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의 사진은 한나라 때 유적인 마왕퇴 유적에서 발견된 옷입니다. 마왕퇴 유물은 미라 상태의 시신부터 시작해서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으며 현재 호남성박물관에서 전시 중입니다. 이 옷의 주인공 미라는 아마 호남성박물관에서 가장 인기있는 전시품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그 가운데 특히 요즘 입는 옷보다 훨씬 가볍고 고급스런 비단옷이 다량 발견되어서 복식 연구에 큰 도움을 줬다고 합니다. 위의 옷을 보면 양 팔의 소매와 여미는 앞섶 등 전체적인 모양에서 현재의 옷이나 다름없음을 볼 수 있습니다. 위의 사진은 조선시대 때 선비들이 입었던 학창의(鶴氅衣)라는 옷입니다. 한나라 때 마왕퇴에 묻힌 귀부인의 옷과 다른 곳이 거의 없습니다. 옷 고름이 길게 나 있는 점이 좀 다르지요. 학창의라는 옷의 뜻은 「학의 깃털을 짜서 만든 옷」이라는 뜻인데, 실은 이 옷을 입으면 소매 끝이 검은색을 띠어 학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렇게 부릅니다. 두 마리 학이 군무를 추고 있는 모습입니다. 어때요 위의 학창의와 많이 닮지 않았나요? 이 학창의를 입고 깃부채[羽扇]를 들고 앉은 채 적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사람이 있죠? 바로 『삼국연의』의 주인공 중 하나인 제갈량입니다. 오우삼의 영화 <적벽>에 나오는 제갈량의 모습인데 학창의를 입은 모습은 아니지만 옷의 앞섶을 여미고 띠[紳]를 맨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렇게 옷의 여미는 앞섶과 양 소매를 나타낸 글자가 바로 「옷 의」(衣)자입니다. 「옷 의」(衣)자의 갑골-금문-소전 위의 사진 설명에서 알 수가 있듯이 「옷 의」(衣)자는 상의(上衣)를 나타낸 글자입니다. 이와 반대로 하의를 나타낸 글자는 우리가 「치마 상」(裳)이라고 하는 글자입니다. 상(裳)자는 의(衣)에서 형체소를, 상(尙)자에서 음소를 취한 형성자(形聲字)입니다. 그래서 의상(衣裳)은 바로 상의와 하의를 함께 이른 말이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동가홍상(同價紅裳)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주로 치마라는 뜻으로만 쓰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도상(倒裳)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 말은 바지를 앞뒤를 바꾸어 입은 것을 말합니다. 『시경』과 도연명의 시 등에 이 말이 보이는데 주로 늦잠을 자거나 당황해서 허겁지겁 옷을 주워입다가 앞뒤를 그만 뒤집어 입은 것을 말하죠. 멋진 모델이 아주 고급스러워보이는 모피옷을 전신에 두르고 있네요. 예나 지금이나 서민들은 엄두를 못낼 옷이 바로 모피옷이지요. 일전에 신문에 보니 80% 할인해서도 2~300만 원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런 형편은 옛날에도 마찬가지였던 듯합니다. 오죽하면 『논어·공야장(公冶長)』편에 공자가 제자들에게 각자의 뜻을 말해보라고 하니까 자로가 "수레와 말과 가벼운 갖옷[輕裘]을 친구와 함께 쓰다가 해지더라도 유감이 없고자 하옵니다."라고 했을까요. 여기서 말하는 갖옷이 바로 요즘 말로 한다면 모피옷입니다. 갖옷을 위시해서 가죽 제품, 요즘으로 치면 피혁제품을 만드는 장인을 옛날에는 피장(皮匠)이라고 하였는데, 우리말로는 갖바치라고 합니다. 이 모피옷은 예나 지금이나 그만큼 구(求)하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이 갖옷 중에서도 으뜸은 단연코 호백구(狐白裘)가 아닐까 합니다. 위의 사진은 <삼국시대>라는 영화의 한 장면인데 한 여인이 군대 앞에서 호백구를 입구 비파를 연주하는 모습입니다. 이 호백구는 천하에 둘도 없는 진귀한 옷으로 전국시대 당시에 제나라의 공자인 맹상군(孟嘗君)만 가지고 있었다는 옷입니다. 흰 여우의 가장 부드럽다는 겨드랑이 털만을 짜집기해서 만들었다는, 아마 모든 여인이 공히 탐을 낼 만한 옷이었던 거죠. 이 호백구를 하나 만들려면 아마 수백 마리의 흰 여우가 희생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냥 여우도 아니고 말이죠. 이 호백구는 맹상군이 진나라 왕을 뵐 때 이미 폐백으로 바쳤죠. 그러다가 진나라 신하들의 반대로 감금되었는데 로비를 위해 접근한 왕의 애첩이 또 요구하자 낭패에 몰렸지만 구도(狗盜)가 개의 흉내를 내면서 잠입하여 훔쳐내 다시 바쳤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이렇게 힘든 모피옷을 하나 장만했을 때는 아마 이런 말을 하였을 것입니다. "야! 나도 드디어 한 구(裘) 했어." 여기서 갖옷을 나타내는 한자 구(裘)자의 원형은 바로 구(求)입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구하기 어려운 물건을 구하는 것을 구(求)한다고 하였던 것이죠. 「구할 구」(求)자의 금문-대전-소전 위 구자는 옷 의(衣)자에 털을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털이 붙어 있는 옷이라면 당연히... 갖옷, 곧 모피옷을 말하겠죠. 그런데 이 구(求)자가 위에서 말한 것처럼 모피옷 같은 구하기 어려운 물건을 구한다(구하였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자 원래 형체소였던 求자가 음소로 바뀌고 형체소 옷 의(衣)자를 첨가해서 원래의 뜻을 보존하면서 글자를 분리해낸 것입니다. 그래서 옷은 옷인데 모피로 만든 옷이란 뜻이 생겨난 것이죠. 이렇게 모피옷의 털을 표현한 모양은 구(求)자가 변한 구(裘)자의 옛 문자에는 더욱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갖옷 구」(裘)자의 갑골문-금문-금문대전-소전 갑골문을 보면 「옷 의」(衣)자 바깥으로 나온 털의 모양이 확연합니다. 그러다가 금문부터는 「구할 구」(求)자가 「옷 의」(衣)자 안으로 들어간 모습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지요. 아 나는 언제나 구(裘) 한 벌 구(求)하나? 그리고 전쟁을 할 때도 옷을 입어야 했습니다. 이때는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하여 평상시 입는 옷과는 조금 다른 옷을 입어야 했습니다. 옛날에는 갑옷이래야 조금 두꺼운 천을 여러 장 덧댄 옷이거나 조금 형편이 나으면 가죽을 네모 모양으로 잘라서 옷의 겉에다 꿰맨 정도였습니다. 위의 사진은 서안에 있는 병마용 2호갱에 있는 진나라의 중급 군리(軍吏)의 모습입니다. 요즘 우리로 치면 영관급 장교쯤 되려나요? 갑옷 편이 겨우 가슴과 배 부분을 가려줄 뿐입니다. 아마 하급 관리였으면 더 열악했을 것이고 일반 병사였다면 더 말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급 군졸들이 입는 갑옷을 나타낸 글자가 바로 「군사 졸」(卒)자입니다. 「군사 졸」(卒)자의 갑골문-금문-금문대전-소전 갑골문에는 갑옷편을 X자 두 개를 표시한 형태로 처리된 모양의 글자도 보입니다. 모든 시대별 자형에서 「옷 의」(衣)자의 자형은 분명히 드러납니다. 갑옷편을 붙인 모습이 뒤로 오면서 조금씩 달라집니다. 해서 卒자에서는 인(人)자 형태를 두 개 표현한 것으로 바뀝니다. 저런 다소 열악한 갑옷을 입는 사람을 나타낸 글자가 바로 「군사 졸」(卒)자입니다. |
첫댓글 재밌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