇게 밀려오는 파도도 사랑스럽다. 송대말등대 앞 바다와는 다른 매력이 있기에 비교가 된다. 옛날을 회상한다. 불혹의 나이 때는 해변에 텐트를 치고, 대왕암 중간까지 수영도 하지 않았던가? 그때를 생각하며 대왕암을 바라보니, 오늘의 삶이 아스라하고 꿈꾸는 듯하다.
저녁은 경산 신대부적 식당거리의 ‘홍익돈가스’집으로 갔다. J 선생님이 추천한 곳으로 젊은이들이 붐비는 곳이다. 이른 저녁 시간인데도 소문만큼 손님이 붐빈다. 건강을 생각해 ‘생선돈가스’로 하루를 정리했다. 좋은 날, 좋은 사람들과, 좋은 곳에서 보낸 오늘 삶이 멋진 행복이 아닌가. 이 모든 일정이 감사하고 고마울 뿐이다.
4) 수성못 축제와 화양연화의 시간 2025.9.30.(화)
지난 토요일(27일) 아침 파동의 아는 병원에 가는 중이었다. 8월 초순, 척추 ct 촬영한 결과 척추협착증 외에 복부대동맥과 장골 동맥의 벽 석회화가 보여 동맥경화증 증세가 있다는 소견서를 받았기 때문이다. 운전 중에 **대 출신 J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오늘 저녁 수성못 ‘울루루 문화광장’에서 ‘생활예술동아리 경연대회 결선’이 있는데, 혹시 참석 가능한가를 묻는다. 시간이 가능하면 자기 팀 준비도 좀 도와주고 일찍 올 수 있겠냐고 한다. 내가 알기로는 J 선생님은 예전에 합창단원이었는데, 뭔 준비물이 있을지 생각하다가 오후 일정을 알 수 없어 즉답을 피했다. 초음파 검사를 하려고 병원에 갔지만, 내과 의사의 자세한 설명만 듣고 돌아섰다. 지금 단계는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만 관리하면서 관찰하라고 한다.
가을 주말 저녁 수성못은 축제의 성지다. 선선한 바람과 푸른 하늘이 마음을 들뜨게 한다. ‘수성 6번’을 타고 범물행정센타서 ‘401번’ 버스로 환승, 30분 만에 수성못 행사장에 도착했다. 우와! 사람과 승용차가 길바닥에 넘친다. 대학 시절 동성로 축제장에 온 듯하다. 지금 여긴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환락의 파티장(?)에 들어온 기분이랄까? 길가 오픈된 주점마다 선남선녀들로 와글와글 붐빈다. 붉게 물든 얼굴로 마주 앉아 부딪치는 술잔 소리가 가슴속에 아찔하다. 공연장에는 벌써 공연 중이다. 올해는 구청에서 객석 의자를 준비해 놓았다. 중간의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돌아보니 옆쪽에는 하와이 훌라 공연을 준비 중인 10여 명 젊은 여인의 복장이 눈부시다. 공연이 끝날 때마다 관중들의 환호가 대단하다. 덩달아 나도 소리치고 박수를 아끼지 않는다. 지금 여기 내가 살아있다는 감정이 강하게 든다. 다들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는구나. 그렇지! 저렇게 저렇게 살아가야지. 출연진이 바뀔 때마다 응원한 그들의 삶이 참 아름답다. ‘꾼’이라는 멋진 보컬의 열창에는 모두 떼창으로 화답한다. 이문세의 ‘저녁노을’이라는 곡이다. 나는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노래가 아닌가. 세대차를 절실히 실감한다. 급변하는 시대의 문화를 읽으면서 부럽기도 하고 저물어 가는 내 삶의 석양이 안타깝기도 하다. 옆에 놓인 프로그램을 들고 목차를 훑어봤다. 재작년과는 경연자나 참가 종목이 확 바뀌었다.
J 선생님의 공연은 합창이 아니라 ‘시극’이었다. ‘스토리연구회’라는 모임에서 문학예술의 시 낭송을 통해 청소년과 도시인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힐링 문화를 만든다는 취지의 공연이다. 구성인원도 적고 화려하지 못해 큰 관심은 못 받은 듯하다. 그래도 ‘시극’이 결승까지 온 것은 대단한 일이다. 공연의 절정은 춤을 사랑하고 춤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청소년 댄스 동아리 연주다. 현란한 춤솜씨가 K팝 아이돌과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귀갓길은 J 선생님의 승용차에 시극을 함께 한 분과 함께 탔다. 그때 J 선생님이 지금 화요일마다 ‘시낭송’ 강습이 있는데 참가할 의향을 물어왔다. 평소 관심이 있던 분야라 흔쾌히 승낙했다.
오늘은 색다른 모임 첫 참석 날이다. J 선생님이 토요일 추천한 모임이다. ‘행복수성 평생학습마을’에서 주관한 ‘시낭송’ 강습으로 매주 화요일 ‘만촌 스마트빌리지’ 강의장에서 열린다. 우방 금탑아파트 지하 강의실에 도착하니 9시 40분이다. 먼저 온 회원들이 벌써 자리에 앉아 있다. 여자 회원이 대부분이다. 오전 10시부터 11시 30분까지 강의 시간이다. S 강사의 음성이 차랑차랑하다. 사실 ‘시낭송’은 수문대 강의 시간에 많이 했다. 늘 시 한 수를 낭송하고 강의를 하는 것이 내 강의 방식이다. 전문적으로 시 낭송을 배운 적은 없고 내 나름대로 낭송을 해 왔다. 체계적인 배움은 없었지만, 늘 남보다 관심이 달랐다. 10여 년 시낭송 강의를 한 S 강사의 이론을 천천히 눈과 귀로 배운다. 그녀는 남들보다 목소리가 타고났다. 낭랑하고 칼칼한 듯하면서 감칠맛을 가진 음성이다. ‘음성론’과 ‘성대 접지 연습’ ‘리드감을 만들어 내는 요소’ ‘음량’ ‘속도’ ‘억양’ ‘강조’ 등 이론을 PPT 자료로 능숙하게 풀어낸다. 천양희 시인의 ‘마음의 달’이란 작품으로 낭송 실습을 한다. 장음과 단음 처리, 연과 연을 이어가는 법을 나름대로 설명한다. 자기가 배울 때의 경험을 얘기하면서 겪은 이야기로 활기를 불어넣는다. 많은 것을 새로 보고 생각하게 되었다. 마치기 10분 전, 강습자들이 차례대로 나와 ‘마음의 달’ 시 낭송으로 마무리한다. 모두 다 배운 대로 진지하게 하려는 모습이 보기 좋다. 내가 마지막으로 낭송했다.
집에 오니 단체 카톡에 내가 낭송한 동영상이 올라왔다. 나도 이제까지 시 낭송을 많이 했지만, 동영상으로 복기해 보는 것은 처음이다. 자세나 음성, 동작 등을 자세히 볼 수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동안 혼자 시 낭송을 즐기며 ‘우물 안 개구리’로 산듯하다. 물론 시 낭송 대회에 나가려고 준비했으면 진작 공부했겠지만, 그냥 그냥 나름대로 즐기면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뭐 대회에 나갈 것도 아닌데 뭘 이렇게 공부해야 할 까도 생각되었지만, 그래도 좋아하고 내가 잘하는 분야이기에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에 진지하게 참여했다. 단체 카톡에서도 처음 왔지만 제일 잘 한다는 댓글이 나를 즐겁게 한다. 벌써 다음 시간이 기다려진다. 자잘하고 깨알 같은 내 삶의 현주소이다. 지금 여기 이렇게 횡설수설하면서 사는 것이 최고의 삶이지 싶다. 석양의 생에서 화양연화의 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