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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3월19일 총회 수업 피드백 ♥
말 씀 : 장 미 영 목 사 님
제 목: 도대체 어떤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일까요.
1)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사람
2) 율법은 결코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아는 사람
3) 회개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 사람 그 믿음으로 매일 회개하는 사람
회개하여 유쾌한 전도요원이 되자.
말 씀
[로마서 3장]
1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
2 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그렇다면 유대인의 나은 점이 무엇이고 할례의 가치가 무엇인가. 여러모로 많이 있습니다. 할례의 가치를 알고 있는 유대인들은 하나님 믿지 않는 사람들에 비해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들어서 알고 있으며, 그 말씀을 맡았다는 겁니다.
3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뇨.
4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그런데 만일 유대인 가운데 누군가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 믿지 않았고 하나님의 신실함이 어디 가겠습니까. 세상사람 다 거짓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옳습니다.
5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6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하나님이 그런 분이시면 하나님이 어떻게 세상을 심판하실 수 있나
그러나 우리가 죄를 지어 불의를 드러내면 우리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가 불의해서 벌을 내리신다고, 하나님은 불의하시다고 왜 우리한테 벌을 내리시느냐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불의하시지 않으십니다. 만약 하나님이 그런 분이시라면 어떻게 세상을 의롭게 심판 하실 수 있겠습니까. 세상 사람이 다 거짓되어도 하나님은 진실 되십니다.
7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으면 어찌 나도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8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저희가 정죄 받는 것이 옳으니라.
또 어떤 사람들은 나의 거짓으로 하나님의 진리가 더 드러나서 그분께 영광이 되었다면, 거짓된 나로 인해 하나님의 의가 더 드러나면 좋은 것이지, 왜 꼭 내가 죄인 취급 받아야하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선을 이루기 위해 악을 행하자 하면서, 우리가 그렇게 가르쳤다고 헐뜯고 다닙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정죄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 의로워 져야지, 우리의 더러워지는 모습이 하나님을 더욱 의롭게 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의로워지는 것이 맞지 더러움을 통해서 하나님이 의롭게 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9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저희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그러면 우리가 이방인보다 낫다는 말입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선언 한 것처럼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십자가 앞에서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의로운 사람은 없는데 한 명도 없고, 깨달은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선을 행하는 자도 하나도 없고, 목구명은 열린 무덤이라 독사의 독이 가득하고, 입에는 저주와 독이 가득하고, 살해하는 것과 파멸이 있습니다. 이런 자는 참된 평강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무시합니다.
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율법은 율법아래 있는 자에게만 적용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판명하기 위해 율법을 주셨습니다. 아무도 핑계치도 변명도 하지 못합니다. 율법 중 한두가지를 어겼다 칩시다. 살인하면 죄인이라고, 너는 유죄라고 하며 잘못할 때마다 율법을 어겼으니 죄인이라며 벌 받아 마땅하다고 이렇게 율법에 적용을 받습니다. 그 율법이 있어서“나만 무슨 잘못이에요. 나만 죄 졌어요.”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동일하게 율법의 적용을 받으니, 십자가 앞에 모두가 죄인으로 서게 됩니다. 이렇게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해 우리 모두를 율법아래 두셨습니다.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그래서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는 솔직히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율법을 다 지키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율법이라는 것은 율법을 어긴다는 것이 무엇이라고, 죄인이라고 깨닫게 해줄 뿐입니다. 율법이 우리에게 해주는 것은, 죄인이니 하나님 앞에 나와서 용서를 빌라는 것까지만 알려주는 것이 율법의 역할입니다.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그러나 지금은 율법과 관계없이 의롭다 인정받을 길이 열렸습니다. 우리는 죄인이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라면 차별 없이 주어지는 의, 그 의라는 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죄 때문에 하나님과 우리사이가 멀어졌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심으로 십자가를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다리로 놓아주셔서, 그 십자가를 통하여서 하나님께 가게 해서, 의가 회복되고, 관계가 회복되었으며, 결국 의롭다 인정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기준, 하나님을 영화롭게 만드는 기준, 하나님의 말발을 세워드릴 수 있는 기준이 있지만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서 그 영광스러운 기준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의 길을 마련해줌으로써, 그 십자가의 길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께로 가는 의가 열림으로써 관계가 회복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공짜로 의롭다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자격 없지만 의롭다 인정받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 원합니다.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피를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는 제물로 삼으시고, 누구든지 예수만 믿기만 하면 하나님과 깨어진 관계가 회복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지금까지 참아 오심으로 지나쳐왔던 과거의 모든 죄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해결 받습니다. 예수님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시고 하나님도 의로우셔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까지도 예수님과 함께 묻어가서 거저 의롭다고 인정을 받게 되는 혜택을 누리게 됩니다.
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그러므로 우리 총회원에게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받는 것은 우리가 지키지도 못할 그 율법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표준 기준에 미치지도 못하고, 하나님 말발에 세워드리지 못하고, 기본에도 온전히 충실하지 못했습니다. 율법을 이루어 드릴 수도 없고, 행위가 하루하루 하나님께 미치거나, 의롭다 인정받을 정도로 우리가 한 것이 없기에, 예수님이 의로우셔서 그냥 함께 묻어가는 것이기에 자랑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됩니다. 예수님 믿으면 구원받게 되고, 죄지었는데 하나님 앞에 회개하면, 하나님 아버지 마음이 너무 넓어서 용서해주시고, 또 죄짓고 회개하면 또 또 용서하고 또 또 죄짓고 와서 회개하면 또 또 또 용서하십니다. 이런 자녀와 아버지의 관계가 용서하실 수 있는 아버지에 대한 믿음입니다. 회개하면 용서해 주실 거라는 것이 믿음입니다. 회개해야 하는 우리들이 용서를 빌 때, 용서해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믿는 믿음, 험한 십자가 붙들고 은혜 보좌 앞에 나가 용서 빌면, 의로운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용서해 주실 거라는 믿음,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형제와 싸우면 의가 상했다고 할 때의 “의”는 옳은 의가 아니라, 관계 “의”입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멀어져 있었는데, 예수님이 죽어주면 되냐고 하시면서 십자가에 피 흘리시면서, 겨우 하나님과 우리를 악수하게 해주시고, 화해 신청해주어서 관계가 회복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의롭게 해주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29 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뿐이시뇨. 또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뇨.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우리가 예수님 안 믿는 사람을 무시하거나, 지나가는 땡중들에게 그렇게 살다가 지옥에나 가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기 때문입니다. 이방인에게도 예수님이 전해지고, 그들이 믿기만 한다면 의롭다 인정받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천국에 갈수 있게 됩니다. 이방인에게도 예수님을 전하는 전도요원이 되길 원합니다.
30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는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솔직히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께는 할례자나 무할례자나, 모태신앙자나 뒤늦게 믿은 자나 다 똑같습니다. 모두 다 똑같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인정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믿음으로 구원받으니 더 이상 율법이 필요 없다는 말이겠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해주신 하나님의 길을 따라가는 그들은 오히려 더 규칙을 지키려 하고, 이왕이면 하나님 계명대로 살려고 더욱 몸부림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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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동안 저희들 죽이지 않으시고 살아서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살아있음에 감사합니다. 지금 일본열도가 대재앙 때문에 고통가운데 있습니다. 사상자가 2만명이 훨씬 넘어 10만명을 향해 마라톤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일들을 통해 지각변동이 3m이상 되어서, 지형이 바뀌고 지하의 마그마가 끓기 시작하면서, 전 세계가 긴장을 하고 있습니다. 어디에서 무엇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절대 안전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훈련은 2012년까지입니다. 그런데 우리 삶 가운데 2013년, 2015년, 2020년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2012년까지 훈련을 마치고 2013년에도 이 지구가 건재하고, 대한민국이 돌아가고 있다면, 배운 훈련으로 열심히 사역하고 전도요원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지라는 부푼 꿈과 포부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재앙을 일으키셔서 우리들을 화마로 집어삼킨다고 해도 회개되어 있는 사람은 걱정이 없습니다. 두려운 사람은 하루하루가 회개 되어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중, 고, 청년부가 온전히 회개 되어진 그런 사람이 되도록 기회 주시고, 마음 문 열어주시어서, 하나님께 바짝 다가갈 수 있는 주의 종 되기 원합니다.
술집에 다니던 어떤 여인이 교회를 나가게 되니, 사람들이 착하다고 이제 힘내고 용기내서 잘 살라고 합니다. 그런데 교회를 다니던 아가씨가 술집에 나가니 나쁜년 이라고 욕을 합니다. 둘 다 똑같이 현재 술집을 다니고 있고, 교회도 다니고 있는데, 술집을 다니다가 뒤에 교회를 간 사람은 착하다고 하고, 현재 교회를 다니다가 나중에 술집 간 사람은 나쁘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율법을 알았느냐 모르느냐,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느냐 모르느냐의 차이인 것입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죄를 지었다가 교회를 나가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는 사람은, 많은 사람이 격려하고 그 사람을 이끌어 주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지만 세상의 쾌락과 돈이 궁해서 술집에 나가서 몸을 파는 사람에게는 비난과 질책이 쏟아집니다. 현장에서 잡힌 간음한 여인이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뒤에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요즘 들어 하나님께서 전도요원에게 책망의 말씀을 많이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고 이제 예수를 믿게 된 사람이냐,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먼저 믿은 자로서 학교나 직장을 나가는 사람이냐, 그런데 어찌하여 하나님을 모르고 학교나 직장을 나가는 자와 다를 것이 없느냐고 책망하십니다. 요즘 중고청 모습은 밖에서 학교와 작장을 다니고는 있지만 이제 겨우 예수님 믿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의 믿는 친구들 까지도 세상으로 끌고 갑니다. 이렇게 교회 안에 세상 것, 세상 생각이 들어오는 것이 바로 세속화입니다. 반대로 예수 먼저 믿은 자가 예수님 심장 가지고 세상으로 가는 것이 복음화입니다. 우리 중고청이 지금 세속화에 앞장서고 있는지, 아니면 복음화에 앞장서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은 매일 책망 하고 계십니다. 선생님이라고 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듣기 싫은 책망의 소리로만 끌고 갈 수 없어서, 잔소리 안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오늘도 세속화가 아닌 복음화에 앞장서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직장과 학교에 나가고 있기에, 세상 직장인과 똑같이 살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세속화가 아니라 복음화에 앞장서야하고, 본업은 전도요원이고, 학업과 직장은 부업입니다.
총회로 이렇게 함께 모였습니다. 세상의 학업과 직장보다 중요한 것이 하나님을 섬기고 경외하는 것입니다. 부업에 있어 세속화가 아닌 복음화에 앞장설 수 있는 전도요원 되기 원합니다. 예수 믿고 술집 나가는 것이 왜 안 되는 것인지,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는 그 계명을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술집에 나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진정 세속화가 아닌 복음화를 위하여, 예수 심장가지고 직장과 학교에 나갈 수 있는 주의 종 되기 원합니다.
나는 학생, 나는 직장인, 하지만 우리들의 본업은 신앙이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복음화를 실천하기 위해 세상 땅을 밟고 있지만, 그것이 여러분이 있어야 하는 진정한 모습이 아니고, 복음화를 위해 전도요원의 신분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세상이 거꾸로 되려고 하니, 부업 시간의 시간이 훨씬 길게 되고, 본업을 까먹는 이런 시대가 오고 있으니, 하나님이 얼마나 답답해하시겠습니까.
대한민국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지난번에 태안 쪽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 우리나라도 지진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나라를 엎으실 방법은 자연재해로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도 지진이나 쓰나미로 부터 안전하지 않습니다. 지구 어느 곳에서도 지하에서는 마그마가 끓고 있기에, 화산폭발로부터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우리 가족들 다 하나님 앞에 회개할 수 있도록, 회개할 시간이 필요하기에, 대한민국의 재앙을 유보해달라는 기도 이외에, 하나님이 지구를 조기에 문 닫으시려 한다면 별로 큰 방법이 없습니다. 지금 지구 수명이 거의 다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일본은 동아시아 3국 중에 하나이고, 세계에서 알아주는 두뇌를 가지고 있고, 뭐든지 축소 힐 수 있으며 돈도 많은 나라이지만, 자연재해 앞에서는 아무것도 손쓸 수가 없습니다. 시간이 많지 않아서 이렇게 당장 캠페인 기간을 주셨지만, 우리들의 마음이 여전히 세상 직장인과 학생들과 다를 게 없다면, 자연재해가 덮치는 날 천국가기 힘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지금 여기 앉아 있는 분들 중에도 지옥 갈 사람이 있습니다. 지옥은 영원합니다. 지옥 가는 그 시간부터 후회할 것입니다. 저(장미영 목사님)는 여러분의 사령관으로서 회개를 촉구하는 바입니다. 시간 길지 않습니다. 말씀 가르치고 인도하고 어미 된 심정으로 매번 돌아올 수 있도록 제단을 쌓고 있지만, 끝까지 거절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버리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음이 많이 급하고, 시간이 많지 않은 것 같아 늘 불안합니다. 직장생활을 하던, 학교에 있던, 여러분의 마음이 항상 죄에 대해 민감해서, 작은 죄라도 짓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또한 죄를 불가피하게 지었다고 하면, 바로바로 즉석 회개하는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빠른 시일 내에 우리에게 재앙이 닥친다고 해도, 그 날이 언제나 준비되어 있으니, 언제든지 데려가시라고 할 정도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지하철 참사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무너진 것, 하나님은 어린 아이라고 봐주시지 않습니다. 지하철 참사 때 갓난아기도 많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재앙 앞에서는 나이 어리다고, 여자라고, 야가다고 봐주는 것 아닙니다. 그냥 재앙이 닥쳐오면 다 죽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오해를 합니다. 그 중의 착한 사람도 있는데 왜 죽이냐고 말입니다. 착한 사람이 뭐가 걱정이겠습니까. 죽으면 천국입니다. 왜 하나님이 심판하는 것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합니까. 하나님이 재앙을 내리는 날, 준비가 되어있으면 천국이고, 아니면 지옥입니다. 천국 가는 사람 옷자락 붙들고 늘어져봐야 천국 못 갑니다. 지옥 보내시는 그 순간에는, 영혼이 분리되는 그 순간에는, 세상 사람들이 위로 받고 싶어 자기들 머릿속에 만들어낸 연옥 같은 그런 거 없습니다. 천국 지옥 사이에 휴게실도 없고 한번 만 기회 달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요즘 캠페인에 열심히 동참 안하는 사람 보면서 하나님 무시 한다고 하십니다. 뭐 하나님도 무시하는데, 사령관 말 무시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에 와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 2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하나님 무시하지 말라는 것과 오버하지 말고 담백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그 껍데기에 치중하는 것이 얼마나 가겠습니까. 우리들의 마음이 구원을 당락 시킵니다. 그러다 보니 때가 다 되었다는 것이 피부적으로 느껴집니다.
정치나 북한의 정세에 대해 논할 때, 기독교 교계에서 기도 많이 하신다는 분들은 가면 갈수록 더 모르겠다고 합니다. 가까워 온 것 같은데, 어느 정도 가까운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사방이 깜깜하면 뱀이 발 앞에 있어도 모를 겁니다. 1분 뒤에 그 뱀에게 물려 죽을 텐데도, 재앙이 바로 코앞에 와 있어도, 잘 느끼지 못합니다. 왜냐면 깜깜하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도 안보이고 들리지 않으니, 깜깜하니, 민감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사도들은 이런 이야기를 자주합니다. 재앙당하는 그 바로 전날까지 평안하다고, 그 재앙은 배불렀던 여인들이 갑자기 해산하는 고통을 맞고, 자기도 모르게 아이를 출산하는 것처럼, “평안하다. 평안하다.” 그러고 있다가 갑자기 일이 닥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나 말씀 들으러 온 사람들에게 그 날이 언제인지 모르기 때문에, 답답해하는 사람들에게 매일 준비하고 살라고 합니다. 그 날이 언제이든 너희들이 준비만 되어있으면 무엇이 걱정이냐고 하십니다. 중학교 1학년이라고 봐주는 것 아니고, 나이 많다고 봐주는 것 아니고, 공부 잘한다고 자격증 몇 개 있다고 봐주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 재앙 앞에서 피할 수 있는 인생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 요즘 로마서를 배우는 줄 아십니까. 어차피 죽을 인생인데, 희망이 있겠습니까. 모두가 사형수인데 말입니다. 그런데 사형수에게 가장 행복한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대통령 사면장일 것입니다. 사형수가 한 시간 뒤면 사형을 당하는데, 누가 부동산을 준다고 한들 기쁘겠습니까. 좋은 학교, 좋은 직장, 아닙니다. 한 시간 뒤에 사형당하는 사람을 이 세상 어떤 것도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단 한 가지, 사형집행을 멈추라는 대통령의 사면장이 온다면, 밥 안 먹어도 배부르고, 좋은 집에 안살아도 행복하고, 좋은 침대 없어도 단잠을 잘 수 있습니다. 영양제 안 먹어도 힘이 불끈 솟을 것입니다. 그런 내용들이 로마서에 있습니다. 로마서는 66권 가운데 사면장의 복음입니다. 죄 있는 사람이 절대 죄로부터 자유 할 수 없고, 하나님이 죽이시면 지옥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천국가고 싶다면 회개의 길, 회개하고 담백하게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길밖에 없습니다.
작년 재작년 까지는 꿈이 진짜 많았습니다. 우리 아이들 잘 길러서 검사, 외교관, 국회의원 판사도 나오고, 대통령도 나오고 그렇게 해서 한방에 멋진 인격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려주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꿈에 부풀어, 중고등부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고 닦달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지구를 몇 년 몇십년 더 가게 하실지 알지 못하는 이 상황에서, 신앙생활 등한시 하면서 공부 열심히 하는 것 비추입니다. 전도요원으로서 직장 가서 동료나 선배나 후배들에게 나의 좋은 면모를 보이면서 예수 향기를 드러내서 직장을 복음화 시키는 것 그것이 꿈입니다. 신앙생활 등한시 하면서 까지 직장생활 하는 사람 비추입니다. 하나님 마음 알지 못하고 직장이나 학교 생활하는 것은 오히려 자신의 모습 때문에 하나님을 더 능력 없게 만들고, 하나님 얼굴에 먹칠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그저 될 수만 있다면, 잠을 줄여서라도, 하나님 마음 더 알려고 애쓰고, 회개 자리로 어떻게 해서든지 내 몸을 끌어다가 하나님 앞에 반성하기 원합니다. 지금은 여러분에게 잔소리 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곧 심판의 날이 오면, “죄 짓는 것 좀 말리지. 더 세게 잔소리 하지.” 그럴 날이 올 것입니다. 소나기는 피하랬다고, 하나님이 주시는 대 재앙 앞에서 빨리 회개하고, 일단 천국 갈 준비를 나부터라도 하는 것이 시급한 문제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침에 “우리나라 대한민국 범죄 한 것 용서해주세요. 우리나라 대한민국 불쌍히 여겨주세요. 우리나라 대한민국 살려주세요.” 기도하는데, 나와 내 가족이 너무 급하니, 우리나라 대한민국 앞에 “여호와 하나님 죄 많은 나와 내 가족 우리나라 대한민국 범죄 한 것 용서해주세요. 여호와 하나님 죄 많은 나와 내 가족 우리나라 대한민국 불쌍히 여겨주세요. 여호와 하나님 죄 많은 나와 내 가족 우리나라 대한민국 살려주세요.”이렇게 나랑 내 가족을 앞에 넣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가 조금 더 오래 존속해야 가족 영혼구원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저(장미영 목사님)의 큰 고모와 온가족이 다함께 일본에 살고 있는데 이번 일로 생사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언제 누가 먼저 떠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재앙 받는 것을 조금 더 유보시켜달라고, 우리가족들하고 친가, 외가, 다 돌아오게 할 만한 시간을 벌기위해 기도를 합니다. 종말이 다른 것입니까. 오늘이라도 각자 불러 가시면 그날이 개인적인 종말입니다. 나라는 존속하고 있는데, 나나 준비되지 않은 가족을 불러 가시면 진짜 끝장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많이 바쁘고 분주합니다. 그러다가 우리 중고청년부를 둘러보면 학업문제, 친구문제, 이성문제, 물질문제, 죽을 때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는 이런 것들로 머리와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무늬만 전도요원들입니다. 가슴이 너무 많이 답답합니다. 시간 많지 않습니다. 예지 능력 있어서 몇 년 남았다는 것만 알아도 얼마나 좋겠습니까. 피부적으로 살이 떨립니다. 길지 않는 느낌, 지금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그것은 하나님이 재앙을 내리시는 것 앞에 조금만 참아달라고 유보시켜 달라는 것뿐입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세상의 것들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합니다. 담백하게 살기 위해 캠페인에 올인 하시길 바랍니다. 반밖에 안남은 작정기도인데 알아서 시간관리 잘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희망은 있습니다. 아직은 내가 살아있고, 아직은 회개의 기회가 있고, 사면장인 로마서가 있지 않습니까. 예수 심장 가지지 않고, 밖의 세상 것 교회로 끌고 오면 세속화입니다. 교회에 세속화를 끌고 오겠습니까. 직장이나 학교를 복음화 시키겠습니까. 이제는 힘내서, 예수심장가지고 학교나 직장을 복음화 하는 주의 종 되기 원합니다.
1)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사람. [로마서 3:23]
인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행복을 얻는 것이 왜 어렵습니까. 그렇게 노력하는데, “수많은 우상 앞에 절하며 행복해 지고 싶었던 미련했던 죄인을 용서하소서.” 이 찬양처럼 우리들이 우상 앞에 절하는 이유가 행복해지고 싶어서, 기복신앙, 복만 준다면 우상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5천년 역사가 그렇게 이어져 왔습니다. 서낭당 뱀 구렁이 섬기고 바다신 용신 섬깁니다. 왜 그랬냐면, 절대적 믿음이 없고, 뭐가 복을 줄지 모르니 다 섬겼던 겁니다. 절대적인 믿음이 있었다면 여러 가지를 다 섬겼던 것이 아니라, 하나만 찍고 공략하면서 섬겼을 것입니다. 어느 놈이 복을 줄지 모르니 눈에 보이는 것 다 섬기는 겁니다. 그런데 얼마나 안타가운지, 그렇게 섬겼던 모든 것이 다 아니라는 겁니다. 결국 120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선교사를 통해 전해지게 됩니다.
인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행복을 얻을 수 없고 행복 얻는 것이 쉽지 않는 이유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하나님 영광의 느낌은 비교할 수는 없지만, 여러분이 어렵게 어떤 대회에 나가서 상 받았을 때, 상 받는 느낌보다, 주변에서 축하해줄 때 느끼는 그 뿌듯함보다 백만 배, 천만 배, 되는 것이 영광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쇼생크 탈출처럼 죽을 뻔했다가 빛을 보고 다시 살아났을 때의 그 영광보다 백만 배 이상일 겁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이 이런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왜 행복을 얻는 것이 어렵습니까. 그렇게 노력하는데, 돈도 벌어보고, 잘사는 친구 옆에 가서 아부를 떨어서라도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는데, 남들에게 능력 있어 보이려고 밤잠 않자면서 기술 익히고 공식을 외우는데 왜 행복이 채워지지 않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진 인생이야 말로 진정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믿음이 없는 사람처럼 불행한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 믿음이 무엇입니까. 난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내게 믿을 구석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진심이 되어 올라오는 사람, 이것이 믿음이 있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나는 죄지어서 죽을 수밖에 없는 사형수이지만, 하나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회개하면 죄 용서함 받고 다시 살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내가 잘못했다고 사과할만한 용기가 생지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자존심 때문에 못하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내가 미안하다고 해야 하는 상대가, 됐다고 하면서, 미안하다고 하면 다냐고 거절할까봐서, 이런 두려움 때문에 먼저 손 내밀지 못하고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예수님은 다릅니다. 언제든지 잘못했다고만 하면 바로 “접수 중.”이렇게 깜빡거리다가 “접수완료.”이렇게 됩니다. 하나님께는 거절당하면 어쩌지 이런 염려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잘못했다고 말하면 다냐고 따지지 않습니다. 그냥 뉘우치고 잘못했다고 하면 용서해주십니다. 잘못했다고 하는 사람은 어깨 축 처져있고 기가 많이 죽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기에 성령 부어주십니다. 그래서 죄 때문에 기가 죽은 사람을 용서해주시고 성령 때문에 당당한 사람으로 만드십니다. 죄는 우리를 의기소침하게 만들고, 하나님 앞에 면목 없이 만들어서, 도망가고 싶게 만드는 것이 죄입니다. 용기를 내어 일단 용서를 빌면 반드시 용서를 해주십니다. 그리고 나서 성령을 받으면 당당해 집니다. 이것을 믿는 것,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러면 믿음이 없어 불행한, 그 불행에서 벗어나 행복을 얻는 것이 왜 그리 어렵습니까. 우리 모두가 죄를 지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돈과 명예를 갖는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로또 복권이라도 당첨되면 온갖 행복이 주어질 것 같지만,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다 헤어지고 살인하고 사기치고 도망가고 가정파탄이 납니다. 복권이 당첨되어 돈이 많아지면, 먹고 싶었던 것 먹고, 하고 싶었던 것 하고, 좋은 집, 좋은 자동차, 여행 다니고, 여유로워질 것 같아 굉장히 바라고 원하지만, 당첨된 사람들을 보면 하나같이 다 불행해 지더랍니다. 그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로또에 당첨되지 말았어야 했는데, 차라리 당첨되기 전에 이것 당첨되면 우리 가족하고 이것 해야지, 저것 해야지, 이런 마음에 부풀어 있던 때가 행복하다고 합니다. 오히려 돈이 생기면 당첨된 가족이 먼저 갖고 튀고, 뒤에 가족이 돈을 많이 들여 도망간 가족 잡고, 돈 때문에 가족 버리고 떠났는데, 도망간 사람 잡으면 행복하겠습니까. 돈을 나누고 각자 떨어져서 마구 씁니다. 세계에서 로또 복권 당첨되고 가장 빨리 탕진한 사람이 1년 8개월 만에 그 돈 다 쓰고, 지금은 쓰레기 청소부를 하고 있습니다. 고둥학교 중퇴하고 친구들 잘못 만나 돈 다 날린 미국인인데, 지금은 위생복 입고 청소합니다. 그러면서 복권 당첨되기 전이 좋았다고 합니다. 마음이 행복할 때가 좋았다고 합니다. 만약에 지금 내 인생에 기적이 올 수만 있다면, 당첨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합니다. 복권에 당첨되면 온갖 행복이 다 주어질 것 같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이것은 TV를 통해 보여 지는, 겉으로 보기에 부러울 것 하나 없어 보이는 연예인들이나 국회의원 정치가 기업가 같은 그런 사람들이 갑자기 생을 포기하고 자살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가 그 자리에 간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생을 포기한 이런 사람들의 그 뒷면을 조사해보면 범죄함이 있습니다. 그 범죄함을 해결하지 못하고 끙끙 앓다가, 양심이 너무 괴로워서 자살을 합니다. 자신의 범죄함이 세상에 드러나면 세상은 자신을 용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서울대 음대 학장이자 성악가, 교수님이었던 한분 계셨습니다. 스타킹이라는 TV프로그렘에서 음치들을 고쳐주는 역할을 해서, 많은 음치들이 음을 바로잡아주어서 너무 고마워했다고 합니다. 서울대 교수에다 입상 경력이 워낙 많고, 큰 대회에 항상 심사의원으로 나가다 보니, 김교수 떴다하면 인지도가 좋아서 “와-” 이럴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뉴스에서 이 서울대 김교수가 학생들을 워낙 잘 폭행한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그럴만한 것이 덩치가 워낙 좋아서 몽둥이도 필요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폭력혐의가 적용되고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그런데 그 교수는 우리들도 다 맞으면서 컸다고 하면서 앞서 가르치셨던 교수님들에 대해서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그렇게 말을 합니다. 뒷조사를 해보니 그 교수님 동기들이 다 반기를 들고 일어나, 앞선 교수님은 그런 분이 아니라고 합니다.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돌아가신 교수님 이야기를 꺼내면서, 맞으면서 자랐다고 하면서, 자신을 옹호하고 정당화하는 것은 너무 잘못되었다고 동기들이 들고 일어납니다. 학생들을 조사하니, 김교수가 그렇게 때린다고 합니다. 연습 게을리 해서, 숙제 안 해서 때리면 불만이 없는데, 학생들을 교수님 공연하는데 초대해서 앉혀놓고, 그날 박수소리가 적다고 하면서 공연 끝나고 안보내고 세워놓고 꽃다발 꽃이 다 떨어질 때까지 때린답니다. 자존심 상하는 이런 일 뿐만 아니라 직접적으로 학생들을 폭행을 합니다. 학생들의 마음에 이런 것들이 하나둘씩 쌓이다 보니 지금가지 있었던 모든 일들을 다 폭로하게 됩니다. 그 중에 어떤 학생이 동영상을 제공해서 완전히 쫓겨나는 상황까지 되었습니다. 자기네 시어머니 칠순잔치 팔순잔치를 호텔에서 하는데, 자기 제자들보고 노래를 불러주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여기까지만 이야기 들으면 뉴스 기자들이 교수님 부탁이고 제자들로서 시댁가족들이 많이 모여 있으니, 교수로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좋은 모습도 보일 수 있고, 노래를 전공으로 하니 분위기도 좋을 것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영상을 보니 이건 너무 야한 드레스 푹 파인 드레스 차림을 입혀놓고 나와서 노래하게하고 계속 박수치고 이런 것을 시켰던 겁니다. 결국 서울대에서 발끈합니다. 이런 교수의 모습은 개인적인 용도로 학생들을 섭외하고 임의대로 사용하는 것이기에 법에 저촉되는 행위라고 말입니다. 이런 교수가 이제까지 없어서 처벌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서라도 교수회의에 회부하겠다고 동기들이 반기를 들고 일어섭니다. 이 모습을 보니 동기들이 김교수에 대해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열등감을 표출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 분이 노래를 워낙 잘하다 보니 같은 연배 동기들을 누르고 우뚝 선 것이기에,
2인자는 아무리 노력해도 1인자를 따라갈 수 없기에, 처음에 부럽다가도 나중에는 그 마음이 미움으로 가게 됩니다. 동년배들이 단 한명도 그 사람 감싸주지 않고, 다 독설하는 것을 보면서 저렇게 까지 일등자리에 가고 싶은가라는 씁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가 봤을 때는, 그 분의 친구들이나 제자로서, 공부하면서 자존심이 많이 상했던 제자들과 동기 교수들이 어떻게 해서든지 이번 기회에 김교수를 몰아내야겠다는 생각으로 똘똘 뭉치게 됩니다. 결국 학교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그런데 사명감으로 TV에나와 음치 교정 해주는 것 계속 봉사하고 싶다고 방송국에 요청했지만 결국 잘리게 됩니다. 방송국에서는 그동안 녹화한 분량이 많지만 하나도 방영하지 않겠다고 결정을 합니다.
세상은 이렇습니다. 그 교수가 이렇게 행동 했던 것이 오늘 어제가 아닌데, 들키기 전과 후에 따라서, 그 사람을 대하는 행동이 전혀 다르다는 겁니다. 들키지 않았을 때만 알아주고 띄워준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인격이 변화된 것 아니고, 하루아침에 나빠진 거 아니고, 이미 그래 왔었지만 들키지 않았다는 것과 오늘 들켰다는 것, 그 차이인데 사회 분위기는 냉담했습니다. 교수직 학장직에서 좇아내고, 그동안 나간 예능 프로그램에서 다 잘리고, 한국 어느 곳에는 발 디딜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하루아침에 다 날라 가게 되었습니다. 요즘 교수님들이 많이 살 떨려합니다. 학생들에게 책잡히지 말아야겠다고 합니다. 동년배들 누르고 너무 잘하는 것도 너무 이기적이니 그냥 중간만 하자고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것보다 한 차원 달리 생각해봅니다. 죄에 대해서 들키지 않으면, 세상 사람들은 모를 때까지, 속아줄때까지 잘 지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죄를 지을 마음이 생겼을 때부터, 죄를 짓고, 죄를 지은 그 다음에도, 하나님은 위에서 늘 다 보고 계십니다. 머리 큰 사람 뒤에 있으면 안 보일 것 같이만, 위에서 보면 숨길 죄가 어디 있겠습니까. 결국 다윗이 말했던 것처럼, 허물의 사함을 받고 그 죄를 가리움을 받는자는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죄인이지만 그 죄인의 죄를 하나님이 살짝 덮어주어서 들키지 않는 자가 행복하다는 겁니다. 죄가 없는 사람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죄는 모두 똑같이 지었지만, 이 사람이 용서해달라고 하나님께 빌 때, 이 죄가 드러나면 한국 땅에서 발 딛고 살 수가 없지만, 하나님한테 회개하면 그 죄를 접수해서, 너와 나만 아는 비밀이라고 가려준다고 다시는 똑같은 죄 짓지 않도록 약속하자고 하십니다. 회개로 얻어지는 좋은 장점은 이렇게 하나님과 나만 아는 그 비밀로 해준다는 겁니다. 그런데 남들이 모른다고 끊임없이 죄를 짓고, 또 회개를 하면 우리의 잘못은 계속 덮어져 있습니다. 이러다가 의심을 합니다. 회개한다고 해서 안 들킨 것이었을까, 우연의 일치는 아닐까, 결국 회개를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회개해라고 여러 번 기회를 주십니다. 그래도 회개를 안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 죄를 덮어 가리고 있던 것을 싹 다 벗겨버립니다. 그러면 그렇게 괜찮았던 사람이, 그 안에 구더기가 한 트럭이 나옵니다. 주변 사람들이 다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이런 철면피 독사 같은, 괴물 같은 인간이 우리 주변에 살고 있었냐고 할 겁니다. 강호순이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강호순은 이제까지의 사이코 패스와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평상시 직장에서 일할 때나 자기 텃밭을 가꿀 때에는 완전 웃는 모습이 누구나 다 속을 정도로 완전 해맑습니다. 거기에다가 강아지 한 마리도 사랑으로 기르고, 아이들이 어디 나가면 우리 아빠 자랑하는 그런 자녀들이었고, 아내도 남편이 너무 친절하니 참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바로 10명 이상 되는 여자를 아무데서나 강간 폭행 토막 살인해서 시체 유기한 범인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내가 망연자실합니다. 너무 친절했고, 아이들에게 너무나 좋은 아빠여서, 아이들이 우리아빠 부럽지 않느냐고 하며 다녔는데, 부모님도 사위 자랑 아들자랑 했는데, 동네에서도 자랑거리였는데, 그렇게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말입니다. 지금까지는 범죄자들이 범죄 하면, 저 놈은 그러고도 남는다고 하면서, 평상시에 돼먹지 않았다는 이런 욕을 먹던 사람이 죄를 지었는데 강호순은 달랐습니다. 얼마나 친절한 인상이면 창문내리고 어디까지 가냐고 하면서 저도 그 길인데 태워준다고 얘기하면 단 한명도 거절한 여자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냥 얼굴만 보면 이 사람 법 없이도 살겠다고 할 정도라고 합니다. 요즘 범죄 심리학은 죄를 지을만하게 생긴 사람은 오히려 죄를 짓지 않고, 죄를 짓지 않게 생긴 사람이 죄를 진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합니다. 죄를 짓게 생긴 사람은 죄를 안지어도 의심을 받는데, 죄를 하나 짓게 되면 그동안 해결되지 않은 엑스파일 사건들까지 이 사람에게 다 떠넘겨버리면 무기징역으로 살아야 하니, 내 얼굴이 범죄형인 사람은 절대로 죄를 짓지 않게 된다고 합니다.
강호순이 감옥에 들어가기 적전에 아내한테 아이들 단속 잘하라고, 세상이 무서우니 문단속 잘하라고 눈물 글썽였다고 합니다. 그러더니 감옥에 들어가자마자 자신이 책을 쓰고 싶다고 하면서, 자기가 살아왔던 세상은 겉모습만 번지르르 하면 속아주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고 합니다. 자기 자신과 같은 사람이 없지 않을텐데 사람들에게 조심하라는 지침서를 만들고 싶다는 겁니다. 강호순이 체포 되면서 모든 재산을 압수당해서 가족이 다 거지가 되었습니다. 아이들 학교 다닐 비용도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책을 내서 그 인세라도 받아서 아이들 교육비 줘야 한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죄수의 입장으로 보면 진짜 싸가지 없으나, 아빠의 입장이면 자신은 악하지만 자녀만큼은 바르게 키우고 싶다는 겁니다. 그 사람 모습 가운데 비난해야 할 모습이 있지만 책을 써서 자식들 교육비에 보태고 싶다고 이야기 하는데 한 편으로 짠했습니다. 범죄 한 것은 정말 잘못한 것이고 사형 받아 마땅하지만, 가족은 자기 때문에 있던 재산 다 날리고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강호순에게 짓밟힌 사람 가족들에게 보상금을 줘야 하는데, 그 많은 사람들에게 한 명당 얼마씩 주어야 죽임당한 아가씨 부녀자들에게 보상이 되겠으며, 얼마를 주어야 그 부모님에게 위로가 되겠습니까. 3억도 되지 않는 재산이 나왔는데 경찰들이 다 한숨을 쉽니다. 이것 가지고 얼마씩이나 나눠 주겠나 싶어서 말입니다. 죽여 버려야 한다고 경찰들이 화를 냅니다. 딸 가진 경찰들은 더 화나서 감옥에 들어가면 내 손으로 죽이고 싶다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사건 현장에서 현장 검증하는데 오열하는 가족도 많았지만 딸 가진 사람들은 삽으로 쳐 죽여야 된다고 흥분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이면에는 아빠의 모습도 있더라는 겁니다. 글을 잘 써서도 아니고 자식들 교육비가 걱정되는데 감옥에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기에, 좋은 모습은 아니지만 유명세로 매스컴을 탔으니 “강호순” 하면 강아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 되었으니, 책을 쓰겠다는 겁니다. 아마도 그 사람이 책을 쓰면 저 같아도 살 것 같습니다. 백만부만 팔려도 인세 엄청 나오니, 그것을 교육비에 보태고 싶어 합니다. “강호순씨! 책 쓰지 마시고 회개하셔요.” 아이들 가슴에 상처 준 아버지를 자녀들이 오히려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 할 것 같습니다. 왜냐면 너무 존경했었기 때문에,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기 때문입니다.
높은 자리 많은 돈을 가졌다고 해서 진정한 행복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완벽한 조건을 갖춘 사람들도 “죄" 때문에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죄로 인해 어떤 사람도 행복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은, 일시적인 눈에 보이는 어떤 것 때문에 잠시잠깐 반짝 행복한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돈 명예 권력도 있다고 칩시다. 여러분의 가족들이 다 잘나가고, 그런데 여러분이 남몰래 누구를 찔러 죽여 살인했다고 칩시다. 그날부터 여러분 마음속에 행복이 있겠습니까. 여전히 내 주머니에 돈 있고, 마음대로 쓰고, 권력 있어서 내 발밑의 사람이 발발기고, 아첨하고, 멋있다고, 훌륭하다고 한다한들, 내가 어제 누군가를 찔러 죽였다면, 머릿속에는 그 시체를 어떻게 할까, 토막을 내서 하나씩 버릴까, 온전히 묻을까, 등산객에게 들키면 어떡하지, 지문이라고 나오면 어떡할까, 박스에 넣어놓고 썩으면 뼈를 화장할까, 창고를 빌려서 넣어놓고 콘크리트 부어서 발라 버릴까, 오늘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하루 종일 행복하겠습니까. 우리가 행복하지 않는 모습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돈과 명예 권력 다 가지고 있어도, 사람들이 말하는 행복기준은 그것을 은폐하려고 분주하고, 은폐하고, 또 그것을 감추기 위해 다른 거짓말을 계속 합니다. 로마서는 우리의 모습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행복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그 죄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죄지으려고 하는 마음, 죄를 짓고, 죄 지은 다음 그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고민하다가, 살인을 하게 되고, 그 뒤에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는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얕은 행복은 한순간에 날아가 버립니다. 이처럼 죄는 우리의 행복을 한 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는 치명적인 도구가 됩니다.
강호순의 경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강호순이 죄를 들키지만 않았다면, 그의 가족의 행복은 좀 더 길게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강호순은 살인을 주기적으로 저지르고 있는 동안에 가족이 느끼는 가짜 행복을 위해, 들키지 않으면서 계속 범죄 했다면, 강호순 덕분에 세상은 계속 불행하고, 들키지 않아서 그의 가족은 계속 행복한 이런 비합리적인 상황이 벌어졌을 겁니다. 한 두변 죄를 짓고 자수하면 이런 상황은 막을 수 있었지만, 죄를 지을 때마다 더욱더 담대해지니 계속해서 죄를 짓게 되었던 겁니다. 결국에 가서는 하나의 범죄로 잡혔지만, 들킨 하나의 죄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비닐 뜯으면 땅에 묻혀있던 비닐들도 두두둑- 다 따라 나와서 수년전에 지은 죄까지 몽땅 군중들 앞에 다 드러나게 됩니다. 이처럼 죄가 들어난다는 것은 한순간에 우리의 모든 삶을 앗아가는 치명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행복하지 못합니다. 명심할 것은 자신의 죄라고 할지라도 자신이 그 죄를 해결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살인한 자가 자신의 죄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기적을 일으켜서 살인당한 상대를 살리는 것이 가능합니까. 살인자가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살인한 사람을 살리는 것인데, 이것은 불가능합니다. 집 건물 방화해서 태웠다면, 집을 원상태로 만들어 놓는 것, 우리가 누구에게 말로써 상처를 줘서 미안하다고 해서 그것이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닙니다. 상처주기 전으로 마음을 돌이켜 놓고, 할 수만 있다면 그 순간을 기억상실 시켜서, 모든 기억을 없애거나, 타임머신 타고 가서 그 이야기를 하지 말던가, 이런 것들이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죽은 시체 살릴 수 없고, 타버린 그 집이나 빌딩 다시 지을 수 없고, 다시 짓는다고 해도 예전과 똑같이 만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일평생 행복하지 못하고 사는 겁니다. 로마서 3장 23절에서는 인간의 노력으로 행복을 얻을 수없는 이유가 바로 우리의 죄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행복해 질 수 있는 첫 번째 시발점은 내가 죄인임을 아는 사람입니다. 내가 죄인이고 이 죄를 나 혼자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 내가 죄인임을 주제파악해서 아는 사람, 이것이 바로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의 조건 1단계입니다.
부모님의 강요에 못 이겨 교회를 억지로 다니던 청년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장로님 권사님이기 때문에 교회를 안 나가면 엄마 아빠 얼굴에 먹칠한다고 해서 강요에 못 이겨 교회에 나가게 됩니다. 만약에 이 부모님이 엄마아빠 얼굴에 먹칠하지 말라고,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냐고 하는 것보다는, 하나님 보시기에 어떻겠냐고 하면서, 예수 영접한 자가 주일성수도 안 지키고, 세상으로 나도는 모습을 하나님이 얼마나 속상해하시겠냐고 접근 했다면 이 청년이 더 빨리 돌아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인본주의로 접근을 하다 보니, 하나님을 믿지 않고 교회 한 번 가준다는 이런 마음으로, 인본주의로 왔다가니 돌아오기가 힘들었던 겁니다. 이 청년은 등산을 좋아했습니다. 어느 날 주일예배도 안가고 새벽부터 등산을 갑니다. 험한 산을 혼자 오르던 그 청년은 벼랑 끝 가장자리를 걷다가 그만 절벽 밑으로 미끄러졌습니다. 낭떠러지로 막 미끄러지는데 은연중에 뭐라도 잡으려고 손가락을 갈고리로 만들었는데, 다행히 절벽에 나 있던 나뭇가지를 잡은 겁니다. 있는 힘을 다해 나뭇가지를 잡고 소리를 지릅니다.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거기 누구 없어요?”이렇게 계속해서 소리를 질렀지만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바로 밑을 보니 계곡인데 여기서 떨어지면 딱 죽을것 같더랍니다. 물이 깊으면 살 가망성이 있겠지만, 얕은 물에 떨어지면 머리가 부딪혀서 죽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음성이 들려옵니다. “내 목소리가 들리느냐?” 실화입니다. 이사람 아직도 살아있습니다. 음성을 들은 청년은 대답합니다. “그럼요 들립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제발 도와달라고 하였느냐?”음성이 계속 들려옵니다. 청년은 제발 도와달라고 자기가 여기 있다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때 갑자기 “나는 네가 믿는 너의 구주 예수다.” 청년은 “예수님이요? 그러면 하나님이세요?”라고 묻습니다. “그렇다.” 청년은 제발 도와달라고 하면서, 정말 여기서 한번만 구해주시면 앞으로 신앙생활 정말 잘하겠다고 합니다. 어쩌면 그렇게 우리들이랑 똑같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구원 해줄 줄로 네가 믿느냐?”라고 물으십니다. 나뭇가지는 꺾어져 가고 있는데, 그 청년은 믿는다고 하면서 한번만 살려달라고 믿는다고 대답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알았다. 내가 널 구해주마. 내가 널 구해줄 테니, 네가 잡고 있는 그 나뭇가지를 놓아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널 구해줄 테니 나뭇가지에서 손을 떼라고 합니다. 내가 너를 구원해 줄 것을 믿는다면 나뭇가지를 떼는 순간 구출을 받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 청년은 고개를 푹 숙입니다. 한참 동안 침묵이 흐르더니, “거기 누구 없어요? 사람 살려! 저 좀 살려주세요!”예수님을 옆에다 놓고 다른 사람보고 살려달라고 합니다. 결국 계곡 밑으로 떨어집니다. 죽은 것은 아니고 부상당해서 구사일생으로 구출됩니다. 그 청년은 다시는 주일날 등산을 가지 않게 됩니다. 보통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고 나면 생명의 은인 값을 알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에 상처가 치유되고 그 흉터가 없어질 때쯤이면, 다시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죄를 짓습니다. 그 청년은 평생 장애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이 장애를 오랫동안 주는 것을 보니, 분명히 상처가 나으면 다시 죄를 지으러 갈 것이라고 생각해서, 다시 옛 생활로 돌아갈 것 같으니 영구적인 장애를 주신듯 하다는 감사의 고백을 했다고 합니다.
그때 만약 그 청년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흙 한줌으로 나를 만드신 자가 하나님이신데, 365살에 승천한 다니엘에게도, 엘리야에게도 중력이 힘을 발휘하지 못했기에 하나님이 들고 올라가셨습니다. 하나님이 구출해준다고 한다면, 나뭇가지 붙들고 있어도 부러지면 죽을 것인데, 밑져야 본전인데, 손을 확 놔버리는 것이 구원받는 유일한 길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을 못 믿고 나뭇가지를 못 놓습니다. 예수님보다 하나님보다 나뭇가지가 나의 생명을 연장시켜 줄 것이라고 믿고 붙들었습니다. 잠깐 나를 행복해지게 만드는 반짝 행복, 이 나뭇가지가 돈 명예 권력 잘나가는 사람 그늘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얼마가지 않아 실체가 들러나고 죄가 드러나면 다 날아가게 되어있습니다. 강호순 자신의 죄가 드러나자 통장잔고 0원이 되고, 빚더미에 앉게 되어서 자녀와 아내는 도망자 인생이 되었으며 이름이 알려져서 전학도 못 가게 되더라는 겁니다.
그 나뭇가지 곧 부러집니다. 예수님이 그 나뭇가지를 놓으라고 합니다. 어차피 그 나뭇가지 부러지면 죽고, 계곡에 떨어지면 죽고, 머리 부딪치면 죽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을 살려둔 것은 이렇게 믿음 없는 자가 회개하고 후회하는 모습 덕분에, 금방 부러질 나뭇가지 잡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간증해서 많은 이들이 돌아오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잡고 있는 나뭇가지가 무엇입니까. 체중을 못 이겨 부러질 그것을 여전히 의지하고 있습니까. 확실히 견고한 예수 그리스도의 손을 붙잡길 전도요원이 되길 축원 드립니다.
첫 번째 설교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행복을 파괴하는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로마서 3:20]
믿음 없는 인생이 불행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죄를 해결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사람이 불행한 인생을 살아야 합니까. 회개 없는 신앙인이 왜 불행한 인생을 살수밖에 없습니까. 본인이 매일 짓는 죄를 회개가 아니면 해결할 방법이 없는데, 죄를 지어도 하나님 앞에 회개를 하지 않으니, 직장이나 학교 학원을 다니며 공부를 하던 연구를 하던, 내면 깊은 곳에서 행복을 발견하기가 어려운 겁니다. 죄를 해결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믿음 없는 인생이 불행한 것입니다.
카드빚에 시달리고 있다가 소중한 목숨을 버리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가 있습니다. 채주에게 쫓겨 다니고 은행의 문턱이 높아서 사채를 쓰다가, 사채업자에게 붙들려 장기를 뺏기고, 납치당해서 고깃배 타고 이런 인생의 이야기 종종 들을 수 있습니다. 모두의 공통점은 이들이 처음부터 죽음을 선택한 것은 아닙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을 갚기 어려워서 여러 개 카드로 돌려막기 하는것은 잠시 잠깐 한달 두달은 숨을 쉴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현금 서비스에 대한 수수료도 만만치 않아서 다음 달에는 더 큰 돈으로 돌려막아야 합니다. 돌려막기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가 없습니다. 여전히 나는 빚쟁이가 되어있고, 아무리 돌려막기해도 오히려 이전보다 더 큰 빚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해결할 방법이 없으니 유서 써놓고 죽음을 선택합니다. 카드빚으로 자살한 사람들이 불쌍합니까. 사회적인 정의에서는 갚을 수 없는데 왜 빌렸느냐는 질문을 합니다. 물론 사람이라 하루 종일 몸을 움직이고 무엇인가 계속 연소하는 힘으로 살아야 하기에, 먹어야 하고 자야하고 씻어야 하는데, 내게 가진 것이 없고 인생은 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이 남의 것을 빌리고 빚지는 인생이 되어서, 결국 죽음을 선택하게 되며, 이를 지켜본 우리들은 안타까워하게 됩니다. 그들의 인생은 우리 크리스천 인생과 너무 많이 닮아있습니다. 크리스천 속에서도 행복을 찾기 위해 신앙을 등지고 돈을 벌고, 명예를 얻으려고 하나님과 거리가 생기더라도 이 세상에서의 권력을 잡아보려고 갖은 노력을 다 합니다. 나름대로는 다가오는 불행을 막기 위해 이것저것을 돌려막기를 합니다. 죄를 해결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하나님께로 나아가서 죄를 해결하려 들지 않으니까, 그 죄를 덮을 수 있는 커튼이나 이불 커버 포장지 상자 이런 것들을 사는 데만 주력을 합니다. 행복을 위해 돈, 명예, 권세, 이런 것들을 잡으려고 노력하지만, 이 모든 방법들은 불행을 막기 위해 이것저것으로 돌려막기 하는 인생밖에 되지 않습니다. 신앙을 등지고 하나님을 멀리하면서까지 돈을 벌고, 명예나 권세를 잡으려는 그런 사람들이 여전히 행복하지 않다는 겁니다. 어떤 것을 해봐도 행복이 찾아오지 않습니다. 올 것 같은데 오지 않고, 행복한 인생이 이 것 같은데 이어지지 않더라는 겁니다. 이유는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입니다. 죄를 해결하지 않은 채, 행복 찾기만 하는 것은 기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 돌려막기 인생일 뿐입니다.
율법은 결코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아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 죄를 덮으려고 커버만 씌우는 것, 들키지만 않으려고 두꺼운 것들로 덮는 것, 학벌이나 권력 명예로 덮어씌우려는 것은 돌려막기 밖에 될 수 없습니다. 죄 없이하고, 죄가 해결되면, 그 많은 커버들이 필요 없게 됩니다. 그런데 죄는 워낙 많고, 단단하고 산더미처럼 높아지니, 정말 대단하다고 하는 사람들의 죄가 드러나게 되면 세상이 경악을 하게 됩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말입니다. 하지만 당연히 그럴 수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그들이 그렇게 훌륭한 자리까지 올라간 이유가 자신의 죄를 덮으려고 그렇게 된 것입니다. 들키지만 않았다면 자신의 죄를 숨긴 채, 더 훌륭하고 더 많은 부를 구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들킨 그쯤에서 끝났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그것을 돌려막기 하기 위해서 무덤에 들어가기 전까지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죄를 덮기에만 급급한 인생을 살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3)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로마서 3:28]
어떻게 하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해답을 먼저 드리면, 회개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행복할수 있는 것은 그 방법 하나밖에 없습니다.
영국의 시인 테니슨이 친구와 함께 정원을 거닐고 있었습니다. 둘 다 믿음이 좋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영접한지 오래고, 은혜가 충만해서 믿음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정원을 거닐고 있었습니다. 친구가 테니슨에게 묻습니다. “자네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테니슨은 친절하게 이야기 합니다. 자네 여기 꽃이 보이지 않는가. 향기도 좋고 싱싱하고 참 좋네. 이 꽃이 마치 나라는 느낌 드네. 꽃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태양이네. 이 꽃이 스스로 필 수 있겠나. 그 태양빛이 광합성을 하게 해주지 않으면 금방 시들어버리지 않겠는가. 나에게 향기가 나고 아름다움을 발할 수 있는 이유는 태양이 빛을 비춰주어서 이렇게 광합성을 해주니, 꽃잎이 싱싱하게 되고, 토양으로부터 올라오는 수분으로 나를 살아있게 하는 비결일세. 이 세상이 다 사라진다고 해도 태양만 하겠는가. 태양이 사라지면 끝장일세.
지구는 자전합니다. 태양을 바라보고 있는 쪽은 낮이고 반대편은 밤입니다. 돌고 있는데 모든 지구는 동일하게 이 태양의 빛을 보지만, 지구임에도 불구하고 남극과 북극은 눈과 얼음으로 덮여있습니다. 똑같이 태양을 바라보는데 왜 펭귄이 있고, 에스키모인들은 이글루에 살며, 그렇게 얼음과 눈으로 뒤덮여 있습니까. 다른 이유 없습니다. 태양을 덜 받았기 때문입니다. 태양을 많이 받으면 따뜻한 나라가 됩니다. 지구에서 남극과 북극이 태양으로부터의 사각지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추울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추운나라에 가면 꽃이 잘 피겠습니까. 꽃을 잘 피우기 위해 하우스를 만들고, 어떻게 해서든 태양 빛을 밭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합니다. 겨울에 농산물 키우기 위해 비닐하우스 만들고, 스프링쿨러 설치하고, 남향으로 하우스 잘 만들어서 빛을 있는 데로 받기 위해 최대한 노력합니다. 그러나 빛이 따뜻한 봄이나 여름에는 그런 노력 안 해도 됩니다. 우리가 꽃이나 식물이라면, 우리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존재는, 식물에게 있어 태양의 존재와 같습니다. 이것이 나와 예수님과의 관계입니다. 스스로 존재 할 수 없고, 스스로 싱싱하게 설수 없음은 태양 빛 덕분에 꽃이 피고 줄기가 튼튼해지며 이로써 오늘 하루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꽃도 태양의 빛과 열이 없으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땅바닥만 보는 사람은 알 수 없지만, 오늘도 그 햇빛과 열기를 받고 살아가는 그 식물들도 그 고마움을 다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아름답고 튼튼하고 예쁘고 향기로운 꽃도, 저 태양이 없으면 시들고 세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금세 땅바닥에 떨어집니다. 우리의 인생이 진정 아름답고 행복할 수 있는 것은 태양과 같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가 없으면 생명이 없는 조화, 가짜 꽃과 같습니다. 그 꽃의 장점은 오래가지만, 단점은 살아있지 않고, 향기도 없는 죽어있는 가짜라는 겁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생명체입니다. 멈춰있는 곰돌이 인형이나 목각인형이 아닙니다. 흙으로 만들어졌지만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넣어주셨고, 하나님의 심장과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손으로 만들어져서 하나님의 심장과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우리들이 하나님과 별개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그분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고, 그 분의 힘으로 살아야하고, 또 죽으면 그 분의 나라에 가야합니다. 혹시 살아있는 꽃이라 할지라도, 태양이 필요 없다고 하면서 태양을 피해 지하실로 가면, 하루 만에 킥 죽게 됩니다. 살아 있는 꽃이라 할지라도 말라 죽게 됩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님,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믿는 믿음이 있는 그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까. 바로 회개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 받은 사람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인간의 행복이 믿음에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만이 죄를 해결할 수 있음은 성경이 한 결 같이 말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구원받기 위해 율법을 지키면 지킬수록 율법은 우리를 정죄합니다. 10개중에 1개만 안 지켜도 너는 죄인이라고 합니다. 율법은 결국 어떻게 해서라도 노력하는 우리들에게 그래봤자 너는 죄인이라고 정죄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죄를 인정하고, 예수님이 우리 인류를 위해 십자가 지고 부활하셨음을 믿고, 그 십자가 붙들고 용서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빌면, 용서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도, 아버지 앞에 회개하면 용서해 줄 거라는 믿음, 그 믿음이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갈 수 있는 작은 용기를 갖게 합니다. 그러기에 믿음만이 죄의 문제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이것이 바로 행복의 지름길이라고 하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내 인생의 구원자로 받아들이고, 나는 껍데기이니 예수님이 내 안으로 들어와서 나를 조정해달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주인의 자리 내어드리고, 나는 똘마니로 내려가서, 주님의 지시 받은 대로 순종하고 따를 수 있어야 합니다. 내 능력으로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공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를 움직이는 인생, 나의 삶을 주관하는 인생, 복음전파 영혼구원 그 목적을 가지고 나를 오라고 하는 예수님의 발자국 따라가는 인생, 이모든 인생이 전도요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행복한 처음이자 마지막 조건입니다.
로마서 3장 23, 20, 28절을 통해 죄에 대해서 함께 다루어 보았습니다. 모든 행복의 조건을 많이 쌓아두었지만, 결국 나의 죄가 드러나게 되면 그 행복의 조건들은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게 됩니다. 그 죄 문제를 해결 못하면 자살로 인생을 마감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들은 죄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 문제 해결하실 수 있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신앙자로서 행복하지 못하는 이유는 죄를 해결 못하는 우리들이기에,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하면서 두꺼운 천, 좋은 천, 비치지 않는 천을 사서 겉에 오려붙여 덮으려는 돌려막기, 돈 명예 권력 사람들과의 인관관계로 나의 모습을 치장하려는 모습보다는, 그 속에 있는 죄의 근원을 해결하고 그 커버를 들이 대지 않아도 성령으로 당당해지는 인생 살기 원합니다.
우리들이 행복하게 되는 마지막 유일한 방법은,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 그 믿음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 받고, 용서받고, 성령 받아 당당하게 사는 길입니다. 우리 전도요원들 다음 한 주간 더 신실한 믿음으로 다가서기 원합니다. 저희들이 안 믿는 삶으로서 이제 교회 다니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예수 믿다가 학교 직장 나가는 사람으로서, 우리들의 목표는 세속화가 아니라 복음화입니다. 우리들의 본업이 예수님 믿는 것임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기회 주셨을 때 타이밍 맞춰 회개해 드리고, 주님을 구주로 모시고, 알아서 그분을 주인공으로 모시어서, 우선순위에 하나님을 가장 먼저 배치하는 주의 종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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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수 없나니
천하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이름을 우리에게 주신일이 없음이로다~~~오직예수
아멘!~~ 우리온식구 다 천국으로 갈수 있게만 해주세요 !!~~
사랑합니다. 우리 가족 예수님!!~~